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기점으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의 경제를 흔들어놓았다. 당시 많은 건축 부채를 안고 있었던 교회로서는 그야말로 가장 어려운 재정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와 아내 역시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기도회에 참여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드디어 작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잔잔한 유 목사님의 말씀이 이어질 때 즈음, 문득 내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다.
“다위야, 너의 1년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겠니?”
갑자기 1년 생활비 전부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건 분명히 주님의 음성이 아닐 거야.’ 나는 그 음성을 부정했다. 심지어 마귀의 음성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나에게 말했다. ‘야, 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큰일 날 애네…. 어떻게 생활비 전부를 바쳐? 지금 애가 둘이고, 둘째는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됐어. 정신 나간 거야?’ 나는 그 소리를 애써 못 들은 척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마음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다위야, 네가 100퍼센트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쓸 수가 없단다….”
고요하고 평온하며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성, 이것은 익숙한 음성이었다. 이것은 내 생각도 아니고, 마귀의 생각도 아니었다. 너무나 친밀하게, 차분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내 나름대로 주님께 순종한다고 했다.
하지만 온전한 순종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내가 손해 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순종했지, 어느 한계 이상을 뛰어넘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다름 아닌, “너, 나 하나로 정말 충분하니?”라고 하시는 물음이었다. “내가 정말 주님께 속한 자녀인가?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그분만 의지하며 사는가?” 바로 그 시험이었다.
하나님은 참 이상한 분이시다.
어차피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인데, 보셨으면 됐지, 왜 꼭 물어보시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마음이 있음을 보셨으면 됐지, 꼭 바치라고 하시는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은 다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는 책임지시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다 바치라고 하실 때는 바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기도를 하다가 묵상이 여기까지 이르자 드디어 믿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 나를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 결국 헌금 약정서에 1년 치 생활비를 적었다. 그리고 나는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리던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을 안고 있었다. 내가 자모실의 미닫이문을 열 때 아내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의 진지함을 보고 알아차렸을까. 내가 아내에게 다가갔을 때 아직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내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는 믿음의 여인이었다.
아무 말 없이, 참 감사하게도 “전부를 드리자”는 그 마음에 동의해주었다. 나는 약정서를 헌금함에 넣고 본당 좌측 자리에 앉았다. 그때 내 마음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놀랍게도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안했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이것이 바로 온전히 순종한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마음임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전부를 내어드리고, 순종했다는 그 마음에, 그리고 주님도 그 마음을 받으셨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기쁨이었다.
그 날 이후 매일 가정예배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과 항상 함께 동행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릴 때 늘 드리던 고백이 있었다.
“주님, 오늘 하루를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꼴로 먹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일도 주님께서 돌보아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교회 사택인 샬롬 하우스 202호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밖에 나가보면 쌀 한 포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쌀은 정기적으로 배송이 되었다. 누가 주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은 과일 한 봉지가 걸려 있었고, 어느 날은 반찬이 걸려 있었다. 그때 알았다. 주님의 까마귀는 엘리야 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성남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후로 벌써 15년이 지났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함으로 넉넉히 채워주셨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열매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이 실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 전에는 그저 입술의 고백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온전한 나의 고백이 되었다.
“다위야, 어디에서 먹을 것을 구하겠느냐? 너의 도움이 어디에서 오느냐?”
“주님, 주님께서 공급하십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참된 공급자(provider)가 되십니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주님은 그 해 1년 동안 참된 공급자가 되시며 목자가 되시는 주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사람과 환경을 모두 섭리하셔서 나와 아내의 믿음을 빚으시고 연단하셨다. 순종하는 삶이 복된 삶임을 깨닫게 하셨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를 책임져주신다.
- 섭리하심, 김다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