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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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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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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히12:18-21)
1 극도로 두려운 하나님
우리에게 최초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만질 수 있는 시내산에 오시지 않았다. 그 산은 불에 타고 있었고 흑암에 싸여 있었으며 나팔소리와 말소리가 들리지만 너무 두려워 더이상 말씀하지 않으시기를 구하는 매우 두려운 상황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 심지어 그 산에 들어서는 사람이나 짐승이라도 손을 대지 말고 돌이나 화살을 쏘아 죽이라고 명령하셨을 정도였다. 시내산에서 들리는 소리와 불과 흑암, 폭풍의 두려움은 이스라엘로 감당할수 없게 했고 모세도 극도로 두려워하고 떨었다(출19:12,13).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출19:12,13)
왜 여호와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자상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시고 견딜 수 없이 두렵고 떨리는 분으로 오셨을까? 왜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을까? 어쩌면 두려운 모습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우리가 거부감을 가질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 모세가 이렇게 답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임하신 것은 우리로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다(출20:20). 그렇다면 죄는 무엇인가? 바로 시내산에서 말씀하신 것을 어기는 것이 죄이고 시내산에서 주신 것이 율법이다. 이처럼 범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다(요일3:4,5). 그 명령을 꼭 지키게 하려고 무서운 모습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20:20)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일3:4,5)
이것은 이해할만한 이유이다. 왜 귀신이 우리에게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날까? 왜냐하면 예쁘고 상냥하게 나타나면 귀신의 말을 가볍게 듣고 지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하고 귀찮으면 쉽게 명령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죽을까봐 두렵고 망할까봐 두렵고 질병을 줄까봐 두려워야 말을 듣는 것을 귀신도 알고있다. 그런데 사실 귀신은 아무힘이 없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진짜 두려우신 분은 여호와시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오히려 사단은 자신이 두려운 존재이고 하나님은 한없이 선한 분이므로 절대 안좋게 하실리가 없다고 속이고 스스로 천사인척 다가와 우리를 속인다(고후11:14). 그러므로 범죄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이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11:13-15)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12:22-24)
2 의인의 영이 완전해 지는 하늘 예루살렘
믿음의 선조들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 직접 강림하신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다. 듣는 자들은 죄인이었고 희생 제물의 피와 물로 정결케할 필요가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슈아를 통해서는 하늘 예루살렘에 이르고 셀 수없는 천군 천사와 장자들의 교회와 모임,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재판관인 하나님과 의인들의 영을 온전하게 하시고, 새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슈아와 우리의 양심을 씻는 뿌린 피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모세는 땅의 언약의 중보자라면 예슈아께서는 하늘 언약의 중보자이시며, 모세는 땅의 예루살렘에서 사역자라면 예슈아께서는 하늘 예루살렘에서 사역자이신 것이다. 또한 모세 때는 시내산에 범죄하지 말라고 두려운 여호와로 임하셨다면 예슈아 때는 시온산에 심판하는 여호와로 임하실 것이다. 그리고 땅의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과 할례받은 이방인이 모일 수 있지만 하늘 예루살렘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장자들만 모이는 곳이며 의인들이 예슈아의 피에 씻어져 완벽해진(완전해진) 자들만 있는 곳이다. 즉 모세는 땅에 속했다면 예슈아께서는 하늘에 속한 분이시며 모세의 첫언약을 통해 의로워진 자들이 예슈아의 새언약을 통해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롬6:2,6-7)
#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히12:25-27)
3 하늘과 땅을 한번 더 흔드신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직접 강림하셔서 범죄치 말라고 경고하셨고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거역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땅에서는 모세가 증언함으로 경고하였고 하늘에서는 예슈아께서 증언함으로 경고하셨다. 땅에서 경고한 모세의 율법도 두세증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법에따라 심판을 받는데 하늘에서 경고한 예슈아의 새언약을 배반한다면 우리가 어찌 그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줄 때 분명 시내산은 진동했고 이스라엘은 두려워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진동할 것이다. 이번에는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이다. 즉 세차게 흔드신다는 뜻이다. 흔드시는 이유는 영원하지 않아 흔들리는 것들을 제거하시고(변동)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것들을 영원히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흔드는 때는 개혁의 때이다. 이때는 새하늘과 새땅이 되기 전 하늘과 땅을 심판할 때라고 볼 수 있다(계20:11-15). 더이상 영원하지 않은 것이 없고 영원한 것만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또 한번 하늘과 땅은 진동할 것이다. 그러면 옛하늘과 옛땅은 흔들림과 함께 옷처럼 낡아질 것이고 옷처럼 갈아입을 것이다. 그렇게 바뀐 새하늘과 새땅은 거룩하게 된 자들과 함께 영원히 있을 것이다(시102:25-27).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시102:25-27)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0:11-15 21:1)
#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12:28-29)
4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 (합법적인 방법)
우리는 예슈아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 땅에서 진동시키신 이유는 불법한 애굽을 제거하시고 거룩한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는 이유는 불의한 자들을 불법과 함께 제거하시고 영원한 것으로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늘 예루살렘에는 의인의 영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더더욱 거룩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여기서 '기쁘시게'의 헬라어는 '용납할만하게, 매우 기쁘게' 등의 뜻이다. 영어로는 '받으실만 하게' acceptably 로 번역했다. 즉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받으실만한 인정되는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경외함으로 합법적으로 주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이라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시행하는 사람이 있다. 즉 결과가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시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혀 불법적인 방법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런 불의한 수단과 방법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기억하는가? 목적은 거룩한 나라, 영원한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목적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도 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토라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이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선한 나무가 선한 열매를 맺고 악한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는다. 즉 동일하다. 그러므로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나무여도 상관없다는 그들의 논리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사단의 교리이다. 수단과 방법이 공의롭지 못하면 그 결과도 부정한 것이다. 열매를 보면 그 열매를 맺기위해 보낸 시간(과정)도 선한지 악한지 알수있다(눅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6:43-45)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을 위해 영원한 유업을 위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방법으로 얻어야 한다. 그것은 공의로운 여호와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즉 합법적인 방법으로 영원한 것을 취할 수 있다. 그리고 합법적인 방법은 여호와의 율법이다. 여호와의 법은 하늘에 속한 법도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것을 취하기 위해 하늘의 법도를 준행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바울이 거절한 것도 율법을 이용하는 위선자들이었지 율법을 거절한 것이 아니다. 분명 그들의 행위를 거절한 것이다. 다만 그들의 행위가 율법을 지키는 척했기 때문에 헷갈리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사단은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율법을 이용한다. 왜냐하면 율법에 반감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5 사람을 경배하는 헛된 예배자들
이사야 선지자는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 말했다. 즉 위선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어떤 면에서 위선적이었을까? 물론 종교인들이었으므로 거룩한 척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리고 유다인들이므로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자들이었다. 그것도 열심히 지키는 척하지만 실상은 지키지 않는 위선자들이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했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었고 이웃을 사랑하는 척하지만 전혀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다. 오늘 날에도 국민의 편에서 말한다고 하는 자들이 정말 국민의 편인지 의심스러운 자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들도 그런 위선자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입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과 먼 자들이었다. 또한 사람의 명령을 교리로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게 경배하는 자들이었다. 만약 사람의 명령을 가르치고 사람의 명령을 지키게 한다면 어찌 그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는가? 사람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명령을 지킨다면 사람의 종인 것이고 사람을 경배하는 우상 숭배인 것이다. 그러니 헛되게 예배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전통적인 방식,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컵을 씻거나 잔을 닦거나 이런 많은 전통들을 말한다. 이부분은 번역되지 않아 예슈아께서 어떤 것을 전통이라 말씀하시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깝다. 이런 일은 계명이 아니라 전통이다. 이것을 예슈아께서는 사람의 전통, 사람의 명령, 사람의 교리이므로 지양하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또한 이들은 사람의 전통 예슈아 당시 그 전통은 거의 4000년의 전통이었을 것이다. 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거절한다고 책망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에 집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칫 헛된 예배자가 될 수 있고 곧은 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준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명령을 주셔서 자유를 주셨다. 이것을 무겁게 또는 여러 가지 명령들을 추가하면 하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상 숭배가 될 수 있다. 율법을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정확한 타겟을 맞추지 못해 죄가 될 수 있다. 여호와의 율법은 죄를 짓지 않는데 있지 그릇을 씻는데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릇을 씻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씻는 전통이 율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전통적으로 씻는 방식대로 씻지 않으면 율법을 어긴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가르침은 자칫 죄의 정의조차 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 전통은 주의해야 하고 분별해서 한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예를 들어 그릇을 씻거나 잔을 씻는 것과 같은 많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번역되지 않은 부분)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7:6-9)
6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
여호와께서는 완전히 소멸시키는 불이시다. 즉 우리를 지옥에 던질 수 있는 분이시므로 두려워해야 한다. 또한,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기 위해 불로 우리를 시험하실 것이다. 불시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고 훗날 영광 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영광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많으나 누가 함께 고난을 받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시험을 당할 것이며 그로 인해 영광스러운 날 때 기쁨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불시험을 통해 즉 우리의 심장 폐부를 다 드러내는 시험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였을지라도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죄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겠는가 생각해야 한다(벧전4:12,13,17,18). 그러니 여호와를 얼마나 두려워해야 하며 완전한 겸손과 거룩함으로 나아가야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벧전4:12-13,17-18)
7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은 불못에 던져진다
시내산에서는 불로 임하셨다면 하늘과 땅을 다시 한번 흔드실 때에는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을 불못에 던지실 것이다. 이를 위해 천년동안 무저갱에 갇혀있던 사단을 풀어주고 땅에서 곡과 마곡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우고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져지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거기에서 영원히 밤낮 쉼없이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이들은 왜 불로 소멸되는 것일까? 왜 거짓 선지자는 소멸되고 사단이 소멸되고 미혹된 백성이 소멸되는 것일까? 이유는 그들 안에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것이 불에 소멸될 때 그들 안에 영원한 것이 없으므로 함께 소멸되는 것이다. 그럼 영원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생명의 말씀이다. 영원한 말씀이다. 그 말씀을 준행함으로 말씀과 우리가 하나되었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이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슈아께서 순종으로 보이신 구원의 방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종한 의로운 자에게 예슈아의 피가 효력을 나타내 완전한 자가 되게 하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소멸하는 불이시다. 이것을 알고 경외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말씀을 붙들자. 그것이 예슈아의 길이고 생명에 이르게 한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20:7-10)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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