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금강송의 고장을 지나 강원도에 들어서다(울진 왕비천에서 삼척 원덕 35km)
4월 13일, 오전 8시에 숙소를 나서 왕피천을 돌아 울진읍을 통과하여 죽변항에 이르는 해안 길로 들어섰다. 출발에 앞서 부산에서 울진까지 함께 걸은 이성임 씨와 작별하고 새로 도쿄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전날 저녁에 울진에 도착한 가미조 메이코 씨가 합류하였다. 전직교장인 이 련 씨가 이틀예정으로 참여하였고.
매일 아침 출발에 앞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구호를 외치는데 오늘은 안정일 씨의 선창으로 '화목하게 힘차게 걷자'를 연호하였다. 숙소 앞의 식당은 일요일이라 정기휴일인데 우리를 위하여 아침 시간만 문을 열어 고맙다.
오전 11시 경 유채꽃이 아름답게 핀 죽변항에 들어서니 마침 장날이다. 깃발 들고 지나가는 행렬을 바라보던 중년남성이 맛있는 빵도 사먹고 힘내라고 응원한다. 고개 위 언덕에 등대가 있다. 그 앞에서 기념촬영하며 10여 년 전 죽변이 고향인 친구의 안내로 여럿이 부부동반으로 덕구온천에서 묵으며 등대를 둘러보고 인근 빈터에서 해맞이하던 기억이 떠올라 친구에게 고향을 지나는 중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며칠 후 내가 없는 광주 무등산에 오를 계획이라네.
10여년 전에 찾은 적이 있는 죽변 등대
죽변항을 지나 한 시간 쯤 더 가서 도로변에 있는 뷔페식당에 도착하니 12시가 지났다. 식당이 넓고 조용하여 식사 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걷기에 나서니 도로변에 경북해양바아오산업연구원과 한국해양연구원 동해기지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뒤이어 북면 부구의 한울원자력발전소가 나타나고. 북면은 금강송과 송이버섯의 고장이기도. 숭례문 복원공사에 울진 금강송을 사용한다는 보도를 접한바 있는데 이곳이 그 원산지로구나.
오후 2시 반, 해변 휴양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국도를 따라 올라가니 꽤 큰 고개가 나타난다. 고개를 오를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고개 마루에서 해파랑길로 접어드니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한참 이어지고 작은 마을의 도로를 가로지르는 하얀 표지가 보인다.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가르는 경계선으로 울진군 북면에서 삼척시 원덕읍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작은 마을의 이름은 월천리, 월천리 앞쪽에 커다란 유류저장탱크 공사가 한창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시행하는 LNG(액화천연가스) 저장탱크를 여러 개 건설하는 중이다. 한적한 동해안의 포구들이 인근의 원자력발전소와 더불어 새로운 국가기간산업기지로 변모중이다. 월천을 잇는 다리 위에서는 낚시꾼들이 긴 낚싯대를 드리우고 월척을 기다리는데 마침 큰 황어 한 마리가 걸려 푸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가스저장탱크를 건설 중인 월천항을 지나며
다리 지나니 원덕읍 소재지가 지척이다. 입구의 소머리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0분, 35km를 걸어 오늘의 행로를 마쳤다. 숙소가 10여km 떨어진 산양농촌체험마을이라 들어가기 전에 저녁식사부터 하기로 한다. 메뉴는 불고기전골에 맥주와 소주, 이른 저녁을 들고 택시를 이용하여 체험마을로 이동하니 오후 6시 좀 지났다. 삼척시가 지역문화체험사업으로 조성한 숙소는 황토방에 찜질방을 갖춘 친환경 쉼터로 공기가 맑고 개울물이 흐르는 조용한 산골이다.
방 두 개와 주방이 있는 객실에 네 명씩 여장을 푼 후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니 피로가 가신다. 남녀가 한데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연이어 찜질방 앞의 큰 방에 모여 재일교포 박효자 씨의 생일축하 겸 친목의 시간을 가졌다. 휘영청 달 밝은 밤, 산촌의 하늘은 높고 먼 길 걷는 길손들의 가슴은 넓어서 좋은 날이다.
15. 낭만가도, 오르막길이 힘들다(삼척 원덕에서 근덕까지 32km)
4월 14일, 아침 7시에 깊은 산골의 산양농촌체험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원덕읍으로 내려왔다. 전날 저녁을 든 호산 삼거리 식당에서 곰탕으로 아침을 들고 원덕읍사무소로 가서 오전 8시에 스트레칭을 한 후 가미조 메이코 씨의 선창으로 '힘차게 즐겁게 걷자'를 연호한 후 국도를 따라 근덕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인근의 원덕초등학교를 지나니 운동장에 우레탄이 깔리고 체육관도 크게 지어졌는데 교문에는 세계일화(一花)라는 특이한 표어가 붙여졌다. 세계가 한 꽃이라, 그 뜻이 갸륵하구나.
읍내를 벗어나니 큰 고개가 나타난다. 이를 시작으로 하루 동안 여러 고개를 넘노라니 여럿이 '고개가 힘들어요.'라며 고통을 호소한다. 강원도는 가장 남쪽의 삼척에서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길을 낭만가도(Romantic Road)라고 명명하였는데 낭만에 앞서 숨이 가쁘다. 그런 중 삼척의 남근숭배문화를 형상화한 신남 항 해신당 공원에 들어섰다. 남근형상의 조각품이 많이 설치되고 애랑의 초상을 그린 사당이 아담하게 꾸며진 공원이다. 옛 설화의 주인공인 애랑과 덕배의 애틋한 사랑과 토속문화의 단면을 새기며 낭만에 젖기도.
남근숭배문화가 깃든 해신당공원
12시 넘어 장호 항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점심메뉴는 대구탕, 장호항 앞 바다에서 낚시로 잡은 싱싱한 대구를 시원하게 끓인 맛이 담백한데 값은 높은 편, 4인분 한 상에 6만원이다.
느긋하게 점심을 들고 1시 10분에 장호항을 출발하여 큰 고개에 이르니 장호, 용화 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아름워 잠시 포토 타임을 가졌다. 그곳에서 20여분 거리인 근덕면 초곡리 언덕에 황영조 기념공원이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가 이 마을 태생, 삼척이 낳은 세계적인 마라토너를 기리는 황영조기념관에 들어서니 마라톤 제패장면이 화면으로 비친다. 황 선수의 어머니가 제주도 해녀출신으로 이곳 바다에서 물질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폐활량을 키웠다는 내용이 감동을 준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한 것을.
황영조 공원에서 바닷가로 내려오니 삼척시가 마련한 레일바이크 철로를 달리는 여성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깃발 들고 걷는 일행을 응원한다. 레일바이크가 시작되는 궁천 교차로 산언덕에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묘지가 보인다. 묘지 아래의 설명문에는 이성계의 등극으로 폐위된 공양왕이 1392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로 옮겼다가 1394년 4월 17일에 두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곳이 그의 무덤인지는 정확히 고증되지 않았으나 강원도는 이를 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공양왕릉에서 다시 오르막길, 중간에 동해지방해양경찰청 특공대 청사가 산기슭에 우람하게 들어서고 고개를 휘돌아 내려오니 중턱에 숙소인 안녕바다팬션이 자리잡고 있다. 도착시간은 오후 4시 반, 32km를 걸었다.
따로 식사할 곳이 없어 여성회원들이 미리 도착하여 준비한 바비큐특식이 저녁메뉴, 해풍이 제법 불어오는 팬션의 야외 식탁에서 맥주와 소주, 팬션주인이 들고 온 복분자와인으로 가든파티가 벌어졌다. 6시 조금 지나니 서쪽 산 능선으로 해넘이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어제는 달이 밝더니 오늘은 석양이 아름답구나.
바베큐 만찬을 즐기는 일행들
16. 동북아 지중해로 발돋움하는 동해의 거점(삼척 근덕에서 동해까지 35km)
4월 15일, 팬션의 유리창 너머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눈부시다. 여성 들이 일찍 일어나 준비한 카레로 아침을 들고 8시에 바다팬션을 출발하여 삼척시가지 쪽으로 향하였다. 어제 오후에 도착한 송화미 씨가 나흘 예정으로 합류하고 사흘간 함께 걸은 이련 씨는 오늘 돌아간다.
동해안 지방의 날씨가 무척 덥다. 예보로는 27도까지 오르겠다고. 짧은 바지와 반팔 차림으로 행장을 가볍게 꾸렸어도 땀을 많이 흘렸다. 한 시간 반 쯤 걸어 첫 번째 휴식시간에 송화미 씨가 준비해 온 찰떡에 식혜를 곁들여 간식을 들고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두 번째 휴식처는 맹방해수욕장 근처의 유채꽃이 만발한 광장, 며칠 전에 유채꽃축제를 벌였다는 넓은 꽃밭에 유치원어린이들이 단체로 견학 중이다. 그 곁에는 노인 일자리사업으로 청소 봉사하는 어른들이 쓰레기 줍기에 땀을 흘린다. 해변에서 텐트 치고 휴식을 취하는 여성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보내고.
유채꽃밭의 어린이들
맹방해수욕장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삼림욕장으로 지정된 곳, 소나무 숲을 통과하여 삼척시가지로 접어드는 고개 길이 한참 이어진다. 고개 마루에서 한숨 돌리며 바라보는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내리막길을 걸어 시가지로 접어드니 '이사부 장군의 도시, 삼척'이라 내건 표지가 뚜렷하다. 도심에는 이사부광장, 외곽의 해변에는 이사부사자공원이 꾸며지는 등 삼척이 내세우는 상징이 이사부인 것을 현지를 지나며 깨치게 된다. 한편으로는 에너지자원의 도시로 부상 중임을 내세우고.
시내의 동아식당에서 곰치탕으로 점심을 들고 동해로 연결되는 해변의 낭만가도에 들어섰다. 소망의 탑이 세워진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소망의 종을 세 번 타종하며 평화, 번영, 통일을 소원하기도.
이사부사자공원을 지나니 삼척시에서 동해시로 접어든다. 추암 촛대바위로 잘 알려진 한적한 동네가 관광개발지로 지정되어 위락시설들이 즐비하고 그 옆으로 북평공업단지가 들어서서 중장비차량들이 질주하는 등 경제적 활력이 느껴진다. 동해자유무역지역관리원과 동해화력발전소의 위용이 이를 상징하고.
동해항을 거쳐 동해역에 이르니 오후 4시, 동해가 고향인 코스 리더 홍순언 이사의 친구가 역에 마중 나와 반기며 음료를 제공한다. 시청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5km를 걸었다.
김진환 안전행정지원국장을 비롯한 시청관계자들이 현관에 나와 일행을 맞아 부산에서부터 먼 길 걸어온 노고를 치하하며 꽃다발을 걸어준다. 이곳에 사는 홍 이사의 형과 친구들도 함께 하여 환영의 박수를 보내며 금일봉을 전해주고. 고향은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로다.
주변에 행정기관들이 운집한 동해시청에 도착하다
시청에서 가까운 숙소(다인모텔)에 여장을 풀고 감자탕으로 저녁을 들고 모텔에 돌아오니 저녁 7시 반, 오르막 길 걸을 때 무릎 통증이 오는 등 걷기에 힘든 이들이 늘어난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족삼리에 뜸을 뜨는 등 나름대로 대처를 하고 내일 또 열심히 걷기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든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