- 청석령 지나거냐
- 효종(孝宗)
청석령(靑石嶺) 지나거냐
초하구(草河口)는 어디메오
호풍(胡風)도 참도찰사
궂은비는 무슨 일고
아무나 내 행색(行色) 그려내어
님 계신데 드리고저
*
청석령을 지났느냐,
초하구는 어디메냐?
호풍이 차고도 찬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이 겨울에 궂은비는
또 왠 일이냐?
아무나
나의 이 초라한 행색..
황량한 오랑캐 땅에서 차디찬 바람,
게다가 궂은비까지 맞으면서
오랑캐에게 끌려가는
내 이 꼴을 그림에라도 그려서
임금님 계신 서울 대궐에
보내 줄 사람은 없느냐?
처절한 정경이다.
이름도 낮설은 오랑캐 땅,
음산한 호풍(胡風)에
궂은비까지 옷을 적신다.
막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 아닌가.
구중궁궐에서 고이고이 자란
일국의 왕자가 이런 꼴이 되다니 전쟁은 처참하다.
나라와 나라의
전쟁은 무자비하다.
그때의 원한이
뼛속에 사무쳤기에 뒤에
이를 악물고
`북벌(北伐)`의 칼을 갈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수포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으니,
국력이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이다.
이야기는 비록
384년 전의 일이지만,
이 정경을 한낱
문학 작품의 소재로만 넘기기에는
그 정경이 너무도 처절하다.
얼마나 애타고 외로웠기에
"아무나 내 행색 그려내어 님 계신데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는가 말이다.
금수강산 살기 좋은 나라,
양반 나라의 왕자가
되놈에게 끌려가
그 지옥같은 되땅에서
이런 고초를 겪다니..
나라 힘을 기르지 못한
통치자의 자업자득이라면 그만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 못해
가슴이 찢어진다.
*
청석령(靑石嶺) :
만주 요령성(遼寧省) 동북쪽에 있는
고개 이름.
초하구(草河口) :
효종이 병자호란 때에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 갈 때 지나간
만주의 고장 이름.
호풍(胡風) :
호지(胡地) 오랑캐 땅에서 부는
차디찬 바람.
참도찰사 :
차기도 차구나, 몹시 차다.
행색(行色) :
나그네의 차림새.
/
몇 해 전,
Jtbc 드라마 "꽃들의 전쟁"에서
그 때의 참상을 짐작해 본다.
인조(仁祖)가 이마를
땅바닥에 찧어 피를 흘리며
청태종(淸太宗)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3번 절하고 9번 고개를 조아리다)를 올린다.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나고 가슴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역사에 기록은 없지만
인조(仁祖가 피를 흘리며
땅바닥에 머리를 찧을 때마다
그 참담한 모습이 상상이 된다.
옆에 도열했던 청나라의 신하들이나 병졸들은
똑바로 하라며 발로 엉덩이를
툭툭 찼을 것이다.
~ 야, 그게 뭐야, 머리를 더 숙여라,
~ 자세를 똑바로 해라 ~!
그 모습을 바라보는 왕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라의 힘이 약하니, 이런 굴욕을 당했다.
참혹한 모습이 상상이 된다.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적인 항복이다.
봉림대군(鳳林大君)은 삼학사(三學士)와 함께
볼모가 되어 심양(瀋陽)으로 끌려간다.
모진 고문과 회유를 당하다가
옥에 갖힌 삼학사(三學士),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홍익한(洪翼漢)이 갖혀있는
옥문 앞에 까지 찾아간다.
처참한 몰골을 바라보는
봉림대군의 가슴은 찢어진다.
삼학사를 향해 차라리
이곳에서 함께 죽자며 통곡을 한다.
그 때 잡혀간 남여 포로가 무려
10만명이라니 가슴이 아프다.
그 당시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
고향에 돌아온 여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보호해야 할 텐데
더럽다고 손가락질 하고 `화냥년`이라 했으니
이건 또 무슨 지랄들인가.
수만리 타국에 끌려가
고생한 여인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국력이 약한 나라
어진 백성이 겪는 비참함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울화가 치민다.
에라이 ~!!
*
중국의 중원을 노리던 후금(後金)은
조선을 명(明)과 분리시키려고 유화정책을 폈으나
인조(仁祖)는 오랑캐라고 폄하하며 계속
망해가는 명(明)나라에만 충성을 보였다.
이에 누루하치(愛新覺羅)가
1627년 조선을 침략했으나 곧 강화를 맺고 물러났다.
그럼에도 계속 명에 대한 사대주의만 계속하자
청태종 홍타이지(淸太宗 皇太極)는
국명을 청(淸)으로 바꾸고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일으켰다.
그 결과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항복한
인조(仁祖)가 이마를 땅바닥에 찧어 피를 흘리며
청태종(淸太宗)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올린다.
게다가 굴욕적인 삼전도비(三田渡碑)까지 세우게 된다.
*
호로(胡奴)자식의 유래 :
청(淸)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고향에 돌아온 여인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
조선은 유교(儒敎) 국가였다.
타국에서 정조를 잃었다고 해서
손가락질을 하며
`화냥년`이라 불렀다.
수만리 타국에 끌려가
고생한 여인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라의 힘이 약해
포로(捕虜)로 잡혀간 것도 억울한데,
임신을 해서 돌아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를 `호로자식`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호노(胡奴)는
오랑케 호(胡), 노예 종 노(奴) ..
그러니까, 호로(胡奴)자식은
<오랑케 노예, 종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아무런 죄 없는 백성을 품어안아야 할
약소국의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요즘도 언행이 바르지 못한 막돼 먹은 사람에게
`호로자식`이라고 욕을 한다.
현대의 국제 정세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국제사회는 국익(國益)을 최우선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으려면
국력을 키워야 한다.
첫째도 국력,
둘째도 국력이다.
*
효종(孝宗 1619~1659):
조선 제17대 임금. 이름은 호(淏).
자 정연(靜淵). 호 죽오(竹梧).
인조(仁祖)의 둘째 아들로 일찍이
병자호란 이듬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년 만에 돌아왔다.
돌아와 국치(國恥)를 설욕(雪辱)하고자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으로
북벌(北伐)을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위 10년 만에 승하하였다.
첫댓글모름지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판단을 잘못 내리거나, 자기감성에 사로잡혀 고집을 부리거나 그리하여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하여 저렇게 전쟁이라도 나면 그까짓 임금이 삼배고구두 한것 이마에 피좀 흘린것 아무것도 아니다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에 비하면...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가족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게되고 팔다리 잘리는 고통, 아내와 딸이 겁탈당하고... 말해 무었하리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지도자,정치가들은 지혜롭게 현명한 판단을 하여야 할것이다
첫댓글 모름지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판단을 잘못 내리거나, 자기감성에 사로잡혀 고집을 부리거나
그리하여 잘못된 의사 결정을 하여 저렇게 전쟁이라도 나면
그까짓 임금이 삼배고구두 한것 이마에 피좀 흘린것 아무것도 아니다
수많은 민초들의 고통에 비하면...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아무런 잘못도 없이 가족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게되고
팔다리 잘리는 고통, 아내와 딸이 겁탈당하고...
말해 무었하리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지도자,정치가들은 지혜롭게 현명한 판단을 하여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