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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묵상글 (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관상적 기도가 등대가 되어.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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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관상적 기도가 등대가 되어
마카베오서는 어제 이스라엘의 위대한 어른 엘아자르의 얘기를 전한 다음,
오늘 위대한 엄마의 얘기를 전하는데 일곱 아들을 한 번에 다 잃으면서도
이스라엘의 신앙과 자존심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독려하는 어머니 얘기입니다.
이런 어머니 얘기가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교훈을 주기 위해 지어낸 얘기일 뿐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에게 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를 예로 들어 그렇지 않다고 강변합니다.
그분은 사형을 앞둔 아들에게 수의를 지어주며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기보다는
다음 생에는 천부의 아들 곧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나라는 편지를 보내시지요.
그런데 안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나 오늘 일곱 아들의 어머니나
공통점은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둔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하느님께 완전한 희망을 두면 이 세상에 살면서도
진정 이 세상의 어떤 미련도 애착도 없음은 물론
이 세상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리고 미련이나 두려움이 없는 대신 확신이 있습니다.
자식을 신앙 때문에 죽게 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라는 확신도 말입니다.
자식이 이 세상에서 건강과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도
어미의 사랑이지만 그것은 현세적이고 거의 본능적인 사랑인 데 반해
저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미의 더 큰 사랑이요
어미의 본능적 사랑을 초월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성모 자헌 축일 강론에서도
아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은 다른 엄마들도 하는 것이지만
인류 구원을 위해 바치는 것은 다른 엄마들과 차원이 다른
성모님의 봉헌이라는 점을 말씀드린 바 있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
우리 인간에게 ‘미래 본능’이라는 것은 없고,
본능에는 ‘미래희망’ 같은 것이 없고 철저히 현세적입니다.
제 생각에 본능이란 눈이 멀었기에
본능이 발동하면 미래나 방향 같은 것이 없고,
철저하게 그 순간의 자기 본능을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도 본능에 이끌리지 않고
늘 주님을 향하고 주님께 희망을 두도록
우리의 사랑이 어디를 향하는지 관찰하고 감시도 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우리의 기도 가운데서도 관상적 기도일 것입니다.
관상적 기도가 우리의 본능적 사랑의 등대가 되어 우리의 사랑이
하느님 사랑에 희망을 두고 그 사랑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기를
또한 희망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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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겨울의 길목입니다. 바퀴를 달고 달아나는 가을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고, 길가에 군데군데 몰아다 놓은 가을의 노고, 가을의 땀방울이 쓸쓸합니다. 그런데 잎이 떨어지고 꽃도 떨어지고 나면, 그 나무가 속이 꽉 찬 나무인지 속 텅 빈 나무인지가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이 초겨울 우리의 몸을 치장하고 있던 가식과 허영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인 “미나의 비유”는 본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이루어진 ‘히느님 나라’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선물이요 은총임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과업과 소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선물인 ‘미나’는 주인이이 ‘벌이를 하라고 맡긴 것’(루카 19,13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오면 그 소명을 실현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인의 명령에 불순종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난 어떤 귀족’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시 돌아옴’은 재림과 종말을 암시해줍니다.
이 비유는 겉보기에는 마치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처럼 보여 지지만, 사실 결과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결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을 많이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실을 내는 나무’가 되는 데 있습니다. 곧 결실을 통해서 나무의 본질을 보는 데 있습니다. 결국, 어떤 나무가 결실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열매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비유입니다. 곧 ‘착한 종’은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성실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악한 종’은 주인에 대해서 “냉혹한 분이어서 가져다놓지 않는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는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루카 19,23)으로 여겼기에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낳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과 맺는 관계성’에 있습니다. 곧 주인에 대한 믿음과 순명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믿는 이’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신한 이’는 불신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꾸어야 하고, 우리의 행실을 ‘순명’으로 채워나가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주인의 ‘선물’을 선으로 활용하고 충실하되, 악용하거나 안정과 보존에만 머물지만도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선물’(미나)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간직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충실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신 분의 힘을 믿고, 그 힘을 주시는 분을 믿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실행으로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주님!
당신이 주신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당신이 주신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오늘도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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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작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 천상의 축복은 믿는 이들이 바라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놀랍고도 신기한 모습으로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잘못된 환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서 비유를 들어 이야기해 주십니다. 각자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고 적극 협력하며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섯 미나를 벌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탈렌트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수동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한 미나를 그냥 수건에 싸서 보관한 사람입니다. 그는 은총의 삶과는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희망한다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잘 활용해야 합니다. 눈먼 거지는‘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쳤습니다.’ 자캐오는 ‘먼저 달려 나무에 올라 기다렸습니다.’ 그렇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만나야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철은 녹이 슬고, 용수철도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깨끗한 물도 흐르지 않으면 썩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지금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합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잘 써야지!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말고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적극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탈렌트가 있고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사용한 대로 그만큼의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과법칙을 피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주신 달렌트를 뿌리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루아침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실까?’를 소중히 여기는 하루를 희망합니다. 어떠한 큰일도 작은 것에서, 시작되니만큼 작은 것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각자가 받은 은총은 다 다르고 그것은 단순 비교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어진 것을 분수에 맞게 쓸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입니다. 많이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루기 위한 과정을 귀히 여기는 주님이시니 하나를 가지고 열 개를 늘렸건 다섯으로 늘렸건 그것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를 위한 땀과 노력과 정성, 희생이 값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성공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최선으로 부르셨습니다”(성 마더 데레사).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어서 열심히 노력하면 나중에 큰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듯이 주님을 뵙고자 노력하면 만나게 되고 열매도 맺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지금은 힘들고 고달프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기쁨도 큽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19,26)하신 말씀은 노력한 정성과 수고는 크게 이룰 것이요, 그렇지 못함은 결국 잃는다는 것입니다. 한 번 주신 은혜를 거두어 가시지도 않지만 남의 탓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지금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신자들이 신앙심이 없다고 넋두리하고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하기 전에 신앙을 키워주지 못하고 일깨워 주지 못한 저의 잘못을 자책하는 오늘입니다. 대접받기에 익숙해지고 독불장군으로 고착되는 오늘을 봉헌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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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위령의 날’입니다. 퀸즈성당의 미사에 함께 하였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위령의 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성인 대축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분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들은 하늘의 별처럼 밝게 빛나는 분들입니다. 우리들 또한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며 살아가도록 다짐하는 날입니다. 반면에 위령의 날은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기도한다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정말 기뻐할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여러분들이 내가 이미 성인이 된 줄 알고 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저를 위한 기도를 멈추는 것입니다.’ 성녀처럼 살아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마더 데레사 수녀도 기도로 기억되길 희망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의 전구로 한 영혼이 연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서 기억하였습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영혼을 돌보시되 가장 버림받은 이를 구하소서.”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얼마 전에 보았던 ‘영웅’이 떠올랐습니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영화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 독립군의 자격으로 일본의 이등박문(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였습니다. 이등박문은 조선을 일본과 합병하려 하였고, 고종을 퇴위 시켰고, 명성황후의 시해를 주도하였기에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를 위해서 그를 저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전쟁포로로 재판을 받기 원했지만 일본은 일본의 법정에서 재판하였습니다. 옥중에 있는 안중근 의사에게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에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이렇게 보냈습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아래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은 정근과 공근(안 의사 아우들)에게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아들 도마(안중근 의사 천주교 세례명) 올림”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그 수의를 입은 채 당당하게 사형을 집행 당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에로 옮겨감이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우리의 영혼까지 죽일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미나’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미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입니다. 미나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미나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입니다. 이 희망, 믿음,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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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만약 제게 한 미나가 주어졌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저는 열심히 그 한 미나를 무엇인가를 했을 것입니다. 원체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되니까요.
만약 그래서 한 미나로 세 미나를 벌었다고 칩시다. 그럼 다른 종들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제게 세 고을을 다스리라고 주인을 말할 것입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주인님, 저는 한 고을이면 충분합니다. 세 고을을 제 능력에 너무 버겁습니다.
왜냐하면 한 미나로 세 미나를 버는 일과 세 고을을 다스리는 일은 천지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세 미나를 벌었다고 해서 세 고을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도 스스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것을 종에게 맡깁니다. 주인이 종에게 고을을 맡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작은 일에 충실할 때,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일을 즉 하늘나라를 맡기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의 의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작은 일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만큼 작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사랑은 쌓이고 싸여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선물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며 작은 것에 집중해 보세요. 손짓하나,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사랑을 담아보세요. 따스함을 담아보세요.
겨울 무 동태찌개
겨울 무는 맛있습니다.
어떤 무는 너무 달아서
설탕에 절인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런 겨울 무는 모든 곳에 잘 어울립니다.
생선조림을 할 때도 어울리고
그냥 간장으로 조림 무를 만들어도 맛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조합은
동태찌개와 겨울 무입니다.
이 조합이면 있는 밥 뚝딱하고
없는 밥까지 찾아 나섭니다.
미나리와 쑥갓으로 찌개의 머리에 관을 씌운다면
어떤 왕도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
찌개의 왕 겨울 무 동태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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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1947년,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를 발탁한 구단주가 로빈슨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사람들에게 많은 조롱과 수모를 당할 거야.”
실제로 관중들은 로빈슨이 경기장에 나타나면 인종차별과 관련한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날도 관중의 욕설을 들으며 대기석으로 돌아온 로빈슨은 야구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때 주장이 슬그머니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어떤 말도 없었지요. 그러나 로빈슨은 갑자기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아,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훗날 전설적인 선수가 된 로빈슨은 그날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간단한 몸짓이 나를 살렸습니다.”
많은 행동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거창하고 훌륭한 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상대를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어깨를 감싸주는 것만으로 세상의 그 어떤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강조하셨던 사랑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대단하게 보이는 사랑도 아니고,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랑도 아니었습니다. 간단한 몸짓 하나에도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미나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똑같은 미나를 받았지만, 종마다 벌어들인 미나의 양은 달랐습니다. 누구는 열 개로, 누구는 다섯 개로, 그런데 누구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처음에 받은 미나 하나만 가지고 주인 앞에 섭니다.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 열매를 맺도록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바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사랑을 세상에 널리 전달할 수 있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하느님께 받은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열 배, 다섯 배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반면에, 어떤 이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전달될 수 없었고, 동시에 하느님의 영광도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심판이 내린다고 하십니다.
대단한 사랑에만 집중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그마한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칭찬하십니다. 더 많은 힘과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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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마음속에 행복한 기대를 안고 보낸 시간이 성공을 이룬 시간보다 더 즐거운 법이다(올리버 골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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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화(聖化)의 여정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소명(召命)이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주시고,
당신 날개 그늘 아래 이몸을 숨겨주소서.”(시편17,8)
지난 금요일 카메룬 출신 파토는 7년간 리비아 사막에서의 비극적 여정후 기적적으로 지중해를 건너 로마 교황청에서 개인적으로 교황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내가 언젠가 교황님을 만나리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7년간 여정은 쉽지 않았으니 우리에게는 어떤 도움도 없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왔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도왔다(Only God helped us)’, 말마디가 새삼 마음에 와닿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깊이 깨달아 아는 자가 겸손한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요 믿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성화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파토를 도왔던 모든 이들과의 대화중 교황님의 두 단어 역시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권은 빚이다(privilege is a debt).”
“부유한 너희들이 하는 것은 더 많은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무다(it is a duty).”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우리가 하는 사랑의 행위는 마땅히 해야하는 사랑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런 “빚(debt)”과 “의무(duty)”에 대한 기본적 또렷한 인식을 지닌 이들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성인입니다. 어제 수도원에서는 예수성심자매회 월례모임이 있었습니다. 사진촬영후 사진과 함께 메시지도 나눴습니다. 빛과 그늘, 그리고 인물들이 잘 조화된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들, 모두가 멋지고 기품있는, 내면의 빛을 발하는 주님의 사랑스런 성녀(聖女)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늘 이렇게 사세요.”
어제는 병 진단을 받고 날마다 약을 복용하게 된 수도형제에게 준 덕담의 격려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순종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최선의 삶을 살 때 늘 함께 도와주십니다.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하느님은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아플수록 겸손하면 됩니다. 겸손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참으로 겸손해서 성인입니다. 추호도 위축되거나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힘내시고 용기내시기 바랍니다.”
회개로 이미 용서받은 과거는 주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다시 성화의 여정에 오르면 됩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엑소더스, 탈출의 여정, 성화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체칠리아 기념일입니다. 시종일관 주님 사랑에 몸바쳐 살다가 아주 젊은 나이에 순교한 성녀입니다. “천상의 백합”을 뜻하는 이름대로 천상의 백합꽃같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녔던 성녀는 교회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성녀의 순교록에 나오는 일화중 일부 감동적인 내용을 소개합니다.
-성녀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와라는 귀족청년과 결혼하였으며 결혼후 자신은 동정서약을 하였고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주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약속하였으며, 성녀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에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안내합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돌아오는 도중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동정서약에 동의합니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때부터 동생인 성 티부르누스와 사치스러운 생활을 멀리하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활동과 신앙생활에 전념합니다. 이들은 곧 총독인 알마키우스의 미움을 샀으며 총독에게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에 희생제사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다 심한 매질후 그 형제들은 이들의 신앙에 감화받은 총독의 시종인 성 막시무스와 순교합니다. 이 세 순교자들의 장례를 지낸후 체칠리아 성녀 역시 심한 박해와 고문후 순교합니다. 당시 성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순교한 성인들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 역시 감동적인 일곱 형제들의 순교에 이어 그 어머니의 순교 행적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었기에 가능한 순교였음을 봅니다. 특별히 이들의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으니,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에 용감하게 견디어내며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합니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한 그는 여자다운 생각을 남자다운 용기로 북돋우며 아들들을 격려합니다. 마침내 막내 아들 역시 안티오코스 임금의 회유를 떨쳐버리고 어머니의 충고대로 용감히 순교하니,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들입니다. 우리가 배울바 하느님께 대한 궁극의 희망과 사랑, 믿음입니다.
죽어서만 순교 성인이 아니라 살아서도 순교적 삶에 충실한 이가 성인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이자 성인성월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비범한 성인이 아니라 제본분의 책임을, 의무를 다하는 성인들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사랑에 빚진 선물 인생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평생과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두 종이 그 훌륭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한 미나의 선물인생, 나름대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함으로 칭찬받는 첫째 종과 둘째 종이 그 모범입니다.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첫째 종에 이어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이도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선물 인생에 최선을 다해 과제를 수행한 참 성인다운 삶을 산 이들입니다. 그러나 평생과제에 소홀하여 한 미나를 그대로 바친이는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주인의 질책과 더불어 불행하게 인생 마감합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각자 주어진 한 미나의 선물인생 잘 활용하여 많은 수확을 남기고 있는 성인다운 삶인 지요?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내 삶의 손익(損益)을 계산하는, 선물 인생 한 미나의 활용도를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성화의 여정중인 우리의 삶을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압축하면 과연 어느 시점에 위치해 있습니까? 죽음과 더불어 내 인생 결산(決算)할 시간이, 주님께 헴바쳐야 할 시간이 점차 가까워집니다. 주님의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성화의 여정중 진인사대천명, 과제 수행에 온갖 힘을 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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