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히틀러는 아주 경건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고 스탈린은 한때 러시아 정교회 신부를 꿈꾸었었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다독가였다는 점은 또다른 공통점이다. 독재자 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난폭하고 무식할 것 같은데 20세 최악의 독재자 두 사람 모두 난폭 했지만 무식하지는 않았다.
‘히틀러의 비밀 서재'(티머시 W. 라이백 지음, 박우정 옮김,글항아리)에 따르면 히틀러는 베를린, 뮌헨 등의 개인 거처에 서재를 갖고 있었고 뮌헨의 나치당 본부 지하 ‘총통 기록보관소’에도 서고를 마련했다. 목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약 1만 6000권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군사 분야가 7000여권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건축, 연극, 그림, 조각 등 예술적 주제를 다룬 책 1500여권, 영양과 식사에 관한 책 1000권 가까이, 가톨릭 교회와 관련한 것이 400여권, 단순한 대중소설도 800~1000권에 이르렀다. 심지어 점성술과 심령학 분야의 책도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6세(1915년)의 히틀러는 1차대전 당시 북부전선에서 복무하던 11월 어느 일요일에 책을 사기 위해 가장 가까운 마을 푸네스에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막스 오스본의 ‘베를린 건축사’를 4마르크에서 사서 읽었다. 한 때 화가를 꿈꾸었던 히틀러는 이 책을 통해 예술적 갈증을 해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30년 후 히틀러는 건축가 알버트 슈페어와 함께 미래의 베를린 모형을 살펴보며 제국의 꿈에 빠져 들었다. 그 꿈은 망상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제대 후 뮌헨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구입한 첫 가구는 책장이었다. 그 책장에는 몽테스키외, 루소, 칸트, 반유대주의자, 음모론자, 민족주의자들의 책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나 그의 책 구입 속도는 더 빨라졌다. 천재의 본질과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심지어 간디의 책도 여러 권 구입했다. 그는 책을 읽어가며 꼼꼼하게 메모했다. ‘동의’, 또는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표시를 한 부분도 많았다. 학력이 변변찮았던 그에서 책은 스승이었다. ‘밑줄 쫙’ 뿐 아니라 느낌표와 물음표에 자기의 느낌을 담았다. 유대인을 전염병이라 표현하며 유대인 멸절설을 주장한 파울 라가르데의 ‘독일인의 편지’에는 무려 100여쪽에 연필 자국이 나 있다.
정치 초년병으로 막 이름을 얻어가던 시절에는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의 ‘페르 귄트’를 읽었다. 페르귄트는 북유럽의 방랑기 같은 이야기다. 입센은 이 책을 희곡형태로 써서 후에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에드바르 그리그가 곡을 붙여 음악극 형태로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유명한 ‘솔베이그(지)의 노래’다. 평생을 한량처럼 세계를 주유하다가 마지막에 아내 솔베이그에게 돌아와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는 슬픈이야기다. 솔베이그는 남편의 죽음 후에 그를 뒤따라 갔다.
그런데 히틀러가 읽은 것은 그의 정신적 스승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각색한 책이다. 에카르트는 히틀러의 정신적 스승으로 히틀러를 만든 인물이다. 그는 툴레회라는 신비주의 단체에 심취한 자로 한국의 정치계에서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사이비 도사를 연상케 한다.
스탈린도 독서량에 있어서는 히틀러를 능가했다. ‘스탈린의 서재’(제프리 로버츠 지음, 김남섭 옮김, 너머북스)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300~500쪽을 읽었다. 그는 25,000권 이상의 책을 모았으며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횡설수설’,’동의’, ‘옳아’같은 표시를 달고 빼곡한 메모를 덧붙였다고 한다. 많은 책들이 사라졌으며 스탈리이 직접 메모한 400여권은 남아 있다. 스탈린은 이데올로기나 혁명에 관한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문학과는 거리가 먼 톨스토이,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도 읽었다. 책을 쓴 제프리 로버츠는 “스탈린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한 지식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수많은 독서끝에 도달한 지점은 러시아혁명을 수호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 이상주의자였다. 현실을 망각한 이상주의는 그가 행한 야만적 통치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제프리 로버츠는 스탈린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보려한다.
일반적으로 인정하듯이, 복잡함, 깊이, 세밀함은 스탈린의 강점이 아니었고, 그는 독창적인 사상가도 아니었다. 스탈린이 평생 한 일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정식,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었고, 바로 그것이 스탈린이 그토록 많이 읽은 이유였다. 스탈린의 지적 특징은 문제를 단순화하고 명확화하고 대중화하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사실이다. 도브렌코가 언급했듯이, “스탈린은 그의 사고에서 새로운 것을 구하려고 결코 노력하지 않았으며, 그렇기는커녕 정치적 편의를 꾀했다. 모든 경우에서 스탈린 사고의 강한 힘은 독창성이 아니라 효능에 있다.(스탈린의 서재)
스탈린 하면 개인 숭배의 대명사가 되어 있지만 본인은 그것을 거부했다는 흔적도 있다. 어떤 책에 있는 역사적 사건들의 연표에서 자신의 생일을 발견한 스탈린은 선을 그어 그것을 지우고 옆에다 이렇게 썼다고 한다. “개 자식들!”
지도자의 평가를 독서와 음주 단 두가지로 평가할 수 없지만 음주와 독서만을 지표로 평가한다면 누가 더 위험할까? 20세기 최악의 지도자 두 사람이 술은 즐겨 안하고 독서에 탐닉했으니 술 안 마시고 책만 읽는 사람이 더 위험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술 좋아하는 사람 하면 온 국민이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대는 불행한 시대를 겪고 있다. 영문학자이면서 시인이었던 변영로의 수필집 ‘명정 40년’에 나오는 그 낭만은 없어졌다. 명정(酩酊)은 ‘몸을 가눌 수 없도록 취한 상태’를 말한다. ‘귀천’의 천상병 시인과 뗄수 없었던 술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문학이었다. 하지만 지금 거론되는 그 사람은 난폭하고 무식하다. 그에게 책을 읽히면 어떻게 될까? 부디 바라건데 제발 책을 읽지 마시라.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는걸 그의 아내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구약을 다 외울 정도면 평생 독서라고는 성경밖에 안했다는 이야기일텐데 그녀의 위험 행보에 나라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술 안마시고 책만 읽는 사람이 더 위험했네요^^
술만 좋아하는 한사람과 그의 아내ㅠㅠ
나라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