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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과 반딧불의 만남같은 게 있었다. 특히 해외에서는 더 많은 별똥들에게 노출되는 법이다. 해외건설 현장의 입지적 주방장으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차렸고 작은 함바까지 했다가 한번에 나락에 빠졌던 털보는 담배를 꽁초까지 태우면서 또 한번의 샛별을 고대했다. 이 부진을 한번에 씻어주고 반전을 몰고 올 인연을..
사람과의 인연은 인생 여정에 열쇠가 되기도 하고 늪도 되는 법이었다.
안 상무의 등장이 털보에게 파산을 가져와 주었다면 이란 출신의 에싸이디는 반전의 열쇠를 가져다 주었다.
털보가 샹그릴라 호텔로비를 찾은 것은 그 석양의 장관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고 싶어서였다. 주방장의 딱지를 떼고 이 이국땅에서 사업자 등록증을 내던 날 털보가 찾은 곳도 이 호텔이었다. 하이네켄 맥주 한잔을 앞에 주문하고서 털보는 옛추옥의 바다로 흘러갔다.
2008년 두바이 모라토리움 선언에 여러 한국건설사들이 공사대금을 못받게 됐다.
공격적으로 빌라건설을 했던 승원건설은 털보의 고객사였다.회사가 법정관리가 개시되자 털보의 민박업은 쑥대밭이 됐다.장기투숙자 20명이 모두 승원건설 직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그들 숙박분 대금은 악성채권이 되버렸다.
집세만 1년에 3억짜리 빌라 2동에 전재산을 투자해 시작한 게스트하우스는 저주스런 빚덩이가 돼 버렸다.
알거지가 된 털보는 이 나라를 저주하며 귀국을 작정했다
마지막으로 털보가 찾은 곳이 있었다.
아부다비 샹그릴라 로비발코니 해안.
승원건설이 지은 호텔이었다.
준공식 축하파티 때 털보는 직접 바베큐 요리와 냉면을 만들었었다.
긴 맥주잔을 황금빛으로 더한 태양아래 하얀보트
넋 잃고 쳐다보는 털보의 눈이 젖어들었다.
그 때 유리잔이 깨졌다.동생의 유모차에 자기도 타겠다고 때쓰던 현지 아랍소년의 몸부림에 테이블 위의 맥주잔이 엎질러졌다. 털보 옷이 젖었다.아랍아이는 땅바닥에 나딩굴며 소릴 질렀다.유리파편에 아이 손목에서 피가 흘렀다.
검은 챠도르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여인이 땅에 끌리는 길고 검은 치마위에 유리조각을 집어 모았다.
넥타이를 풀어 털보는 그 자리에서 지혈을 해 주었다.
호텔 직원이 3명이나 달려와 여인에게 깍듯이 머릴 숙이며 유리 줍는 일을 대신 거들었다.
정장을 망쳐버린 털보.하지만 옷보다 엎질러진 맥주가 더 아쉬웠다.
"죄송합니다.회교신앙의 원칙 때문에 알콜을 제 돈으로 사드릴 순 없으나...."
호텔직원을 통해 사죄인사로 숙박권을 전해온 그 엄마는 끝까지 얼굴을 털보에게 정면으로 보이려 들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아부다비 서열 10위권에 드는 부호였고 그녀는 4째 부인이었다.
바그다드 영문과 졸업후 두바이 부동산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던 그녀는 이곳 아부다비 샹그릴라 호텔 의전담당으로 근무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접했다. 호텔 행사장에서 난동을 부리던 그의 아들을 지극정성 돌봐주던 그녀는 그의 눈에 띄었고 얼마 후 아내로 입적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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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은 베일의 아이 엄마와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였다.
털보가 농장에 식품을 사러 가던 장날이었다. 오만 산 배추와 오이를 고르고 있는데 사람들이 유난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털보도 무슨 일인가 다가서 보았다.
경찰차 3대와 아랍경찰관들이 포박된 사람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마약밀수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란인 죄인을 공개집행한다고 했다.
태양빛 아래 번뜩이는 칼은 털보의 눈마저 찔렀다.
그 때 털보의 손목을 잡아 끄는 손길이 있었다. 검은 챠도르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었다.
“저기 꿇어 앉혀진 사람의 이름이 뭐라고 적혀 있는가요?”
애절하게 묻고 있는 그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아 샹그릴라 호텔의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이란태생이었고 이곳에 오기까지는 오로지 오빠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란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사우디 해역을
침범했다고 나포가 된 뒤 조사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마약밀수범으로 판정을 받아 형무소에 수감이 된 것이 1년전이었다.
아무리 탄원과 구명을 해도 끝내 사형이 구형되었는데 재판이 비공개로 진행이 되다보니 누구 누구가 어떤 형량을 받았는지 알길이 없었다.
어느 판사가 그랬던가? 서로 다른 교회들이 서로 송사를 벌이면 담당 판사는 절대 화해를 종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각자 모두 뒤에 하나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가고야 만다고 했다. 시아와 순니의 해묵은 앙금은 사라질 길이 없는 것일까? 그 앙금이 그어놓은 물리적 추상적 장벽이 가져오는 번영의 속박들이 얼마나 심하던가.
시아파 무슬림들이 많은 사우디 알코바 변두리에는 수니파의 텃새에 밀려
농장 어물전 등에 주로 종사하며 PRO들도 많은 편이었다.
알코바 담맘 사이의 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더딘 이유를 털보는 알 것 같았다.
유난히 검문검색이 많은 이유는 명백하다.시아세력의 번성은 사우디의 공포이기 때문이다.쟈스민 혁명때 바레인 봉기때 사우디가 초긴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외사업의 확대?
아직은 아니다. 주쟈국 정정을 살펴야한다.
작년 하반기 사우디의 비자파동에 건설사들이 발목을 붙잡혔었다.
국책공사와 자국고용증대 라는 2마리토끼 문제.
아랍정부의 조변석개 정책은 해외자본에게 태풍처럼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