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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의 단풍과 친구들
최 순 태
벌써 10월 하순이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의 각오를 다진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달랑 두장 남은 달력을 보니 세월이 유수같이 빠름을 실감한다. 오늘은 중학교 동기들과 팔공산 산행을 하는 날이다.
총무가 정상인 비로봉을 거쳐서 동봉에 이르는 구간을 등산할 예정이니 각 지역별로 카풀을 하고 11시 까지 군위 부계의 오은사 입구로 집결하란다. 어떻게 거기까지 갈까 걱정하던 중 대곡에 사는 친구가 자기 차로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대구지역 총동창회장인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성서에 사는 친구와 합류하기 위해 세인트웨스턴 호텔로 출발하였다. 대구에서 학원을 하다 김천으로 귀촌한 또 한명의 친구를 차에 태우고 팔공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칠곡군 동명을 거쳐 한티재를 넘어 목표 장소로 이동하였다.
팔공산 자락 중 이렇게 고즈넉한 정취와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이 없다. 초행길인 이 길을 드라이브 하니 온갖 시름이 다 가시는 듯 하였다. 경치를 감상하며 가던 중 산자락과 인접한 밭에 빨갛게 잘 익은 사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운전을 하는 친구는 군위 부계 사과가 유명한 청송사과 보다 더 맛이 있다고 한다.
일교차가 큰 기후로 사과의 재배지로 적합하여 서울의 가락시장에 가면 다른 지역의 사과보다 더 좋은 값을 받는다고 하였다. 서로 취향이 다르므로 맛에 대한 평가는 과일을 먹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놓을 일이다.
이윽고 오은사 입구에 도착하니 수성구 쪽에서 온 친구들이 미리 도착해 있었다. 거기서 차에 올라 비로봉가지 가는 목제 계단 앞까지 이동하였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도착해서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총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온 김밥, 맥주, 안주, 생수를 나누어 배낭에 담고 김천 친구가 직접 기른 방울토마토 한 봉지를 받고 비로봉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따뜻한 날씨였으나, 1000미터나 넘는 고산지대인 탓에 잔뜩 흐리고 꽤 쌀쌀하였다.
나무계단을 통해서 부지런히 올라가다가 현풍에 사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시내버스로 팔공산 집단시설지구 종점에 도착하여 수태골을 거쳐 2시간 산행한 끝에 이곳 하늘정원에 도착한 것이다.
13명의 동기들이 목적지를 향하여 20분쯤 걸어가니 드디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팔공산의 정상인 이 구간은 군사시설의 보호를 위하여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다가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등반이 허락되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팔공산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장관이었다.
군위군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군비를 들여 군사시설의 울타리를 조금 안으로 물리고 목제계단과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마련하여 말끔히 단장을 하여 등산객들이 편리하게 왕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산 중턱에서부터 빨강 노랑 자주색으로 물든 단풍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였다. 곳곳에 펼쳐진 기암괴석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무등산과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던 주상절리도 볼 수 있었다.
이번 등산코스를 추천하고 미리 사전 답사를 한 고등학교에서 지리 선생을 하는 친구는 팔공산은 대구 동구를 비롯한 2개 구와 경북의 영천, 경산군, 군위군 등 여러 지자체와 연접하고 있으며 산의 면적도 넓고 골이 깊어서 천하의 명산이라고 말하였다.
이 산에는 많은 불상이 있는데 특히, 약사여래불이 유달리 눈에 뜨인다. 일명 갓 바위로 불려지는 관봉석조여래좌상과 건조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웅장한 모습의 통일약사여래대불, 동화사 봉황문 앞 마애불, 동봉 입구의 석조 마애불 등이 있다.
웅장한 팔공산은 그 옛날 후삼국 시절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공산전투에 따른 각종 설화와 이야기가 있으며, 왕건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망가면서 붙여진 지명의 유래 등 많은 스토리텔링이 가득한 명산이지만 최근 광주의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지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사찰용지와 사유지가 많아 여러 사람들의 여론 수렴이 반드시 필요한 까닭에 추진이 잘 안되고 있다고 한다.
팔공산 자락에는 천주교의 교구와 비슷한 불교의 교구 본사 사찰이 두개나 있다. 바로 동구에 위치한 동화사와 영천에 소재한 은혜사이다. 같은 산에 두개의 본사를 가진 산은 팔공산 외에는 아무데도 없다.
계단의 경사가 상당히 급했으므로 조심해서 올라갔다. 비로봉(1,093m)을 정복하고 간단한 사진촬영을 한 뒤 서둘러서 마지막 목적지인 동봉을 향하여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동봉에 도착하여 아늑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등산하기 전 받은 김밥과 막걸리, 수성구에 사는 친구가 담아온 매실주, 머루주, 아로니아주를 한잔 마시니 온갖 걱정이 사라지는 듯 하였다.
외국에서 건너온 식물인 아로니아 열매는 사람의 몸에 참으로 좋은 열매라고 한다. 식사를 하는 도중 한 친구가 이 열매를 먹었더니 종전에 불편하였던 위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식사시간 때 모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날로 학교가 번창하고 우수한 후배들이 많이 입학하고 있다고 한다. 반창회 이야기가 나왔는데 등반 주선을 한 친구는 오늘만 10번 이상 3학년 반창회 자랑을 하여 다른 친구들로부터 가벼운 핀잔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반에서 하지 못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을 본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러한 말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이 등산을 할 때 마다 빠지지 않는 고단백 식품인 특식 메뚜기 튀김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왔다. 벼 수확철인 이즈음 해마다 메뚜기를 잡아 친구들을 위해서 튀겨오는 친구의 정성에 고마울 따름이다.
식사를 마치고 등산을 시작한 장소로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산을 내려오면서 등산할 때 발걸음은 어떻게 하며, 숨쉬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등산 기점으로 돌아오니 별로 힘들지 않고 수월하였다. 예전에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던 친구가 이제는 거뜬히 완주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많은 등산으로 몸을 단련한 것 같았다.
등산 후에 칠곡의 어느 식당에서 2차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 동기들은 여러 차에 나누어 타고 식당으로 향하였다. 다른 일정으로 등산에 참가하지 못한 친구들 4명이 그 곳으로 오게 되어 있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옆의 과수원에 사과가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수확기가 다 된 것 같은데 그대로 놔두고 있었다.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운전하는 친구가 서리가 내리고 나서 수확을 해야 과일이 맛이 있다고 한다.
팔공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 나와 함께 뒷자리에 앉은 친구의 말소리가 없어서 가만히 보니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사업을 하는 이 친구가 많이 피곤했나보다. 본인이 운전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나 남의 차에 탄 사람은 자연적으로 느긋해 지기 마련이다.
당초에는 등산 인원이 적을까봐 회장, 총무 등 주최 측에서 걱정을 많이 하였으나 17명이나 되는 친구들이 참가하고, 그동안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친구도 참석하여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처음 온 친구가 찬조를 하고, 10월 중순에 개최된 대구지역 동문 가족체육대회에서 가장 많은 동기가 참석하여 받은 최다참가상금과 족구경기 우승상금까지 주머니가 두둑하였으므로 총무가 “오늘 푸짐하게 한잔 먹자”며 제일 좋은 쇠고기로 주문하란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내가 정년퇴직 후 제일 많이 받는 이야기 중 하나인 요즈음 어떻게 하루를 보내느냐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저 그렇게 지낸다. 취미생활도 하고 무엇을 배우기도 하면서 지낸다.”라고 하면 두 가지 부류의 말들이 나온다.
첫 번째는 30여 년간 일했으니 이제 그만 쉬어야 한다는 말과 놀지 말고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퇴직을 하고 나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사교적인 친구들은 자리를 옮겨 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으나 나는 일단 자리에 앉으면 거의 바꾸지 않는다. 앞으로는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하며 어울리리라 다짐해 본다.
식당에서 한창 분위가 무르익을 때 등산할 때 오지 않은 4명의 친구들이 도착했다. 흥겨운 시간이 끝나고 서로 덕담을 하면서 오늘의 모임은 끝났다.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다. 환갑이 다된 우리들은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되려면 항상 운동을 하여 몸을 단련해야 한다. 장년에 접어든 우리들은 과격한 운동은 지양하고 등산, 가벼운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을 주로 해야 한다.
친구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마음을 터놓고 진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가 중요하다. 친구가 반드시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나 만일 이러한 친구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친구를 만들면 된다. 등산과 모임으로 노곤하여 잠자리에 들자마자 잠이 들었다.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해 본다.
첫댓글 친구들과 팔공산 등산을 하시며 여러 일들 등산하는데 참고가 됩니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으며 잘 어울리고 도움도 받고 주며 사는것이 삶이라 여겨 지며 모임에 총무도 하고 회장도 하면서 잘 지내시고 있어 노년이 즐거울것 같습니다. 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산이 있고 단풍이 있고 그리고 친구가 함께하는 등산길, 그런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지요.
좋은 길 다녀오셨습니다.
다정한 동기들과 팔공산 산행길에서 보고 느낀 점을 진솔하게 쓰신 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천하의 명산 팔공산은 신라시대 중악이라 불렀습니다. 팔공산의 단풍과 계곡이 그리워지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친구들과 멋진산행을 하셨습니다. 저는 대구에 살면서 팔공산 산행은 제대로 한 적이없습니다. 글을 통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친구들과 팔공산 산행이 즐거웠겠습니다. 필공산 단풍이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아직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필공산 소개를 듣고보니 한번 결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치를 많이 느꼈습니다.
동기분들과 뜻 깊은 팔공산 단풍 산행을 즐겨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동기들과의 산행은 지난날 추억을 일깨우는 모임이지요. 일년에 한 번씩 저들도 동창회를 합니다. 갈 때마다 한 두 사람씩 사라지는 아픔을 안고 오지요. 마지막 남는 사람이 동기회비를 가진다고 자주오기를 강요합니다. 좋은 모임 즐거운모습 행복해 보입니다.
오랜 시간 우정을 지켜 온 중학교 동기분들이 어울려 산행하고 모임도 갖는 훈훈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군위 부계에서 오르는 고즈넉한 팔공산 산행길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부계 사과도 먹어보고 싶네요..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