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공공의료 실현을 위해 일하는 병원노동자다!
[연속기고] 충북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존중’시대① 공공병원 용역노동자들(의료연대 충북지부 민들레분회)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이하 충북비정규운동본부)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산화해 간 이용석 열사의 뜻을 잇고자 매년 10월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주간’을 선포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비정규직철폐 투쟁 주간 동안 충북비정규운동본부가 주목하는 것은 간접고용 문제입니다. 고용형태가 만들어내는 차별은 심각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차별을 당연하게 간주합니다.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해도, 꼭 필요한 일임에도 낮은 가치의 일로 취급합니다. 사용자가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은 깃털처럼 가벼운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심지어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일은 저임금`비정규직인 게 당연한 듯이 인식되는 현실입니다. 이를 바꿔내기 위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촛불 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포하면서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 산별노동조합들도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와 차별해소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작 추진 과정을 보니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습니다. 정규직 전환을 한다면서 간접고용이 유지되는 자회사가 거론되고, 차별을 없앤다면서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업무 대부분을 저임금에 묶어 두려 합니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이런 현실은 어떻게 비춰질까요? 충북비정규운동본부는 병원, 민원 콜 센터, 쓰레기 수거운반, CCTV 관제센터와 주정차 상황실 등 공공부문 간접고용노동자들과 자동차 하청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그/녀들이 말하는 ‘노동존중과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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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연대충북지부 민들레분회 조합원들 [출처: 충북비정규운동본부] |
깨끗한 화장실과 긴 복도를 보며 즐거워하는 노동자들
우리는 청소를 끝낸 화장실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 긴 병원 복도를 청소하고 싹~ 돌아보면 번쩍번쩍한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충북에서 제일 좋은 대학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2000년 이전에는 모두 정규직이 일했다는데 지금은 63명이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후로는 고용불안과 원청 사용자의 부당한 업무지시 개선 등 불이익을 줄여나가고 있다.
누가 일찍 출근하라고 했느냐?
우리는 보통 오전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한다. 얼마 전 출근시간 문제로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우리들은 회사가 정한 시간보다 1시간씩 일찍 출근한다. 미리 청소를 해두면 외래병동에 오가는 사람들도 좋고, 간호사들도 차질 없이 업무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일찍 끝내고 휴식을 취한다. 물론 퇴근 시간은 다른 근무자들과 같다. 그런데 병원이 휴식시간을 두고 문제를 삼았다. 기가 막혔다. 병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자처해서 1시간씩 일찍 출근 한 것인데 휴식시간을 두고 시비를 걸다니…. 노동조합은 근무시간 준수투쟁을 벌였다. 얼마 안 가 병원은 난리가 났다. 병원은 업무에 차질이 있으니 30분 일찍 출근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왜 근무시간에 쉬느냐? 누가 일찍 나오라 했느냐?”
서운했다. 일찍 나와 해줘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오히려 타박이니 답답했다.
정규직 직원들 출근 전에 청소를 해야 더 깨끗하고, 사람들과 부딪치면 청소가 더디다. 그만큼 외래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남들이 모르게 새벽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병원의 편의를 배려한 것이 상처로 돌아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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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충북비정규운동본부] |
간접고용으로 18년, 정규직 전환은 ‘고용안정과 차별해소’
2000년 충북대학교병원 노동조합은 150일 파업 투쟁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이룬다. 이로 인해 전국 국립대병원 중 비정규직 규모가 가장 적은 모범적인 공공의료기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와 시설은 용역으로 남았고, 그렇게 간접고용 노동자로 18년을 지냈다. 매년 용역업체가 변경됐고,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노동조합을 통해 해마다 조금씩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갔다.
2017년 5월 문재인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발표에 우리는 모두 흥분했다. 같은 병원 밥을 먹고 있어도 용역노동자들은 이방인처럼 취급하는데 ‘이제 우리도 진짜 병원 식구가 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국립대 병원 정규직전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국립병원들은 서울대 병원 전환 결과에 따라 자회사전환인지 고용승계인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정부는 자회사 전환도 ‘정규직’이라고 생색낼지 몰라도 노동자들에게는 용역과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간접고용이라는 고용형태 때문이었다. 바지 사장과 아무리 교섭해봐야 결국 병원이 결정해야 하는 구조, 원청의 책임을 묻고자 해도 언제든 법망을 피해가는 구조, 그게 간접고용이다. 직무급제 전환도 마찬가지이다. 정규직 전환은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인데 별도 직군을 두고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은 차별을 유지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정규직 전환 추진은 아무 쓸모가 없다. 여기에 정년 문제까지 있다. 청소노동자의 경우 현재 정년이 66세인데, 병원 원무과로 편제되면 정년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안정된 고용과 차별해소를 꿈꿨던 우리는 불안감만 높아지고 있다.
별거 없다. 노동존중! 생활임금 보장, 차별해소가 시작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다며 국회도 기업들도 호들갑이다. 기만적인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삭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현재 시중노임단가를 적용받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비율만큼 시중노임단가가 인상된 것은 아니다. 인상폭이 최저임금 인상폭에 비해 훨씬 낮다. 그러니 최저임금 인상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가가 오른 것은 확연히 느껴지지만 말이다. 꼼수 없는 최저임금 1만원 공약부터 빨리 실현하는 것이 노동존중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똑같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접고용노동자나 직접고용노동자나 모두 병원 노동자로 같은 체계 안에 있는 노동자로 바라봐야 한다. 직접고용 노동자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것을 나무랄 수 없다. 다만 그 자부심이 비정규직 혹은 약자를 비난하고 억압하는 화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영양, 위생, 미화 다 똑같다. 기죽지 마시라.” 정규직노조 지부장의 말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 똑같은 노동자다. 당당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하다 잠깐 계단에 앉아 커피 한잔 한다. 병원이 넓어 노조사무실까지 가기는 너무 멀고, 휴게공간이 따로 없으니 계단을 의자 삼는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먼지와 땀 때문에 간호사실에 들어가기는 나부터 꺼려진다. 그래도 수간호사 선생님들 중에는 꼭 간호사실로 불러 간호사들과 함께 차도 나누고, 먹을 것도 나누는 분들이 있다. 땀과 먼지 때문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고맙다.”
노동존중, 노동조합이 앞장선다
노동조합이 없을 때는 병원의 간섭이 심했다. 불합리한 업무지시도 많았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는 병원이 직접 간섭을 하거나, 부당한 업무지시를 하지 못한다.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달라진 것이다. 조합원들도 많이 달라졌다. 노동조합이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존중 시대. 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규직과 동일하게 가족수당, 상여금, 복리후생 등을 적용받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일 부러웠던 것, 병원노동자 병원비 감면 혜택이다. 같은 병원노동자이면서도 보장받지 못하던 것들을 이제 보장 받는 것. 그게 우리는 노동존중이라고 생각한다. 차별이 사라진 자리에 ‘존중’의 나무가 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