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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예수님께서 친히 죄인인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남겨지는 제자들과 오늘 우리를 향해 감동적인 고별사를 발표하셨습니다. 꽤 장문의 고별사입니다. 세상으로 치면 이임사(離任辭) 비슷합니다. 그간 수행했던 직무를 내려놓고 떠나며 하는 말입니다.
장관들이나 총장들의 이임사를 많이 들어봤습니다. 대체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맡겨진 직무를 보다 멋지게 완수하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송구함도 표현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별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맡겨주신 인류 구원 사업을 120퍼센트 훌륭하게 수행하셨기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습니다. 당신이 떠나가면 그 자리를 대체할 보호자 성령을 생각하니 걱정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성취감과 만족감,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게 될 제자들과 우리를 향한 위로와 격려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조만간 다시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재회할 그 날을 기억하고 힘과 용기를 내라고 초대합니다.
장엄한 고별사에 이어 오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우리를 향해 고별 기도를 바치십니다. 우리 머리 위에 당신의 두 팔을 펼치신 후 하늘을 향해 눈을 드시고 기도하시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나 은혜롭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요 인류의 구세주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보잘 것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감사의 정이 흘러넘칩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마음에 담고 감사와 기쁨 속에 남아있는 우리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시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4년 나해 부활 제7주간 수요일
<가장 완전한 기쁨은 무엇인가?>
복음: 요한 17,11ㄷ-19
우리는 기쁨을 언제 느낄까요? 제가 가장 큰 기쁨을 느꼈을 때는 아마도 대학에 합격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옆집 친구는 대학에 합격했는데, 저는 발표가 하루 이틀 늦었습니다. 이때 걱정되는 것은 내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가 옆집 어머니의 기쁨 때문에 슬퍼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기쁨은 나 때문보다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많은 희생을 한 이를 기쁘게 해 드릴 때 가장 기쁜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 기쁨이 자꾸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압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전기가 들어와 TV를 제대로 보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게 소원이었지만, 이제 전기가 들어온 기쁨은 사라지고 컬러 TV를 보고 싶다는 소원이 생깁니다.
연봉 100억이 넘는 정승제 강사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수업 중에 “강남 아파트에 살면 행복할 거 같아?”라고 묻습니다. 한강 경치가 보이는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처음 볼 때 기뻤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시금으로 아파트값을 낼 때, 딱 그렇게 이틀 좋았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쁨은 조금씩 사라지고 다른 걱정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은 그것 때문에 나를 노예로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아파트에 사는 것을 보는 부모님의 기쁨 때문에 그 기쁨은 유지됩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분에게 보답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인간 안에 양심이 넣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정의’입니다. 받았으면 갚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세상에 살며 죄를 용서받게 하시기 위해 아드님을 죽이신 바로 그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담스러우셨습니다. 아버지께 성령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셨으면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드님이 교회라는 자녀를 탄생 시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교회를 탄생 시키고 아버지께 가시는 예수님은 기쁩니다. 아기를 낳아 남편에게 보여주려는 마음, 혹은 자녀를 낳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 마음은 ‘당신이 저를 낳아 키우신 일이 헛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보답하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 나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준 축복을 양심 상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사우디에서 땀 흘려 몇 년 동안 번 돈을 제비에게 다 날려버렸다면 몇 년 만에 김포공항으로 오는 남편을 맞으러 나갈 용기가 있을까요? 그때 많은 아내들이 집을 나가거나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교 하여 자녀를 낳지 않으면 그렇게 지옥으로 스스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제로 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저냥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를 사제로 세워주신 주님의 은총에 심판 받아야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편히 쉬는 것보다 이것이 더 큰 기쁨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기쁨이 우리 안에도 함께 하려면 예수님께서 기쁨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러 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면 정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우리 스스로 그분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참 기쁨인 하느님 자녀를 낳는 일을 게을리하지 맙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17,11-19: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11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이제 아버지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께서 주신 것을 하나도 잃지 않을 것(요한 6,39 참조)이라고 하셨다. 잊은 사람이 되는 것은 그분이 버리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12절) 하신다.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13절). 이 기쁨은 바로 일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다. 그들이 참으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기쁨은 충만해지고 이것이 장차 올 세상의 평화와 행복이다. 그것을 차지하려면, 현세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충실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했다. 그것은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4절) 세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미워한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악에서 지켜주십사고 빕니다.”(15절) 기도하신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18절) 예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신 것은 기쁜 소식과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바로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드님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셨듯이 제자들도 자신의 삶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19절) 라는 기도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되도록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질 것이다. 진리는 한 처음부터 계시던 하느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육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거룩해지는 동시에 당신의 신성으로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10년 연속 ** 브랜드 대상 수상. 피부 장벽과 뼈 기능, 면역력 강화를 한 번에…. 특허 출원, FDA(미국 식품 의약국) 등록 완료.”
이런 건강식품 광고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과대광고일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브랜드 대상은 주관사에 돈만 주면 받을 수 있습니다. 특허 출원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특허받기 위해 심사를 요청했다는 것뿐입니다. FDA 등록 역시 수출을 위해 업체 정보를 FDA에 제출한 것이지, FDA가 효능을 보장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과대광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언론에서 말합니다.
실제로 그런 광고는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문득 저 역시 그러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한 과대광고를 계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과 구별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자기에 대해 과대광고를 하는 사람 곁에는 필요에 의해 아첨하는 사람만이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은 이런 사람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피곤하고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보다 남을 더 높이려는 사람, 남의 좋은 점을 바라보면서 칭찬해 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곁에 많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하나 되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청하십니다. 누군가와 하나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가능합니다. 내가 더 윗자리에 올라가려고 하고, 내 뜻만을 주장하는 가운데에서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것처럼 착각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마치 종 부리듯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고 계속해서 청원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드러내시는 아버지의 진리로 거룩해져야만 가능합니다. 거룩해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기쁨을 내적으로 충만함을 누리면서 그들을 미워할 세상에서도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거룩함은 교만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겸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때로는 기쁨이 미소를 만들어 내지만 때로는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틱낫한).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사도20,28)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보살펴야 한다네.
타인은
구원의 문 앞에 데려다 주고
정작 자신은
구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자신을 위한
이기심에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먼저 자신부터 돌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거룩함’이란 평범한 일상 안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입장에서 행할 때 드러나는 덕이라고 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소박하게 살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며 사는 그 가운데서
소소한 행복과 참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거룩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하면서도
세상보다는 복음적 가치를 우선하며
천상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가치를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진실은 진리를 멀리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조차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가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진리를 따르며
조금이나마 주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증언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복음 말씀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