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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0_ANIEzBHvY
1. 공동저자, "이견 묵살당해"
2. 영상 유영익 국편위원장에게 묻다
3. '유신 사무관' 부활?
4. 밀양의 눈물
5.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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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과정에 ‘갈등’ 드러나
-교학사 교과서 공동저자들, ‘이견 제시했지만 묵살당해’
교학사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교사들이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나 집필 과정에서 역사 해석과 관련한 이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저자인 이명희, 권희영 교수는 공동 저자들의 의견도 무시하고 교과서 집필을 일방적으로 진행했고 결국 친일, 독재 미화 등의 역사 왜곡 논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6명의 집필진 가운데 3명의 현직 교사들이 교학사 교과서 저자 명단에서 자신들을 빼달라는 내용 증명을 출판사에 보낸 배경에는 집필 과정에서의 갈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명희 교수는 지난 9월 11일 새누리당 김무성의 의원이 주최한 ‘역사 교실’ 강연에서 “일부 저자들이 교과서 집필을 후회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교학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측의 압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공동저자들을 만나본 결과 검정 통과 이전부터 역사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 집필진들 사이에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A교사는 “교과서 집필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의견이 안 맞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가르치고 생각해 온 것과는 다른 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명희, 권희영 교수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A교사는 주장했다. A교사는 또 “5.18과 노무현 정부 등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문장이 완성됐을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수정할 타이밍을 놓쳤다”며, “교과서가 이렇게 집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집필 과정 참여 자체를 후회했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또 다른 B교사는 교과서 출판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출판사에 저자 이름을 빼달라는 내용 증명을 보냈다는 것으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해 달라”고 토로했다. 이 교사는 “교학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니 제가 죽어서도 남지 않겠냐”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일부 교사들은 교과서를 만들면서 같이 진행하는 자습서 제작 과정에도 아예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명희, 권희영 교수에게 집필 과정의 갈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이들은 통화를 거부했다.
이명희 교수가 재직 중인 공주대의 역사교육과 동문 243명은 “교과서 문제를 이념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명희 교수가 있을 곳은 대학 강단이 아니라 세속 정치의 한 귀퉁이”라며 교수직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교과서 수정을 10월 말까지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집필진 사이의 갈등으로 수정 보완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10월 1일 취임한 유영익 신임 국사편찬위원장의 발언과 논문, 저서 목록을 공개합니다.
아래 '데이터 공개'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논문 및 저서
유영익 신임 국사편찬위원장에 대한 역사인식 논란이 뜨겁다. 그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출신의 역사학자로 다수의 ‘이승만 미화’ 저서를 편찬했다. 역사학계는 그의 역사적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 등 이승만 관련 저서 5권에서 “이승만의 업적은 공이 7, 과가 3”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낸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이승만이 친일파를 등용한 것과 관련하여 ‘이승만은 이런 (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득이 친일파들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뉴스타파는 유 위원장의 논문, 저서들 속에서 이승만과 관련 그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을 발췌 공개하기로 하였다. 또한 시민들이 유 위원장 논란에 대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그의 논문, 저서 목록 전체를 공개하고자 한다.
자료1.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논문, 저서 발췌 내용
no |
내용 |
학술지명 |
발행년도 |
제목 |
페이지 |
1 |
이승만은 사물의 미세한 부분에까지 철저한 파악과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멀리 미래를 투시하는 안목을 가졌던 비상한 인물이었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0p |
2 |
이승만이 이렇게 세목에 대한 '완벽한' 파악과 세계대세에 대한 거시적 판단력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그를 대적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0p |
3 |
이 책을 직접 읽어보는 이는 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이승만의 영작문 실력에 감탄할 것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승만은 당대의 한국인 중에서 영어를 가장 잘 구사했다는 서재필 및 김규식과 동급의 영어, 영문의 대가였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2p |
4 |
그후 미국에 건너간 그는 '짐승과 같은 저열한 상태에 빠진' 한국민을 기독교를 통해 거듭나게 할 목적으로 신학 공부를 곁들여 했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3p |
5 |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할때 그는 유럽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義州를 통해 서울에 도착함으로써 한국인 중 역사상 최초로 북미주대륙, 유럽 및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장거리여행 기록을 세웠다. …(중략)... 이승만이 해방전에 순방하거나 관광했던 나라들의 수와 여행했던 거리를 합산하면 아마도 그는 그 당시까지 한국사람으로서 역사상 최장거리의 여행 기록을 남긴 인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5p |
6 |
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정치적 식견 내지 경력면에서 따져볼 때 동시대 세계 다른 나라의 '대 정치가'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의 잠재력을 앞지르는 '유능한' 정치가였다고 판단된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5p |
7 |
한마디로 이승만은 역사에 보기드문 위재(偉才)였다. 이처럼 유능했던 이승만이 왜 1925년에 상해임시정부로부터 탄핵을 받았으며 또 1948년후 대통령으로서 구인공휴일궤의 궤를 밟았는지는 차원을 달리하여 따로 검토해야 할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
한국논단 |
1996년 |
그는 누구인가 : 세목에 철저하며 거시적 형안 구비한 |
135p |
8 |
이승만이 미 국회도서관에 [독립정신]을 기증한 것은-자가 홍보의 목적 이외에- 미국의 위정자들로 하여금 한국의 독립문제를 결코 잊지 말라는 동기에서 였을 것이다. 새삼 이승만의 주도면밀함과 통찰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
한국논단 |
2004년 |
이승만 전문가 유영익 교수가 말하는 : 우남 이승만의 독립정신론 |
71p |
9 |
이대통령 치하에서 완결된 농지개혁은 조선왕조 건국기에 이성계가 단행했던 과전법 이래 최대의 토지개혁으로서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
한국논단 |
2005년 |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재평가 :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
168p |
10 |
이상과 같이 이대통령 치하에서 이루어진 교육개혁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교육기적'이었다. |
한국논단 |
2005년 |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재평가 :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
170p |
11 |
문맹 퇴치, 과학기술교육의 강조 및 고등교육의 확산 등은 1960년대 이후에 나타나는 '경제기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한국논단 |
2005년 |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재평가 :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
170p |
12 |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은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한 끝에 드디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고야 만' 구약 성경의 인물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필생의 대업이었다. |
한국사 시민강좌 |
2008년 |
이승만, 건국대통령 |
24p |
13 |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림의 축복을 받아낸' 구약 성경의 유명한 인물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임이 틀림 없습니다. |
대한민국 건국60년의 재인식 |
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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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p |
14 |
현재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이승만에 대한 좋은 이야기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중략)... 이것은 한국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따지기 전에 한국교과서 왜곡부터 바로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성결교회와 신학 |
2005년 |
제9회 영익기념강좌 : 이승만과 한국의 기독교 |
31p |
15 |
독립운동을 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데, 진짜 애국자인데 그런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고, 친일파 비호하고 부정선거 한 것만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 이것은 진짜 교과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결교회와 신학 |
2005년 |
제9회 영익기념강좌 : 이승만과 한국의 기독교 |
32p |
16 |
따라서 공산당 색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누가 그것을 하느냐가 문제였습니다. 거기에서 적합한 사람들이 일제시대에 공산당 색출 작업을 했던 일제 경찰의 앞잡이들이였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이승만은 정권을 집권한 후에 공산당이라고 하는 최대의 적을 막아내기 위해 친일파들을 이용한 것입니다. 친일파들을 이용해서 공산당을 응징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성결교회와 신학 |
2005년 |
제9회 영익기념강좌 : 이승만과 한국의 기독교 |
33p |
17 |
하지만 한국은 해방 후 대학수준의 공부를 한 한국인이 1%도 되지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대학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천명도 안 되는 어쩌면 5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해서 다 없애 버리면 남아 있는 전문가나 기술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이런 전문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득이 친일파들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
성결교회와 신학 |
2005년 |
제9회 영익기념강좌 : 이승만과 한국의 기독교 |
34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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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사무관' 부활?
정부가 현역 또는 전역한지 3년 이하의 예비역 장교를 5급 사무관으로 특채, 박정희 군사정권의 잔재인 유신사무관 제도가 부활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신 사무관 제도란 군의 사기 진작과 인사 적체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이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사관학교 출신 대위 전역자를 5급 사무관으로 특별 채용한 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전라북도는 지난 4일 조직개편을 통해 비상대비 업무 담당 사무관 자리를 신설하고, 예비역 소령급 장교를 특채하기로 했다. 전라북도 외에도 다음 달 중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에 비상기획관과 비상업무 담당자 신설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폐지됐던 비상대비 업무가 되살아 난 것.
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전쟁과 테러 등 비상사태와 관련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각 광역단체에 군 장교 출신의 비상계획관 또는 비상대비 업무 담당자를 두도록 했다. 비상계획관은 전시업무 수행과 관련되거나 직장민방위대와 을지연습 등의 업무를 맡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군 출신의 5급 사무관 특채는 유신 사무관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군인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퇴역군인을 위한 일자리 5만개’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장기복무 퇴역군인의 전역 연령이 민간기업의 일반적 퇴직 연령보다 높은데다, 20년 이상 복무한 군인들은 퇴직 후 다음 달부터 수백만 원의 군인연금을 바로 받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퇴역한 대령 395명의 평균 연령은 53세로 이들의 연금수령액은 월 320만원이었다. 원사와 준위 역시 퇴직연령이 53세였고, 이들은 다달이 280만원의 군인연금을 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만 65세가 넘어야 쥐꼬리만한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것과 비교하면 적잖은 특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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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눈물
국회의 중재로 이뤄진 밀양의 평화는 5개월을 못 채웠다.
지난 10월 1일, 한국전력은 밀양 주민들의 ‘대승적 이해’를 촉구하는 대국민 성명과 함께 초고압 송전탑 공사 재개를 강행했고, 때 맞춰 밀양시는 주민들의 움막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이를 막는 주민들은 필사적이었다. 철거반과의 충돌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이 계속 됐지만,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6시간의 긴 싸움 끝에 하루 더 움막을 지킬 수 있었지만 이 싸움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전은 헬기를 이용해 자재를 수송하며 공사를 재개됐다.
주민들은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도로 길목에 농기계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덤’이 될 웅덩이를 팠다. 일부는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움막에 묶었다. 단식 농성 등을 벌이고 있는 고령의 주민들은 이미 건강상태가 매우 악화된 상태다.
양측의 대치는 악화일로지만 한전은 내년 전력공급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이달 안에 공사를 재개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귀 닫은 정부와 한전 앞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의 속은 타 들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밀양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금을 위해 싸운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그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애당초 보상금은 바란 적도 없고 그저 살던 방식 그래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밀양은 묻고 있다. 평생 농군으로 살아온 이들이 황혼에 접어들어 이렇게 목숨 건 투쟁의 현장으로 내몰려야 하는지. 도시의 전력공급을 위해 이들의 삶이 이토록 황폐화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첫댓글 <비상대비 업무 담당 사무관 자리를 신설하고, 예비역 소령급 장교를 특채하기로...
‘퇴역군인을 위한 일자리 5만개’를 국정과제로 추진키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아니 퇴직군인들은 매월 타는 연금이 월 300만원 내외인데
그들을 다시 공무원으로 특채해서 월 300만원가까이 월급을 준다고요.
그것도 5급 사무관급으로.
취직을 못해서 대학졸업을 미루는 아이들이 수두룩하고, 석박사 학위가지고도 백수인 사람들이 널린 이 나라에서
퇴직군인을 다시 특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것도 비상대비업무라는 일을 맡을 거라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상이 걸린 곳은 청와대인줄 모르고 무엇을 위한 비상대비인지...
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