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일들을 순적하게 행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본문 주해)
1~7절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가진 성도들이라면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한다.
그것은 형제 사랑, 손님 대접, 학대 받는 자를 돌보는 것, 결혼 생활을 존중하는 것, 돈을 사랑하지 않고 자족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인도해준 자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1~2절---형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형제, 손님, 나그네가 다 성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은 아브라함과 롯이다.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 세 사람을 대접하였는데 그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두 사람은 천사였다.
롯이 만난 두 천사 역시 나그네의 모습이었다.
히브리서가 쓰여진 당시는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러한 나그네들에 대한 대접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는 것이었다.
3절---또한 자신들의 문제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신들보다도 훨씬 고통 받고 있는 믿음의 지체들에 대해서 잊지 말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에 온갖 매질과 고문과 박해를 받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돌보라고 한다.
4절---결혼 생활을 귀히 여기라는 말씀이다.
음행이 폭넓은 대상과 폭넓은 성적인 범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간음은 구체적인 것으로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혼인을 귀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로서 극단적인 금욕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과 극단적인 방탕으로 인해서 난잡한 성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5~6절---돈을 사랑치 말라는 것은 자족하라는 말씀으로서, 이는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돈이 많건 적건 간에 자족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돈을 사랑치 않고 자족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근거는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사41:8~10)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주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내게 손댈 수 있으랴’ 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7절---믿음을 가진 사람들-사도들과 속사도들-의 종말을 주의 깊게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위협과 핍박 중에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순교까지 하였던 사람들, 그들은 죽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지 않고, 이 세상에서 고요하고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살다가 간 자들이다.
8절 : 이렇게 지금도 그들을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믿음의 사람들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삶에 있어 동일한 모습을 가진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를 인도했던 믿음의 선배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종말을 주의해서 보고 또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고 상황이 급변한다고 해도 변함이 없으시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도 아무리 문화가 바뀌고 상황이 바뀐다고 할지라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변함이 없기에 인도하던 사람들도 변함이 없고, 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말씀이다.
(나의 묵상)
형제 사랑, 손님 대접, 학대 받는 자를 돌보는 것, 결혼 생활을 존중하는 것, 돈을 사랑하지 않고 자족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인도해준 자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
찔림이 많은 내용들이다.
그나마 잘 하고 있는 것이 ‘결혼 생활을 존중하는 것’ 정도이고 (사실 이것도 깊이 따져 들어가면 부족함 투성이이리라.), 다른 것들은 영 낙제 점수를 받을 것 같다.
그 중에 특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수시로 올라오는지........
그래서 형제 사랑, 손님 대접, 학대 받는 자를 돌보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변명도 해 본다. 하지만 내 마음이 씁쓸한 것은 내게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사실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돈을 의지하는 마음이 크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본문이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라고......
그런데 나는 자족하지 않고,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내세우면서까지 말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주의 일을 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주의 일이 아니라 분명 자신을 드러내는 ‘나의 일’이리라.
그것이 참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주님께서 먼저 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이번 추석장을 보면서 코스트코를 갔다.
온갖 식재료와 물건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매장에 가득 진열된 것을 보니 탐심이 발동되었다.
그리고는 스스로 한심한 듯, 곁에 있는 형님에게 낮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형님, 이러니 어찌 돈이 좋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운 것들은 언제나 내 눈앞에 있다. 그러니 내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늘 생길 수밖에 없겠다.
다만, 이 종말의 세상을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이 종말을 살아간 선진들을 생각하면서 그 탐심을,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이렇게 십자가를 붙잡는 나를 주님은 절대 외면하지 않을 것을 안다.
더 깊은 은혜를 주셔서, 세상을 우습게 생각하며 살다간 믿음의 선진들과 같은 삶을 살게 해 주실 것을 기대한다.
그들의 삶을 주관하신 주님이 나의 삶도 주관하시는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니다
세상 지나고 변할지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니다”(찬135장 후렴)
(묵상 기도)
주님,
흔들리지 않는 아들의 나라를 받은 자로서
제 삶이 반듯했으면 좋겠습니다.
입으로는 번지르르하게 말하고
행실은 탐심이 가득한 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더 깊은 은혜를 주옵소서.
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만을 의지하오니
믿음의 선진들을 주관하여 주셨듯이
저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