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석부근(立石附近)
황 석 영
―돌은 모두의 출발점. 꽃들도 눈물도 투쟁도 모두 내일을 위하여……·그날, 아마 우리들은 함께 출발할 것이다――
머리 위로는 구름이 몇 점 보이기는 했지만, 두 절벽 사이로 드러난 좁은 하늘이 협곡을 흐르고 있는 강물처럼 길게 늘어나 있었다.
두 부분의 맞선 절벽은 위로 오르면서 차츰 넓어지고, 왼쪽 옆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T자형 굴뚝 절벽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과 높고 낮은 산들의 머리가 보였다. 하늘이, 아니면 땅이 움직이는지, 먼 산과 들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길과 마을의 점점이 흩어진 지봉들이 핀트를 잘못 맞춰 찍은 사진처럼 희미하게 눈앞에서 흔들렸다. 하늘과 부드럽게 굽어진 능선이 맞닿은 경계선은 말갛고 투명하게 보였다. 건물의 유리창에서 햇빛에 반사된 빛발이 가끔 번쩍! 하고 큰 빛을 내는 것이 보였다. 나무숲들은 온통 한데 어울려 어린 잔디들처럼 포근해보였다. 지금은 내가 바람 부는 숲속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숲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양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머리에서 훨씬 위쪽에 성냥갑만한 바위의 돌출부, 홀드가 한개 보인다. 그것만 잡으면 우선 끝나게 된다. 햇볕의 직사로 미지근해진 바위 표면에 볼을 대고 있으려니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바위 위에는 매끄럽고 축축한 이끼가 드문드문 돋아나 있었다. 바위와 구두와의 밀착을 방해하는 무서운 적이다. 바위 갈라진 틈, 물 내려오는 길에는 고운 모래흙이 쌓여 있고, 보라색의 이름모를 꽃이나 고사리 종류의 고산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모래흙을 살짝 눌러보면 시원한 물기가 촉촉이 배어나왔다. 우리들은 꽃잎을 따서 콧등에 붙이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재수좋은 일로 알려져 있었다. 나는 손을 뻗쳐 꽃을 따서, 꽃잎을 떼어 한장 한장 날려버렸다. 꽃잎들은 날벌레처럼 파르릉 날리면서 밑으로 깊숙이 떨어져갔다.
바위들은 이런 꽃들 외에도 귀여운 짐승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그들도 우리가 자기네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와의 이러한 관계로 해서 바위는 우리 앞에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배낭을 지고 산길 어귀에 들어서면, 벌써 바위는 우리만의 것이 되어 정다운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산을 등지고 떠날 때면, 그동안 우리와 싸웠던 모든 일들을 모르는 척, 간직한 채 작별인사를 해주는 것이었다. 돌아올 때의 우리들은 뭔가 뒤에 두고 오는 것 같은 간지러운 안달을 느꼈다. 우리는 거기, 비밀을 두고 돌아오는 것이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산을˙ 그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했다. 그것은 피와 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산이며, 그림엽서나 사진 같은 창조가 없는 산이었다. 모든 사랑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직접 그것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간혹 자기와 의지로써 싸우던 어떤 대상물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자기들의 집념을 몹시 사랑하고 있었던 때문은 아닌가.
지금은 내가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싸우고 있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가슴 깊숙한 곳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 가끔 친구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밑에서 들려오면, 내 이런 탐색은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그 소리는 이런 외로운 시간 위에 던져진 나를 깨우쳐주고, 내가 자유스러운 것과 나밖에는 믿을 곳이 없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다음엔, 자꾸 초조해지는 것이었다. 외계에서 들려온 소리들은 자신을 깨닫게 하고, 그러면 움직여야 한다던 마음이 약해질까 두려웠다. 내게는 자신을 잊을 정도의 강렬한 몸짓만이 평온한 마음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자, 열등감이여 물러가라. 다시 움직이자.
바위에 붙어선 자세로 오른손 끝을 어깨보다 좀더 위쪽에 있는 클랙 사이에 넣고, 그 한쪽을 잡았다. 오른발로 뒷벽을 버티고 있을 뿐 몸을 완전히 확보할 위치는 없다. 손끝은 바위틈을 힘주어 잡은 채 몸을 왼쪽으로 내몰았다. 왼발이 재빨리 암벽 위를 더듬어갔다. 허리에 맨 자일이 몸의 이동에 따라 흔들거렸다. 한참 동안 왼발이 허공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왼발이 멈췄다. 바위벽에 불쑥 나온 홀드를 짚은 것이다. 손끝은 아직 클랙을 꼭 잡은 채 간간이 떨고 있다. 바위의 돌출부는 비스듬해서 그 위에 간신히 얹힌 왼발 끝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자세가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음 자세를 확보해야 한다. 왼발을 뒷벽으로 밀면서 오른발로 홀드를 바꿔 짚는다. 오른손으로 클랙을 잡은 채 왼손을 위로 올린다. 뛰어올라 공을 잡으려는 동작으로 몸을 솟구친다. 왼손 끝이 뱀처럼 꾸물거리며 바위벽 위를 더듬어 올라간다. 손가락 끝에 홀드의 끝이 스친다. 간신히 얹혔던 왼발이 힘을 잃고 밑으로 미끄러진다.
몇초 허공이다.
두 손끝이 바위를 긁는다.
훑으며 내려온다.
손가락에 무엇이 걸린다.
두 팔이 무거워진다. 몸은 천천히 흔들거리며 멈춰 있다. 얼굴 정면에 발을 짚었던 홀드가 보인다. 그 위에 손끝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알았다. 목 언저리가 따끔따끔하고 아랫배가 새큰한 이상한 쾌감이 지나갔다. 바람이 절벽 사이를 거슬러 올라간다. 주위는 머릿속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크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하다. 뒷벽에 왼쪽 다리를 버티고 오른발로 앞벽을 차면서 턱걸이를 한다. 겨우 처음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괜찮니?”
밑에서 묻는 소리. 바위 사이가 울려서 여운이 길게 흘렀다. 나는 그 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목소리는 어째서 내 것인 듯 느껴질까. 나는 대답 대신 자일을 퉁겨 보냈다. 자일은 물결처럼 둥글게 말리면서 밑으로 전해 내려간다. 나는 아직도 내 숨소리가 바람에 묻혀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내 귓가에는 괜찮니? 하던 소리가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첫 번 말하는 자기의 목소리가 남의 것인 듯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소리는 반대로 나의 것인 듯, 깊은 가슴 한복판에서 울려왔었다. 내 두려움 속을 파고들어와 그 순간, 내 움직임과 함께 한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괜찮지. 이번에는 자세를 바꾸고 오른발을 먼저 뒷벽에 높이 밀어올린다. 재빨리 왼손을 뻗는다. 잡았다! 오른손 끝으로 잡고 있는 클랙 사이에 발끝이 닿을 만한 높이까지 몸을 끌어올린다. 클랙 사이에 발끝을 비틀어넣는다. 왼손으로는 홀드를 긁어쥐고 오른손을 뻔쳐 위로 더듬거리며 몸을 편다. 몸을 바위벽에 찰싹 붙인 채 반듯이 선다. 점점 좁아져 들어간 왼편으로 절벽 사이에는 바이스에 아물민 철편처럼 바위가 끼여 있다. 두 손바닥을 바위에 얹고 힘을 주어 몸을 끌어올린다. 배가 닿는다. 무릎으로 바위를 짚고 일어섰다. 사람 두어 명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테라스였다.
밖으로 향한 시야가 훨씬 좁아졌다. 좁은 절벽 사이로 보라색 상수리봉의 머리가 보였다. 골짜기 아래로 한떼의 새들이 날아 내려가고 있었다. 손끝에 아픔을 느꼈다. 손톱 끝이 벗겨져 있었다. 홀드 위에서 미끄러지던 손이 잡을 물건을 찾느라고 암벽을 훑어내려왔기 때문이다. 작업복 윗주머니를 더듬어 담배를 한 개비 꺼내물었다. 성냥을 찾다가 밑에 있는 친구들 생각이 났다. 그제서야 나는 고립되었던 자기에서 황급히 돌아왔다. 나는 자일로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아하 ― 이.”
구호를 지르며 자일을 퉁겨 보냈다. 내 작업 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밑에서 대답이 오면서 자일이 퉁겨져왔다. 오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나. 흔들거리던 자일이 곧 팽팽해졌다. 자일을 등 뒤로부터 돌려 감았다. 한손으로는 끌어올리고 한손으로 줄을 옆으로 풀어놓으면서 세컨드 영훈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자일은 또 다른 매듭으로 자꾸 다가왔다. 앵커를 할 때마다 그날 밤이 생각났다. 지독하게 길었던 자일과의 씨름.
함지보다 조금 작은 달이 신비스럽게까지 보이는 바위들을 하얗게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정봉 전면의 중턱, 바위틈에 앉아 있었다. 자일은 손안에서 식은땀과 함께 꼭 쥐어져 있었다. 로크해머가 바위에 부딪치는 둔한 소리가 암벽을 통해서 하얀 허공으로 울려펴지고 있었다. 자일은 땀 때문에 미끄러웠다. 택이 마치 밋밋한 절벽에 몸을 비스듬히 굽히고 피톤을 박고 있었다. 해머로 바위 구멍을 뚫는 소리와 골짜기에서 밤새의 가라앉은 울음소리가 엇갈려 들려왔다. 나는 등에다 힘을 주고 자일을 당겨 쥔 채 곰처럼 바위에 붙어 있는 택의 꾸부정한 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내가 잡고 있는 자일이 팽팽히 매어져 있었다. 나에겐 그것이 둘의 혈관이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엄마와 아가의 탯줄처럼 매우 신성하고 생명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옆의 바위틈에 박힌 하켄에 보조 자일을 묶은 것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싸늘한 바위에는 찬 밤안개로 습기가 배어 있었다. 택의 등반작업이 잠깐 그치면 귓전에서 정적 특유의 지잉 하는 소리가 희미한 허공에서 온 바위 위로 뒤덮여내렸다. 밤의 땅은 무섭도록 요염했다. 투박한 바위들과는 정반대로 희미한 은띠 같은 강줄기와 화려한 색등의 깜박거림, 도시의 줄이은 등불의 행렬, 가끔 천천히 별이 흐르듯이 비행기가 그 위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먼 동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람에 묻혀 마치 땅 자체의 지껄임 같은 이상하게 침잠된 소리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하늘은 그에 비하면 몹시 초라해 보였다. 외로운 촌락처럼 별들이 까무룩하게 졸고 있었다. 우리는 이 고독한 바위들과 화려한 땅, 황폐한 하늘의 기묘한 분기점 위에 섰는 두 개의 유기물질이었다.
갑자기 택의 몸이 중심을 잃었다. 그의 구두 바닥이 습기찬 바위 표면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자일을 잡은 채, 몸을 뒤로 젖히면서 당겼다. 자일은 그래도 자꾸 손안에서 풀려나갔다. 손바닥이 뜨거워지고 다음엔 몹시 쓰린 것을 느꼈다. 택의 구두 끝이 암벽을 허우적거리며 긁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도 중심을 잃으며 좌우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자일이 걷잡을 수 없이 몇초 더 풀려나갔다. 자일을 어깨에 걸어 버티면서 몸을 뒤로 완전히 뉘었다. 택의 식식거리는 숨소리가 내 귓가에 큰 소리로 부딪쳐오고 있었다. 자일은 간신히 풀려나가기를 멈췄다. 택은 한참 버둥대다가 자일을 붙들고 간신히 올라와서 조금 전의 자리를 다시 확보했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뒤에도 여덟 번이나 밑으로 굴러떨어졌는데, 찌를 듯한 정봉 절벽의 가운데에서 자일에 매달린 채 그네 타듯 대룽거리다가 다시 기어붙곤 했다. 싸늘한 바위를 긁어 쥐고 끝없이 싸우던 밤이었다. 우리들은 동이 틀 때까지 바위 위에서 어둠과 피로에 대항했었다. 그 보수로 조난 직전의 우리들은 바윗길을 만든 것이었다. 택이 일을 끝내고 내 옆으로 기어올라왔는데, 몹시 지쳐서 눈두덩과 얼굴이 부어 있었다. 더 날카로워진 눈초리와 바람결에 날리는 택의 곱슬머리털은 내게 이상한 감격을 줄 정도로 낯설었다. 그는 허리에 맨 자일을 끄르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돌아선채 내게로 셔츠를 들치며 허리를 내보였다. 어둠속으로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물집과 상처투성이였다. 내 손을 그가 만지게 했다. 내 손바닥은 껍질이 벗겨져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디 커다란 물집들이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택은 이빨을 내밀고 씽긋 웃었다. 나도 어이없이 픽 웃고 말았다. 어떠한 말로써도 그때의 두 사람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으므로 가볍게 웃어버렸을 뿐이었다. 우리는 졸리는 눈을 비비며 바위틈에 꼭 끼여 앉아서 하늘과 땅의 중간을 보고 있었다. 달은 이미 없어져버리고 검은 하늘 거죽으로 널려 있는 창백한 별이 보였다. 새벽 바람이 차갑게 바위틈의 테라스로 몰려들어왔다. 옆에서 택의 체온이 기분좋게 느껴져왔다. 나는 우리들의 끝도 없을 것 같았던 작업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끝난 뒤의 휴식은 너무 공허했다. 서글픔마저 갖게 했다. 어느 곳인가, 즐거운 곳을 생각해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곳이 어디인가는 도무지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냥 바위 위에 진이 빠져서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새벽은 점점 다가오고 밤새마저 깃으로 스며든 땅은 보다 더 적막했다.
“앵커 바짝!”
밑에서 신호가 올라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일이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양쪽 어깨에 걸쳐 감고 있던 자일이 어느 틈에 허리 뒤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택은 옆에 있지 않았다. 밑에서 세컨드 영훈이가 홀드를 긁어쥐고 애를 쓰는 소리가 들렸다. 자일이 팽팽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당겨올렸다. 어깨에서 자일을 내리고 두 손으로 끌어올렸다. 세컨드의 손가락이 서투르게 위로 뻗쳐졌다. 나는 이 가냘픈 살덩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들은 몹시 예민했다. 밑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의 오목한 바위 조각을 쉽게 더듬어 잡는 것이었다. 힘을 주어서 바짝 끌어올렸다. 영훈은 끄응 하는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바위 위에 간신히 한쪽 무릎을 올려놓았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들어 나를 수줍은 듯이 올려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떡했다. 그리고 웃었다. 그리고 자일을 밑으로 퉁겨 보냈다.
“세컨, 앵커 완료.”
그에게 넉넉히 설 자리를 비켜주었다.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영훈이 성냥을 꺼냈다. 성냥불이 손에 둘러싸여 턱밑으로 다가왔다. 나는 침을 크게 삼키고 나서 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영훈은 꺼진 성냥개비를 손가락으로 튀겨버 리면서 말했다.
“얼굴색이 좋지 않군. 어때, 톱을 바꾸는 게?”
“괜찮아.”
“시간이 없다. 해 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모두 무사한지 모르겠군.”
나는 담뱃재가 좁은 절벽 사이를 지나가는 가벼운 바람에 흩날리는 모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땅을 향해서 우쭐우쭐 춤추며 빨려들어가듯 떨어지던 모자. 허공에서 좌우로 흔들거리던 허전한 자일의 끝. 나는 그때의, 목탄으로 그린 황량한 그림 같던 순간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담배가 짧아져서 손끝이 뜨거워졌다. 나는 마지막 한모금을 깊이 빨았다가 훅 내뿜으며 꽁초를 멀리 던져버렸다. 또, 내가 떠날 차례가 왔다. 영훈이 가지고 올라온 선두의 장비들을 한가지씩 점검했다. 하켄, 로크해머, 카라비너, 피톤, 보조 자일. 보조 자일을 허리에 감고 카라비너를 끼웠다. 세컨드를 돌아보았다. 그가 태연히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게 몹시 우스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위태로운 절벽의 끝에 서 있는 친구의 무방비한 등을 보면, 왈칵 밀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자유로운 몸짓으로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 새처럼 훨훨.
앞으로 붙어야 할 바위의 모양을 살펴보았다. 굴뚝처럼 비좁은 침니 절벽이 계속되어 있고, 그것이 끝난 뒤 오른쪽으로 새로운 코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의 자세를 바꿔서 궁둥이를 뒷벽에 대고 앞벽에 다리를 버티었다. 두 손으로 뒷벽을 밀면서 두 발을 차례로 바꿔 디뎌 몸을 끌어올렸다. 한발 두발 옮겨가면서 속으로 천천히 수를 세었다. 이런 끊임없는 집념이 위로, 또 위로 오르고 있는 것이지, 내 몸이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 듯싶었다. 사람이 방 속에 앉아서 자신과 얘기한다거나, 사교장에서 지껄이고 있다거나, 저자에서 떠들 때라거나 대부분은 거짓말투성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네 관념과 말이 가지는 그 무의미한 허구에서 빠져나와, 분명하진 않지만 꼭 우리 속에 용해될 수 있는 자연의 품안이나 오랜 시간에 걸친 노동이나, 살아가기 위한 세상의 온갖 장해와의 순수한 투쟁 안에서 무언으로 해방될 것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스물둘을 헤아렸을 때, 오른쪽으로 절벽이 휘어진 모퉁이에 심한 경사를 이룬 바위가 있고, 그곳을 돌아간 뒤로 징검다리 디딤돌만한 발판이 보였다. 오른발을 내밀어 비스듬히 비탈진 바위를 간신히 딛는다. 왼손으로 앞벽을 받치고 몸을 가누면서 왼발을 마저 짚는다. 몸을 완전히 돌린다. 내 몸은 지금 비탈진 바위 위에 균형을 잃고 엉거주춤 섰다. 바위의 경사에 따라 등산화를 비스듬히 밀착시킨다. 궁둥이를 위로 곧게 올리코 무릎이 굽어지지 않도록 다리에 힘을 준다. 이마가 바위에 거의 닿도록 허리를 굽힌다. 두 손끝으로 바위 표면을 긁듯이 더듬으며 발을 조금씩 옆으로 내딛는다. 내 몸이 옆으로 옮겨가는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바위 위에 생긴 낙숫물 자국과 이끼가 떨어져 희게 되어 있는 곳이 자세히 보일 뿐이다. 손끝은 그동안에도 재빨리 볼록한 부분을 찾아 사방으로 헤맨다. 왼발 뒤축이 이상하다. 왼손 끝으로 먼저 확보할 부분을 찾아놓고 나서 발바닥을 살펴본다. 발 뒤축, 한쪽으로 싱싱한 이끼가 밟혀 있다. 발 뒤축을 약간 들어본다. 뒤로 밀려나가는 힘에 좀처럼 지탱하지 못한다. 오른발이 그에 따라서 조금씩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추락의 원인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실수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두 손끝으로 바위 부스러기가 튀어나온 부분을 긁는다. 오른쪽 다리 정강이에 온힘을 기울인다. 발 뒤축을 붙잡아 바위 위에 굳건히 세워야 한다. 미끄러져나갈 것인가. 제발, 좀, 서라! 발이 주춤, 주춤, 하다가 멈춘다. 내려다본다. 발 뒤꿈치가 바위 표면의 유리알만한 볼록한 돌기 위에 걸려 있다. 이젠, 이끼를 완전히 밟고 있는 왼발을 옮겨야 한다. 바위에 왼쪽 구두 바닥을 밀착시키면 더 위험할 것이다. 왼발에 힘을 주지 않고 옆으로 조금씩 옮겨간다. 구두 밑에서 무서운 이끼들이 점점 빠져나간다. 됐다! 완전히 이끼에서 벗어나왔다. 오른발을 옆으로 천천히 이동해간다. 왼발이 그에 따라서 바위 표면을 더듬으며 쫓아간다. 나는 아무 관계 없는 듯이 두 발의 움직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두코가 털처럼 하얗게 보풀이 일어나 벗겨진 것이며 밑창이 닳아서 약간 벌어져 있는 것도 보인다. 오른손에 손톱으로 긁어쥔 바위 부스러기가 시원치 않으면, 곧 그 반응이 오른발에 왔다. 오른발 뒤축이 허전해진다. 그러면 왼손, 오른손은 정확하게 바위의 돌출부를 찾아낸다. 이 순간들은 내가 끝내는 게 아니다. 다만, 이 바위 부스러기들이 이젠 “끝났다” 하고 내 손끝에 알려줄 따름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끊임없는 것 같은 작업에서 벗어나 쉬게 될 것이다. 그냥 이 순간을 건너지르면 될 것이다. 앞의 암벽이 점점 내 허리를 내리누를 듯이 아래로 굽어지고 있다. 왼손 끝, 약간 윗부분에 좁은 클랙이 시작되고 있다. 직선으로 갈라져 넓어진 바위와 바위의 사이, 그 한쪽 클랙을 손안에 움켜잡는다. 담 위에 매달린 듯한 자세로 발을 죽 뻗고 바위에 엎드린다. 두 팔로 온몸을 지탱하고 있다. 손가락 마디가 저린다. 구두 끝으로 바위를 밀면서 손을 조금씩 떼어 옆으로 한뼘쯤 움직여나간다. 아까는 발에 지금은 두 손에 내 모든 생각, 말, 심지어는 시선마저도 빼앗겨버렸다. 클랙이 끝나고 옆으로 삐죽이 보이는 발판에 거의 다가갔다. 발이 나를 저쪽으로 옮겨줄 것이다. 왼발을 주욱 내밀어본다. 아직 닿지 않는다. 손끝이 힘을 가놀 수 없을 정도로 떨리기 시작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어가자. 발을 내밀어 휘둘러본다. 싱거운 허공만 느낄 뿐이다. 왼손을 뗀다. 오른손 끝에 심한 경련이 온다. 왼손을 깊숙이 클랙 안쪽으로 쑤셔넣는다. 이번엔 허리를 틀며 온몸을 왼발을 위해 끌어야 한다. 발을 뻗어본다. 닿는다. 디딤돌 중간에 왼발이 얹혀져 있다. 이제는 이쪽 바위에서 저쪽 발판으로 몸을 옮기기만 하면 될 것이다. 디딤돌에 왼발을 짚고, 오른발을 굽혀 바위 바닥에 세운다. 두 팔이 다시 저려오기 시작한다. 몸을 안쪽으로 굽혀주면서 오른발을 재빨리 뻗어 저쪽 발판 위에 놓았다. 두 발은 가지런히 발판 위에 놓여 있다. 손바닥으로 뒤편 바위를 밀며 몸을 앞으로 일으킨다. 발판 한쪽 귀퉁이에 나는 완전히 서 있다. 거의 공백상태가 되어 있던 머릿속에 여러 가닥의 생각들이 밀어닥친다. 나는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며 잠깐 쉰다. 오른편 바위가 아래로 늘어져 있어서 아까 열려 있던 시야는 완전히 가로막혔다. 대신 사방에는 검은 벽이 서 있고 타원형의 하늘 조각이 보였다. 좁은 우물 속에 갇힌 것처럼 바위의 벽이 나를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얼음과 눈에 뒤덮인 초겨울, 상수리봉의 어느 폭포 위에서 빙벽에 아이스해머를 두들기며 작업하던 날. 나와 택과의 원시인 같던 동굴생활. 퇴학당한 학교. 그것은 너무나 외로웠던, 그리고 어리석었던 도피행각이었다. 반석 중간에서 넋을 잃은 듯이 서 있는 내가 이상해졌다. 올려다보면 끝없이 뻗어나간 바위 줄기.
넓은 바위벽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기역자로 굽어지고, 그것은 지붕이 되었다. 능선의 마지막 짤린 곳에 바위 몇개가 겹쳐 있었다. 몇몇 바위는 사방의 벽이 되고 큰 바위벽은 궁글게 안쪽으로 패어 지붕과 방안을 이루는 작은 집이 되어 있었다. 굴 옆으로는 왕모래가 깔린 미끄러운 언덕이고 입구에서 앞으로 나오노라면 그 밑은 절벽이었다. 나무들이 굴 앞을 가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병정놀이하는 어린아이들의 비밀본부처럼 은밀하고 아늑한 그 굴 속에서 살고 있었다. 굴 입구에는 양쪽 나뭇가지에 줄을 매어 늘어뜨린 군용판초의 문이 있었다. 굴 안의 가장 널찍한 곳에 땅을 파고 편편한 바위들을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덮어서 온돌을 만들었다. 초라하지만 정다운 취사 도구, 그리고 선한 냉기와 구수하게 풍겨오는 곰팡이 냄새, 그 안에선 언제든지 새벽이 살고 있었다. 굴 안의 으슥한 곳마다 진짜 방처럼 기미들이 줄을 치고 살았다. 이것이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집이었다. 택이는 궤짝에 기대고 앉아 부지런히 앞 머리털을 잡아비틀고 있었다. 그는 깊은 생각을 할 때면 앞 머리털을 잡아비트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택이의 머리털은 후천적인 곱술머리가 되어버렸다. 그는 한참 만에 느릿느릿 일어났다. 굴 어귀에 가려놓은 군용우비 조각을 들치고 밖으로 자지만 내놓고서 오줌을 내깔겼다. 오줌발 떨어지는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택이가 몸서리를 흠칫, 하고는 다시 사과꿰짝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여전히 앞 머리털을 비틀고 있었다. 나는 벽을 향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참선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리 긴 말모기가 굴의 천장을 스치며 날카로운 소리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모기의 앵 하는 날개소리는 택이와 나의 분리된 침묵 가운데로 막 파고들었다. 벽에 있는 내 그림자를 보니까 두려워졌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자의 그림자가 대신 비쳐진 것만 같았다. 몸을 좌우로 흔들어보았다. 길게 늘어난 그림자도 따라서 움직였다. 나는 여기에 없는 것 같았다. 그림자와 거친 벽의 표면만이 있을 뿐이었다.
“숨막히 게 조용하군.”
택이가 목쉰 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사람들이 보구 싶어졌어. 이상하다. 그 틈에 끼이면 모조리 싫어져서 죽이고 싶을 정도인데, 이런 때엔 같이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거 같다. 열등감도 없어지구 자신두 생기구 말이지.”
“이런 밤에 나뭇잎이 생기고, 줄기가 자라고, 아이가 태어나고, 생명 있는 모튼 게 만들어질 거야. 아니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모범생처럼 만들어지는 게 아냐. 창조라구 하는 거다. 저절로, 생겨난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해. 거기서 떠나면 가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역시 좋은 동물이야. 꼭 서 있게 될 자리가 없을까.”
택이는 손가락을 차례차례 꺾으면서 우쭐거리는 촛불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저녁밥이 다 되었는가 보려고 우비를 들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우리는 동굴 앞의 좁다란 빈터를 마당이라고 불렀다. 모닥불 위에 올려놓은 반합을 내려놓았다. 나는 반합 뚜껑을 열면서 그를 불렀다. 택이는 아직도 촛불을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놈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만 지나면 내일부턴 굶겠구나.”
나는 밥을 씹다가 그의 말에 소스라쳤다. 자루 바닥에 조금 남았던 쌀을 긁어 저녁을 지었던 일을 잊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답 없이 깡통에 남은 두 덩이의 꽁치 토막을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아래편 캄캄한 계곡 속에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꼭 찾아올 것 같은 밤이었다. 안개가 차츰 짙게 내려덮이고 있었다. 감자 서너 알을 희미한 불더미 속에 던져넣었다. 택이 기우뚱거리며 굴 안에서 기어나왔다. 나는 녀석에게 숟가락을 넘겨주었다. 감자가 타지 않도록 불 속을 헤쳐놓았다.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서 세 개비밖에 남지 않은 나비 담뱃갑을 집었다. 택이 밥 먹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흐뭇한 일이었다. 평안한 조화가 이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그곳에 무엇을 남기지 않고 오길 잘한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간의 연장만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가출해서 찾아 헤매던 것은 이런 시간이었다. 하늘엔 별 한개 없이 캄캄했다.
“비가 오려나봐.”
“비가 오면 큰일인데, 버너두 없구, 내일 밥을 지을 나무가 없는데!”
“자식, 쌀두 없는데 무슨 밥이냐?”
택이는 씨익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닥불의 벌건 빛이 그이 얼굴에 어른거렸다. 놈이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내려가야겠다.”
나는 얼떨떨해서 놈의 부름뜬 눈알과 불쑥 내민 아랫입술을 멍하니 올려 다보았다.
“어딜 내려가?”
“서울에 간단 말야.”
“자동차두 없을 텐데.”
"걸어서 가지. 밤새껏.”
나는 곤란한 시늉을 하며 택이와 좁다란 굴 안을 번갈아 둘러보았다.
"방황하기 싫어서 여길 찾아왔는데, 그 지긋지긋한 곳으로 또 가겠다는 거냐?”
“사람들이 보구 싶어졌어.”
택이는 주머니에 양손을 처박고 어둠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볼에는 밥알이 붙어 있었다. 택이의 모습은 귀여운 새끼돼지 같았다.
“체, 밥 처먹다 말고 환장했구나.”
나는 그의 말이 농담이라 생각하곤 감자를 꺼내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내가 감자를 던지고 일어섰을 때엔 놈은 산비탈 위를 달리고 있었다. 얼른 녀석의 뒤를 따라 모래에 미끄러지며 언덕 위로 뛰어올라갔다. 캄캄한데다 안개까지 끼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택이야!”
밑에서 조그맣게 그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산길 아래로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가다가 도중에 멈추고 말았다. 굴을 비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소나무에 기대어 섰다. 녀석은 아버지처럼 돌아올 것이다. 굳센 남자인 아버지로서 나 혼자 지키는 우리들의 굴에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는 어머니같이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려야 한다. 웬일인지 눈물이 나왔다. 내가 학교와 여자뿐인 집안의 폐쇄적인 훈련소에서 그리워했던 것은 야성이었다. 들짐승 같은 놓여난 활기였다. 사내의 긍지였다. 나는 울고 있었다. 멀리 까물거리는 동네의 불빛들을 내려다보았다. 혼자 절연되어 있다는 느낌으로 몹시 쓸쓸했다. 매일 밤 울어대던 귀에 익은 새소리가 들려왔다. 밤에 우는 새소리는 어떤 것이든지 몹시 다정하고 은근했다. 그것은 같이 듣는 새소리였으니까. 주위가 더 고즈넉해졌다. 나는 산의, 모든 것을 빼앗아선 자기 안에 스며들게 하는 넓은 품안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먼 도시의 환한 불빛들이 보였다. 별처럼 깜박거리는 휘미한 점들이 사방으로 뿌려져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남은 빛이 거의 하늘까지 훤하게 비추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여서 사는 편리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렇지만, 이 거대한 밤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서로 더욱더 가깝게 살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으리라. 산 아래에 밝은 점이 서서히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아마 국도 위의 자동차였을 깃이다. 중앙선을 달리고 있는 야행열차의 희미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생각을 한곳으로 모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밝은 불빛 아래 모여서 라디오를 들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떠올랐다. 기관총 소리. 벚꽃의 흩날림. 검은 교복 위에 흠씬 짖어 흐르던 피. 환희의
거리. 밀려오고 밀려오는 시민들. 소녀들의 해맑은 이마. 저 모든 것은 벌써 오래 전에 다 지나갔다.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 자가 되어 집과 학교를 떠났다. 거리에는 이미 우수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두운 하늘에선 갓난애 솜털처럼 연한 이슬비가 차분히 내려오고 있었다.
어지러웠다. 좁은 발판 위에서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입안에 텁텁하고 끈끈한 침이 가득 찼다. 목청을 돋우어 가래를 뱉었다. 좁은 바위벽의 사방이 울려서 귀가 멍멍했다. 목이 몹시 말랐다. 나는 잠깐 머리를 들어 위로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바위 줄기를 올려자보았다. 오랫동안 바위벽의 물길이 되었던 때문인지 갈라진 바위 틈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나의 허리에 느슨히 매어 있던 자일을 끌어당겼다. 천천히 끌어올렸다. 세컨드인 영훈이 바위에 엎드려 돌아오고 있는지, 절박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리어진 바위 밑으로 영훈의 구두 끝이 솟아나왔다. 언제든지 바위와 맞붙어 작업하고 있던 순간에 일어났던 잠재적인 불안은 이러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즉, 이 동료의 몸을 밑으로 떨어지게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바위 클랙을 잡고 옆으로 이동해갈 때, 놓아볼까? 하는 야릇한 유혹 때문에 자기의 추락을 상상하고는 그 이상하고 두려운 상념과 싸우면서,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랬던 자신의 불안감이 지금은 안전한 장소에서 쉬고 있을 때, 저쪽 동료에게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발끝이 가볍게 떨면서 발판을 짚었다. 나는 뒤로 바싹 물러서서 그의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어서 이 우물 같은 바위틈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곧 작업에 들어갔다. 날카롭게 벋어내려온 바위 줄기 밑에 섰다. 두 손안에 힘껏 바위날을 잡았다. 오른발을 바깥으로 해서 나무 타는 자세로 바위벽에 붙이고, 왼발은 옆으로 틀어 바위 줄기와 안쪽 벽 사이의 좁은 클랙에 박아넣었다. 오른발을 올려 바위벽을 미는 것과 동시에 두 손으로 바위날을 잡고 몸을 끌어올렸다. 올렸던 읜발을 바위틈에 박아넣고 두 손으로 바위날을 바꿔잡았다. 손안에 식은땀이 흘러 바위날이 몹시 미끄러웠다. 어깨 힘 이 갑자기 빠져버렸다. 오른손을 머리 위 높이 뻗어 암벽 가운데 움푹 패어진 그릇 모양의 홀드를 잡았다. 위편 절벽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괴던 자리였다. 온몸이 오른손에 매달렸다. 바위벽을 힘껏 차며 팔에 힘을 주어 끌어올렸다. 바위 위에 가볍게 올라섰다. 먼저 허리에 맸던 자일을 당겨 어깨 위에 걸쳤다.
“아하― 이.”
반응이 오지 않는다. 영훈은 지금 써드 인섭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좁은 바위 위에 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았다. 처음에 바라보던 시야는 완전히 차단되고 반대쪽에 훤히 트인 하늘과 들판이 보였다. 그 사이로 선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연회색의 구름이 폭신하게 떠 있었다. 들 위로 솔개도 천천히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나타났다. 아래 두 절벽이 맞선 좁은 통로 사이에 검은털과 흰털의 직선 무늬가 있는 족제비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어떤 때에는 수많은 족제비들이 일렬로 순서 있게 바위틈을 달리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바위틈 사이에는 가끔 그들이 요리한 자리가 남아 있기도 했다. 산새나 다람쥐의 털이 흐트러져 있고, 그들의 깊숙한 둥지가 헤쳐져 있었다. 지금 이 친구는 먹을 것을 부지런히 찾고 있었다. 한뼘도 못될 바위 끝으로 훌쩍훌쩍 뛰어다녔다. 휘파람을 불어주니까 고개를 들고 코를 벌름거리더니 재빠르게 바위틈으로 숨어버렸다. 우리들의 친구는 그놈 외에도 너구리나 독수리들이 있었다. 어떤 때 정상에 이르면, 한참 먹이를 쪼던 독수리가 날개를 착, 펴고 골짜기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도 보았다.
“아하 ― 이.”
자일이 퉁겨 올라왔다. 자일을 어깨에 걸고 일어섰다. 자일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무거워졌다. 영훈의 몸무게를 어깨에 느꼈다. 힘껏 당겨올렸다. 영훈의 머리가 보인다. 위에서 보면 머리는 어깨 가운데 납작하게 붙어 있고, 두 다리는 개구리의 다리처럼 옆으로 벌어져 꿈지럭거리고 있는데, 커다란 두 손만이 위를 향해 뻗쳐져 있다. 머리를 위로 들지 못하고, 앞의 바위 표면을 향한 채 손으로는 위편을 한없이 더듬고만 있다. 줄을 당길 때마다 그의 안간힘하는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영훈의 손가락이 내 발 앞 그릇 모양의 홀드를 잡았다. 한참 힘을 쓰다가 배 있는 곳까지 끌어올리더니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는 내 옆에 몸을 꼭 붙이고 섰다.
“인섭이하구 라스트 기욱이가 밑에 대기하구 있지.”
“그럼 내가 다음 테라스에 건너가기가 끝나면 장비들을 올려줘.”
“그런데, 녀석들이 정상 부근에 갇혀 있는 모양이야. 부상자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을걸. 개미 자식들.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 개망신이지 뭐야.”
“그애들도 창피하진 않을걸. 조난은 당했지만 개미클럽의 실력은 보였으니까. 연락자 말에 의하면 후면 코스를 개척 했대.”
“우린 구조대가 아니냐. 거긴 조난대구 말이지.”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작업은 모험이 아니며, 산과 나를 합쳐지게 하려는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땅 위에 검은 그림자를 끌고 다니듯, 불만과 열등감과 자의식을 어두운 생활 속에 끌고 다니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물리적인 암벽작업에 정신을 불어넣고, 우리의 싱싱하고 자유스러움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랑의 대상을 바위라고 가정해봤을 뿐이었다. 사실, 어두운 그림자는 바위와 맞붙는 순간부터 없어져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내려다보기 위해서 위로 오르는 법이다. 우리들의 목적은 오르는 과정뿐이며, 도달했을 때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정상에 섰을 때, 우리들의 발밑을 튼튼히 받쳐줄 오직 하나의 근거지인 땅이 귀하고 고마운 곳임을 깨달았다. 하산해서 내려오면 우리 몸과 걷는 길이 새롭게 변해 있었다. 나무와 시냇물은 반갑게 그대로 있었다. 전에는 으레 있었던 사물이다. 눈에 띄지도 않던 것들이, 모두들 제 자리를 지키며 신선하게 주장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업이 끝난 뒤 피곤한 몸을 끌고 산에서 내려올 때에, 위대한 사상이 적힌 책을 모조리 읽어치우고 도서관을 나올 때의 소박한 자부심과, 여행이 끝나고 인파가 밀리는 도회지의 정거장을 나서면서 ― 나는 이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느끼듯이 자기가 새 사람이나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갈증이 좀 가실 거야.”
영훈이 등산 껌을 내게 내밀었다. 그 껌을 씹으면, 입안에서 귤 냄새가 나고 새큼해져서 갈증이 없어졌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앞에 직각으로 뻗어올라간 바위는 머리가 M형으로 되어 있었다. 바위 가운데에는 세로로 틈이 갈라졌다. 그 갈라진 틈은 거의 바위 꼭대기에 이르고, 그것이 그친 곳에서부터는 한뼘 넓이의 바위틈이 가로로 벌어지면서 점점 넓어가고 있었다. 그 좁은 통로는 이 바위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바위 뒤편에서부터 새로운 절벽이 시작되어 있었다. 이 바위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약 삼십미터 세로로 갈라진 바위틈의 길이
는 이십미터쯤, 가로로 돌아간 좁은 통로의 길이는 십미터쯤이었다. 나는 허리의 보조 자일에 매달린 로크해머를 들었다. 허리에 매달린 하켄 중에서 제일 굵직한 하켄을 한개 뽑는다. 머리보다 조금 위쯤의 높이에서 그친 바위 갈라진 틈에다 하켄을 박기 시작한다. 바위 부스러기가 떨어져나가고 찍찍거리는 마찰음을 내면서 하켄이 틈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바위틈에서 쥐며느리가 기어나온다. 나는 줄기차게 해머로 내리친다. 해머가 빗나가 바위에 맞으면, 쨍 하는 소리가 나고 돌가루가 따갑게 얼굴에 튄다. 하켄이 머리 끝까지 박혀들어간다.
하켄의 머리 엽전만한 구멍 안에 한쪽을 여닫을 수 있는 쇠고리인 카라비너를 끼운다. 허리에 맨 자일을 카라비너의 스프링을 열어서 걸고 나서 스프링에 달린 안전나사를 잠근다. 영훈은 뒤에서 자일을 잡고 준비를 하고 있다. 끝이 넓적한 하켄을 뽑아 입에 문다. 왼손에 해머를 쥐고 오른손을 뻗쳐 첫번 박힌 하켄의 끝을 잡는다.
“앵커어 바짝.”
"앵커 바짝.”
영훈은 처음 생기에 찬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가 되풀이 복창하며 자일을 바짝 끌어당긴다. 내 몸은 도르래 우물의 두레박처럼 하켄을 향해 끌려 올라간다. 겨드랑이가 죄어서 숨이 막힌다. 허리를 맨 자일의 끝이 바로 카라비너 앞에까지 끌려 올라와 있다. 입에 물었던 하켄을 손끝에 쥔다. 녹물이 혀끝에 닿아서 입안이 떫다. 눈앞쯤의 높이에 하켄의 끝을 겨눈다. 해머를 들고 가볍 게 두드린다. 바위벽이 빈 것처럼 쿵쿵 울린다. 귀가 멍멍해진다. 하켄이 틈 안으로 한치 한치 파들어가고 있다. 바지직, 바지직, 하며 바위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나는 이 녹슨 쇠에 생명이 생겨서 내 피가 하켄 속의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켄은 전체의 절반 이상이 박혔다. 그것으로 일단 그친다. 해머를 놓는다. 해머는 궁둥이 뒤에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오른손으로 두번째 하켄의 끝을 잡고, 왼손은 오른 손목을 쥐고 몸을 끌어올리면서, 첫째번 하켄 위에 왼발을 올려놓는다. 둘째번 하켄이 가슴 부근에 닿는다. 가장 실패하기 좋은 자세다. 사이를 두지 않고 오른손으르 둘째 하켄을 잡고 왼손으로 보조 카라비너를 집어 하켄 구멍에 끼운다. 몸에 감긴 보조 자일은 카라비너에
걸려 있고, 그것은 하켄에 끼워져 있으니까, 나는 지탱할 힘을 마련한 셈이다. 두 손을 다 놓아도 절벽 위에 매달려 있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암벽 위로 하루살이가 기어올라가고 이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왔을까, 생각될 만큼 마음이 평온하다. 굵직한 하켄을 빼어든다. 머리 위 높직하게 하켄을 대어본다. 손을 뒤로 해서 궁둥이에 늘어져 있는 해머를 잡는다. 하켄의 머리를 후려갈긴다. 바위틈 사이가 좁아져 하켄은 중간쯤 박히고는 더 들어가지 않는다. 갑자기 진땀이 바짝 나며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내리치는 해머가 바위벽에 헛맞기만 한다. 제발, 조금만 더 들어가라! 세차게 몇번 두드린다. 하켄이 아직도 아래위로 흔들거린다. 끝부분만 조금 박힌 것이다. 해머를 크게 뒤로 휘두르며 힘껏 내리친다. 해머가 손에서 힘없이 떨어져나간다. 오른손이 부르르 떨리며 밑으로 늘어진다. 입이 딱 벌어져서 닫히질 않는다. 성한 왼손은 옷깃을 부여잡고 있다. 해머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내려친 것이다. 고통이 심해질수록 왼손으로 옷깃을 쥐어비튼다. 입을 가까스로 다물어 턱에 힘을 준다. 껌이 어금니 사이에서 납작하게 아물리고 있다. 나는 그때서야 작업이 중단된 것을 안다. 영훈이 걱정스럽게 물었기 때문이다.
“교대할까?”
“아직 ! 괜찮아.”
하면서도 나는 내려가 쉬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그럴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 부질없이 생명 없는 무기물인 절벽 앞에 꿇어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어도 안될 것 같았다. 성급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깊은 감정과 따뜻한 숨을 내뿜어서 이 차디찬 돌덩이를 내 분신으로 만들어야 한다. 깊숙한 감정이라니! 나는 얼마나 더럽고 욕심 많은 살덩이인가? 돌덩이 앞에 겸허하지 않으면 나는 두 손을 놓고 날아가려다가 추락해서 즉사할 것이다. 외계는 무관심하게, 내가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사방에서 내 살덩이를 전송해줄 것이리라. 자, 다시
시작이다.
손에 힘이 빠져 자유롭게 움직일 자신이 없다. 오른손을 억지로 위로 쳐든다.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이 부러지고 살이 터져서 피가 줄지어 흘려내린다. 셋째번 하켄을 잡는다. 해머를 가까스로 치켜든다. 아까보다는 느리고 침착하게 힘을 주어서 하켄의 머리를 때린다. 바람 속에 빨려들어갔던 내 숨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다. 하켄이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 거의 머리 끝까지 들어갈 때까지 두드린다. 하켄 잡은 손을 놓는다. 몸은 좌우로 흔들리지만, 바위에 여전히 매달려 있다. 두 손으로 해머를 쥐고 머리 뒤로 해서 힘껏 내리친다. 마지막 결판이다. 한번, 두번, 이제는 완전히 박혀 있다. 해머를 놓는다. 숨을 가라앉히느라고 두 손을 밑으로 늘어뜨린 채 목을 뒤로 젖힌다. 하늘이 보인다.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늘은 언제인가 어느 바닷가 언덕 위에서 머리를 땅에 처박고 가랑이 사이로 내다보던 파도와 똑같았다. 바위에 붙들어맨 줄을 끊으면 하늘을 향해서 곤두박질쳐서 떨어져갈 것 같았다. 그래서 구름 사이로 누비고 들어갈 것만 같았다. 몸을 바위에 찰싹 붙인다. 짧고 가느다란 하켄을 뽑아 입에 문다. 보조 카라비너를 비틀어 둘째번 하켄에서 빼낸다. 오른 손목 전체가 쑤신다. 오른손을 위로 올려본다. 손목과 손가락들이 얼얼하게 저린다. 셋째 하켄의 끝을 잡는다. 왼손으로 둘째 하켄을 잡고 몸을 끌어올린다. 오른발을 올려 왼손을 떼는 것과 동시에 둘째번 하켄을 짚어야 하는 것이다. 오른발 끝이 하켄 위에 거의 이르렀다. 왼손을 떼는 순간의 전 몸무게를 오른손에 지탱해야 된다. 오른손 끝에 힘을 주면 줄수록 고통이 심해진다. 오른손과 어깻죽지에 힘이 빠진다. 오른발이 둘째 하켄의 머리를 더듬다가 떨어진다. 오른손마저 거의 자연스럽게 셋째 하켄에서 풀려나온다. 왼손으로 바위벽을 쓸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눈앞의 바위벽이 위로 재빨리 솟아 흘러간다. 겨드랑이 밑이 화끈한다. 첫번째 끼인 카라비너에 몸이 매달려 있였다. 세컨드가 자일을 팽팽히 당겨주어서 나는 무사하게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손과 다리를 얼마 동안 허우적거리다가 나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몸이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영훈이 자일을 어깨에 돌려 감고, 한발, 두발 풀어주고 있었다. 나는 바위 위에 내려섰다. 혼이 나간 꼬락서니가 되어서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실패한 원인은 왼손과 오른손을 바꿔서 쓰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영훈이 내 오른손을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 등에 멘 쎄미륙에서 가루약을 꺼내 뿌리고 반창고를 감았다. 그가 고개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교대하는 게 좋을 텐데. 그런 손으론 무리야.”
“아직! 시간은 있다.”
“너 개인 취미에 시간을 빼앗겨서는 곤란해. 네 사람 모두가 빨리 정상에 도착해야 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다.”
영훈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얘기했다. 나는 어쩐지 부끄워졌다. 그렇다, 선두에 사고가 생기면 뒷사람이 이어야 하고 선두는 가장 안전한 써드쯤으로 교대해야 한다. 그것이 안전수칙이고 효과적인 등반작업의 기술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선두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얼굴들이 내 눈앞에 여럿 나타났다. 새로운 바윗길을 만들다 죽어간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제삼 피치를 개척하다 거꾸로 박힌 친구, 트레버스 횡단중에 떨어져 암벽 위에 안면을 벗기우며 떨어져 죽은 친구, 눈이 뒤덮인 계곡 속에서 길을 찾다가 구조 직전에 얼어죽은 친구, 야영에 눈사태를 만나 깔려죽은 친구들.
우리들은 곧 친구들이 운반되어간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우리는 상처입은 팔뚝을 내밀고 부상당한 친구들께 주기 위한 피를 아낌없이 뽑았다. 다친 친구와 나란히 누워 있으면, 피가 전해가는 고무줄은 우리가 바위 위에서 함께 작업할 때 서로 이어져 있던 자일로 바뀌어 보였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이미 시체실로 옮겨진 뒤에 달려가기도 했다. 그 안은 콘크리트 벽과 흰 광목을 씌운 시체들 때문에 몹시 차가운 기분이 들었다. 작은 어린이의 주검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하얀 친구의 몸뚱이. 우리는 안내하는 사람들이 말리기도 전에 광목을 들치고 친구의 피 묻은 얼굴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창살 틈으로 몰려들어온 햇빛 때문에 그의 얼굴은 더욱 희게 보였다. 그의 조촘하게 다문 보라색 입술. 바람이 불어들어와 그의 머리카락이 한들거리면, 혹시 살지나 않았나 하고 조바심이 생겨났다. 좀 갑갑하고 가슴이 무둑한 느낌이 들었다. 옆에 따라왔던 간호부가 빼앗듯이 광목을 덮어버렸다. 우리는 친구가 바위 위의 테라스가 아닌 그곳으로, 비약해서 영˙원히 쉬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그는 이젠 아무런 작업에도 집념에도 시달리지 않을 것이었다. 지하실엔 습기찬 바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흰 광목 위로 삐죽이 솟은 헐벗은 발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고요한 휴식인가? 뭔지 어쩔 수 없는 커다란 힘에 짓눌리는 듯했다. 죽음에 관한 생각도 아니고 공포도 아니었다. 흰 광목 위에 살아 있는 파리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인제 가보자.”
한 친구가 뒤에서 중얼거리면, 우리는 그 소리에 구원을 얻는 것처럼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그 쉬고 있는 친구에게…… 우리는 잠시 말없이 걷다가, 우리들이 헤어져야 할 길목에 서면 서로 외쳤다.
“다음 토요일이다. 그날은 매봉 북벽을 해치워야 돼. 아홉시까지 약속 잊지 말어.”
그러곤 뿔뿔이 ㅎㅔ어졌다. 그때 각자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매봉의 날카로운 계곡이 새겨졌다. 그 뒤에 우리는 언제나 약속을 지켰고 추도등반을 통해서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산과 더불어 뒤섞여버렸다. 절벽 위에서 밑바닥까지 직선으로 떨어진 친구도 있었다. 슬로프코스인 ‘비탈 바위’를 붙었던 친구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는 허리에 십여개의 하켄과 카라비너를 차고 있었는데 바위에 부딪는 쇳조각들의 짤랑, 짤그랑 하는 소리가 투명하게 들려왔었다. 친구들은 절벽 밑에서 몇 무더기의 살점들과 등산화 한켤레와 찢겨진 옷뭉치를 발견했다. 우리는 그의 몸을 우비로 만든 담가에 조심스럽게 주워 담아가지고 내려왔었다. 그 고깃덩이 속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아무런 친밀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공을 울리던 짤랑, 짤그랑 하던 쇳소리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내가 작업을 중지하고 테라스에서 쉴 때, 또는 실수해서 위험을 만났을 때라든가, 마음이 조급해지면 언제나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래서는 점점 영역을 넓혀 피곤해진 마음속에 번져나가고, 기억이 아주 단순한 그림으로 바뀌면서 장면을 설명하는 자기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음성은 메아리처럼 뇌수 속으로 우렁우렁 울려나갔다. 우리도 언제인가는 그러한 친구들의 ‘이야기’ 속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른손이 거북하긴 했지만, 고통은 점점 멎어가고 있었다. 나는 붕대 감긴 손가락을 몇번 움직여보고 나서 바위 위에 나란히 박혀 있는 하켄들을 바라보았다. 내 작업의 흔적이다. 영훈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그래도 고집을 부릴 테냐? 하고 묻는 중이었다. 나는 거기에 대답하듯이 오른손을 뻗쳐 첫번 하켄을 잡으면서 말했다.
“앵커 잘 부탁한다.”
“또 떨어지면 사정없이 줄을 놓는다.”
영훈이는 웃으면서 자기 어깨 위로 자일을 걸쳐 쥔다. 하켄을 잡고 잠깐 망설였다가, 구두 끝으로 암벽을 차면서 위로 몸을 끌어올린다. 왼손을 동시에 올려서 둘째 하켄을 잡는다. 오른손의 감각이 무뎌져서 몹시 불편하다. 오른손을 놓자 사이를 두지 않고 왼손의 손목을 잡으면서 오른발 끝을 첫째 하켄에 올려놓는다. 어깨가 뻐근하고 손목에 힘이 빠진다. 팔꿈치 관절이 시큰거린다. 숫자 4자형의 머리만 나와 있는 셋째 하켄을 노려본다. 오른손이 불편했지만 왼손에 힘이 빠져버렸기 때문에 손의 위치를 바꿔야 한다. 왼손은 둘째 하켄을 잡은 채 오른손을 뻗쳐 셋째 하켄을 잡는다. 잠깐 두 손가락이 전신을 바위에 매달리도록 지탱해야 한다. 왼손으로 둘째 하켄을 짚고 몸을 일으킨다. 왼손의 두 손가락으로 하켄의 구멍을 끼워 잡고 동시에 몸을 끌어올린다. 발이 거의 둘째 하켄 위에 가까워졌을 때에 왼손을 올려 오른 손목을 잡고 두 팔의 힘으로 셋째 하켄 위에 매달린다. 발이 몇번 허둥대다가 간신히 둘째 하켄 위를 짚는다. 길이 오센티 정도의 짧은 면적 위에 구두 끝이 걸려 있다. 그제야 오른손 끝에 심한 고통이 시작되고 있는 걸 안다. 왼손으로 하켄을 바꿔 잡는다. 보조 자일에 걸린 카라비너를 잡는다. 안전나사를 열고 스프링을 누른다. 카라비너를 곤두세워서 셋째 하켄에 끼운다. 내 몸이 균형을 되찾는다. 해머를 집어든다. 하켄을 골라가지고 머리 위에 박을 장소를 겨눈다. 바위틈이 S자로 굽이치며 내려온 중간쯤에 하켄을 꽂는다. 해머를 들어 약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사이가 넓어서 쉽게 박힌다. 넷째 하켄이니까 이것은 보조 하켄이 된다. 첫째, 셋째, 다섯째 하켄들이 영구 하켄이 되는 것이고, 가운데의 것들은 라스트가 올라오면서 뽑아가지고 올 것이다. 넷째 하켄 박기를 그쳤다. 하켄의 머리를 잡고 당겨본다. 이만하면 확보할 수 있겠다. 셋째 하켄에 끼워진 카라비너를 빼낸다. 새로 박은 하켄을 한손으로 잡고 몸을 끌어올리면서, 오른발 끝을 셋째 하켄 위에 간신히 올려놓는다.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왼손에 쥔 카라비너를 얼른 넷째 하켄 구멍에 끼웠다. 뒤로 쏠리던 몸이 보조 자일에 걸린 카라비너가 하켄에 끼워지므로 완전히 확보된다. 다시 해머를 쳐든다. 굵은 하켄을 손안에 꼭 쥐어본다. 나는 지금 모든 동물적인 깨끗한 감각과 생명력을 이 녹슨 쇠의 표면에서 추구하고 있다. 어깨 근육이 욱신거리며 그에 따라 보조 자일에 난린 몸이 좌우로 흔들거린다. 자꾸 때린다. 손가락의 고통이 완전히 나은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감각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다섯째 하켄이 거의 박혀가는데, 몸을 고정시켜준 카라비너에 끼인 하켄이 아래위로 조금씩 건들거리기 시작한다. 몸을 바위에 바싹 붙여서 하켄에 힘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다섯째 하켄은 굳게 박혀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바위틈이 S자형으로 굽어지는 마지막쯤이 된다. 하켄을 세 개나 더 박았다. 윗몸은 왼쪽으로 아랫몸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일곱째 하켄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는다. 아무래도 한손으로 확보하는 데엔 자신이 없다. 먼저 보조 자일에 끼워진 카라비너를 빼고, 다음에 하켄의 머리구멍에서 돌려 빼낸다. 카라비너의 스프링을 누르고 여덟째 하켄의 머리구멍에 돌려 끼운다. 두 손으로 카라비너를 잡고 턱걸이를 한다. 바위를 두 발끝으로 차며 오른다. 딛고 있는 하켄이 밑으로 처진다. 발끝이 미끄러질 기세다. 더 힘껏 늘러보니까 그 이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가슴에 닿은 여덟째 하켄의 카라비너에다 보조 자일을 끼운다. 다음은 마지막 하켄. S자형의 바위틈에 하켄을 꽂는다. 해머로 두드린다. 이제는 최후의 가속도까지 붙는다. 쨍, 쨍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절벽을 타고 퍼져서 골짜기에 가득 찬다. 마지박 하켄 위에 매달려 여태 궁등이 뒤로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있던 본 자일을 당겨서 카라비너에 걸고 보조 자일은 회수해서 밑으로 던진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되는 클랙을 비집고 올라가는 동안 밑에서의 확보를 부탁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중간에서 떨어지더라도 세컨드가 자일을 당기면, 나는 마지막 하켄의 카라비너에 매달려질 것이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바위틈을 잡고 몸을 뒤로 버티었다. 몸을 날려 오른발을 굽히면서 클랙 안에 구두 끝을 비틀어 박는다.
“앵커 풀어.”
“앵커어 풀어.”
줄이 팽팽하게 카라비너를 통해서 아래로 당겨졌다가 느슨해진다. 두 손으로 클랙을 잡고 왼발 오른발 바꿔 올라갈 때마다 천천히 자일이 풀려 올라왔다. 틈이 좁아진 곳을 피하기 위해 줄곧 구두 끝을 살피면서 발을 바꾼다. 손 닿은 곳의 클랙이 좁아져서 손가락 첫마디만을 걸친 채 발을 바꿔 올린다. 오른발이 바뀌는 순간, 왼발이 미끄러지면서 클랙 속에 빠져서 경계하던 비좁은 틈에 꽉 박히고 말았다. 왼발을 움직여본다. 꼼짝도 않는다. 다시 한번, 클랙 바깥으로 힘껏 솟구쳐본다.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밑으로 내려가 왼발을 충분히 움직일 여유를 마련해야 한다. 손으로 클랙을 잡고, 아래쪽으로 그 위치를 바꾸면서 올렸던 오른발을 서서히 내린다. 오른발을 왼발의 바로 밑에 박아넣는다. 왼발목에 힘을 완전히 빼고 가만히 돌려본다. 왼발은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얼마나 간단한 일이냐? 울화통이 터져나올 정도르 초조한 매순간마다 바위는 이런 함정으로 자꾸만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얼마쯤 마음을 진정하느라고 내가 초조해지면 하는 버릇인 숫자 헤아리기를 해본다. 하나아, 두울, 세엣, 네엣…… 그러고는 내가 지금 한없이 평온하다고 자기에게 주장을 한다.
다시 서두르지 않고 한발, 두발, 바꿔 올라간다. 클랙은 곧 끝나고 오른쪽으로 또다른 클랙이 시작되고 있다. 옆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두 발로 바위벽을 버티고 두 손으로만 클랙을 잡은 채 옆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바위벽을 버티고 있는 왼발을 옆으로 이동하고 왼손이 바위틈을 따라 이동한 뒤에 오른발 오른손을 번갈아 이동시킨다. 바위 표면이 몹시 매끄럽다. 발로 버티는 힘이 점점 약해진다. 발과 손을 또 옆으로 이동시킨다. 몸이 조금씩 바위 뒤쪽으로 가까워진다. 틈이 넓어지고 바위벽 위에는 경사가 생겼다. 우묵한 부분의 바위에 왼발을 밀착시키고 팔굽을 펴서, 어깨를 넓어진 바위틈 위쪽 벽에 찰싹 붙인다. 어깨를 뱀처럼 뒤틀면서, 몸을 각이 진 바위의 끝까지 완전히 이끌어간다. 뒤쪽은 비교적 편편한 통로가 되어 있다. 바위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서 기어나간다. 짧은 통로가 끝난 곳에 세모진 널따란 바위가 걸려 있다. 앞으로 급혀 두 손바닥을 바위에 대고 건너뛴다. 바위 위에 섰다. 목욕탕에 들어선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쑥스럽게 서 있었다. 여태 전신으로 부딪쳐 작업했던 밋밋한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가벼운 바람결에 바위틈의 고사리들이 몸을 떨었다. 동그랗게 말린 줄기가 펴질 것도 같았다. 맨 처음 절벽 사이에서 내려다보던 곳은 훤히 틔어 있었다. 등근 바위 언덕들이 숲 가운데 우뚝 솟아올라 모자를 쓴 여자의 어깨처럼 보였다. 산새들이 골짜기 사이로 이리저리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구름의 떼는 하늘 위, 가던 길을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다. 자일을 튕겨 보냈다. 신호가 마주 올라온 다음, 자일을 등에 걸고 당겨올리기 시작했다. 상냥한 바람과 비단결 같은 햇빛이 바위 위에 가득 찼다. 나는 자꾸 자일을 당겼다. 한자 두자 영훈이가 내게 가까워오고 있다. 아마 그는 지금 하켄을 노려보며 손을 뻗쳐 다음을, 또 그 다음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자일이 느슨해졌다가 밑으로 바짝 늘어졌다. 몇 발쯤 풀려나갔다. 어림없다! 나는 줄을 쥐고 어깨로 버티었다. 몸이 앞으로 이끌렸다. 이를 악물고 뒤로 버텼다. 잠시 후 자일이 늘어졌다. 조금 더 느슨해졌다. 나는 다시 당기기 시작했다. 한참 줄을 감았는데, 바위틈을 기어나오는 영훈의 어깻죽지가 보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영훈이는 테라스 쪽으로 건너뛰어왔다. 그의 볼에 허물이 벗겨져 피가 맺혀 있었다.
“하켄 머리에 긁혔어, 넷째번에서 손을 놓쳤지 뭐야.”
“난 또 어떤 물귀신인가 했지. 앵커 교대하자.”
자일을 그에게 넘겨주었다. 테라스 한쪽에 두 다리를 질펀히 뻗고 앉아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영훈은 써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에 써드인 인섭이가 바위틈을 돌아나왔다. 그의 등뒤에는 쌕이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테라스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인섭이에게 말했다.
“오랜만인데.”
“그래, 안녕하시다.”
영훈이가 자일을 인섭이에게 넘겨주었다. 인섭이는 쌕을 벗어던지고 자일을 잡았다. 인섭이가 자일을 등에 걸고 자세를 바로잡은 뒤에 크게 외쳤다.
“어이, 라스트 뒤처리 잘해.”
“간다아.”
밑에서 기욱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섭이가 자일을 천천히 당겨올렸다. 영훈과 나는 새로 시작되고 있는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약 칠십도쯤의 비탈진 슬로프 코스였다. 절벽이 길게 길게 뻗어올라가고 있었다. 연속등반으로밖에 올라갈 도리가 없었다. 내 뒤의 자일을 영훈이가 매고, 그 줄을 인섭이, 그 다음 기욱이가 마지막 줄을 매고, 일렬로 함께 올라가야 한다. 연속등반은 팀의 네 사람이 위험을 함께 매달고 가는 일이다. 이런 코스에서 우리는 네 사람에 지워진 위험 부담을 똑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기욱이가 올라왔다. 우리는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연속등반에 대해서 어떤 요령을 채택할 것인가를 의논했다. 지금 이 바위에는 길이 없다. 도중에 바위를 가로지르는 이끼의 떼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바윗길은 물이 흘러내려오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길은 지금, 이끼로 막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회하는 측면작업은 어떤가. 옆으로 돌아서 다른 길을 만들어보자,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다. 바위의 돌아간 편은 직벽이기 때문이다. 하켄 공격은? 바위를 뚫으려면 사흘쯤 걸릴 것이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은 밋밋한 슬로프 절벽과 이끼의 떼, 그리고 물때가 있다. 물때란 습기찬 바위에 사는 극히 작은 이끼의 떼가 모인 것이다. 물때는 이끼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그것은 감촉으로도 짐작하기 어렵고 바나나의 껍질 속처럼 부드럽게 매끄러워서 밟으면 미끄러질 게 확실했다. 물때를 돌아가는 길을 눈으로 만들어보았다. 아무래도 중간에 하켄이 필요했다. 그런데, 하켄을 박을 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오직 하나, 직상작업인 것이다. 이끼와 물때의 가운데를 뚫고 직선으로 오르는 작업이다. 우리는 테라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허리에 자일을 매고 일어섰다. 나는 구두를 바위에 대고 여러번 비볐다. 구두에 습기가 있으면 그것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모두들 따라 일어섰다. 나는 팀의 전부를 돌아보았다. 영훈이의 큰 코와 가느다란 눈, 인섭이의 긴 턱과 날씬한 키, 기욱이의 붉은 여드름과 튼튼한 어깨, 이것들은 모두 공동체가 되어버릴 것이다. 나는 맞은편 절벽 중간에 편편히 경사진 좁다란 디딤판으로 건너갔다. 여기서부터 긴 술로프 코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밑으로는 직각으로 굽어져 날카로운 절벽에 이어졌다.
“오미 터 간격으로 따라붙어라.”
나는 발을 올릴 장소를 골랐다. 내가 서 있는 층계 모양의 디딤판 바로 위에 바위 부스러진 곳이 보인다. 그곳은 동전만한 크기로 오목하게 패어 있다. 이번에는 손을 확보할 부분들을 조사한다. 역시 왼쪽에 머리 부스럼처럼 오톨도톨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왼손의 손톱 끝으로 그것을 긁어당긴다. 당긴다기보다는 차라리 더듬어서, 두 발이 디딘 바위 비탈의 부담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그것은 만질 수밖에 없는 조그만 부분이었는데도 손톱들이 긁어쥐고 있다. 오른손을 거꾸로 해서 손바닥으로 바위를 단단히 짚는다. 발을 끌어다 동전만한 오목한 부분에 올려놓는다. 구두 끝으로 그곳을 밀면서 궁둥이를 뒤로 든다. 비탈진 바위 위에 허리를 구부리고 선다. 다시 다음 번에 잡아야 할 곳을 찾아본다. 손가락들이 바위 표면을 더듬어나가다가, 어느 부분에 걸린다. 거기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또다른 부분을 찾아 기어다닌다. 그런 부분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위 표면은 어느 곳이나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 손가락은 쉽게 그곳을 찾아낸다. 손가락으로 그런 부분을 찾고 나면, 다시 발이 올라온다. 머리 위에 눈에 보이는 홀드라도 찾아내면, 길이 약간 비뚤어져나갈지라도 그곳을 향해 올라간다. 가랑이 사이로 영훈이가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그의 가랑이 사이에 꽁지처럼 자일이 길게 늘어져 있고, 그 뒤에 인섭이, 다음에 기욱이가 있다. 지금 그가 찾고 있는 부분이 곧 나의 확보물이며, 내가 딛는 한발이 그의 전진이다. 절벽 측면으로 바람이 몰아쳐온다. 또 방해물이 등장한 것이다. 몸이 균형을 잃기 쉽다. 단추를 위까지 잠그지 않았던 상의가 등뒤로 부풀어올라 펄럭인다. 우묵한 바위에 두 발을 짚고, 허리를 굽혀 손끝으로 바위의 표출된 부분들을 긁으며 위로 조금씩 이동해간다. 나는 지금 평지를 개처럼 네 발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은 벽처럼 내 뒤에 펼쳐져 있다. 바위가 뒤로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뭔가, 바위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못구멍만한 틈에 앉은 모래알이다. 그것도 뒤로 밀려나간다. 발은 지금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두 손은 벌어졌다: 모아졌다 하면서 바위벽 위를 헤매고 있다. 밑을 보니까, 우리 넷은 완전히 한몸이 되어 있다. 전부 엎드려서 무엇인지를 집중해서 찾고 있는 모습이다. 허기진 네 마리의 짐승이 먹을 것을 줍는 광경 같기도 하다. 가끔 짤막한 말이 오고 간다.
“잠깐 서.”
“뒷발에 확보할 물건이 보이냐?”
“조금 왼쪽 위에.”
“자일 좀 늦춰.”
“홀드 바로 위에 물때 있다.”
“발 뒤꿈치에도, 이끼 조심해””
“빨리 홀드 확보해.”
“천천히.”
이것이 말일까? 이것은 동작이다. 무의미하던 언어가 작업을 통해서 동작화한 것이다. 만약, 이런 말에 생각할 톰이라도 생긴다면, 그것은 떨어진 다음일 것이다.
이끼의 숲이 내 손끝에 다가오기 시작한다. 발을 살핀다. 배가 암초를 피해 항구로 들어오듯, 두 발이 이끼들을 피하며 오른쪽, 왼쪽으로 짚어 올라온다. 드디어 무성한 이끼의 숲이다: 나는 이제 완전히 길을 잃었다. 발밑을 더듬는다. 확보할 물건이 없다. 다만, 한손에 부스럼 같은 바위 돌기를 손톱으로 긁어쥐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물러설 도리는 없다. 다리의 바짓자락 주머니에 끼워진 등산 나이프를 뽑는다. 그 사이 최소한의 안전을 위해서 한손 손톱으로 바위 부스럼을 꼭 긁어쥔다. 나이프로 이끼를 긁어내기 시작한다. 이끼가 떨어져나가면 연둣빛 부분이 나타난다. 다시 그것을 긁어내면 흰빛 도는 축축한 바위가 나타난다. 그곳을 입바람으로 말끔히 불어댄다. 이끼가 자랐던 곳은 오목해서 확보하기가 쉽다. 그곳에 한쪽 발을 올려놓고, 다시 다음 곳을 긁어낸다. 드디어 길을 발견했다! 이끼가 벗겨진 한 끝에 바위의 갈라진 틈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을 찾아가면 하켄이 들어가거나 혹은 손가락을 넣을 만큼의 넓은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위틈을 따라서 긁어나간다. 뒷자일이 팽팽하다. 가랑이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영훈이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인섭이까지도 꼼짝 않고 기욱이 쪽만 살피고 있다. 기욱이는 두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뭔가 잡히는 게 없는가 해서 찾는 중이었다. 영훈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들고 내게 속삭인다.
“기욱이가 물때에 걸렸어.”
나는 그때, 수없이 두 손으로 바위를 굵었다. 내 확보할 곳이라곤 바위 부스럼밖에 없는 줄을 알면서도. 그러나 결정적인 때는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나는 기욱이가 듣도록 크게 말했다.
“발을 옮겨봐.”
물때를 디딘 발을 움직인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인 줄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런 때에는 선두도 라스트도 포기하고 확보할 하켄을 박는 것이다. 그러나 연속등반의 경우에 한사람의 몸무게는 다섯도 감당을 못한다. 기욱이의 느린 말소리가 들려왔다.
“백 코스를 하겠다.”
나와 영훈이는 잠깐 얼굴을 마주보았다. 지금 이곳은 전면이다. 여기서 백 코스하는 길은 몸을 굴리는 도리밖에 없다. 여기서 몸을 굴리면 틀림없이 직선 추락할 것이다. 그런데 기욱이는 측면의 테라스 쪽으로 떨어질 것을 믿는 모양이다. 우리들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를 말릴 강렬한 힘이 사라져 있었다. 왜! 그것은 ‘사분의 일’ 이었기 때문이다. 기욱이가 엎드린 채 한손으로 배 옆에 매어진 자일의 매듭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좀더 애써봐.”
“백 코스.”
그는 자일을 풀고, 우리에게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잠시 꼼짝 않고 망설이더니 자유로운 한쪽 발을 옆으로 벌려 디뎠다. 그는 머리를 돌려 왼쪽 테라스 편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넓은 바위가 믿음직하게 절벽 사이에 얹혀 있다. 기욱이가 어깨를 아래위로 조금씩 흔들었다.
“간다.”
“……”
우리는 그 말 속에 테라스와 절벽 밑이 둘 다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의 불규칙한 숨소리가 들려올 뿐이다. 그는 친구들의 ‘이야기’ 속으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
갑자기, 기욱이의 몸이 펄떡 솟는다.
미끄러지며 몇걸음 뛴다.
그의 몸이 옆으로 넘어진다.
몸의 방향이 바뀐다.
바위를 벗어난다.
허공, 허공.
왼쪽이다! 그의 몸이 고무공 튀듯 테라스 위에 뒹굴었다. 그가 뒤틀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떠냐?”
“괜찮아. 몸을 움직일 수가 없군.”
바위 위에서 우리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모두들 그를 떨어져가게 했던 무엇인가가 제 마음속에 숨어 있었던 것 같았고, 그 때문에 부끄러웠던 것이다.
“내일까지 기다리겠다.”
기욱이가 말했다. 날씨도 괜찮으니까 노숙하기에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그를 다시 구조해서 데려가려면 시간이 늦었다. 자, 낙오자를 위해서 팀의 전원이 등반을 중지할 수는 없다. 내일 아침에 다른 팀과 길 안내 등반을 할 예정이니까, 기욱이는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영훈이가 외친다.
“밤을 견딜 수 있겠니, 아니면 야간 구조대를 보내지.”
“아, 필요없다. 쌕이나 던져줘.”
인섭이가 쌕을 풀어서 왼쪽 측면으로 던졌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섭이가 말했다.
“그 안에 비상식량하구 우의와 윈드 자켓이 있다.”
“고마워. 낼 아침에 보자. 화이팅 메아리!”
“메아리.”
“메아리.”
작별의 형식이 끝났다. 나는 다시 나이프로 이끼를 벗겨나가기 시작한다. 발견했던 바위틈을 따라서 자꾸 벗겨나간다. 틀림없이 바위 틈이 넓은 곳이 나타난다. 나이프를 바짓자락에다 꽂아넣는다. 허리에서 해머와 하켄을 빼어든다. 바위틈이 넓어서 반쯤은 한손으로 꽂을 수가 있다. 해머로 가볍게 두드려 완전히 박는다. 카라비너를 끼우고 거기에 본 자일과 보조 자일을 건다. 보조 자일은 내 몸을 확보시켜주고, 본 자일은 앵커에 필요하다. 나는 자일을 당겨올리기 시작한다. 영훈과 인섭이는 내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가까이 기어올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확보할 자리를 넘겨주고 다시 출발한다. 영훈은 자기 몸에 맸던 자일을 풀어 하켄에 걸고 조금씩 풀어주고 있다. 발끝을 세우고 걸어올라간다. 마른 바위였기 때문에 안전하다. 불쑥 튀어나온 바위 등성이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발을 모으고 돌아가니까 가운데에 홀드가 보인다. 발을 내밀어 전진한 뒤 읜손으로 홀드를 잡고 몸을 끈다. 바위틈이 입을 벌리고 내가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몸을 바위틈 쪽으로 숙이면서 뛰어든다. 얼굴과 손이 긁혔다. 두 다리는 뒤의 바위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몸을 안으로 더 들여밀고 천천히 일어난다. 손수건을 꺼내어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찍어낸다. 급경사로 굽이치며 뻗어내려간 바위 줄기들을 내려다보았다. 절벽 옆을 스치며, 솔개가 날개를 접고 재빠르게 밑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외로운 낙오자인 기욱이를 생각했다. 희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자기의 위험을 혼자만이 해결하기 위해서 동료들에게서 스스로 떨어져나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훌륭했다. 안락한 때에 위험스럽던 날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면 진지하고 충실하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남의 피값으로 살고 있다는 것은, 또 우리가 그런 행위들을 자기의 안락을 위해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참지 못할 일인가. 상수리봉 전면에서 첫눈을 맞이하던 날이 생각났다.
온 하늘 위에 구름이 층을 이루어 쌓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오르내린 구름의 물결.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자 그것들은 산산이 부서지면서 눈보라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정상에 부딪쳐 갈라지면서 우리의 측면으로 불어왔다. 양배추의 잎사귀가 벗겨지듯 한꺼풀 구름이 밀려가면, 또다른 충의 시껴먼 구름이 나타났다. 눈송이들이 볼을 때리고, 귓구멍으로 막 파고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혁, 헉, 막혀버렸다. 눈은 바위에 떨어지고 이끼들을 적셔놓기 시작했다. 뒤에서 택이의 숨소리가 보다 가깝게 들려왔다. 나는 홀드를 바꿔 잡았다. 내 숨소리는 상대방의 것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귀가 아렸다. 지금 내게 소원이 있다면, 콧등과 귀를 만져보고 싶은 것이다. 꼭 한번만 옷소매로 감싸고 싶었다. 눈송이들이 바위에 앉았다가, 바람에 불려 계곡 사이로 몰려 지나간다. 발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홀드를 손안에 완전히 확보했다. 갑자기 내 몸이 아래로 바짝 당겨졌다. 홀드를 잡은 손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내 다리 사이로 팽팽히 당겨진 자일이 보이고, 그 끝에 택이가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택이는 밑에서 바위를 필사적으로 긁어대고 있었다. 내 몸이 점점 균형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다.
“문제없다. 잡고 올라와봐.”
나는 숨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이제는 별 도리가 없는 짓이라는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눈! 눈은 큰 송이를 이루어 택의 곱술머리털 위에, 어깨 위에 자꾸 내려앉았다. 택이는 몇번 더 줄을 잡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의 두 발은 같은 자리를 긁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내 몸이 밑으로 늘어지면서 발이 주욱 미끄러져나갔다. 홀드를 잡고 있는 양손에 두 사람의 몸이 함께 매달려 있었다. 둘의 몸무게를 지탱하기가 차츰 힘에 겨웠다. 택이는 밑에서 자꾸 허덕였다.
“좀더 힘을!”
내 목소리는 힘을 쓰느라고 꽉 죄어져서 더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나는 홀드 뒤편에 물자리가 생긴 바위 구멍을 처음 발견했다. 구멍의 수를 헤아렸다. 몇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꾸 처음부터 다시 세었다. 아무리 세어보아도 구멍의 수는 알 수 없었다.
택이 지친 목소리로 물어왔다.
“내 위에 확보할 곳이…… 있냐?”
“몰라. 힘을 좀 써봐.”
손아귀의 힘이 점점 빠져가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 눈이 내려앉아서 내 손은 전혀 감각이 없어져버렸다.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았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 손이 저절로 지쳐서 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아직은 선명한 의식으로 맞서보자. 그러나 언제 그 찰나가 올 것이냐. 눈 내리는 거리, 은행나무가 있는 도서관 뜨락, 땅콩을 우물거리며 지나던 고궁 옆 담길, 눈싸움, 눈 내리는 하늘은 모두 똑같아 보인다. 택이의 몸이 축 늘어지면서부터는 힘이 몹시 들었다. 나는 택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도 자일에 온몸이 매달린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보라가 그의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내 두 손목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과 내 눈이 오랫동안 그렇게 마주보고 있었던 것 같다. 택이의 입가로 웃음기가 잠깐 어렴풋이 지나가는 듯했다. 택이의 눈빛이 점점 흐릿해졌다. 낯선 시선이었다. 둘의 눈길이 그에 의해서 차츰 분리되고 있음을 느꼈다.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눈송이의 떼가 춤추듯 한없이 날리고 있었다. 마치 바위 주변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흰나비가 태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밑에서 육중한 느낌의 자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내 하반신이 흔들렸다. 옷의 실밥이 뜯어지는 듯한 소리, 투두둑 하는 소리가 몇번 들려왔다.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바위를 스치는 둔한 소리가 들렸다. 다음엔 내 몸이 날개라도 돋친 듯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내 숨소리 외에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머릿속에서 들리던 동맥의 뛰는 소리도 그쳤다. 밑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공과 끝없이 뻗어나간 절벽이 보일 뿐이었다. 자일은 가볍게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짧아진 자일의 끝. 그때, 새빨간 털모자가 허공으로 우쭐우쭐 춤추며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모자는 절벽 중간의 작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바람이 좀 더 세차게 불어왔다. 한들거리던 모자는 또 허공으로, 많은 눈송이에 섞여 뱅글뱅글 돌면서 날아내려갔다.
자일을 굳게 쥐고 일어섰다. 영훈과 인섭이를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그들은 쉽게 바위를 걸어올라왔다. 바위 등성이를 돌아, 내가 있는 바위틈으로 뛰어들어왔다. 우리는 셋이 모여서 다음 길로 들어섰다. 손을 뻗치면 닿을 만한 곳에 우묵한 부분이 있고, 거기서부터 바위틈이 연이어져 있었다. 손을 뻗어 우묵한 부분을 잡는다. 몸을 날려 발을 올리면서 바위를 짚는다. 몸을 일으킨다. 좁은 틈에 발을 꽉 틀어박고 한손으로 위를 더듬어 홀드를 골라잡은 뒤, 오른발을 올려 바위틈에 끼우고 위로 일어선다. 그런 자세로 자꾸 올라간다. 바위틈이 끝나는 곳까지 뫘다. 마지막 클랙의 길이 시작되고 있다. 절벽이 뻗어올라간 끝이 정상이었다. 우리는 정상 한 모퉁이에 개미클럽의 검정 페넌트가 바람을 한껏 받고 펄럭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지금 정상 위에서 무사한 것이다.
“아하――아.”
인섭이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구호를 보냈다. 정상의 절벽 끝으로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거기 어디?”
“여기 메아리. 어떻게 된 거냐?”
“개척 코스를 끝냈는데, 부상자가 생겼어. 좀 늦었는데.”
“우리두 낙오자 한명이 생겼어.”
“운반 준비는?”
영훈이가 쎄미륙에서 줄사다리와 휴대용 담가를 꺼내 보여주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등반 부탁한다. 우린 꼭 열두 시간 기다렸어.”
그들은 절벽 끝에서 자일을 풀어내려주기 시작했다. 우리를 달아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올라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한쪽으로 물러서서 바위틈에 피톤을 박기 시작했다. 줄을 걸고 내려가기 위해서다. 영훈은 절벽 밑에서 자일을 잡고 있다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그가 내 어깨를 치며 주의를 준다.
“여기서 끝장이야. 피톤은 왜 박어.”
“내려가봐야지.”
나는 웃으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나를 보다가 아 참, 하고 짧은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기욱이.”
하고 나서 인섭이는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톱은 네 것이었지만, 기욱이는…… 내가 간다.”
“정말이냐?”
“내일 만나자. 늦으면 내려가서 그냥 안 둘 테니깐.”
절벽 위에서 자일을 내려주고 있던 개미 한사람이 외쳤다.
“동벽으로 내려갈 텐데, 숲이 깊다구. 해가 지면 하산하기 힘들어.”
“알았어.”
나는 영훈의 어깨를 툭 치고 나서 자일을 허리에 감았다. 그러곤 소리쳤다.
"앵커 바짝.”
“앵커어 바짝.”
높은 산울림과 함께 내 몸이 떴다. 바위 절벽이 눈앞을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영훈이가 힘차게 후려갈기기 시작한 해머소리가 골짜기에 울려퍼졌다. 내 마음속에서는 어둠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생겨나고 있었다.
〔사상계 1962. 11: 객지, 창작과비평사 1974〕
2016년 7월 11일 읽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