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와 텐트
을왕리 해수욕장 한 켠, 조그만 텐트 하나를 보았다.
그기에는 휠체어 한 대도 점잖게 입구에 버티고 있었다.
해수욕하러 간 게 아니고 야생화를 보고 사진도 찍으러 간 날이었다.
텐트치고 해수욕하기에는 철이 조금 일렀다.
한 노인이 밥 지을 준비로 텐트에서 그릇을 들고 나왔다.
칠십 줄의 할아버지였다.
무심히 지나치고 조금 지나서 또 그 노인을 보았다.
바로 텐트 뒤의 승용차 문을 열고 있었다.
꽤 최근에 산 차로 보였다. 은색 carens 였다.
그들에게는 추억 여행이었다.
벌써 40년의 시간 주름이 그 날과 오늘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그 당시의 을왕리는 서해 외로운 섬, 영종도의 이름 없는 해안 마을이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그기에 도착한 청년 정섭은 특별히 내 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
그저 방학을 맞아 무작정 조용한 섬에 발을 들여놓은 약간의 모험심을 가진 청년이었다.
이리저리 마을에서 하루 밤 보낼 민박집을 구하고 해변으로 나온 그에게 눈에 띈 건 조그만 어선.
어선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쬐그만 보트급 배였다.
섬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엇던 그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보트놀이하듯 어선에서 시간을 보냈다.
해가 기울자 마을로 돌아온 정섭은 입고 있던 옷이 완전히 바닷물에 젖어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이것 저것 여행 짐을 챙겨온 것도 아니고 달랑 입고 있는 옷 말고는 갈아입을 여벌이 없었다.
보기에 딱했던지 민박집 주인이 딸을 시켜 이웃집 청년이 입는 헌 옷을 빌려주어 겨우 밤을 지낼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안주인은 볼일이 있다면서 딸에게 손님 저녁을 맡기고 바깥주인과 함께 마을로 일보러 갔다.
저녘 밥상이라고 해봐야 대단할 것도 없었다.
마른 멸치 몇 마리, 호박, 풋고추를 썰어 넣은 된장 조림이 지금도 정섭이 기억하는 반찬이다.
그 때는 한창 젊었을 때라 정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후딱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처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밥을 한 그릇 더 가져다 주었다.
그 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고 다음 해에는 정섭이 친구 한 명과 다시 을왕리를 찾았다.
이 번에는 여벌의 옷도 준비하고 낡은 군용텐트도 가지고 가서 며칠을 바닷가에서 더위를 잊고 지냈다.
파도가 철석이는 바다며 낮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한 섬의 외딴 마을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처녀의 웃음이 지난 해보다 한 층 성숙해져 있었다는 점이다.
작년에는 막무가내 식의 선머슴아 웃음이 얼굴전체에 넓게 퍼져 활짝 핀 호박꽃 같았다면 금년의 웃음은 제법 표현이 절제되고 마음이 담긴 담백한 나리꽃 표정이었다.
정섭은 공고를 졸업하고 시내에서 조그만 공구상의 점원으로 사회에 진출하였다.
몇 년 그기서 일하다, 좁은 가게며 기술과는 무관한 잔 심부름과 물건 파는 일에 적성이 맞지 않다고 느끼고
친척이 운영하는 복숭아 과수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농부들보다 앞선 지식으로 과수원 수입을 많이 올려주었고
친척은 그에 보답하여 과수원 땅의 일부를 정섭에게 떼어주었다.
을왕리 처녀는 어느새 정섭의 부인이 되었다.
인천의 몸집이 커지고 교외로 부풀어 가면서 정섭이 가지고 있던 땅 조각은 제법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보상금으로 조금 먼 곳의 과수원을 사서 이사했다.
내외는 부지런히 일했고 일남일녀를 키워냈다.
옷 한 벌, 농기구 하나를 두고도 아껴 입고 아껴 썼다.
제법 가산도 모았다.
그러나 내외는 사치란 걸 몰랐고 자식들도 그런 습관에 베어자랐다.
그런데 과수원일에 조금 욕심을 내다가 몇 년 전에 부인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정섭의 지극정성 간호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끝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따지자면 과수원일에 부인의 노동력은 별거 아니었다. 인부를 구해서 일하면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정섭의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40년 이상 과수원일 하나에만 매달려온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젊었을 때는 먹고 사느라, 애들이 조금 크니 학교 뒷바라지 하느라,
그리고 시집 장가 보내느라 …
어느 듯 육십 줄을 훌쩍 넘겨버린 자신이 휑둥그레 남아있었다.
마음씨 곱던 섬마을 처녀는 몸이 자유롭지 못한 할머니…
부인의 치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정섭은 과수원을 처분했다.
제법 큰 길가라 땅값 시세도 좋은 편이었다.
주위에서는 그기에 빌딩을 지어 임대수입을 올리라고 했지만,
자식들 다 출가하고나니 부인의 사고가 항상 머리에 떠올라 더 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금년까지만 일하고 내년에는 그만두어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일해온 지가 상당히 오래된 셈이다.
“조금 더 일찍 농사일을 손털고 아들 가까이로 이사해 내외가 지냈드라면 ….”
이 곳에 온지도 2일이 지났는데 흐린 날씨는 물러갈 줄을 모른다.
할멈 휠체어를 밀며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을까 ?
이 번 여행 출발시 정섭은 할멈에게 물어보았다.
“을왕리로 바람이나 쐬러 갈까 ?”
“예 … 그런데 아직 해수욕철은 아니잖아요 ?”
“우리가 물 속에 들어갈 일은 없을 걸 … 그러니 이 번에 을왕리 가면 그 많이 생긴 모텔인지 뭔지 그걸 이용해볼까 ? “
정섭은 자기 못지않게 돈 쓰는데 서툴은 할멈의 성격을 알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모텔은 무슨… 애들이 쓰던 텐트가 뒷방에 있을 테니 우리 그놈이나 한 번 사용해봅시다”
할멈의 대답은 정섭이 예상하고, 또 은근히 기대하던 그대로다.
“흠 모텔비는 안들겠구먼….” 혼자 중얼거리는 정섭.
밥 지을 준비로 솥을 들고 텐트를 나서는 정섭은 새삼스레 자기의 팔둑과 장딴지는 쳐다보았다.
수십 년 햇빛에 그을려 을왕리 토박이 어부를 무색케 할 정도로 탄탄하고 검붉다.
그러나 시간의 물결이 새겨놓은 이마의 주름하며 눈내린 머리결…...
할멈의 휠체어를 힐긋 쳐다보던 정섭은 말 없는 바다로 눈길을 돌리고 만다.
첫댓글 아, 월요일 아침부터 음악이나 크게 틀어놓고 청소하려고 들어왔다가,,, 젤 먼저 읽고 감동 받고 갑니다. 인생 별거 아니죠....그저, 부부가 부지런히 자식들 키우고 늙어선 오손도손 사는거..아내가 다치고 나서야 그걸 깨달았지만,,, 두분의 마음으로 따뜻한 노년이 되리라 믿습니다~
따뜻한 한편의 단편소설같은 이야기 단숨에 읽어내립니다.
나릿꽃처럼 곱다랬던 아내에 대한 성실한 사랑과 진솔하게 생을 일관되이 산 삶이 숭고하게 읽힙니다.
아름다운 글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래 오래 두분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