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블루스
2월에
는개가 짙게 내리면
3월이 오는 거야
그러니 우울해하지 마
아니, 우울해도 좋아
생의 대부분을 유럽을 떠돌며
모국어로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의
"조금 우울해도 좋아"라는 싯귀를
떠올려도 좋아
2월의 는개는
봄이 온다는 징후니까
많이 우울해도 좋아,
는개 내리는 기차역
기적(氣笛)은 울지 않고
기적(奇跡)처럼 고속철이 오가지만
환청처럼 기적소리가 들리는 건
늙은 탓이라더군
는개 내리는 양평역, 아니면, 강릉역
내 고향 대전역은 안 가본지
삼십 년이 넘었군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
<안동역에서>라는 노래 한 곡으로
스타가 된 가수도 간혹
<대전블루스>를 부르더군
하염없이 누군가 기다리던 소년의
대전역전의 블루스
는개와 기적소리가 온몸이 젖어 들던
종이비행기
종이비행기 접어본 지 오래되었다
딱지 접기도 오래되었다
종이학은 한 마리도 접어본 적이 없다
그대를 접는다는 말은
기대를 접는다는 말이지
사랑을 접는다는 말은 아니다
종이학 접듯
사랑은 의지대로 접히는 게 아니므로
드디어 내 사랑은 한계를 벗어나서
허공이 되었다
허공을 날으는 종이비행기가 되었다
마술
눈속임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매번 빠져든다
뻔한 노래 가사도 그의 목소리에
얹히면 마술이 된다 , 소름이 돋는다
이 음악이라는 마술!
당신의 맑고 따스한 눈빛에
매료되곤 했지, 비록 마술일지라도
그 순간이
내 일생의 전부인 듯!
시집 <설명할 수 없다, 2023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