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과 '관계'를 다독이다
神 받듦엔 격식 없고 貧者 품음엔 엄마 같으니…디자인 참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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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로이시오 가족센터 성당의 제단 |
신부님의 흔들의자에 앉았다.
짙은 밤색의 팔걸이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는 빛이 바랜 쿠션이 그대로 묶여 있다.
신부님의 체취가 느껴진다.
의자 앞 우물처럼 생긴 창으로 아래층 성당의 제단과 십자가가 내려다보인다.
거룩함에 닿고자 소망하는 자를 배려한 특별한 디자인이었다.
여기 알로이시오 몬시뇰을 체험하는 방에는
그의 오랜 손때가 묻은 손잡이 달린 냄비, 타자기, 책상과 의자, 침대 등이 함께 놓여 있다.
'소년의 집'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부산 서구 암남동 복지시설인 이곳은 (재)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헐벗고 가난한 나라 한국을 찾은 미국인 선교사제 알로이시오 몬시뇰이 1964년 창설한 이후
50여 년 동안 소리 없이 빈민구호와 의료·교육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뜻하지 않게 사회에서 소외되고 마음이 가난하게 된 이들이 건강하게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여기 '선한 사마리아인'의 공간에 최근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자자해 찾아가 보았다.
# 위압적이지 않은 알로이시오 가족센터
■ 보살핌의 커뮤니티 공간 '알로이시오 가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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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센터 전경 |
오랜만에 옛 고향을 방문한 부부는 숙소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알로이시오 가족센터' 로비에서 수녀님들과 한참 환담을 하고 있다.
현재 자기들이 사는 집보다 훨씬 더 예쁘게 바뀌었다며 시샘하듯 말하지만, 그 얼굴에는 고마운 마음이 역력해 보인다.
새롭게 변신한 공간에 예전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옛 추억이 되살아나도록 배려하였다.
로비의 바닥 재료가 그렇고, 예전 마룻바닥의 닳은 목재를 뜯어서
벽면 마감소재로 채택한 것도 디자이너의 센스다.
'가족센터'는 이곳 출신자들이 다시 방문하였을 때,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일종의 '친정집'인 셈이다. 건
물 입구는 시멘트를 걷어내어 텃밭으로 꾸며 놓았고, 따뜻한 컬러의 벽돌을 덧입은 건물 외부도 모처럼 친정을
찾은 가족을 환영한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문을 박차고 들어서면 엄마수녀님들이 두 팔 벌려 마중을 나온다.
집 모양으로 생긴 작은 카페 공간에서 수녀님이 내어준 맛 난 커피를 한잔 하며, 외떨어져 살아온
푸념들과 과거 신부님에게 혼나며 자랐던 추억 등의 갖가지 수다를 스스럼없이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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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센터 내 게스트룸 |
2층에는 하룻밤 묵을 수 있도록 화장실 딸린
게스트룸을 여럿 만들어 놓았다. 한식으로 꾸며진 방이 있는가 하면,
어릴 적 사용하던 침대를 일부러 갖다 놓아 확실한 추억 여행이 되도록
한 방도 있다.
타지에서 출발하여 밤늦게 도착하는 이들을 위해 별도의 동선(수녀원의
규율을 지키기 위해)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과 간이주방도 따로 만들어
두었다.
깨알 같은 엄마의 마음이 묻어난다.
여기저기 사려 깊은 공간의 다독임에 '잘 왔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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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로이시오 몬시뇰의 체험방 |
바뀐 공간 중 가장 압권은 성당이다.
슬래브를 철거하여 두 개층 높이로 만든 성당은 정갈하다.
천장 끝에서 반대쪽 벽면까지를 완만한 곡면으로 구성하고는, 제단
뒷벽을 따라 은은한 빛이 스며들게 하였다. 부드럽게 휘어진 새하얀 공간에 오로지 내걸린 십자가와 빛이 전부다.
하지만 그 자체로 그윽한 로고스다.
내밀한 신의 품이 느껴진다. 결코, 위압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은,
신 앞의 단독자로 그냥 온전히 나아가게 하는 공간이다.
수녀원으로 사용하는 3, 4층과 옥상 공간 역시 디자인이 아주 좋다.
옥상 슬래브를 일부 철거하여 천창으로 빛을 끌어들이고, 흰 콩자갈과 관엽식물이 자라는 중정도
새로이 마련하였다.
옥상에는 잔디마당과 박공형 목재 구조물이 연이어지는 명상의 길도 조성해 두었다.
가난한 이들의 엄마로 스스로를 채근하고 보살펴야 하는 수녀님들을 위한 배려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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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국마을 전경 |
# 공간활용의 마법 수국마을
■ 다독임의 거주공간 '수국마을'
가족센터에서 안내를 맡은 안셀리나 수녀님과 수국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 '기도 많이 하여라'라는 현판이 걸린 작은 경당엘 들렀다.
넓은 잔디마당을 앞에 두고 있는 유럽풍의 단출한 건물이다.
가로세로 4m가량의 작은 공간 안에는 제단과 십자가, 스미는 빛 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기도 소리만으로 공간을 가득 메우기에 적합한 크기이다.
이름도 예쁜 '수국마을'은 수국(樹國) 즉 '나무나라'라는 의미이다.
여덟 개의 동으로 나누어져 있는 각각의 집 앞에 사과, 자두, 대추, 모과, 감, 석류, 무화과, 매실 등의
과실수를 심어 놓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디귀한 나무와 같은 존재들이라고 하는
속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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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국마을 거실에서 부엌 쪽을 바라본 장면 |
기숙사형 공동생활을 하던 건물에서 여기 독립 주거형 공간으로 이주해
온 중고교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밝다.
주어진 자기만의 공간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다독여지고, 자부심이
그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식구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서로서로 의지하는 관계 회복과,
자립적 생활에 대한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붉은 벽돌 외장재에 박공지붕, 집 앞 나무 한 그루씩과
나무에 어울리는 컬러의 출입문. 영락없이 아담하게 잘 조성된 마을의
분위기이다.
아래위 동 사이의 넓은 길과 마당에서 아이들은 모여 놀고, 수다 떨고,
둘씩 셋씩 산책도 한다.
아이들이 가장 즐겨 모이는 마을 중앙의 덱 공간은 날렵한 목재 지붕으로 인해
마치 한옥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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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국마을 내 거실 |
집 내부는 더욱 흥미롭게 디자인되어 있다.
원래 땅이 가진 경사도를 그대로 활용하여 하나의 공간을 몇 개의 단이
생기도록 하였다.
바닥면이 뛰어올랐다(skip) 하여 건축용어로는
이것을 '스킵플로어(skip floor)'라 부른다.
현관에서 한 발 들어서면 부엌이 나오고 거기서 4~5단을 오르면
큰방이 있고, 반 층을 내려가면 박공 천장 아래 높은 층고를 가진 거실이다. 거실에서 다시 반 층 내려가면 중간 다락방이 나오고, 다시 반 층
아래에는 2~4명이 한 조로 생활하는 각자의 방이 나오는 독특한 구조이다.
거실의 흰 벽면은 빔프로젝터의 스크린이 되고, 내려오는 계단은 영화를 보는 좌석임과 동시에 그대로 단형
책장이 되어 준다.
과실수 문패에 어울리도록 한쪽 벽면에는 포인트 컬러를 적용하고, 또 남은 빈 벽에는 낙서가 가능한 대형 칠판과 게시판을 두어 식구들끼리의 표현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다락방에서 아래 개별 방과는 수직으로 서로 뚫려 있어 관계가 단절되지 않도록 하였다.
심지어 집과 집 사이 비밀의 책장을 밀면 옆집과도 바로 연결되도록 한 재미있는 디자인도 적용되어 있다.
공간으로 인해 마음과 관계가 위로받고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건축가의 애정이
어린 손길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선한 마음으로 땅을 한결 부드럽게
창립자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늘 "마음은 마음에 이야기한다"는 시편의 말씀을 즐기셨다 한다.
선한 마음으로 가꾼 밭에는 다시 선한 마음의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여문다.
여기서 자라고 영글어진 수천수만의 민들레 홀씨는 다시 사회 곳곳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알로이시오 신부님께 깊은 정신적, 영적 영향을 받았다는 아프리카 톤즈의 성자 이태석 신부도
그 '아름다운 열매' 중 하나이다.
공간을 더욱 따뜻하게 바꾸어 가고 있는 엄마수녀님들의 마음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편히 머물렀다 갈 수 있도록 낡은 친정집(가족센터)을 새로이 고치고, 십시일반 모은 퇴직금으로 세상 그 어떤 집보다 더 멋진 자립생활관(수국마을)을 만들어 주니
그 고마움은 마음으로 전달되고 다시 땅을 부드럽게 만든다.
마음이 회복되고 관계가 회복되니, 땅도 함께 기뻐한다.
이 마음에 동참하는 많은 독지가와 후원자들에 의해 따뜻함의 온기는 지금도 더욱 널리 번져가고 있다.
동명대 실내건축학과 교수 yein1@tu.ac.kr
알로이시오 가족센터 & 수국마을 | 위치 | 부산 서구 암남동 | 설계 | 오퍼스 건축사사무소+모노솜디자인 | 문의 | 051-250-5408 http://www.girlstown.or.kr | 방문 안내 | 가족센터 | 전시공간, 체험방, 성당, 게스트룸, 사랑방, 식당, 추모의벽, 경당은 예약 방문 | 수국마을 | 청소년들의 숙소공간인 관계로 반드시 수녀님과의 동행방문만 가능 | 재단산하 주변시설 | 모성원, 보육원(마리아꿈터), 생활관, 실내체육관, 알로이시오 기념병원, 알로이시오 힐링센터, 소년의집, 알로이시오 초등학교, 중학교, 전자기계고등학교 등 | 연계 투어 | 감천문화마을이 차로 2~3분 거리 /이태석 생가는 5분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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