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고구려와 당의 전쟁이 숙명적인 것이라면 결국 고구려의 멸망도 숙명적인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고요.
--- 이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과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고 고구려의 멸망이 반드시 와야 한다는 것입니까. 숙명이란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안다면 이런 표현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국의 운명은 시기 시기 마다 매우 급격히 달라집니다. 지나치게 결과론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648년 당시 신라는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당시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조금 만 더 적극적으로 공격했다면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 위기의 상황에서 김춘추가 당으로 갔던 것입니다.
징기스칸이 탄생하기 전에 몽고는 그야말로 내일이 없는 나라였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나라가 바뀌었습니다.
고국원왕때 그토록 망신을 당한 고구려가 광개토대왕 시기에 그토록 강성해질 줄 누가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숙명이란 것은 변화할려는 의지가 없는 나약한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숙명이지만, 변화할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자에게는 숙명이란 없습니다.
결과론에만 치우쳐 역사를 재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개소문을 히틀러, 후세인과 비교하는 님의 글을 보면서 님이 왜 그런 비유를 거듭 해보려고 하는지 그 이유을 모르겠군요.
삼국이 계속 나라를 유지하는데 어떤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국가 발전의 한계점이라면 이미 조선은 임진란을 겪으면서 그 국가적 운명이 끝났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300년을 더 가지 않았습니까.
고구려가 대외정책에서 실패했던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외정책을 잘했다고 국가가 멸망당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2차 대전 직전 벨기에는 독일의 침략을 우려해서 중립국을 선언했지만, 무참하게 짓밟혔습니다. 그렇다고 벨기에가 영국과 프랑스와 척을 지고 독일과 미리 손을 잡았어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요. 시간에서 내일이란 것은 영원히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과론을 갖고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보는 관점은 매우 다양하기는 하지만, 나는 결과론을 갖고 설명하기 보다는 당시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고민을 하고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우선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