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행복(2)
로마서 5:5~11
찬송가 288자(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93장(주의 사랑 비칠 때에)
어제 아침에 로마서 5장 1절로부터 4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의 행복에 대하여 네 가지를 함께 묵상한 바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과의 화평,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서서 은혜 중에 머무는 은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행복을 가진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어서 5절 이하로부터 11절까지는 다음 네 가지의 행복을 덧붙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지는 행복을 입게 됩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환난과 핍박 속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성도들에게는 주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믿는 성도에게 보내주신 성령께서 그 사람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하여 성령께서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극히 풍성하게 조건없이 무제한적으로 넘치게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부모님이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것 이상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심령 속에 그러한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에 우리는 환난을 만나고 핍박을 겪고 수많은 손해와 순교를 당하는 지경에 이를지라도 이 사랑에 감격과 확신 속에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충만해질수록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높고 영원하고 풍성한가를 더욱 더 깨달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의 힘 때문에 삶의 어떤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용기 백배하여 한발 한발 기쁨 속에서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된 증거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일입니다.
6절에서 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절 상반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여기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을 때의 우리의 상태가 네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않을 때요 또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요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상태에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원하여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제법 영적으로 강건하여 주의 계명을 지키려고 열심일 때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가 지극히 연약하여 지극히 작은 주의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입니다. 또한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불경건한 때입니다. 나아가 죄악에 아주 익숙해진 삶을 살아갈 때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개심이 뼈속까지 스며들어 하나님의 원수와 같은 마음 상태일 때입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그런 우리 대신에 진노의 쓴 잔을 남김없이 들어마시게 하셨던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도 대신 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을 위하여 용감히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악하고 더러운 죄 구덩이 속에서 살던 자를 살린다고 자기의 외아들을 그 대신 사형장에 내보낼 부모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행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실로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누군가 자기처럼 악하고 더러운 자를 하나님께서 정말 사랑하신다는 것이 안 믿어진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골고다 언덕에 매달려 피 흘려 죽어가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라고 말해주십시오. 그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로 우리 각 사람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시는가를 진실하게 보여준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하고 영원한 증거입니다.
셋째로, 장래의 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9절과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현재 우리가 받았으니, 그렇다면 의롭게 해주시는 은혜를 주신 분이 어찌 심판 날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베풀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또한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다면 그의 부활로 말미암아 당연히 심판 날에 구원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여기서 구원이란 장래 심판날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가리킵니다. 장차 죄인들에게 노하시는 그 날에 의인들은 그 진노에서 벗어나게 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이 훗날 심판날에 확실하게 구원받아 영생과 영광에 들어갈 것에 대한 분명한 보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분명히 심판 날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받고 사랑과 평안 중에 그의 영광 중에 거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경배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서 ‘즐거워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헬라어 원문을 보면, ‘카우카오마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앞서 2절과 3절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말이기도 합니다. 이 단어 속에는 ‘떠벌이다, 뽐낸다, 즐거워하다, 자랑한다, 열광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다’는 이 문장은 유대인들이 가진 삶의 한 특징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2장 17절에서 이렇게 진술한 바 있습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점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하며 뻐기며 살았습니다. 세상의 강대한 제국들에게 짓밟혀도 곧 죽어도 자기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택하심을 입은 선민이라는 이 신분 의식을 가지고 버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 정체성을 어디 가든지 그들은 기억하며 잊지 않고 회당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안식일마다 모여 경배하곤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죽어도 나가서 뭘 사먹거나 여행하지 않고 조용히 율법을 읽으면서 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며 잡신을 섬기다가 지옥의 땔감이 될 것이라고 경멸하면서, 자기들의 종교적 신분을 뽐내곤 했습니다. 이러한 배타적 선민 의식은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피를 값주고서 모든 만민 가운데에서 죄인으로 죽어갈 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격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혜에 감격하며 이 사랑을 인하여 기쁨으로 경배하며 이 놀라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동일한 단어인 ‘카우카오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 말씀에서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며 고린도전서 1장 26절 이하에서 우리를 택하심을 보면 우리가 세상적으로 보면 자랑할 것이 전혀 없으니, 이것은 바로 오직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어주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고린도전서 1:31 말씀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 로마서 5:11 말씀에서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를 사랑하며 그를 자랑하며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의 근원으로 알고 이를 증거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 분명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듬뿍 빠져서 날마다 그를 인하여 행복해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랑에 빠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하고 넘치는 사랑을 깨닫게 되니 날마다 이 조건없는 사랑을 받은 자로서 늘 행복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확증된 사랑이 눈에 보이니 감격하며 살아갑니다. 장차 죽음을 맞이할 때, 종말 심판을 만날 때에도 우리는 진노로부터 구원받음이 확실하기에 기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날마다 기뻐하며 경배하며 그를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는 하나님께 푹 빠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바 이렇게 많고 풍성한 행복의 이유들이 있으니,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누리며 이를 자랑하고 장차 주님 만나서 완전한 행복, 영원한 행복과 영광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