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생각] ㅡ 이어달리기
1. 이어달리기
[펌] 조국 (페이스북, 2시간 전)
<내부 갈라치기가 아니라 연대와 단결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든다>(2026. 2.22)
1.
합당 제안 국면이 시작된 이후 느닷없이 유시민 등 소중한 민주진보진영 인사를 ‘올드 이재명', 심지어 ‘반명’으로 내치는 프레임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윤어게인’을 연상하는 ‘문어게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나와 정청래 대표에게 붙이고 비방한다.
한겨레신문이 분석한 '뉴이재명' 성향의 국민(보수 또는 중도였으나 대선 후 새로이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다. ‘올드’건 ‘뉴’건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같이 갈 생각을 하는 것이 정치의 정도(正道)다.
‘올드’라는 부정적 낙인이 찍혔지만, 이들은 흔들림없이 진영과 이재명을 지킨 핵심 지지층이다. 이들은 새로 합류한 ‘뉴'를 환영해야 한다. 동시에 ‘뉴'는 자신들이 합류하기 전 이재명을 지켜준 '올드'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원의 대표임은 물론, 지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지지했던 조국혁신당원의 대표이며, 대선 후 새롭게 지지하고 있는 중도/보수층의 대표이기도 하다.
2.
그런데 이재명 정부 기간 동안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진보진영 내부를 쪼개는 사람들이 있다. ‘뉴’라는 이름을 내걸고, 진영을 지켜온 핵심 지지층을 '올드'로 규정하여 배제하고, 자신들만으로 ’주류’를 구성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행위는 이재명 정부의 지지기반을 축소, 약화시킨다. 유튜브에는 '뉴이재명'을 내세우며 '올드‘로 분류한 민주진보진영 인사들을 공격하는 수많은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작성자의 정체와 배후가 의심스럽다.
특히 민주진보진영의 반대편에 있다가 근래 반성없이 슬쩍 넘어온 정치인(지망생)들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 현재 ‘뉴이재명’을 내세우고 자신이야 말로 '찐명' 또는 '이재명 지킴이'인냥 행세하는 정치인(지망생) 중 과거 노무현, 문재인은 물론 이재명을 야멸차게 공격, 비방한 이들 쉽게 찾을 수 있다.
돌이켜보라. 지금은 노무현을 찬양하고 있는 정치인들 중 노무현 대통령을 독하게 공격하고 폄훼했던 사람 많다. 지금 문재인을 맹비난하는 정치인들 중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7-80%였을 때 앞다투어 ‘찐문’ 인증한 사람 많다. '찐문'의 깃발을 들고 이재명을 악마화했던 사람들, '문재인 파문'을 선언하고 윤석열편으로 넘어갔다. “문을 여니 국이”라던 사람들, 내가 이낙연을 지지하지 않고 이재명을 비난하지 않자 내 책 화형식을 벌였다. ‘찐‘을 내세우는 자들은 여건이 나빠지면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3.
이재명 대통령은 2024년 2월 민주당 당대표 시절, 이렇게 말했다. "친명-비명 나누는 것은 죄악이다", "친명이냐 친문이냐 하며 우리를 구분짓는 행위 자체가 저들의 전략이다." 정치에서 순혈(純血)주의는 자해의 길임은 현명한 정치인들은 다 알고 있다. 유독 대통령을 파는 자들, 조심해야 한다.
현대 정치사에서 현명한 주권자들은 친김대중이자 친노무현이었고, 친문재인이자 친이재명이었으며, 노회찬까지 챙겼다. 주권자는 민주진보진영의 역대 대통령들이 각각의 성과와 한계를 가지면서, ‘이어달리기’를 해오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찐'이나 '뉴’는 배제의 언어다. 내부 갈라치기가 아니라 연대와 단결이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를 만든다.
2. 발목잡기
[견제와 균형 vs 발목잡기] (2021.7.25)
견제와 발목잡기의 차이..!!
지금 국회는 사실 초딩만도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 "2인3각 달리기"를 보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 빨리 뛰어간다고 좋은 건 아닙니다. 이것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입니다.
한편, 한 사람이 주저앉아버리면 달리는 걸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옵니다. 즉, '발목잡기'가 되는 셈입니다. 이것은 마치 3류축구라 일컫는 중동식 '침대축구'가 되어버립니다.
2인3각 달리기 경주에 나서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하는 상식을, 국회는 모릅니다. 알면서 그런다면 인간 쓰레기들입니다.
법사위에서 문제시되는 체계 자구에 대한 딴지걸기식 발목잡기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하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 미리 법사위원장 자리를 덜컥 국짐당에게 내주는 것은 자해행위가 됩니다.
장삼이사 국민들도 이렇게 상식으로 아는 걸, 설마 민주당 국회의원님들이 모른다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지요.
3. 폭주 기관차
[오늘의 명언] ㅡ 검찰의 폭주 (2022.10.25)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1,000m 달리기 경주인데,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듯 폭주하고 있다.
곧 지쳐서 고꾸라져 쓰러지게 되어 있다.
4. 균형
[K 생각] ㅡ 밸런스(균형) (2023.1.24)
선진국이 되는 필수의 조건은 밸런스다.
한쪽으로 몰아줘서, 힘만 쎄고 근육만 많다고 해서 강해지고 싸워 이겨서 선두에 올라서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밸런스를 이루는 것.
'오래달리기'를 예로 들면, 오른쪽 다리는 6백만불짜리 아이언 다리인데, 왼쪽 다리는 허약한 채로 그냥 놔둔다면, 절대로 경기의 승자가 될 수 없는 이치이다.
결코 오래 달릴 수가 없다. 결국 낙오되고 만다.
* 신장식의 뉴스하이킥 (한빛미디어 박태웅 의장)
https://youtu.be/mUX1G6-1YUI?si=NEubNfN5X1Q8kQhb
5. 세계관
[세계관] ㅡ 이어달리기 (421-432) (2023.3.16)
421. 모두의 동의를 받기 가장 어려운, '균형의 세계'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422. 유학에서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바로 중용(中庸 the middle path, the golden mean)입니다.
423. 불교에서 가르치는 핵심도 중도(中道 the middle of the road)입니다.
424.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中庸)의 덕을 강조했습니다.
425. 따라서 균형잡힌 인식과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426. 기독교 신약 요한복음 14장엔, "나는 길(via)이요 진리(veritas)요 생명(vita)이다" (Ego sum via veritas et vita.)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길(road)을 가르치는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의 균형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427. B.C.17c경 '함무라비 법전' 196조와 200조에는, "만일 사람이 평민의 눈을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눈도 상해져야 하고, 만일 사람이 평민의 이를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이도 상해져야 한다"고 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적 형벌의 균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428. 전세계가 드라마 '더 글로리'에 환호하는 이유도, '복수'로 이루는 균형 맞춤에의 열망에 부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429. '정치와 외교의 세계'도 철저한 균형의 세계입니다. 기계적 평면적 중립이 아니라, 도넛 모양의 토러스(torus 원환면圓環面)의 중심축(회전축)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결코 이분법적 인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430. MZ 세대의 공정 경쟁(fair competition) 문제도 마찬가지로 균형(balance)의 문제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fairness)이 과연 가능할까? 능력 경쟁이 가능할까?
431. 균형 감각(sense of proportion)이 없이도 세계 속에서 생존해서 살아갈 수 있을지에는 깊은 회의가 듭니다.
432. 균형이 무너진 사회는 결코 지속되지 않습니다.
7. 인간의 뇌
[뇌에 대한 생각] (2021.10.10)
마음은 평면처럼 납작할까?
"The mind is flat." (한겨레21)
아닐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시인일 수 밖에 없다!
마음의 심층에서 올라오든 상상을 통해서든..
원인과 이유를 따지고 묻지 않더라도, 단지 시각과 청각만을 통해서라도..
우리 인간은 세상과 마주해서 직관으로 승부한다.
직관이 가리키는 것을 감정적으로나 합리적으로나 감싸고돌기 때문이다.
빚을 지고나서 카드들로 돌려막기를 하듯이.
그렇게 쫓기듯 이어달리기를 하면서, 우리의 뇌는 input 과 output 을 반복한다.
시인이 아니면서 소설을 쓸 수는 없다. 시에 줄거리를 입히면 소설인 것이다.
시가 되고 살이 되고...
우리의 뇌 안에는 시적 언어들로 가득하다. 밖으로 나오면서 옷을 입는 것뿐이다.
시의 언어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생각이라는 걸 하는 것이다.
생각이 땅바닥을 기면 논리요, 하늘을 날면 상상이 된다.
뇌는 생각이 오가며 머무는 정거장(플랫폼)이라 볼 수도 있겠다.
뇌가 망가지면 우선적으로 생각이 멈춘다.
뇌는 미리 정해둔 바가 없기에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자기대로는 모두 옳다.
뇌가 단순하면 항상 옳고, 복잡하면 수시로 바뀐다.
input 이 없는 상태에서 뇌는 닫혀 있고, 인식과 판단이 허약하다.
뇌는 기억을 통해 언어적 정보창고가 되고, 생각을 통해 정보를 판단한다.
태초에 시가 있으니, 말씀으로 듣고 통하였다.
앗! 이러다 천공류와 비스므레해질 것 같아 여기서 멈춤.
K / 2026.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