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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문화유산 스크랩 충주시 용산동 유래(용정과 용산)
연바다 추천 0 조회 14 11.03.21 15: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충주시 용산동에는 거룡승천제란 행사가 매년 정월 대보름에 거행된다.

용산동과 거룡승천제는 용산동에 있었던 용산과 용정에서 유래하는데,

그 유래와 지명의 변천에 따른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자료사진-용정시 거룡우호공원 용두레 우물)

 

 

 

 

 

충주시 용산동은 용산과 용정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다.

충주시 용산동의 용정은 용산동 야산 주변에 마을을 형성하는 본거지이며, 마을의 성지로 추정된다.

그러나, 용산과 용정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수난을 겪으며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전매청(현 담배인삼공사)과 담배원료공장이 들어서면서 용산과 용정 그리고 석탑과 석탑천이 사라졌고,

용산과 용정 일대의 도시계획으로 석탑천이 복개되고, 전매청 부지도 아파트가 건설되어 흔적조차 없다.

하지만, 용정과 거림이라는 도로명과 용산동 유래비와 거룡승천제란 마을의 동제(洞祭)가 그를 대신하고,

충주공고 사거리에 있는 동촌마을의 공동우물인 "두레박샘"이 복원되어 초라하게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두레박"과 "용두레"는 마을공동체인 "두레"에서 유래하는데, 사조직인 "계"와는 다른 개념이다.

동촌의 박샘도 주민들의 일부는 "박씨샘"이라고도 하지만, 마을공동의 두레박샘을 이르는 말이다. 

 

대학시절에 자주 부르던 "선구자" 란 노래에는  연변조선자치주 용정시의 "용두레 우물"이 나온다. 

또한 만주벌판으로 쫏겨난 민족투사들이  비암산 주변에 모여 조국의 독립운동을 했던 용두레 우물은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있는 마을의 민속신앙인 동제와 정월 대보름 행사 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샘은 물이 땅에서 솟아 나오는 곳이고, 우물은 물을 긷기 위하여 땅을 파서 지하수를 괴게 한 시설이다.

용(湧)이란 물 또는 물이 솟아 오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을 관장하는 신이 용신(龍神)으로 바뀌면서

샘이나 우물이 용우물 또는 용정으로 변천되고, 자연발생적으로 물이 솟아오르는 곳에 형성된 옹달샘

또는 옷샘과는 달리 마을공동으로 만들어진 두레박샘과 용두레 우물은 마을의 수호신처럼 모셔진다.

마을의 수호신은 나무와 바위, 우물. 장승. 솟대, 석탑 등 지방과 마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마을 공동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물이었다. 전란이나 전염병 등으로 마을을 폐할 때에도 

우물을 파괴하거나 오염시켜 삶의 터전을 흉지로 만드는 만행이 벌어진다.

 

조선 고종 때 제작된 1872년 고지도에는 호암천은 사천, 교현천은 염해천으로 나타난다.

그 뿐만 아니라, 용산동의 유래에는 고구려가 충주를 점령하고 혈을 찔렀다는 이야기와

용산의 왕기를 누르기 위해 석탑을 세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지렁이(견훤)을 죽이기 위해

소금을 뿌렸다는 염바다못과 염바다들. 사천개와 사천성에 대한 민담설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우물과 석탑과 소금은 민간신앙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우물과 석탑은 마을의

민속행사와 제가 이루어지는 곳이고, 소금은 그 주변에 부정한 것들을 없애주는 상징이다.

이러한 민담설화는 물이 솟는 샘에서 시작하여 용(龍)이 승천하는 용정으로 변하다가

뱀(巳) 또는 죽음(死)으로 지세가 쇄락하여 사천(沙川)으로 변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말해 용산과 용정에 따른 지명은 충주의 흥망성쇠에 따라 변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산과 용정은 아주 작은 동산과 작은 우물일 뿐이다, 용산의 석탑에서 유래한 석탑천도

하천이라기 보다는 실개천(도랑)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용산과 용정은 옛고을 충주의

중심지이며 성지인 소도처럼 여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읍성인 충주성도

용산 주변의 촌락을 피하여 교현천과 호암천이 만나는 들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충주시는 충주성(현 관아공원)을 중심으로 재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충주의  옛 봉현성지는 어디에 였을까 ? 하는 논쟁에서 용산(龍山)과 주봉(朱峰)이 등장한다.

삼국시대의 가금의 국원성(중원경)에서 고려 시대 이후에 형성된 충주성(예성)의 옛터는

고구려의 사열이현과 신라의 사천성에서 시작한 것은 아닐까 ? 하는 추정을 할 수 있다.

 

용산은 남산(금봉산)의 마지막 봉우리이고, 주봉은 계명산(오동산)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내려 앉는다. 또한 그 주변에는 청룡.백호.주작.현무가 둘러선 것처럼

충주의 중심에 용산과 용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용산과 용정은 사라졌다.

충주시의 발원지는 용정이지만, 충주천의 발원지는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발치봉(옛 성사산)

에서 시작하여 충주시 직동의 발치재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용산동을 지나서 남한강으로 흐른다.

발치봉(發峙峰)의 옛 지명인 성사산(聖寺山)은 현재의 한자표기와 달리 대림산성과 사천(沙川)에서

유래한 성사산(城沙山)으로 추정되며, 발치봉과 발치재는 충주역사의 시작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충주에서 문경과 단양을 잇는 영남대로와 봉화대로는 발치재를 넘어 도선동에서 한수의 황강역으로

이어지는 길로 하늘재와 더불어 처음으로 개척된 고갯길로 충청과 영남을 잇는 지름길로 알려진다.

최근에는 발치재에 재오개 도수로 터널을 만들어 충주댐의 남한강물을 충주천으로 흘려보내는

관계수로공사가 완료되어, 충주천 정비사업과 더불어 죽어가던 충주천을 되살리고자 하고 있다.

지난 날 바보같은 지방수령들이 용산과 용정을 파헤치고, 충주천변에 시장과 도로와 주차장들을

만들은 잘못된 행정 때문에 이제는 엄청난 사업비로 다시 복원해야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답사한 동촌의 박샘은 도심 속에서 볼 수 없는 우물이자 빨래터이다.

상수도와 세탁기가 대신하는 현실에서 마을의 공동우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용산과 용정이 사라진 곳에서 거룡승천제를 올리면 사라진 용이 돌아 오겠는가 ?

하지만,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의 단합과 번영을 기리는 마음은 어느 시대나 변하질 않는다.

1970녀대 까지 아이들이 미역을 감고 물고기를 잡던 충주천.

충주천이 정비되어 충주천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용산에서 사라진 용 뿐만 아니라, 봉황까지도 다시 날아 오르지 않을까 ?

 

 

용산동 사무소의 용산 유래비

 

용산동 사무소의 용산 유래비

 

용산동 사무소의 용산 유래비문

 

동촌의 박샘골목 - 옛날집과 박샘방아간

 

박샘의 정경

 

박샘의 빨래터

 

박샘의 빨래터

 

박샘의 빨래터

 

박샘의 빨래터

 

(참고자료)

충주천(디지털 충주문화대전에서)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직동에 있는 남산 등에서 발원하여 시가지의 중심부를 지나 탄금대 서쪽에서 달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명칭유래] 충주시가의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이어서 충주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환경] 길이 10.50㎞이며, 교현천과 함께 충주시가지를 흐르는 중요한 하천이다. 충주분지를 남동~북서로 관통하며 흐르면서 구릉대와 달천평야 곳곳에 충적지를 만들고 있다. 상류는 남산대림산 일대로서 미립편마암(계명산층)으로 구성된 산지지역이며, 중류부터는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흑운모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구릉대를 지난다. 화강암 구릉에서는 심층풍화 과정에서 생성된 모래가 있지만, 상류 편마암 산지에서 공급된 자갈이 유입되면서 하상에는 곳곳에 자갈이 혼재되어 있다.

 

용산의 전설

남산에서 맥을 받았다고 하는 야산소릉이 있는 명산이었다.

산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인데 (구) 담배인삼공사 충주지점이 서 있는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며,

이 근방을 용산이라 부르고 충주시의 발원지로 알려져있다. 1962년 지현동, 문화동이 분동되고

지금의 용산동에 이른다. 『삼국시대에는 야산소릉 산상에 작은 못이 있었는데 이 못에서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여 '용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용산마루에 있는

작은 못은 규모는 작았지만 너무 깊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용이 살고 있다고

전해져 신비롭게 여겼고, 용이 승천할 경우 마을이 번창하고 큰 인물이 탄생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이 못을 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못가에 짙은 안개가 끼면서 흰 구름이 하늘로

이어지고 천둥 번개와 함께 회오리 바람이 일더니 잠시 후 조용해지고 구름이 걷히었다.

용이 승천한 것이다. 못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용이 무사히 승천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더욱 더 그 못에 치성을 다 하였다. 그 후 충주고을이 고구려 치하로 들어간 일이 있었는데

고구려에서는 이름있는 곳곳에 돌아다니며 명기있는 곳에 혈을 찔렀다.
어떤 풍수지리학자가 이 용산을 보고 이 마을에 왕이 탄생할 기운이 있다고 하여 이를 누르는 뜻에서

못 옆에다 석탑을 세워 지맥을 눌렀다고 한다. 어떤 풍수지리학자가 이 용산을 보고 이 마을에 왕이

탄생할 기운이 있다고 하여 이를 누르는 뜻에서 못 옆에다 석탑을 세워 지맥을 눌렀다고 한다.

 

한자사전(다음백과사전) 

 

물 솟을 용
물이 솟다, 솟구치다 (땅에서 사물이)나오다, 솟아나다 떠오르다, 나타나다 (물가가)오르다 성하게 일다 토하다(吐--)
12    [등급]상용  [부수]삼수변部  [자원]형성문자
예문> 思如湧泉(사여용천) 湧起(용기) 洶湧(흉용) 湧昇(용승) 湧昇流(용승류)
국어사전 
  • 용솟음치다
    [湧솟음치다][동사] 
    • 1 물 따위가 매우 세찬 기세로 위로 나오다.
    • 2 힘이나 기세 따위가 매우 세차게 북받쳐 오르거나 급히 솟아오르다.
  • 용솟음
    [湧솟음][명사] 
    • 1 물 따위가 세찬 기세로 위로 나옴.
    • 2 힘이나 기세 따위가 세차게 북받쳐 오르거나 급히 솟아오름. 또는 그런 기세.
    • 3 농악 상모놀이 동작의 하나. 부포를 꼿꼿이 세우고 사뿐사뿐 뛰어 깃털이 아래위로 펄럭거리게 한다.
  • 용솟다
    [湧솟다][동사] 같은 말: 용솟음하다
활용 고사성어, 단어
(사여용천) 사상()이 솟아 나오는 샘물처럼 그치지 아니함
(용기) 물이 솟아남
(흉용) 물결이 매우 세차게 일어남, 또는 물이 힘차게 솟아 남
(용승) 200~300m의 중층()의 찬 바닷물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상승하여 해면()으로 솟아오르는 현상(). 이 때문에 용승이 있는 해면()은 둘레보다 온도()가 낮아짐
(용승류) 용승 현상()으로, 수직()으로 상승하는 해류
(수용산출) (시문()을 짓는 데)재주가 샘솟듯 풍부()하여 빨리 이루어 놓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용천) 물이 솟아나오는 샘
(용출) (액체()가)솟아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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