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正見] (217) 혹시 종교에 갇혀 있는가?
'생각'속에 사는 습관에서 벗어나라
진정으로 현명하다면 자유를 빼앗는 종교라는 구속의 요람과 당장 자유로우라는 성인의 가르침을 잘 구별해야한다. /셔터스톡
삶에 의미와 목적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거나 찾는다면 그대는 벌써 갓난아기의 눈망울 같은 순수한 신의 품을 떠나 생각 속에서만 분리된 개체(에고)로서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대에겐 나(아상)란 개체성을 자각하는 고독한 분리감과 그를 해소하기위해 찾거나 해야 할 일이 생겨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천국과 열반 같은 것을 목적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런 것에 집착하고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한 그대는 꽃으로 치장된 생각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대는 종교라는 정신적 구조물에 갇힌 것이다. 물론 그런 구조는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준다. 하지만 그 대신 그대는 진정한 자유와 인생을 통째로 뺏긴 것이다.
그대는 태초의 자연을 마음껏 뛰놀던 야생마 같은 영혼이었지만 어느 순간 무엇에 사로잡혀 부자유한 우리 안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아편처럼 계속 맞아야하며 계속 접해야하고 요구되는 무언가를 실행하고 이탈하면 안 된다고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것을 계속 맞는 한 그대는 편안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그것 없는 그대는 홀로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라면 결국 그대는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았는가?
예수, 석가의 고매하신 가르침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핵심은 이것이다. 그들은 자유로 가는 진실만을 가르쳤지만 그들을 따르는 후대의 사람들은 종교란 집단과 규율을 만들어 당신을 구속하려한다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진정 현명하다면 자유를 빼앗는 종교라는 구속의 요람과 당장 자유로우라는 성인의 가르침을 잘 구별해야한다.
관점을 바꾸어 보자. 신이나 부처에게 삶의 의미나 목적 따위가 중요할까? 그런 건 다 생각관념의 산물이며 신과 부처라면 결코 그런 것에 스스로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대 자신을 부족한 중생이거나 죄인으로서 단정하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틀 속에 들어오길 요구하는 종교의 이원성이다. 하지만 진리는 절대이자 하나이기에 이원적일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신과 부처는 스스로가 모든 의미와 목적의 창조자이며 동시에 자유로운 초월자이다.
그러므로 신불(神佛)에겐 의미와 목적 따위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살펴보자. 그대가 편안히 쉬거나 잠잘 때 그런 것들이 필요하던가? 갓난아기가 미소지으며 웃을 때 중생과 죄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이제라도 인간들이 만든 삶의 의미와 목적 따위는 잊어라. 그런 것들은 다 종교가들이 만든 비자연적인 허구적 관념이다. 그것들의 본질은 종교란 구원해탈사업을 운영할 때 필요한 것뿐이다.
자신을 생명이 아닌 작은 몸뚱이로 여길 때 우리는 이 무한광대한 우주 안에서 외로운 존재감을 느낀다. 종교란 그 고독한 존재감속에서 헤매다가 혼자서 불안감을 감당하지 못하니 다 같이 있으면 이 불안을 잊을 것이란 생각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젠 그런 생각들의 본질을 정견하고 그것이 단지 생각임에 활짝 깨어나라. 그래서 진정한 태초의 자유의지를 되찾으라!
생멸하는 파도와 물결은 의미와 목적을 자꾸 찾을지 모르나 무한한 침묵의 바다는 스스로가 의미이자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젠 더 이상 뭘 찾거나 어디로 향해 가려고 하지 말라. 모든 생각과 감정을 쉬게 하고 지금여기 있는 저 무한한 우주나 하늘처럼 그냥 스스로 [있는 그대로] 존재하라.
그것이 진리 그대로의 창조 발현된 모습이며 우주의 섭리이자 태초의 자연스런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진정 그럴 수만 있다면 그대는 인간을 벗어나 더 이상 종교가 필요 없는 신과 부처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의미와 목적이 있어야만 하고 그래서 종교에 귀의해야만 하는 나라는 이 에고의 짐을 이젠 벗고 내려놓을 때이다.
내가 나로부터 자유롭다면 과연 종교가 필요할 것인가? 내가 우주의식과 본래하나라면 스스로 전체이고 모든 것일진대 종교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어떻게 해야만 한다]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대, 이제는 깨어났는가? 아직도 그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종교에게 도움을 청하라. 그대는 아직도 생각의 도움이 필요한 습관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는 아직 종교라는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그건 아직 생각하기 이전의 참자기가 무엇인지 꿈에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직 생각의 속임수에 눈뜬 자만이 자기가 본래 자유함을 안다. 본래 의미와 목적 따위가 필요 없는 지고지순의 생명자체임을 안다. 이것이 본래 예수와 석가가 가리킨 참된 의미와 목적 그 자체건만.
글 | 김연수 한양특허 대표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