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기 白文基(1924 ~ 1991)】「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되어 대일공작 전개」
1924년 4월 29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개포면(開浦面) 황산리(黃山里)에서 태어났다.
일본군에 징집된 이후 중국의 일본군 제8637부대에 주둔하던 중 동료 3명과 함께 탈출하여 중국군 제4군단 제45사단에 편입하였다. 이즈음 1944년 말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 제국주의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던 상황에서, 각 전선에는 많은 한인 병사들이 일본군을 탈출하여 중국군에 합류하거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대일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한국광복군 측은 1945년 1월을 전후하여 중국군과의 협의 끝에 중국 현지 각 부대에서 활동하던 한인 인원의 후방 집결을 시도하였다.
이때 일본군 징병자 출신으로 함께 합류하였던 박해옥(朴海玉)·박하규(朴夏圭)·윤종록(尹鍾錄) 등과 함께 중국 후난성(湖南省) 구이둥(桂東) 장관 사령부(중국군 제9전구)에 도착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중국군 제9전구 지역에는 일본군을 탈출한 한적 사병들이 모여들며, 중국군과 협조 하에 일본군에 대한 정보 수집 및 분석·적문서 번역·포로 심문 등 대일공작을 담당하였다. 한국광복군 공작대에서는 중국군 제9전구 내 한적 사병을 모아 별도 광복군 부대로 편성하고자 하여, 중국군 제9전구 사령장관 쉐웨(薛岳)에게 이에 관해 요청하였다. 중국군사위원회의 명령에 의해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의 조직이 결정이 되고, 한국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에 편입하여 단기교육을 수료하였다.
이후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장 이병곤(李炳坤)과 전재덕(全在德)·강익진(康翊鎭)·황갑수(黃甲秀) 조장의 지휘를 받아 공작조로 편성되었다. 김상학(金相鶴)·김충홍(金忠弘) 등과 함께 파견되어 공작에 임하여 항일 활동을 지속하던 중 같은 해 8월 15일 중국에서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