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 작가들이 TV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젊은 감각’을 앞세운 20~30대 드라마작가의 안방극장 장악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2003년의 젊은 작가들에게선 틀에 갇혀 있던 TV드라마를 탈바꿈시켜 보려는 새로운 미학이 도드라진다. 1인 예술인 문학 등과 달리 연출, 배우와의 ‘궁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장르가 TV 드라마지만, 이 30대 작가들의 드라마는 우선 언어(대사)에서부터 시청자들을 긴장시키는 특유의 힘이 있다는 평이다.
4일 현재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이 무려 80만건을 돌파할 정도로 호응이 높은 MBC TV의 ‘다모(茶母)’. 2003년 한국 대중문화의 새로운 발견으로까지 평가되는 이 ‘다모 돌풍’의 핵심에는 69년생의 작가 정형수(34)씨가 자리하고 있다.
단막극인 ‘베스트극장’ 극본을 썼을 뿐 미니시리즈는 처음인 이 ‘늦깎이 작가’는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자신의 문학적 경험을 ‘다모’ 안에 새겨넣었다. “데뷔 이후에도 보조작가로 일하거나 무협지까지 쓰며 생계를 꾸린 5년의 고생” 끝에 시청자들과 교감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날 아프게 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무엇이더냐”, “나도 네가 있어 한순간이나마 숨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등 극 중 대사들은 유행어를 넘어 음미와 감상의 대상이 됐을 정도. 그는 “삶의 진정성을 표현해주는 말을 대사에 녹여넣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 정형수의 ‘다모.’
‘명랑한 불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사회적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던 MBC TV ‘앞집 여자’의 극본은 “10년동안 아줌마로 지내면서 부글부글 끓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는 서른 일곱살의 박은령씨가 썼다. 이화여대 국문과 85학번으로 대학 졸업반 때부터 1년 반 동안 ‘장학퀴즈’ 방송작가로 활동한 이 ‘아줌마 작가’는 결혼 뒤 두 딸을 키우면서 겪어온 세월과 경험, 그리고 참아왔던 욕망을 ‘앞집 여자’의 두 여자주인공인 미연과 애경에게 투사(透寫)했다. 지난해 MBC 베스트 공모에 당선되어 드라마작가로 데뷔했고, 미니시리즈는 이번이 처음이다. 성별과 연령대에 따라 시청자 반응이 극명하게 갈리지만, 역시 또래 세대의 금기와 욕망을 발랄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도 예술이다”라는 선언을 200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서 이끌어내며 ‘매니아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가로 지난해 MBC TV ‘네 멋대로 해라’의 인정옥(35)씨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여고괴담’, 드라마 ‘해바라기’를 쓰기도 했지만, 이 작품 이전까지 그의 이름은 대중에게 낯설었다. 양동근과 이나영, 이동건 등을 통해 젊은 세대의 대화법과 사고방식, 세계관을 ‘쿨’(cool)하게 표현했던 이 드라마는 최근에도 케이블 채널과 DVD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그 신드롬이 끝나지 않았음을 웅변하고 있다.
▲ 박은령의 ‘앞집 여자.’
이 세 명의 작가들이 다음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할 숙제를 남기고 있다면, 이미 몇 편의 작품으로 ‘골수 매니아’층을 확보한 30대 작가의 ‘선배’격으로 노희경(37)씨를 들 수 있다. 1995년 MBC 베스트극장 공모로 등단한 그는 1998년 KBS 드라마 ‘거짓말’로 자신만의 팬덤(fandom:fan+kingdom)을 만들어냈고, ‘슬픈 유혹’ ‘바보같은 사랑’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고독’ 등 방송사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매니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김수현·김정수·박정란·이금림 등 선배 세대 드라마 작가들이 대중적 재미와 설명식 내러티브에 더 큰 무게중심을 뒀다면, 젊은 작가들의 공통점은 압축적이고 절제된 대사로 시청자들을 긴장시키며 몰입시킨다는 점이다. 문화평론가 김동식씨는 “이들의 드라마는 설명적인 패러다임이 아닌, 여백과 생략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서 “드라마의 관습적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시청자들 스스로 능동적 해석이 가능한 새로움을 선보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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