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장 서는 날 (1편)
/ 모네타
5일마다 열리는 해남군 해남읍
큰 장이 서는 날이다
해순씨는 어제부터 집안 곳곳을 샅샅히 살피며
정리한 목록을 만들었다
이번 5일장은 군에서 직접 주관하는
특별한 장으로 5일 동안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리고
군에서 전국 각지 명산품이
산출되는 곳으로 협조 공문을 보내
참석하는 곳이 많고
여러 종류의 농산물도 풍성하다
군에서는 해남장의 홍보와
군민들을 위한 음악회도 준비하여
장터 한가운데
커다란 무대를 설치하였다
음악은 군내 나이트클럽에서
밴드와 가수를 찬조받기로 하였고
서울에서 ‘싸아악’ 맛이 약간 가
출연료가 떨어지는 삼류 가수 2명 정도를
부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욕심 많은 민선 군수가
3선을 위한 특별 이벤트로
장 마지막 날 군민 가요가창대회가
성대하게 열리도록 계획되어 있다
군에서는 각 마을마다 협조 공문을 보내
마을 이장이 추천하는
동네가수 한 명씩을 받아
가요경연대회에 출전시키고
입상한 가수에게는 푸짐한 선물과
군행사 때 특별초빙 가수로 초청,
입상자의 위상도 높여주기로 하였다
물론 1년 동안의 제한된 기간이지만
모든 주민들의 선망의 눈초리와
우러름은 어깨를 으쑥하게 할 것이다
해순씨는 야밤에 이장댁에게
신탄진 담배 한 보루와 고구마 서말을
몰래 갖다 주고 이장의 추천장을 받았다
물론 아무도 몰래 한 짓이다
누구보다도 정보가 한 발 빨라 일찍
손을 쓴 셈이다
그렇다고 해순이가 노래를 못하는
음치는 아니고 마을에서도 꽤나 인정해주는
노래 솜씨를 가졌다
간혹 마을 주민들의 마을 회관 모임 땐
늘 먼저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건
해순씨이었다
마을 회관에 설치된 노래방기기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 해순씨가 군 노래자랑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원래 일이란
멍석을 깔아놓으면 뜻하지 않게 복병을
만나기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해순이 아줌마는 아침부터
‘뿅뿅’ 삼푸로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1시간동안이나 다듬고있다
뿅뿅 삼푸는 아주 비싼 것으로
해순이 아줌마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작심하고 쓰는 물품이다
어느 정도 머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옷장문을 열어 행사에 맞는
멋지고 야한 옷을 고른다
이 옷을 입어보고 저 옷을 건드려보고
옷입기를 2시간 남짓
해순이 아줌마는 빨간 펜티와 브라자를
입고 치마는 검정 단스 치마
상의는 가슴이 훤하게 드러나보이고
속이 약간 비치는 흰색 부라우스를 입는다
다리에는 살색 스타킹을 신고
프랑스제 향수를 겨드랑이와 가슴주위에
뿌리고 검정 뽀쪽구두를 신고
장터로 갈려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처음 시작되는 장날
해남읍내 천일관옆 개천을 따라 마련된
장터는 오만가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주인을 기다리고
건너편 상설매장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놓여있다
장날이라 각지에서 온
장삿꾼보다 물건들을 많이 팔려면
수도 많아야하고 종류도 다양해야한다
해순씨는 집을 나와 곧장 버스 정류장으로
가지 않고 왠일인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다
치장도 끝났지 별로 크게 마을에서
해야할 일은 없는데
살랑거리는 엉덩이를 흔들고
몸은 ‘하느적하느적’ 거리고 하얀 양산에
얼굴만 약간 가리고 연신 주위로
눈길을 돌리며 남정네나 여인네들이
있을 만한 곳만 골라 돌고 있다
해순씨가 마을회관 앞으로 가자
마을회관앞 은행나무밑 평상에서
장기를 두고 있던 마을 아저씨들이
난리부르스이다
장기를 훈수들고 있던 왔다킴 김씨는
가슴이 벌렁거려 야단이다
“오매오매 우리 해순씨 우찌 이리 멋있다냐
역시 내 안목도 높지만
해순씨는 내 안목 이상이야
해순씨 시방 어디를 가요
괜찮다면 나랑 같이 가면 안되오“
라며 장기 훈수는 팽개치고 얼릉
멧돼지같은 몸을 들어 해순씨에게
날렵하게 다가온다
질세라
이번에는 장기 두는 놈이 장기는
팽개치고 한 수 더 친다
하마처럼 벌렁 나온 배를 속으로
갈무리하고 크게 째진 입으로 다가와
꽤 다정스럽게 굴며 사박하게 말한다
“아니 이게 사람이야 천사야
뭐땀시로 이렇게 예쁘다냐
우리 마을에 이런 미인도 있나
참 내가 눈이 삐어도 한참 삐었지
우리 뻥텅구리 마누라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해순씨하고 하는건데
해순씨!!!!!!!!!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에게도
마지막 기회를..........“
하면서 눈물콧물 다 흘린다
쪼다 박씨가 흥분하면 늘 하던 버릇이다
바가지 이씨는 더하다
오죽하면 바가지라 별명이 붙었겠는가
마누라는 시장에 가서 아무것도 못산다
자기가 지시한 물건외 다른 물건을 사면
반드시 환불해 와야만하고
다음부터는 하루에 한 끼씩
분이 풀릴 때까지 굶어야한다
그런데 바가지는 두 술 더 뜬다
“해순씨이이요용
쪼깨 바쁘지 않으시면 내가 읍내에 나가서
해순씨 좋아하는 칼질 크아아아아하
무시기 말이냐하면
좀 더 유식하게 서양말을 보태어 말하면
비프 슈테이크 사줄께여
그리고 뭐시기냐
콩죽같은 것 뭐라고 하지
맞다 맞어 스프도 많이 사줄께요
나에게도 멋진 기회를 주시랑께“
아주 천신을 받을 듯이 말한다
그러는 꼴을 본 내기장기에 진
꿔다논 보리자루 유씨는 화가 난다
‘아니 씨팔 자식들!
저녁에 마누라 몰래 나이트클럽 가기로
한 내기에서 졌는데 무슨 짓 하고
있는거야 빨랑 장기 안두고....“
오늘밤 쓸 돈을 쌀가마니로 따져보니
무려 3가마니 값이다
그러니 해순씨가 눈에 뵈지 않는다
평소에는 해순씨가 말만하면
밭일 하다가도 또는 밤일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도와주러 가고
밥 먹다가도 해순씨의 전화가 오면
낫들고 가서 해순씨 앞마당의 풀을
베어 깨끗하게 해주고 오는 유씨이다
마누라나 자식한테는 늘 삼강오륜
인륜지사를 내세우지만 지킬 놈은
마누라와 자식들
자기는 늘 예외이다
삼세판 장기내기에서 이미 한판은 졌고
두 판째도 거의 다 끝나가고
이길 희망은 나바론이다
해순씨는 좋아 죽을 지경이다
남정네들이 둘러싸고 온갖 좋은 말
입에 침을 ‘갤갤’ 흘리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들어오는 제안은
기분을 업 하기에 충분하다
더욱 더 온몸을 비비틀고 다리는 꼬아
해물처럼 하느적거리고
목소리는 콧물을 먹어 ‘왱왱’ 거린다
흰 부라우스안에 입은 빨간 브라자가
보이고 몸을 숙일 때
보이는 하얀 젖가슴은 그야말로
사내놈들이 지옥에 가도 모를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해순씨 입에서는 저절로
콧노래가 흥겹게 나온다
“어머 어머 이러지마세요
우리 엄마 아시면 큰 일이 나요
호호호호호호호 “
그러면서 말은 아주 예의있게 말한다
“어머 어머 어머 어쩌
내기장기 두는 것 아니었어요
나 때문에 장기 망쳤네
하여튼 내가 예쁜 것이 흠이면 흠이야
저 오늘 장에 가여
왜 이번 주 부터 5일 동안 해남장이
열리는 것 모르시나봐
그리고요 제가요------------
이장님의 추천을 받아 해남읍 노래자랑
우리 동네 대표로 출전하게 됐어요
창피해서 안나갈려고 했는데
이장님의 부탁이 너무 간절해서
할 수없이 승낙했어요
이씨 김씨 박씨 유씨 아저씨들 모두
그날 오실거죠“
그러자 모두는 질세라
큰 소리로 먼저 대답할려고 애쓴다
말하면 잔소리
무조건 간다고.............
세상이 무너져도 간다고
그러면서 해순씨 눈길을 한번이라도
더 끌려고 용쓴다
해순씨는 오늘 목적한 일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자
‘바이바이’ 안녕을 고하고 마을앞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가면서도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자
박씨는 오금이 저려
고추를 잡고 땅바닥을 뒹글고
이씨는 흘러내린 침으로 옷이 다 젓고
이씨는 땅에 누워
가쁜 숨과 희열을 참느라 헐떡인다
유씨는 장기에 져 화가 낫지만
해순씨가 간다고 하며 떠나자
뒷모습에 홀려 넋이 나간 채
바지에 하얀 오줌을 질긴다
참 여자라면 아이나 어른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병신 쪼다 부지깽이들이다
간간히 불던 바람이 거세져 해순씨
치맛자락을 약간 치켜올리자
하얀 허벅지가 드러나고
급기야는 4명의 아저씨들 상사병으로
누워 버린다
해순씨가 나타나자 어른의 신분도 남편도
아버지도 모두 팽개쳐 버린 것이다
못난 꺽쟁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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