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여포 창은 피해도 지은 죄는 못 피한다 카지." -
권다품(영철)
딸아이가 결혼할 때가 되면 부모들은 온갖 생각을 한단다.
혹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신랑을 만나면 어쩌나?
재산은 좀 있는 사람을 만나면 좋으련만....
심지어 딸의 남자 친구에게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조건'이라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사람까지도 있단다.
딸이 시부모를 모시며 고생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이것 하나는 분명 짚고 넘어가얄 것 같다.
자기 딸이 시부모 모시는 것을 싫어한다면, 자기들도 나이가 들면 딸에게 얹혀살 생각은 말아야 하겠다.
또, 자기 아들이 결혼할 때도 자기들도 나중에 아들에게 얹혀살거나 부담주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가겠다는 말을 분명히 해 주는 게 맞지 않을까?
혹시, 자기 딸은 시부모 모시는 것이 싫으면서, 자기들은 딸네 집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까?
혹시, 자기 딸은 시부모 모시는 것이 싫으면서, 자기 아들은 자신들을 모셔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없을까?
외동아들을 키워 공부를 시키고 결혼을 시켜서 서울로 보냈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 되었다.
나이 든 몸으로 농사도 짓고, 혼자 밥이다 빨래도 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해도 대통령이 두 명이나 바뀌어도 아들과 며느리는 명절 때외에는 오지 않았다.
이제 아버지도 기력이 없어서 농사도 짓기가 힘든다.
끼니를 해먹기도 힘이 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말에 아들과 며느리가 온갖 음식들을 장만해서 내려온다.
"아버님, 여태까지는 저희가 바빠서 못 내려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아버님도 연세가 제법 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주말에라도 이렇게 내려옵니다. 아버님, 혼자 계시기 불편하시면 서울 저희 집으로 올라가요. 이제 저희가 편히 모시겠습니다."
'역시, 내가 외아들이지만 아들 하나는 잘 키웠지. 내 아들이 잘 나니까 저렇게 예쁘고 착한 며느리를 만난 거야.'
그런데, 그것은 아들과 며느리의 작전이었다.
"이번에 대선 공약에 자기 고향 개발된다고 발표됐던데, 아버님 논밭이랑 산, 집터 모두 팔아서 우리도 사업을 하자.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결국 며느리의 성화에 아들은 이젠 편하게 모시겠다며 아버지를 설득시켜서 시골 땅과 집을 팔고,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사업을 시작했다.
아들은 사업에 신경쓰느라 아내에게 아버지를 좀 잘 모셔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출근하기 바쁘게 외출을 한다.
나가면서 시아버지 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인사도 없이 나간다.
그런데, 집에 있는 고양이에게는 꼭꼭 인사를 한다.
"진아야, 엄마 나갔다 올게. 밥 많이 먹고 놀고 있어?"
그리고는 문이 닫힌다.
'나는 고양이보다 못한 존재군! 이럴려고 시골 집과 땅을 다 팔아서 달랬던가'
서럽다.
속았다 싶어서 분하다.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집도 없다.
사람도 그립다.
'그래도 요양원에라도 가면 사람 구경이라도 할 수 있디 않을까?'
결국 시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갈 수 있었고, 요양원에서 아들에게 말 한다디 못 남기고 외롭게 돌아가셨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다.
그 며느리도 나이가 들고, 그 며느리의 아들도 나이가 들어서 결혼을 시켰다.
나이가 들고, 술만 마시던 신랑도 먼저 갔다.
기력이 없어서 혼자 밥을 해먹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를 하기도 부대끼는 나이가 되었다.
"아들아, 이젠 나도 밥해먹기가 힘이 드는구나."
"그럼 요양병원으로 가면 편하잖아요."
엄마는 너무 분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요양병원이라니? 그게 부모한테 할 소리니?"
아들은 엄마에게 말을 했다.
"나이 들면 다 요양병원으로 가는 거 아닙니까? 할아버지도 요양병원에서 혼자 돌아가셨잖아요?"
어릴 때 어른들이 모여앉아서 하시던 말이 기억난다.
"죄는 지은 대로 간다꼬 옛날부터 말이 있다. 차라리 여포 창을 피하지 지은 죄는 못 피한다 카지."
2024년 9월 20일 오전 11시 3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