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열왕기상 19장 1~8절
이번 한 주 동안 심방을 하며 공통으로 느낀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주시려는 축복이었습니다. 가정마다 주시려는 축복의 내용을 들었을 때 제가 정말 놀란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속으로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축복도 축복이지만, 어쩜 이리 기가 막히게 주실까?” 축복의 맥락을 생각한다면 가정이 잘되는 이야기일 테지만,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더 나아가 가정 가정마다 딱 알맞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부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같이 예배드리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통으로 느낀 또 한 가지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크신 축복과 선물을 주시면서 바라신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2~13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며,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축복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살펴보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의 주인 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고 거리낌 없이 고백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며 우리는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 우리도 모르게 고백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두 가지 상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 상황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유는 통장에서 나온다.” 사람이 재산이 많이 있으면 그 사람의 행동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통장 잔고가 10만 원일 때와 100만 원일 때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커피를 사주는 행동을 할 때 확실히 100만 원을 가진 사람이 더욱 마음에 편함과 여유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예시로,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가장 잘한 사람에게 “네 덕분에 이겼어!”라고 말을 한다면, 아마 그 사람은 “아니야, 우리 팀이 다 잘해준 덕분이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반면의 경기에서 졌다면, 그때부터는 범인을 색출하는 새로운 게임이 시작됩니다. “나 덕분에 이렇게라도 된 거야”“그때 누가 한 거야?” 등등 이러한 말을 하며 여유가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많은 축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살고 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라는 말들을 여유가 있기에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통장 잔고가 없거나 게임에서 졌듯이 우리가 가진 것과 여유가 없더라도 현재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욥의 고백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욥기 1장 20~21절) 내가 여유로울 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하나님 덕분에 있었던 것들이오니 다시 하나님께서 가져가시는 것도 마땅하다는 고백을 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상황은 이와 반대인 우리가 풍족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상황은 예시를 들지 않더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는 때는 주로 힘들 때일 것입니다. 하지만, 삶이 평탄하거나 문제가 없을 때는 잘 찾지 않는 성향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축복을 바라는 이유도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셨을 때 우리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욥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가진 것이 많을지라도 주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고백 드리며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기도를 통해 깨닫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첫 번째는 사르밧 과부입니다. 가뭄이 시작되고 음식이 사라져갈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르밧 지역의 한 과부에게 갑니다. 거기서 엘리야가 음식을 요구했을 때 그 과부가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음식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뿐이었습니다. 그때 과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당시는 다신 문화로 과부 역시 하나님을 참 신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 여러 신 중 하나로 말하였습니다. 그래도 엘리야에게 음식을 대접한 과부에게 하나님은 가뭄이 끝날 때까지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죽게 되자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를 들은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게 되었고 과부는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에게 이미 가루와 기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과부는 깨닫지 못했었고 아들을 통하여 다시 한번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아합왕입니다. 아합왕은 우상인 바알 신을 섬기던 악한 왕이었습니다. 엘리야 하면 떠오르는 사건 중 하나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입니다. 대결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제단 위에 제물을 올리고 엘리야는 하나님께, 바알의 선지자들은 바알에게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우는 대결이었습니다. 당연히 바알의 선지자들은 불을 내리지 못했지만,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자마자 불이 내렸습니다. 이 대결이 있었던 후 엘리야는 바알의 모든 선지자를 죽였고, 아합에게 이제 가뭄이 끝나고 비가 올 것이니 마차를 타고 내려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합이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실제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아합왕 역시 하나님의 이적을 두 번 연속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합왕은 이때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과부와 아합왕의 같은 경우는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처음 살펴본 부분과 같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하실 때도 있으며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주실 때도 있으며 우리가 어떠한 길을 가야 할지를 깨닫게 해주실 때도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우리에게 축복도 주시지만,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뜻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진심 어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제가 오늘 말씀 중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 제가 아합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불을 내렸고 비도 내리며 하나님만이 오직 참 신임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왕이 마차를 타고 궁으로 돌아가고 나서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엘리야는 불과 비를 내릴 뿐만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 소식을 아합왕을 통해 들은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이적을 행했지만, 엘리야는 이에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도망친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그것이 4절의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 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넉넉하다는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됐습니다.”라는 지쳐 포기한 뉘앙스를 지닙니다. 어떻게 보면 겁이 많을 수 있고, 비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한 심정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엘리야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천사가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먹을 것을 주었다고 합니다. “어루만지다”의 원어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특별히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엘리야를 어루만져주시며 위로해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호렙산까지 갈 때 40 주야가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을 보면 엘리야가 그 음식에서 힘을 얻어 그 길을 걸어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에게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마침내 호렙산에 도착하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엘리야가 왜 여기 있는지 정말 물으시는 것이 아닌 엘리야를 일깨워 주고 되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에 두려워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을 두 번 하셨는데 엘리야는 두 번 다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 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해야 할 일들과 엘리야가 혼자 남은 것이 아닌 7천 명의 선지자가 남아 있음을 말해줍니다. 엘리야가 너무 겁에 질렸기 때문에 진심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 엘리야는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불을 내릴 때는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라고 기도하였고 비를 내릴 때는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엘리야의 기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항상 진심 어리게 기도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로뎀나무서부터 호렙산의 사건을 다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하나님은 엘리야를 어루만지시며 위로하셨고, 음식을 통해 힘을 주셨으며, 호렙산에서 엘리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답 그리고 또 한 번의 위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주시는 것들입니다. 힘들 때, 화가 날 때, 혼란스러울 때, 기쁠 때, 즐거울 때 어느 때든지 하나님 앞에 진실한 내 마음을 고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가진 것이 있든 없든 언제나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를 통해서 축복도 주시지만, 그 기도를 통해 주시려는 뜻을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는 언제나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심방 때 말씀하신 모든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