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시평 22] ‘정경심 시인’의 옥중시 모음
‘멸문지화滅門之禍’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몰랐다. ‘조국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그의 아내‘정, 경, 심’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았으리오. 무도한 검찰에 의해 그의 딸과 아들, 동생 등이 샅샅이 털렸다. 엄마는 어느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딸의 진학에 도움이 될까하는 마음으로 그 대학 총장 명의의 표창장을 위조했다던가.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검찰과 언론은 무슨 대역죄라도 지은 듯, 한집안 전체를 싸잡아 광분했다. 그들의 잘못과 죄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일개 검사의 개인적인 집요한 ‘보복’이라고도 하지 않겠다. 다만,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만큼은 뚜렷하다.
아무튼, 그녀는 1,152일 동안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모진 고통과 시련을 견뎌냈다. 그가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2023년 11월 27일 도서출판 보리 펴냄, 263쪽, 17000원)라는 제목의 옥중 글모음집을 펴냈다. 책에 밀봉된 엽서 5장에는 5편의 시가 쓰여 있었는데, 그중의 한 편 <결국, 사람이다>에는 그가 책을 펴낸 이유를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문을 싣는다.
<죽음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사람 때문이다/결코 그 길을 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던/그가 버티고 있었고/나를 그 길로 보내버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집요하게 내 죽음의 멱살을 붙잡고 싸워 주었다/자신도 버티기 힘든 각자의 무게 위에 서로의 무게까지/우리는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무게를 떠안고 분산시켰다/그리고 그곳에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이 어깨를/들이밀고 우리의 어깨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주었다/우리를 지탱시킨 것은 우리를 살린 것은/결국, 사람이다.>
조국사태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이 시만 봐도 확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세월, 그는 수없는 절망과 희망을 껴안은 채 성찰과 깨달음을 짧은 글로 읊었다. 그것은 170여편 편편이 시詩였다. 그는 그 속에서 어엿한 시인이 된 것이다. ‘깊은 절망과 더 높은 희망’이라는 책의 부제를 보라. 그는 고백한다. 그를 살린 것은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남편에 대한 ‘사랑시’도 있다. <여보/오늘 밤은 각자의 슬픔을/슬퍼합시다/내 슬픔이 너무 커서/당신 슬픔도 너무 클 것을 알기에/오늘 밤은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당신도 슬픔에 겨워 어쩔 줄 모를 테니까요//여보/우리가 오늘 밤/큰 슬픔을 슬퍼하며/홀로이 그 슬픔을 이겨냈음을/잊지 맙시다/당신과 나보다 더 큰 아픈 마음이/오늘 밤엔 없었음을 기억합시다.> 세상에는 이렇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도 있는 것을. <주홍글씨를 달고/날아오는 화살을 맞으며/온 동네의 북이 되어도/이 길을 걸어가겠다>는 각오도 다진다. 1평도 채 안되는 감옥은 역시 ‘마음공부’하기엔 최적인 듯하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시련에서도 ‘삶을 리셋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긍정의 아이콘이 되려는가? 결국은 ‘사람’ 때문에 ‘살아 돌아와’ 잘된 일이다. 그저 조용히 그의 책 한 권을 사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조국을 전혀 모르던 어느 시인이 썼던 시가 생각난다. https://cafe.daum.net/jrsix/h8dk/1082
조국은 시인을 수소문해 소주 한 잔을 사드렸다던가. 이유야 모르겠으나, 일개 재담꾼으로 전락한 진중권은 입을 다물라. 그가 사람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