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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아침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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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도련님..」
아침을 함께 먹다 말고 김비서가 넌지시 도헌을 불렀다.
「왜요 아저씨?」
김비서는 겸연쩍은 듯 밥숟가락을 식탁위에 슬며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번 전학 건에 대해서는 사장님께..」
도헌은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싱크대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버지께는 연락 안하셔도 되요. 대신 2주 뒤엔 꼭 예원고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하. 오늘 입고가실 교복은 제가 어제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제가 차로 모셔다 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근데 등교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저씨도 출근 하셔야죠.」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제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사장님께서 미국을 가시기 전에 제게 신신당부를.」
「예~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을 나왔다. 방으로 돌아가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나는 교복을 입은 도헌은 서둘러 가방과 이어폰을 챙기고는 어제보다 한 시간 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바람이 쌩쌩 부는 날씨는 곧 다가올 봄을 시기하듯 도헌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차가운 공기에 그의 입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입김은 순식에 대기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홀가분했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한동안은 아버지의 간섭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 빠른 등굣길의 버스는 역시나 한산했고 학교에 도착해 교실에 들어서자 너 댓 명의 아이들만이 그가 얼마 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른 아침부터 책에 파묻혀 있었다. 그 아이들을 보자 도헌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으로 이르는 초등학교로부터의 긴 여정에서 자신은 지금 어디쯤 와있을까? 마치 마라톤을 뛰 던 선수가 35km쯤에 이르자 신발을 벗고 등산화를 갈아 신고는 근처의 산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헌은 머릿속에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7시 30분이 되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고 시끌벅적해진 교실 내 방송 스피커로부터 무슨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듯 하여 도헌은 귀에서 이어폰을 떼었다.
‘지금부터 SWHS 아침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우 여러분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이 어느 새 등교한 정환이 도헌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하이~! 일찍 왔네! 소령~」
정환은 특유의 웃음끼 어린 얼굴로 최대한 가까이 도헌의 귀에 입을 밀착하며 말했다. 그러자 도헌은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정환에게 말했다.
「하아.. 정환아 어.. 내 이름말인데 이건 왠만 하면 학교 밖에서... 둘이 있을 때만! 알았지?」
도헌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오케이~」
정환이 걱정 말라는 듯 도헌의 등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데 있잖아 저건 뭐야?」
도헌이 방송스피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거? 아침 방송이야. 1교시 시작하기 30분전에 시작해서 10분전에 끝나는... 뭐 특별한 내용은 없는데 가끔 공지사항이나 비가 올 때 전체 조회를 대신하거나 그런 거지. 것보다 지금 나오는 목소리를 잘 기억해~!」
「목소리?」
「그래~ 저 목소리 말이야~ 어때?」
「괜찮은데?」
「우리랑 같은 2학년인데 잘 기억해둬~」
정환은 게슴츠레하던 눈을 크고 생기발랄하게 치켜 뜨며 말했다.
「누군데?」
「쟤가 바로 우리 학교 퀸이야!」
「퀸?」
「그래~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쁜 애라구. 이름이,,,」
그때 교실 앞문으로부터 유선생이 들어왔다.
「최정환! 얼른 자리에 가서 앉아라.」
유선생이 정환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마치 로봇을 조종하듯 그를 그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유선생이 아침 조례를 위해서 들어오자 스피커속 여학생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그 목소리와 함께 했던 배경음악 소리는 계속 이어 졌다. 그것은 처음 들어보는 기타 연주곡 이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직접 연주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 멜로디는 처음이었지만 낮설지 않았고, 곡이 주는 느낌은 익숙했지만 그의 두 귀를 새로운 형태로 파고 들고 있었다.
도헌이 그러한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새 모든 학생들이 등교를 하여 착석한 상태였다. 정환은 자리로 돌아가서 앉으며 양손으로 나팔모양을 만들어 입에 가져다 대고 들릴 듯 말듯 소근 거렸다. 조금 전까지 그가 이야기 하려던 여학생의 이름을 말하는 듯했지만 도헌의 머리 속은 어느새 그 목소리 뒤의 기타 곡으로 온통 가득 차 있었다.
「자! 오늘부터 이제 제대로 시작해야지?」
유선생이 살며시 웃음띈 얼굴로 말하자 반 아이들의 낮은 탄식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도 이미 입시라는 압박감에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는 터였다. 수첩을 보며 몇 가지 공지사항을 전달한 유선생은 출석을 부르고나서 다시 한 번 수첩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중요한 걸 빠트릴 뻔 했네. 수업 더 집중해서 듣는 건 당연한 거고 다음 주 부터는 부모님들 면담이 있을 거니까 일주일 전부터 미리 이야기해서 알려드려. 그리고 특별히 오실 수 없는 분들이 계시면 교무실로 와서 나한테 이야기하고... 그럼 반장.」
어제 반장으로 뽑힌 남수가 일어섰다.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유선생이 나가자마자 도헌은 정환에게 물었다.
「정환아 혹시 아까 방송에서 나온 배경음악도 무슨 곡인지 알아?」
정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하.. 글세.. 그거야 방송반 애들이 알아서 지들 맘대로 트는 거지~」
「아... 그렇구나. 고마워~」
도헌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무의식적으로 가방에서 책들을 꺼내 오늘 수업할 내용을 간단히 체크하고 시간 순으로 교과서를 정리 했다. 교실 안은 다시 시끌벅적해 졌다. 도헌이 다녔던 전 학교 교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입시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이곳은 한결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조금 전까지 들려왔던 그 기타곡은 마치 이 학교의 이러한 분위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하는듯하면서도 동시에 우연히 이 곳에 앉아 있는 그를 환영하는 듯 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이 도헌에게 있어서는 무척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음악과 노래를 열망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저기.. 도헌아~ 안녕~」
옅은 갈색의 긴 머리를 길게 뒤로 묶은 한 여학생이 어느 새 도헌의 옆으로 다가와서 손을 흔들며 도헌에게 인사 했다. 어제 도헌의 첫 인사 때부터 도헌에게 관심을 보였던 채희였다.
「어.. 안녕?」
채희의 갑작스런 붙임성에 도헌은 당황했지만 고개를 돌려 씽긋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너 우리학교 교복 입은거 되게 잘 어울린다~」
「아... 그러니? 고마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자~」
「채희는 부끄러운 듯 말했지만 당당하게 도헌을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 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도헌의 뒤에 있던 정환이 장난기 서린 얼굴로 대신 채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최정환이야~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반가워!」
「야! 최정환! 누가 너랑 악수 하쟀어? 저리 비켜!」
채희가 정환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러자 정환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햐~ 나도 네 손 잡는 거 별로거든! 너한테서 도헌일 지키기 위한 거 였어~」
「지키긴 뭘 지켜. 내가 무슨 도둑이야?」
채희도 역시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쨌든 도헌인 너랑 악수 하고 싶지 않았을껄?」
「뭐!? 네가 우리 헌이 마음을 어떻게 알아?」
채희가 애교섞인 말투로 도헌을 흘깃하며 말했다.
「엥? 헌이라구? 그게 뭐야?」
「도헌이 애칭이야~」
「참나! 누구 맘대로 애칭을 붙여?」
「내 맘이야~ 네가 왠 상관?」
채희가 길다란 혀를 쭈욱 내밀었다.
「네가 남자애들 한테 수작 거는 건 1학년 때부터 쭉 봐왔다구!」
「뭐? 수작? 너 말 다했어?」
둘은 점점 더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어 갔고 서로 팔짱을 낀 채로 이마가 거의 맞다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며 으르렁 거렸다.
「저기 애들아!」
도헌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둘을 불렀다.
「어~ 왜?」
「헌~ 왜?」
「우리 그냥 다 같이 친하게 지내자~!」
도헌은 환하게 웃으며 양쪽 손을 내밀며 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내가 헌이 때문에 참는 거야~」
채희가 먼저 도헌의 손을 꾹 잡았다.
「나야말로!」
이번엔 정환이가 손을 잡았다.
「흥!」
「흥!」
둘의 분위기는 여전히 별로였지만 도헌은 그들이 참 괜찮은 친구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강교야 쟤들 뭐하는 거냐? 정말 짜증난다.」
도헌과 아이들을 뒤에서 지켜보던 창석이 멍한 표정으로 앞자리의 강교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언젠가 한 번 손을 봐줘야 겠어. 으흐흐흐...」
「그래야 겠지? 킥킥...」
강교와 창석은 한 쪽 손의 주먹을 다른 쪽 손바닥에 부딪히며 도헌을 바라보았다.
수업 시간은 전 학교나 이곳이나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도헌은 책 상 밑에서 작곡노트를 꺼내서 몇 개의 음표를 그리다 말다 끄적거렸지만 집중은 되지 않았다. 2주 후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생각보다 그의 머릿속을 자주 들락거렸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 정환을 포함한 다른 몇 몇의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나서 정환이 오늘도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도헌의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이끌었다. 도헌은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거절할 이유도 마땅치 않아 순순히 따라 나섰다.
운동장엔 점심의 쉬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많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날씨가 아직은 쌀쌀해서 실외 체육시간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없었지만 운동장 한켠에 마련된 게시판 앞에는 몇 몇의 학생들이 학교 내 동호회 모임의 모집공고 전단을 붙이고 있었고 신입생으로 보이는 수 많은 학생들이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었기 때문에 전단을 붙이기가 어려웠지만 전단을 붙이는 학생들은 손에 입김을 불어넣어 가며 조금이라도 신입생들의 시선을 붙들어 두려고 노력했다. 도헌과 정환은 가까이 가서 게시판을 구경하기로 했다. 게시판에 붙은 홍보용 4절지는 모두 같은 크기였지만 그 안의 카피 문구는 역시 제각각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고등학교시절의 추억을 책임진다는 사진부의 문구나, 남자는 무조건 축구라는 등의 마초적인 문구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도헌의 눈을사로 잡은 것은 밴드부의 전단지였다. 그 전단지를 붙이고 있던 남학생과 여학생은 서로 수고했다고 말하며 그들이 붙여놓은 전단지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통통한 스타일의 남학생은 가져온 가방에 스카치 테입과 가위를 넣고는 검은색 나무재질의 막대기를 꺼내 테입이 붙여진 부분을 다시 한 번 문질러 눌렀다. 도헌은 그 막대기가 드럼스틱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사이 여학생은 뒷꿈치를 여러 번 들어가며 꼼꼼히 전단지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다 된거 같다~!」
여학생은 옆에 있던 남학생의 뒤통수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꾀 큰 키의 여학생 이었기에 남학생이 마치 남동생처럼 느껴졌다. 남학생은 드럼스틱으로 여학생의 손등을 살짝 치며 말했다.
「이제 됐죠 선배...?」
「그래 수고 했어~!」
키 큰 여학생이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남학생의 엉덩이를 치려고 하자 남학생이 잽싸게 피했다. 남학생은 두 개의 드럼스틱으로 엑스자를 그려 여학생에게 보이며 학교 건물쪽으로 뒷걸을 치며 달아났다.
「어쭈~ 이게 피해~ 거기 안서!」
여학생도 곧 남학생을 뒤 따라 갔다. 벤드부의 전단지 위에는 다양한 악기로부터 수 많은 음표가 흘러나오는 그림과 함께 간단한 카피 문구가 적혀 있었다.
‘Be The Muse Fanatics~~'
「뮤즈 패너틱스라...?」
도헌이 전단지에 관심을 보이자 정환은 갑자기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우리 학교 벤드 동호회야. 뮤즈 패너틱스. 작년에 이 지역 학생대회에서 준우 승까지 했다구~.」
「그래...?」
도헌은 작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도시의 학생 밴드 축제에 친구 무현의 초대로 잠시 들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제 때 맞추지 못해서 모든 밴드들의 연주를 듣지도 못하고 대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승을 했던 예원고 유클립스의 앵콜 공연만을 구경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 지역으로 전학을 오게 된 터에 예원고를 택했었던 것이다. 물론 예원고는 대학 진학률이나 학교의 평판이 이 지역에서 최고 명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도헌의 마음속엔 그러한 기억이 예원고를 택하게 된 더 큰 이유였다.
「올핸 분명 우승 할 수 있을 거야!」
정환이 기타를 들어보이는 시늉을 하며 도헌에게 힘주어 말했다.
「얍! 하얏!」
그사이 게시판 끝에선 몇 명의 도복을 입은 남학생들의 기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차가운 운동장 바닥에 메트리스를 깔아놓고 낙법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막 시범을 끝낸 한 남학생이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신입생들에게 외쳤다.
「자! 유도부에 와서 진짜 남자가 되라! 물론 여학생들도 환영 하지만! 흐흐!」
뚱뚱한 체구의 남학생의 호령에 신입생들의 대다수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남학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도헌아 저쪽으로 가볼까? 쟤네 유도부인데 아마 좀 있음 격파 시범도 할 거 야!」
「그래?」
도헌과 정환은 메트리스가 깔린 곳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가운데 남학생은 추운 날씨였지만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어딘가 낮이 익은데...’
도헌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이 남학생은 큰 소리로 신입생들을 향해 외쳤다.
「유도부로 들어오면 적어도 3년간 맞고 다니는 일은 없을 거다~!」
신입생들이 여기 저기서 킥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자 남학생은 잠시 동안 두 눈을 감더니 그의 앞에 5중으로 쌓여져 있던 벽돌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빠직..’
벽돌들은 모두 보기 좋게 두 동강이 났고 학생들 사이에선 커다란 탄성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남학생은 양손을 번쩍 들어 신입생들을 향해 포효 했다.
「자~ 호신술도 몇 개 시범을 보여 줄테니 시범 상대가 될 사람은 이리 나와 봐~」
남학생을 둘러 싸고 있던 학생들을 빙 둘러보던 그와 도헌이 눈이 마주치려 하자 도헌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재빨리 게시판의 전단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와 엄청나다! 그치?」
정환이 게시판을 향하고 있는 도헌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감동스런 눈으로 물었다.
「어... 근데 좀 춥다. 나 먼저 교실로 갈게...」
정환은 남학생의 호신술 시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쉬운 듯 말했다.
「어!? 벌써? 아직 점심시간 많이 남았는데? 조그만 있다 가자? 어?」
하지만 도헌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인기척이 없자 정환은 도헌이 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엥? 뭐야? 이도헌?」
도헌은 벌써 게시판이 있던 곳에서 한 참이나 멀어져 빠른 걸음으로 교실이 있는 건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같이 가!」
정환도 곧 도헌의 뒤를 따랐다. 호신술을 보이던 남학생은 짧은 시간 안에 몇 명의 시범상대를 골라 간단하게 메트 위에 내다 꽂은 후 신입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듣고 서야 시범을 멈추었다. 그러자 다른 유도복을 입고 있던 남학생이 땀을 닦을 손수건을 그에게 갖다 주며 말했다.
「권상현 수고 했어!」
상현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은 뒤 학생들의 무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멀어져가는 정환과 도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거 저거... 닮았단 말이야...」
상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의 수업시간 분위기는 과연 1학년 때와는 달랐다.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의 눈빛은 서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성급해져있었다. 그러나 도헌에겐 오후 시간도 역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직 2주라는 시간이 그의 머릿속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채 지루하게 째깍째깍 흘렀다. 도헌은 수업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마다 간간히 작곡노트를 꺼내어 아침 방송에서 들었던 음악을 떠올리며 음표를 그려 넣었지만 역시 한 번 듣고서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수업이 완전히 끝나자 도헌은 유선생의 종례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달력을 찾아 오늘 날짜에 엑스표를 해두었다.
「13일 남았네...」
저녘을 먹자마자 도헌은 얼마 전 무현으로부터 받은 CD를 씨디플레이어에 넣고서 돌렸다.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사를 따라서 흥얼거리며 가사를 외우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런데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듣고 있는 음악보다는 아침에 잠깐 들었던 아침방송 시간의 기타소리가 어느 새 도헌의 머리 깊숙이 박혀 있었다.
「나중에 알아봐야지... 선곡 하난 끝내 주네...」
그는 기회가 되면 방송반에 들려서 오늘 아침에 들었던 기타 연주곡의 제목을 알아보겠노라고 다짐하며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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