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雨期)의 끝자락인 27일. 흩날리는 빗줄기를 뚫고 서울~문산간 ‘자유로’로 차를 몰아 한강과 임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경기 파주 곡릉천 다리 위에 멈춰섰다. 시속 100㎞가 넘는 속력으로 질주하는 차들의 소음에 아랑곳 않고 갯벌 모래톱 위에는 검고 길쭉한 부리를 가진 새 한 마리가 흰 날개를 털며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700마리에 불과, 멸종위기에 놓인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였다. 갯벌 위 초소 위에 나란히 앉아있는 가마우지, 낯선 탐조객들 틈바구니에서 무심하게 종종걸음을 치는 흰뺨 검둥오리와 갈매기에 이르기까지, 새들은 점유권을 확인이라도 하듯 비상과 착륙을 반복했다.
철새의 천국, 한강하구
한강하구는 금강, 낙동강, 영산강 등 주요 하천들과는 달리 둑으로 막혀 있지 않아 남한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구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오랜 기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 밤섬에서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까지는 철새들의 천국이다.
천수만 간척지, 새만금, 아산만 등과 함께 손꼽히는 철새도래지인 한강하구는 철새 개체수가 엄청난 것이 특징이다. 녹색연합 조사에 따르면 지난 겨울 김포대교~일산대교 예정지의 숲과 갯벌에는 큰기러기와 쇠기러기가 1만5,000마리, 굉이갈매기 5,000마리 등 모두 64종 6만7,000여 마리의 철새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1997년 한강의 21번째 다리인 김포대교가 완공되면서 하구쪽으로 떠밀려 내려온 이들의 서식지가 다시 위기에 봉착하고있다. 지난 23일 경기 김포시 걸포동과 고양시 송포동을 연결하는 폭 6차선 1.8㎞의 일산대교의 기공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로 장흥IC에서 일산대교가 건설되는 이산포IC까지의 지역은 철새들에게는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곳이다.
이산포 IC부근 돌섬 주변에 형성된 갯벌과 이곳에서 생성된 매자기, 세모고랭이 등은 새들에게 영양을 공급해왔다. 저어새, 흑두루미, 해오라기, 개리 등의 희귀조들이 서식하고 고라니, 멧돼지, 너구리 등이 뛰어 노는 이곳은 철새도래지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더 큰 문제는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가 이곳에서 더 이상 월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국내에서는 재두루미가 철원과 이곳에서 월동해왔으나 교각 쪽으로 접근하지 않는 재두루미의 특성상 더 이상 이곳에서 서식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계속되는 개발
한강하구의 개발은 일산대교 건설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서북부 광역간선도로망개선책’에 따라 일산대교 건설을 신호탄으로 제2자유로 (2008년), 고양~인천공항 도로, 제2외곽순환도로(2013년) 등이 차례차례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반면 한강하구를 지키려는 노력은 시늉에 그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간신히 통과한 일산대교의 경우 ▦겨울철새 도래시기인 11월~3월에는 공사를 최소화 ▦철새들의 비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교량 높이를 25㎙ 이하로 제한 ▦외부로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가로등 조명에 갓 설치 ▦재두루미의 잠자리와 먹이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 장항 IC 부근의 농경지 추가 확보 ▦겨울철 먹이주기 등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리 건설 등으로 인한 교통량의 증가는 결국 한강하구 철새도래지의 축소,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환경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특히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군부대 철책선 제거가 이뤄질 경우 철새 도래지의 급속한 파괴는 불 보듯 뻔하다.
에코텍환경생태연구회 이기섭 박사는 “김포대교 건설 이후 한강 하구 생태계가 김포대교 아래쪽으로 이동한 것처럼 일산대교 건설 이후에도 생태계가 더욱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며 “더욱이 일산대교 아래 파주ㆍ문산지역은 겨울철에 기온이 너무 낮아 결빙되기 때문에 철새들의 월동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