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조
김시윤
아침햇살이 붉은 물비늘을 흔들어대며 솟아오른다. 작은 포구가 어느새 왁자해진다. 낚시꾼들이 부려놓은 생물들의 몸짓이 분주하다. 떠나온 곳이 그리운 저마다의 몸부림일 테지. 떠난 후에야 그리워지는 이유를 그땐 나도 알지 못했다. 발을 딛지 못할 곳에 서 있으려면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 거지.
분주한 움직임들을 쫒던 내 눈길은 은빛 갈치에 가서 멈춘다. 사람들의 손짓에 이끌려 당겨지고 미끄러지는 몸짓이 서럽다. 분명 바다의 자식이련만 땅에 깔린 파란색 비닐깔개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어찌하여 얄팍한 미끼하나 피하지 못하고 뭍으로 오르고 말았는가. 지느러미 속에 갇힌 날개를 펼치고 푸른 하늘을 날고픈 욕망이 미늘의 속셈을 알고도 물고 말았을 테지. 나는 안다. 날개를 꿈꾸며 하늘을 향해 있던 머리로는 달콤하게 던져지는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음을.
탱탱하고 미끈거리는 그 긴 것들의 꼬리를 쓸어 담으며 사람들은 각자의 셈을 치른다. 내 앞에도 한 아름 당겨 놓은 은빛 갈치는 물만 만나면 다시 헤엄이라도 칠 기세다. 떠나온 곳을 향한 그리움이 허공을 응시한 눈동자에 까맣게 매달려 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삼켜야만 했던 입은 남아 있던 용기마저 잃어버린 채 다물지 못하고 반쯤 열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처지를 인지한 수긍의 태도일까. 지느러미를 펼칠 듯 탱탱하던 몸짓이 점점 수굿해지고 있다.
바다가 주는 풍요를 알지 못했다. 만물의 근원은 흙이란 생각으로만 살았다. 바다 또한 생명의 모태임을 알게 되었을 땐 내 삶의 한쪽이 바다로 떠난 후였다. 모두가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바다로 간 이의 별난 까닭을 알고 싶었다. 출렁이는 바다의 육중한 몸부림에 멀미를 느끼던 나는 그의 심연을 알고 싶었다. 슬퍼할 기력도 없던 그 겨울의 끝에서 바쁘게 돌던 시간은 서서히 멈추어 갔다.
삶의 허무는 어느 날, 계획도 없이 나를 떠나게 했다. 따스한 햇볕 사이로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차갑게 불던 날이었다. 멈춘 시간을 등에 지고 무작정 달려 간 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먼 곳, 서해안의 적벽강이었다. 주홍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붉은 구름이 양 떼를 몰고 바다 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글썽이는 눈시울처럼 붉어지고 있는 바다의 이야기를 듣고자했다. 삶을 헤쳐 나가기에도 바쁜 시간 속에서 왜 그토록 바다만을 그리워했는지 묻고 싶었다. 한 번도 눈치 채지 못했던 그의 미지를 알고 싶어서 노을이 사라질 때까지 바다만 바라보았다. 돌이 되어 서있던 나도, 우두커니 지켜보던 바위도 대답대신 돌아오는 파도들의 뭇매에 붉은 멍만 들이고 있었다.
바다향 그윽하게 차려진 늦은 저녁상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반나절을 달려서 온 거리만큼 답은 더 아득해진 느낌이었다. 치열하게 살고자 했을 뿐, 접혀버린 꿈 따위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삶의 바다에 파도가 일 때면 바람의 방향을 알기 위해 침잠하는 지혜를 익히며 살았다. 길을 잃었을 땐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함을 명심하며 살았다. 지친 삶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빛은 멀어져 있고, 혼자라는 외로움은 점점 더 잦은 파도를 일으키게 했다. 그는 물길을 잃어버린 배처럼 흔들리며 안전하게 정박할 곳만을 찾았다. 나는 왜 그의 피항지가 될 수 없었을까. 바다를 만나고도 찾지 못한 답은 밤을 꼬박 새우고도 얻을 수 없었다.
다음날도 바다를 찾았다. 간조를 맞이한 채석강은 전설을 옮겨 놓은 듯이 아름다웠다.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에는 물때를 따라 나서지 못한 바닷물이 눈물처럼 고여 있었다. 하루기 먼 물길을 만나고도 주저앉힌 꿈들이 비좁은 바위틈을 메우고 있었다. 날개는 고사하고 지느러미조차 운신하기 힘든 비좁은 바위틈, 그래 갑갑했겠다. 하늘을 꿈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겠지. 말갛게 드러난 바다의 속살을 본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안의 모습이 그렁그렁한 눈물이 되어 바닥을 지키고 있었다.
삶의 고단함은 언제나 만조 상태였다. 매일의 쳇바퀴 속에서 우리의 문제와 아픔들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하루를 꾸리기에도 급급하던 시절은 퇴적암처럼 켜켜이 쌓여가는 갈등들을 모르는 척해야 했다. 오로지 땅만 딛고 살던 삶이었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을 터, 그 꿈마저 삶의 만조를 핑계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가쁘던 삶 속에서 오해나 갈등의 감정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세월이 아파왔다. 삶의 무게가 겨워 그는 바다로 간 것일까 살면서 한번쯤 간조의 때를 가졌더라면 숨 가쁜 삶 속을 흐르는 작은 아름다움 하나쯤 발견해내지 않았을까. 잠겨있던 바닷속의 민낯은 저리도 매끈하고 어여쁜 것을, 아름답게 자태를 드러낸 퇴적암 앞에서 사람들은 자랑처럼 행복을 찍고 있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은 행복한 웃음들을 비켜서 불고 있었다.
해마다 겨울의 끝자락에는 바다를 찾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바다의 안부를 알고 나서야 온전한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된 탓이다. 삶의 간조를 만나는 시간은 이제 나의 오랜 습관이 되었다. 삶 속에 흐르는 꿈을 잊지 말라고 하루기 멀게 제 속을 드러내기로 한 것은 아닐까. 밀물처럼 차오르는 가쁜 삶일지라도 꿈을 기억하며 살아가라는 썰물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간조는 젖은 마음을 말리며 쉬어가는 휴식의 시간이다. 바다를 알고서야 비로소 삶을 헤아린다.
작은 포구가 딸린 어촌마을이 새로운 삶의 터가 되었다. 바다를 알고 싶던 간절함은 기어이 바다를 마주하고 살게 했다.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귀선 소식에 양동이를 들고 재바르게 달려 나가는 나는 영락없는 어촌 아낙네다. 바다의 풍요로움은 솟구칠 것 같은 싱싱한 생명력을 내게 선물했다. 시간은 다시 바쁘게 흐른다. 삶과 꿈이 따로 있지 않음을, 삶을 딛고 선 자리가 꿈을 향한 길목임을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다.
포구의 분주한 아침이 지나간다. 은빛 갈치의 짙은 갯내음을 들이쉬며, 바다가 주는 풍요를 한 아름 안고 씩씩하게 골목길을 오른다.
ㅡ 2024 (제 23회) 토지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