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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안동문학 글로 세운 집 원문보기 글쓴이: 노을고개
제 2회 아시아 시낭송회
일시 : 2005년 9월 3일 17시~4일 17시
장소 : 도산청소년수련원(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주최 : 아시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주관 : 민족문학작가회의 안동지부. 시평사
후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협찬 : 매일신문. (주)안동간고등어.
제 2회 아시아 시 낭송회 일정표
시간별
9월 3일(토요일)
15:00
도산청소년수련원 도착
방배정, 세면, 등록 등
18:00
저녁식사
19:00
시낭송
캠프파이어
소공연
취침
9월 4일(일요일)
07:00
이육사 시 <절정>무대
칼선대 산행
09:00
식사
여장 챙기고 출발
11:00
월영교 답교 및 광야시비
12:00
안동칼국수(옥동손국수)
하회마을 도착
14:50
하회마을 관광
15:00
하회탈춤공연 관람
16:00
해산
프로그램
사회-김종태
개회선언
여는 시
이육사의「광야」- 낭송 김용주
여는 노래
이종훈(성악가) - 가곡 ‘산들바람’
제1부
시낭송
유안진/깜빡잠이 읽고 갔다
정호승/물고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
손세실리아/얼음호수
박제영/가령과 설령
강기원/나는 그를 나무라고 부르고 그는 나, 無라고 부른다
색소폰 연주 엄영달
시낭송
김미현/그대에게 가는 길
김금숙/상사화
김윤한/독도 아침해
권석창/ 몸성히 잘 있거라
박남준/영도다리 금강산철학관
노래 안기숙
초청시인 혼다 히사시(本多 壽)와 함께 -- 통역 한성례 시인
메시지「손가락 끝의 원어 읽기」메시지 낭독
시 낭송「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서」「참새」
혼다 히사시 시인의 딸 혼다 스기나의 아버지 시 낭송「봄날의 천둥」
질의 응답
제2부
가야금 연주
한미례/안동팔경
선어대 - 작자미상의 여덟줄로 된 한시를 국악곡으로 만든곡 중 한 곡으로 가야금 18현 독주곡, 선어대에서 바라본 풍경을 나타낸 곡으로 은어놀음과 해지는 노을을 잔잔하게 표현한 곡
어린이 시 낭송
김우현(8. 서울) - 이육사「청포도」
몽골 여성 시 일. 을찌터그스(L. Yljjitygc)
「무제」- 낭송 이꽃분
베트남 반미시 팜 띠엔 주엇(Pham Tien Duat)
「동 쯔엉선, 서 쯔엉선」- 낭송 임두고
베트남 유학생 정해연의 베트남 노래와 그의 친구의 시 낭송
중국 여성시인 왕샤오니(王小瀕)
「달빛이 미치도록 희다」- 낭송 강수완
타이완 시 바이링(白靈)
「용선(龍船) 경주」- 해협 양안(兩岸)의 가능성에 관한 경주- 낭송 이위발
소문학 강연
일본문학에 관한 이야기- 호소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
현해탄 관련 시 사이토 마모루(?藤?)
「관부연락선」- 낭송 김지섭
동포시인 조남철(趙南哲)
「방석」- 낭송 이정도
노래- 위대권
인사말
아시아 시낭송회를 열며
아시아 시인과 시의 축제인 제2회 ‘아시아 시 낭송회’를 이육사 이인의 고장 안동에서 열게 되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행사는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시를 노래하는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끈끈한 평화연대를 열어가는 시와 시인의 축전입니다. 가장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의 혼다 히사시(本多 壽) 시인이 직접 참가하여 시낭송과 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유안진, 정호승, 최영철, 박남준, 홍용희 등 많은 국내 문인들과 백제의 왕손으로 알려져 있는 소설가 요시다 다카시(吉田 卓), 한글과 한국어로 쓰고 말하는 세종대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교수 등이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몽골 여성시인 일. 을찌터그스(L. Yljjitygc)를 비롯해서 베트남, 중국, 타이완, 재외 동포 시인들의 시를 낭송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각국의 시인들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꿈꾸며 살아가는지, 무엇을 소통하고자 하는지 그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입니다. 참석해 주신 모든 시인, 독자, 공연 참가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이런 아름다운 축제를 여는 공간 또한 의미가 남다릅니다. 도산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은 한국시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육사 시인의 고향 마을입니다. 비록 그의 생가는 안동댐 수몰로 인해 자리를 옮겨 앉았지만, 그의 시심을 형성한 고향의 산과 강, 인심은 아직도 여일한 곳입니다. 시는 곧 행동이라는 금강심을 가슴에 새기며 시와 삶을 늘 하나로 보듬고 실천적인 삶, 행동하는 삶을 살았던 그의 고향은 각별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했던가요. 오늘이 음력 7월 마지막 날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좋은 날은 광복은 음력 칠월에 왔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 그의 고향에서 많은 시인들을 손님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리는 소박할지는 몰라도 정성된 마음으로 준비하였으니 마음껏 시와 노래를 함께 하며 좋은 시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아시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 전문 계간지『시평』, 그리고 이 행사를 후원하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지역에서 도움을 주신 향토업체 안동간고등어, 그리고 이런저런 도움을 주신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9월 3일
아시아시를사랑하는사람들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안동지부 회원 일동
여는 시 (낭송 김용주)
曠野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깜박잠이 읽고 갔다
유안진
책 속에서 잠이 새어나왔다
처음에는 한두 가닥이다가, 마침내는 쏟아졌다
글자옷을 입은 새까만 잠떼가
성난 벌떼처럼 달라붙었다
잠떼가 대신 읽어갔다
죽었던 글자들이 활자(活字)들로 살아나서
거침없이 설치고 다니며 서사(敍事)를 건축했다
황소뿔도 물러빠진다는 삼복 여름을 건축했다
태양과 물과 녹음의 누드를
위대한 이들은 어찌 보면 더없이 멍청했고
사랑도 어찌 보면 부푼 풍선 같은 허영이라고
거침없이 까발겼다
맞다 맞아
손뼉이 서로를 치고 박는 소리에 놀랐는지
뿔 잃은 황소가 달려들었다
비명을 지르며 잠떼가 달아나버렸다
읽은 내용을 몽땅 갖고 가버렸다
미쳐 못 신고 간 신발 두 짝만 남았다
오독(誤讀)이라는.
유안진 경북 안동 출생. 1965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누이』 등이 있음.
물고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
정호승
물고기들이 물 속에서
물을 먹지 못하고
둥둥 떠내려갈 때
깊은 바다
바닥이 없는 바다의 물고기들이
물 속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결국은 엄마를 잃고 모든 물고기들이
물 속에서 목이 마를 때도
급히 브래지어를 밀쳐 올리고
물고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
젊은 엄마처럼
튼튼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물고기에게 젖을 먹이는 그 여자
망망한 바다
갈매기도 없는 바다의
물고기들이 수평선에 목이 걸려 죽어갈 때에도
수평선을 풀어 주고
하루 종일 젖을 먹이는 그 여자
나 그 여자에게 다가가
젖 달라고 우네
아기처럼
정호승 대구 출생. 1973년 대한일보로 등단. 시집『서울의 예수』등이 있음.
얼음 호수
손세실리아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封해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손세실리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사람의문학』으로 등단.
가령과 설령
박제영
가령
이것이 시다, 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 라고 씌어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박제영 강원도 춘천출생. 1992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푸르른 소멸-플라스틱 플라
워』가 있음
나는 그를 나무라고 부르고 그는 나, 無라고 부른다
강기원
바람 부는 겨울 저녁
집을 나선다
석양빛 털을 가진
두 귀 축 늘어진 개와 함께
주위가 잠시 밝아지는 듯하여
시계를 본다 하지만
어둠은 갑자기 몰려올 것이다
운명하기 며칠 전 돌아오는
화색和色 따위의 것
고개 든 순한 짐승의
두 눈 속으로 태양이 진다
바람 몹시 불어
큰 나무 아래로 간다
눈을 감으니
아득한 곳에서 울려오는 종소리
나무가 떨구는 나뭇잎이
내 몸에 와 고스란히 박힌다
앞서 갔던 녀석이 돌아와
발치에 감겨 눈을 뜬다
석양에 등 대고 선 나무의 수많은 잎들
그런 날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앙상한 가지뿐이다
강기원 서울 출생. 1997년『세계문학』으로 등단. 시집『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가 있음.
그대에게 가는 길
김 미 현
그대에게 가는 길
꽃들이, 바위들이
억겁의 동백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강철 겨울을 뚫은
그대의 심장
어둠을 밝히는
고원의 깃발로 펄럭입니다.
천고의 뒤를 맹서한
그대의 노래
천지를 흔드는
함성으로 살아납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
강들이, 나무들이
언 강 녹이고
썩은 가지 도려내길
뜨거운 목마름으로
다시 출렁입니다.
1966년 경북 안동 출생. 민족문학작가회의 안동지부 회원. 현 풍천중학교 교사. 경북여성백일장 차상(2001년), 교원문예대회 금상(2002. 2003).
독도 아침해
김윤한
흘러내리던 용암이 채 식기도 전부터 섬은 부지런히 이끼들과 하늘나리, 닭뿌리풀 같은 풀들을 키웠습니다.
마침내 갯패랭이꽃을 피웠고 괭이갈매기 알들도 해마다 대를 이어 깨어나 소란스레 울어댔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섬은 말이 없습니다. 바닷물이 연신 겨드랑이를 흔들지만 묵묵히 서 있기만 합니다.
이윽고 독도에도 밤이 찾아오고 바람에 휘파람 불던 해송들도 나무에 앉은 슴새도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닷속에는 독도의 거대한 산맥들이 파도와 싸우며 부지런히 둥근 해를 품어 키웁니다.
오징어, 명태, 새우의 무리들도 쉬지 않고 산골짜기를 오가며 부지런히 아침을 맞을 채비를 합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섬은 밤새도록 다듬었던 눈부신 해를 머리 위로 힘차게 밀어 올립니다.
그 아침해는 그 때부터 울진이나 구룡포, 청진, 함흥 같은 정겨운 우리 땅들을 차례로 비추기 시작합니다.
천 년 전부터 그랬듯이 사람들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 동쪽 하늘 아침해를 향해 힘차게 기지개를 켭니다.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는 『세느강 시대』가 있다.
몸 성히 잘 있거라 / 권석창
자주 가던 소주 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 성히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 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 성히 잘 있거라.
경북 순흥 출생. 안동교대, 대구대 대학원(문학박사). 1977년 조선신춘 <벌판에서 당선>. 1988년 시집 『눈물반응』, 2005년 시집『쥐뿔의 노래』
영도다리 금강산 철학관
박남준
지금은 늙고 병들어 일으켜 몸 세울 수 없는 영도다리
그 아래 올망졸망 비닐덮개 낡은 차일을 치고
케케묵은 포장마차들이 판을 벌이고 있다
허름한 빈대떡과 삶은 달걀과
졸고 졸아 몇 탕을 끓였을까 멀건 홍합국물과
이 나라 구멍난 주머니에 얻어터져 잔뜩 불은 국수 가락들 사이에
1.4 후퇴 때 건너 왔는가
사주 관상 택일 금강산 철학관
30년 전통이라는 때 절은 흰색 페인트칠 간판
늙고도 늙었다 빛 바랜 그 글씨
거기 때로 집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안부가 불려나왔으리라
너덜너덜한 신세들이 접고 접은 괴춤의 푼돈을 꺼냈으리라
엎어지고 자빠진 팔자타령을 풀어놓았으리라
손바닥만한 금강산 그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검은 안경을 쓴 점쟁이 할머니가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옹알거리는 아이처럼 모로 누워 있는데
한번쯤 나 또한 문을 열고 싶었다
모질고 험한 세상의 일을 묻고도 싶었다
영도다리 푸른 물 너머 문득 금강산
굳세어라 금순이의 바람찬 흥남부두
머나 먼 땅의 소식도 물어보고 싶었다
1957년 전남 법성포 출생. 1984년 『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등이 있다.
‘제2회 아시아 시 낭송회’ 초청 시인 혼다 히사시(本多?) 대표시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외 2편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가 달려왔다
그 뒤를 이러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 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여놓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死産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 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드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고 있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봄날의 천둥
당신이 내리친 빛의 채직을 맞고
땅에 묻혔던 말이 힘차게 운다
다인은
몸을 돌려 채찍으로 꽃을 내리친다
흩어지는 꽃잎이
임종의 순간을 비춘다
그 한 순간의 밝은 빛 속으로
말은 풀을 뜯고 있다
꽃잎이 땅에 진다
말은 이제 없다
나는 불러본다
이름이 붙여지기도 전에
이미
모태에서 해체된 채 끌려나와 땅에 묻힌 말을
그러자
등에* 울음소리보다 작은
하늘로 사라져가는 내 목소리에 응답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당신이 내리친 빛의 채찍을 맞고
말이 힘차게 운다
참새
이제 지구는 한 개의 핵폭탄이다
이러한 사념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막 잘라낸 삼나무의 새 그루터기에 앉아
하늘 끝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잔상
수직의 빈 틈새로 가득 찬 빛을 응시하고 있자니
흩어진 참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일으킨
푸른 대기의 잔물결로도
이 별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만약 지구가 산산이 부서져
그 물보라가 태양계에 무지개를 걸어놓는다면
설령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도 그것을
조사弔辭처럼 읽고 있는 자를
신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 소리가 은하를 흘러서 언젠가
그 소리의 부름으로 태어날
새로운 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백사장에
화살표 같은 작은 발자국이 있어 그것을
지나간 먼 세상의 참새의 발자취라고 상상하는 일은
죄가 아닐지 모른다
‘제2회 아시아 시 낭송회’ 초청 시인 메세지
쓴다는 것, 그리고 읽는다는 것
혼다 히사시(本多?)
시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한다는 것의 갈증, 외로움, 슬픔, 아픔 등과 같은 심층의 감정을 말을 통해 표현하려는 행위일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하려는 사람은 이 갈증, 외로움, 슬픔, 아픔 등에 끊임없이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미묘한 심층의 감정은 쉽사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명한 일이지만, 선험적(先驗的)인 언어로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자기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자신의 존재에 앞서 존재하는 말로써 그것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다만 세상이 그렇듯이, 자신의 존재도 말만으로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말만으로 되어 있지 않는 세계를 사는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도 역시 말만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 표현으로서의 시도 마찬가지로 말만으로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예를 들면 음악이 소리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침묵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도 알 수 있다. 또한 회화나 조각도 색채나 선이나 면으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여백이 크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 또한 본래 실용적과 합목적성(合目的性)을 갖춘 말의 범주를 넘어서 말하기 어려운 세계를 개시(開示)하는 것이어야 한다.
말을 몰아가면서, 단순한 말을 넘어선 곳에 있는 심층의 미묘한 감정을 전하려는 행위, 그것이 시를 쓴다는 것이다.
‘불립 문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말 그대로 ‘시’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서 말이 되지 않는 것을 표현하려는, 절대적으로 모순인 행위가 시작 행위라고 한다면, 시어는 결국 심층의 미묘한 감정을 “그래, 그거야.” “이봐요, 저기 보이잖아.” 라고 지시하는 궁극의 지시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좀더 말하면, 쓰인 작품 속에 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속에 잠복하고 있는 손가락 끝이 지시하는 곳에 바로 시가 있다. 시와 말의 관계는 아마도 그러한 것이리라.
말하자면, 가리키게 됨으로서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작품 속에 시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숨겨져 있지 않으면 “응.”이라고 독자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쓰는 이가 작품 속에 손가락을 숨겨서 가리키고 있다고 믿어도, 진정으로 시를 지지하는 손가락이 숨겨져 있지 않은 작품이라면 거기서 시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시를 가리키려면 쓰는 이에게 뚜렷이 시가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보여야만 비로소 가리킬 수가 있는 것이다.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시에는 이 가리키는 손가락이 없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다. 이것은 독자의 문제라기보다 쓰는 이에게 문제가 있다. 좋은 작품, 뛰어난 작품에는 반드시 이 손가락이 숨겨져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실은 이 손가락 끝을 창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시와의 무한 대화에 대한 보고서가 시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시를 읽는 것에 대한 얘기로 바뀌는데, 일본어로는 ‘읽는다’라는 말의 어원은 ‘부른다’이다.
이미 쓰인 텍스트로서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그 시에 숨긴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것에 새로이 호소하고, 호출하여 그것을 청중에 제시해서 느끼게 해 주는 행위이다.
시인이 시를 쓸 때, 말을 통해 마주한 갈증, 외로움, 슬픔, 아픔 등을 이번에는 소리를 통해 청중과 함께 마주하는 것이다.
소리라는 것은 결국 음이다. 발생함과 동시에 사라져 가는 음이다. 그러나 그 음은 시인의 갈증, 외로움, 슬픔, 아픔을 걸쳐 입고 청중의 귀에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음악이 혹은 노래가 언어를 초월해서 청중의 귀에 흘러들어가듯이.
니체의 말인지 체홉의 말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통상어로서 원어를 울리게 해라,”라는 구절을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원어’란, 예를 들면 나라마다의 다른 말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근원적인 말이라는 뜻이다. 즉,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도 이해될 수 있는 말을 ‘원어’라고 말한다고 생각한다. 이 ‘원어’, 즉 근원어야말로 ‘시’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시작이란 먼저 자신의 속 깊은 곳에 있는 갈증, 외로움, 슬픔, 아픔을 말로 번역하는 일이다. 번역된 말이 한국어든 중국어든 혹은 몽고어든 시의 바닥에 있는 것이 시인 각자의 갈증, 외로움, 슬픔, 아픔이라면 그것은 소리를 통해서 혹은 번역된 말을 통해서 읽는 사람, 듣는 사람의 가슴에 반드시 가닿을 것이다.
시인이 연대하는 곳은 표면적인 나라나 말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사랑에 뿌리를 내린 근원적인 ‘시’가 있는 장소이다. 아시아 시낭송회를 기획하고 나를 초청한 시평의 고형렬 씨도 이 같은 장소의 창설을 희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시와 연대하고 시인과 연대하고 싶다
한성례 옮김
혼다 히사시(本多?) 1947년 미야자키(宮崎)현 출생. 1991년 시 「바다의 말(馬)」로 제1회 이토 세이유(伊東?雄)상 수상. 1992년 시집『과수원』으로 제42회 H씨상 수상. 시집『피뢰침』『말(馬)·진혼제』『성몽담』『양지』『불의 관』『가시』『재와 불과 수묵과 그림자와』『햇빛의 정원-무한대화』에세이집『시에서 시로』평론집『작은 여운-시와 일상과』영역시집『Tales of Holy Dreams』핀란드어 시집『성몽담』화가이기도 하여 수차례 미술전시회를 개최함. 현재 미야자키의 산속에 소재한 출판사 '혼다기획'의 대표이고, 시 잡지『노기(禾)』를 주재하고 있다.
한성례(韓成禮) 1955년생. 세종대학교 일어일문과 졸업. 1986년『시와 의식』 신인상, 1994년 ‘허난설헌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는『실험실의 미인』일본어시집『감색치마폭의 하늘은』번역서로는『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자살보다 섹스』『단 하나의 보물』등 다수. 기획번역서 ‘한일전후세대 100인 시선집’『푸른 그리움』과 ‘21세기 한일신예시인 100인 시선집’『새로운 바람』을 한일 양국어로 번역.
어린이 시낭송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아시아 낭송시
몽골 여성 시
일. 을찌터그스(L. Yljjitygc)
무제
세상의 끝에 있는
나무 다리 위에
거대한
달이 빛난다.
그곳에는
풀도 물소리도 없고
짐승과
새의 발자취도 없다.
깊은 정적만이 이곳을
지배하고,
깊은 밤으로
새벽이 밝아온다.
오랜 세월 쌓인
나뭇잎에 눌려 고개를 떨군
먼 옛날의
나무들은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침묵의 끝에 있는
나무 다리에
습기 있는 저녁으로 나는
가끔 가곤 한다.
떨고 있던 어슴푸레한
빛으로 희미하게 깜박이며
수줍어하는 외로운
등불에 허리 굽혀 인사한다.
부드러운 달
빛이 물결치게 한
따스한 물에
시선을 흘리며
사계는
다섯번째 계절의
등자 소리를
귀기울여 기다리며 앉아 있다.
- 이안나 옮김
일. 을찌터그스(L. Yljjitygc) 1972년 다르항 시에서 출생. 1995년 몽골 지식대학을 졸업했다. ‘냠 가릭(일요일)’이라는 신문 기자로 있을 때 ‘어치그더르(어제)’ 신문을 만들어 독자적인 활동을 했다. 그녀는 현대 모더니즘의 기수로 몽골의 전통적인 시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시를 창작하고 있다. 그의 시는 상징성이 풍부하고, 철학적인 사고를 현대적인 시감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현대 여성시인으로 평가된다. 시집으로 『앞선 예조』(1995)『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들』(2000)가 있으며 시·수필집『자유가 있는 예술, 새로운 책』(2002) 단편집 『안경에 남은 그림들』(2004) 등의 작품집이 있다.
이안나 서울 출생. 성균관대 철학과. 상명대학 사법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졸업. 몽골로 유학하여 2003년 몽골과학아카데미 어문학연구소에서「한국과 몽골의 구비문학에 나타난 동물 상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음. 현재 울란바타르대학 한국어학 과장. 저서『몽골민족의 기원신화』등이 있으며 2003년 문학과지성사에서『몽골의 현대시인서』을 간행함.
베트남 반미시
동 쯔엉선, 서 쯔엉선
팜 띠엔 주엇(Pham Tien Duat)
쯔엉선 산꼭대기에 같이 해먹을 걸었지만
둘은 각각의 산꼭대기로 멀어져 있고
전쟁터로 나가는 이 계절은 아름답기만 하다
동 쯔엉선은 서 쯔엉선을 그리워한다
한 산맥에 있지만 구름도 두 색이다
이곳은 비, 저곳은 햇빛, 공기도 다르다
너와 나처럼, 남과 북처럼
한 산맥의 줄기인 동, 서 쯔엉선처럼
나는 서 쯔엉선으로 가면서, 비 오는
그곳에서 쌀을 나르고 있을 너를 그리워한다
심산의 모기는 옷소매를 내리게 하고
야채도 떨어졌다, 네가 죽순이라도 가져올 수 있니?
저는 겨울 서쪽의 당신이 안타깝습니다
그곳은 물이 마르고, 나비떼가 바위 틈새로 파고들지요
당신이 낯선 남쪽을 사랑함을 알기에
저는 도로의 지뢰를 제거합니다
내가 차에 오를 때 비가 쏟아졌고
브러시는 그리움을 쓸어내렸다
제가 산에 내려올 때는 아주 맑았고
나뭇가지가 제 심사를 쓸어갔지요
동에서 서로 가는 길은
탄약과 쌀을 나르는 길은 아니며
동 쯔엉선의 준비된 여인
의 파란 옷
서 쯔엉선의 군복 역시 파랗다
너 있는 곳에서 여기로 온
층층이 이어진 군대는 전장으로 나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랑의 말처럼
동 쯔엉선은 서 쯔엉선과 이어졌다
- 배양수 옮김
팜 띠엔 주엇(Pham Tien Duat: 1941-현재) 하노이 서북쪽 푸터 성에서 태어나서 하노이에서 공부를 했다. 아버지는 한학과 불어를 가르치는 선생을 했고, 어머니는 농사를 지었다. 하노이 사범대 문과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여 호치민 루트 상에서 시를 썼으며, 1970년부터 문인회의 회원이 되었다. 1970년 주간 문예지의 시부문상을 수상하였고 현재는 문인회 대외분과 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동년배보다 키가 크고 마른편이며, 머리는 올백, 흰 구두, 흰 바지에 검은색 자켓, 빨간 넥타이 차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띈다.
작품집: 달무리(1970), 두 산(1981), 불길(1996), 포탄소리와 사찰의 종소리(1997) 등이 있다.
배양수 한국외국어대학 베트남어과 졸업 후 베트남 하노이사범대 국문과 어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부산외대 동양어대 베트남어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판보이쩌우와 동유운동의 의미」「도이머이 이후의 베트남 소설에서의 관념 변화」외 다수가 있으며, 공저 『동남아의 인간과 문화』역서『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춘향전』이 있으며 18세기 중엽의 베트남 반전장시『원정군 아내의 노래- 정부음곡』등 이 있음.
중국 여성시인
달빛이 미치도록 희다
왕샤오니(王小瀕)
달빛이 깊은 밤 모든 뼈마디를 비추고 있다.
나는 청백(靑白)의 숨결을 빨아들인다.
인간의 작고 자질구레한 살과 털은
추락하는 반딧불이로 변한다.
도시는 죽어버린 뼈대이다.
도시는 생명이 없어서
이처럼 순수한 밤 풍경에 잘 어울린다.
창문의 커튼을 열면
천지는 내 눈앞에서 백은(白銀)과 교접하고 있고
달빛은 나로 하여금 내가 사람임을 잊게 만든다
생명의 마지막 일막이
하얀 빛깔 속에 조용히 펼쳐지고
달빛이 땅바닥으로 내려오면
나의 두 발은 이미 하얗게 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왕샤오니(王小瀕) 1955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출생. 문화대혁명 후기에 농촌으로 하방되었다가 1981년에 지린대학 중문과를 졸업했다. 1975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초기 몽롱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나의 시선(詩選)』 『나의 아득한 세상』 등이 있다.
타이완 시
용선(龍船) 경주
- 해협 양안(兩岸)의 가능성에 관한 경주
바이링(白靈)
물귀신은 종욱(鍾旭)에게 주어 처리하게 하고
번화함을 기다리는 눈은
양안(兩岸)에게 주어 배열하게 하라
천년에 한번이라 다시 오기 어려운 이 경주는
전쟁이다, 아니, 경쟁이다
감춰진 총은 걷어버리고 나무로 만든 노를 젓자
수뢰(水雷)로 제사 올릴 필요는 없지만 고기 종자(陰子)로는 제사를 올리자
우리는 이 배에 있고 그들은 저 배에 있다
예전의 적이 이제는 맞수이다
모두들 똑같은 수로로 배를 젓는다
속도가 빨라질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목표를 바꾸진 않는다
우리가 모는 용선에는 벽사(避邪)의 토템이 그려져 있고
그들은 귀왕(鬼王)의 세심한 보살핌을 갖고 있다
쓰려면 조상들이 물려준 기술만 쓰고
겨루려면 용종(龍種)의 의지만 겨루자
이기고 지는 건 마지막 한 구간을 누가 먼저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만 둘 생각하지 말고 요행을 바라지도 말자
수족(水族)이 수시로 배를 뚫어대고 조상들이 만대에 저주를 내릴 것이다
애기(艾旗)가 하늘에서 혼을 부르고 창포검이 허공을 갈라 목을 칠 것이다
천년에 단 한번 열리는 이 경주에서
웅황(雄黃)을 마시고 운수와 기운은 장명루(長命縷)에 맡기자
몸과 허리를 낮추면 나무로 만든 노가 손에 들린다
대고전(大鼓殿) 뒤에서 동라(銅兒)가 길을 인도하고
선체의 복부는 이미 물에 찰싹 달라붙었다
고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이 경주를
역대의 열종열조(列宗列祖)들이 지켜보고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TV로 보고 있다
십억 쌍의 눈동자들이 용의 두 눈에 불을 붙일 때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하늘을 울릴 때
만 개의 손이 일제히 하늘을 향하고 거대한 머리를 가진 두 마리 지네가
아니, 두 마리 수룡(水龍)이, 물을 가르고 솟아오를 것이다
온 백성이 환호하고, 흥성의 기운이 양안에 가득한 가운데
용의 머리가 앞길을 인도할 것이다
- 김태성 옮김
바이링(白靈) 푸지엔(福建)성 후이안(惠安) 출신으로 1951년에 태어났다. 현재 국립타이완과기(科技)대학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도시선(年度詩選)』 편집위원이며 지난 6년간 『타이완시학』의 주간으로 일한 바 있다. 양스치우(梁實秋)문학상 산문상, 중산(中山)문학상, 국가문학상 등 10여개 대형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시집 『바이링세기시선』 『후예』 『대황하(大黃河)』 등과 시론집 『시의 탄생』 『시의 유혹』 『연화와 샘물』 등이 있다.
김태성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 졸업.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중국의 젊은 시인군들을 본격적으로『시평』에 소개하고 있음. 중국의 최고 여성시인 수팅(舒碗) 연구가로 유명하다. 2004년 9월 수팅 시인을 직접 초청하여 충북 영동에서 시 낭송회를 개최함. 현재 한성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문화혁명기의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한 몽롱파 천재 시인 꾸청을 소개함. 수팅시선집 『상수리나무에게』 꾸청시선집 『나는 제멋대로야』 외에 20여종의 중국 문화서를 번역함. 현재 한국외대 등에 출강함.
현해탄 관련 시
관부연락선
사이토 마모루(?藤?)
검고 거대한 철문이 열리자
우리는 부두에서부터 개미처럼 무리지어 움직였다
트랩을 올라 홀에 들어가면
나는 언제나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서야 했다
출신지는? 고향은? 행선지는?
표를 보이고 학생증을 보이고 나는 입을 다문다
트렁크 속을 ‘특별 고등경찰’의 손이 휘젓는다
위장이 쑤셔 나는 어두운 전등에서 눈을 피한다
출발을 알리는 징이 울리고 스크루가 돌고
배는 밤바다를 향해 불을 끄고 나아가기 시작한다
배 아래의 삼등 객실에 몸을 움츠리고
나는 어뢰가 숨겨진 바다의 겨울 추위에 눈을 감는다
나라가 망하고 난민으로서 부산의 불빛을 응시하던 날
나는 한 사람의 ‘왜놈’이었다
헝겊 조각에 적힌 귀국 번호가 바람에 펄럭이고
내 삶의 모든 시간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꿈에서조차 닫혀 있던 현해탄의 땅거미를
어렴풋이 봄 냄새 섞인 바람이 덮어가고
조선 글자가 새겨진 연락선이 미끄러져 간다
아아, 저것은 백제 관음상의 내 고향의 배
먼 옛날의 우정에서 피어난 보라색의 무궁화였다
사이토 마모루(?藤?) 1924년 서울 출생. 1944년 경성제국대학교 의학부 입학. 일본이 망하여 1945년 12월 구마모토(熊本)현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철도국 관리였으므로 서울에서 태어나 청년시절까지 살았다. 돌아가신 ‘구상’ 시인과는 같은 대학을 다녔던 절친한 친구였다. 그 외에도 한국을 무척 사랑하여 김광림 시인 등과도 가깝게 교류해왔다. 1949년『시학』으로 등단. 조선을 테마로 한 시를 많이 썼다. 시집『장례행렬』『그림자밟기』『어두운 바다』『한강의 푸른 하늘』한국어 시집 『청진의 아이들도 늙었겠지요』(김광림 번역) 등이 있다.
동포 시인
방석
조남철(趙南哲)
당신은 앉아 있었습니다
엉성한 가건물 안 어둠속에 오도카니
두꺼운 방석 위에 풀이나 나무처럼
떠 있는 듯 희뿌옇게 앉아 있었습니다
당신은 다 빠져나간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어내렸습니다
병들어 얼굴색은 납인형 같았지요
흐릿한 눈동자를 움직이지도 않고 다 빠져버린 이로
나를 향해 히쭉 웃는 당신을 보고
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란 존재가 무서웠습니다
기분이 나쁘고 이상하고 그냥 무서웠습니다
어느 날인가 당신이
뼈만 남은 몸으로 앉아 있던
그 흔적이 묻은 방석만 남기고
사라졌을 때 나는 안도했던 것입니다
사슬에서 풀려난 것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당신이 피폭자였다는 것을 나는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당신이 결혼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는 컸습니다 함부로
어둠이 무서워서 몸을 떠는 소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내가 당신을 만나면 무서워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떨리는 손을 잡고
썩어 문드러진 뺨을 문질러 뼈까지 부어오른
당신의 몸을 꼭 껴안을 수 있을까요
아아, 나는 당신과 같은 민족의 피를 받고 태어났는데
당신의 시체는 동네 나무의 거름이 되었는데
당신을 무서워한 나를 용서해주실까요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당신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성례 옮김
조남철(趙南哲) 1955년 히로시마 출생. 재일동포 3세로 고등학교까지 히로시마의 일본학교를 다녔고 조총련계의 조선대학교를 졸업했다. 시집『연작시, 바람의 조선』『나무의 동네』『따뜻한 물』시화집『굿바이 아메리카』번역서『광주 사람들』이 있음. 신문기자, 대학 강사를 거쳐 출판사 근무. 현재, 도쿄에 거주함.
한성례(韓成禮) 세종대학교 일어일문과 졸업. 1986년『시와 의식』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4년 ‘허난설헌 문학상’ 수상. 시집으로는『실험실의 미인』일본어 시집『감색치마폭의 하늘은』등. 번역서로『방황의 계절』『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은하철도의 밤』『자살보다 섹스』『단 하나의 보물』등 다수가 있음. ‘한일 전후세대 100인 시선집’『푸른 그리움』과 ‘21세기 한일 신예시인 100인 시선집’『새로운 바람』을 한일 양국어로 번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