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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작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
"評論"
성서(聖書), 소설(小說), 프로이드 논문(論文)을
통해본 "모세" 이야기의 진실(眞實)
김광한(소설가 평론가)
모세와 십계판
런던 대영박물관에 보관된 람세스 2세의 상(像)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성서(聖書)속의 모세, 이집트 전문 역사 소설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모세,그리고 지그문드 프로이드"
성서는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되어있다.가톨릭에서 보는 성서는 외경(外經)까지 합쳐서 73권이고 개신교는 외경을제외한 66권이다. 공통적인 것은 성서 맨앞이 모세 5경이라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신명기는 공통으로 소유한다.이 가운데서 모세가 등장하는 것은 출 애굽기이다.출 애굽기는 일찌기 야곱의 아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고부터 히브리인들이 많이 이입이 되어 인구가 늘어난 것을 이집트의 임금인 파라오가 피라밋을 비롯해 각종 신전 운하 등의 건설에 투입을해 고통을 받는 민족을 데리고 홍해를 건너 가나안땅으로 이주시킨다는 거대한 스펙터클한 사건이다.
50년대 말에 제작된 세실 B 데밀의 십계(十戒)에서는 모세가 그 당시 이집트에서 히브리인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 남자로 태어난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려는데 그 어머니 되는 여자가 냇물에 조그만 상자를 만들어 어린 모세를 넣고 떠내려보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그 아이는 목숨이 길고 운이 좋아서인지 이집트 공주의 눈에 발견이 돼 왕실에서 살게되고 왕자노릇을 하게 된다.모세는 이집트 왕실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데 그가 맡은 임무는 피라밋을 비롯한 거대한 건축물 건설의 책임자가 된다.그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것을 일찍부터 알고 이집트인들로부터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위해 일할 것을 도모하는데 우연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즉 건축 감독관이 노동자인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살해, 살인범이 된 모세는 현장에서 탈출해 베두인 족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곳 처녀와 결혼해 아들과 딸을 낳는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산에 올라갔다가 불붙는 떨기 나무에서 야훼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어서 빨리 가서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는 네 민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나이도 많고 힘도 없는 모세는 그말에 고개를 흔들자 야훼는 다시 너의 곁에는 내가 있다면서 이집트 귀향을 권한다.모세는 거기서 아론이라는 나이든 히브리인 족장과 함께 이집트 땅으로 가서 궁궐안으로 들어가 파라오인 람세스 2세를 만나 히브리인들의 탈출을 허락해달라고 요구한다.람세스가 허락을 하지 않자 야훼에게 이집트에 대해 재앙(災殃)을 내려줄 것을 간청한다.
그래서 열가지의 재앙을 이집트에게 주고 마침내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 홍해를 건너 가나안으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에서는 홍해란 큰 바다가 나오지 않는다.바람에 모래가 흔들리면서 이동하는 위험한 곳이고 이따금 갈대숲이 나오는데 여기에 물이 흐른다.모세는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히브리인들을 강제로 집합시켜서 사막을 건너갈 준비를 시킨다.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히브리인들이 불평하는 이유는 이집트의 파라오가 자신들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각종 복지시설을 이집트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주기 때문에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람세스가 독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모세가 독재자가 된 것이다.
한편 성서의 기록을 세실 감독은 충실히 따라서 영화 십계(十戒)를 만들었는데 여기에서 가지 친 이야기가 흥미를 돋구게 한다.현존하는 최고의 이집트 학자겸 작가인 크리스티앙 자크는 이집트 고대 역사와 신성문자로 쓰여진 오벨레스크의 문자, 그리고 파피루스에 적힌 글들을 종합적으로 해석해서 이집트 판관, 태양의 여왕, 람세스 등의 명작을 썼다.모세란 이름이 들어가는 곳은 람세스에서이다. 람세스는 기원전 1300년경에 실제했던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였다. 지금 그의 거대한 석상(石像)과 그의 부인인 왕비 네프르타리의 석상이 기자의 피라밋 근처에 세워져있다.
그가 생존했던 시기는 이집트 내에 시리아인, 누비아인 앗시리아인 히타히트 인, 리비아인 그리고 히브리인들이 모여살고 있었다. 이집트 족을 제외한 이들은 소수민족이었다.이집트의 수도는 멤피스였고 후에 테베로 옮겼는데 람세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피.람세스란 도시를 건설한다.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석재가 필요했는데 손재주가 좋은 히브리인들이 주체가 되었다.모세는 여기에서 피 람세스를 건설하는 총감독이 된다.모세의 출생 이야기는 여기서 제외가 되고 다만 람세스와 모세의 관계를 설정하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람세스는 세티 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세티는 첫째 왕자인 셰나르를 임금 계승자로 지목을 한다.셰나르는 성품이 화려하고 유약하며 놀기 좋아해서 주위에 많은 친구를 갖고 있었다.람세스는 이와 반대로 체격이 좋고 생김새가 사내답고 담력이 세었다.왕위 계승권에는 관심도 없던 람세스는 그가 다닌 캅(대학)의 친구들과 가끔씩 어울려서 술도 마시고 대화도 나눈다. 바로 모세가 탑 시절의 동창생이었다.
"람세스는 캅에서 나와 그의 친구 모세, 아샤, 세타우, 아메니와 함께 술집에서 만났다. 람세스는 나중에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그를 도와줄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이후에도 람세스는 그의 친구들을 자주 만나며 미래를 위해 생각을 나누었다. 람세스는 캅을 졸업하고 그의 친구들과도 헤어졌다.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꿈을 찾기 위해 떠났고 람세스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채 백수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설 내용중의 한 귀절>
모세, 아샤, 세타우,아메니는 절친한 친구였다. 이 가운데 세타우란 인물은 누비아 사람인 뱀 조종기술자 여자와 살면서 뱀의 독을 연구하는 생리학자였다. 독사의 독을 뽑아서 약품을 만들고 이 독을 이용해서 병자를 고치고 사람에게 들어있는 악마의 기운을 빼내게 하는 특기가 있는 친구였다.우여곡절 끝에 부왕(父王)인 세티가 죽자 람세스는 형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되어서 히타이트 족들의 침공을 막고 이웃 나라인 누비아족들의 반란을 물리치고 평화가 찾아왔다.
람세스는 원래 평화주의자이면서 악을 증오하는 정의한이었다. 그리고 왕비를 사랑하는 로맨틱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두 사람의 여인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왕비이고 또 한 사람은 총각시절 연애했던 이제트란 여인이었다.이제트의 몸에서 칸이란 아들이 생기자 람세스는 이 칸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특별관리를했다.뱀 연구가이자 마술가인 세타우는 칸에게 부적을 만들어주고 다른 마술사들에게 신체를 보호해주는 비법을 전수했다.
한편 왕위에서 쫓겨난 람세스의 형 셰나르는 틈틈히 쿠데타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여기에 동조하던 자가 오피르란 흑마술사(黑魔術士)였다. 흑마술은 신기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갖고 있는 물건을 몰래 훔쳐다가 그 물건에 저주를 하는 것으로서 저주를 받은 상대는 몸이 좋지 않아 결국 죽게 만드는 아주 고약한 마술이었다.셰나르와 오피르는 쿠데타의 공범으로 살인범이된 모세를 불러들였다.함께 유일신인 아톤 신을 모시고 그러자면 마트신의 숭배자인 람세스를 제거해야한다는 모의였다. 그러나 모세는 이를 거절하고 자수할 것을 결심하고 람세스의 궁궐 재판소로 가서 자수를 했다.그는 재판에 회부가 되었지만 람세스의 호의로 풀려나게 된다.모세는 후에 자기 민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갈것을 친구인 람세스에게 요청을 한다.
람세스는 친구인 모세가 야훼라는 신이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하고 그를 설득을 하지만 듣지를 않는다.모세는 오피리라는 흑마술사가 유일신(有一神)인 아톤을 위해 함께 투쟁하자고하는 말에 다시 솔깃해졌던 것이다. 모세는 아톤 신보다 야훼라는 유일신을 위해서 그가 말하는대로 따르기로 맹세했고 히브리민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려고 작정을 했다.모세는 임금이 된 람세스에게 몇번씩 히브리민족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날 것을 요청하지만 람세스는 이를 거절한다. 람세스는 히브리인들의 손재주를 이용해서 방대한 신전(神殿)과 왕들의 무덤을 만들려는 생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친구인 모세를 걱정해서였다.이집트에서의 히브리인들은 노동의 댓가로 높은 급료를 받고 있었고 이집트인들과 인종차별같은 것도 전혀없었다.모세가 이집트를 나가게 되면 사막에서 방황을 할것을 염려해서였던 것이다.
모세는 마침내 람세스를 찾아가서 위협을 가하는데 그것이 야훼로부터의 재앙이었다.모세가 이집트 파라오에게 가한 재앙은 아래와 같았다.
첫 번째, 강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
두 번째, 개구리
세 번째, 이
네 번째, 종기
다섯 번째, 파리
여섯 번째, 가축의 몰살
일곱 번째, 뇌성과 우박과 불로 인한 작물 피해
여덟 번째, 메뚜기
아홉 번째, 어둠
열 번째, 처음 난 것의 죽음
이 재앙들은 이집트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연의 현상이었다.모세가 가져온 지팡이가 독사로 변하자 람세스의 친구인 뱀 연구가 세타우가 얼른 모세가 던진 뱀을 잡아 발로 밟아 버렸다.강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은 일종의 적조현상으로서 이 역시 람세스의 신 마트에게 빌어서 해결이 되었다.개구리 메뚜기 이 파리 같은 것도 세타우의 마술에 밀려서 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성서에서는 람세스가 모세가 행한 재앙에 벌벌 떨면서 굴복울 했다고 하지만 소설에서는 완전히 달랐다.물론 작가의 의중이 깊게 배인 창작이기에 가능했지만 성서 역시 이야기를 성전화(聖典化)한 것이 아닌가.오히려 성서속의 모세가 람세스보다 더 위험한 인물같아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그것은 람세스의 말이 대신한다.
마지막 열번째 재앙인 처음 난것의 죽음, 즉 양의 피를 묻히지 않은 집의 이집트 아이들의죽음을 보고 람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믿는 야훼라는 신은 참으로 잔인하네.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을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죽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자네가 생각하는대로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라.자네가 믿는 야훼라는 신은 정말 독하구나.다만 가축들은 이땅의 풀과 먹이로 길렀으니 두고 가라"
그러나 모세는 가축들을 포함해서 이집트에서 휙득한 모든 것을 갖고 떠났다.
무릇 소설이나 영화속에는 반드시 악인(惡人)이 있고 악인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선인(善人)이 있다. 그래야만 지상의 질서가 선(善)으로 통일을 하게 되고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줘 즐거움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악인을 람세스 2세로 두었고 모세를 고통받는 이스라엘, 아니 핍박받는 모든 약소민족의 영웅으로서 가장 진실되고 착하고 용기있는 인물로 그렸다.그러므로서 교훈도 되고 믿음을 가질수 있게 한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람세스 2세가 활동하던 시절의 모세는 그러나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람세스 친구에게 혜택을 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구해준 람세스에게 오만스럽게 저항한 모세가 그 시대에 과연 착한 인물일수가 있는가.람세스로 나온 배우 율부린너를 아주 나쁜 인간이고 모세로 나온 찰튼 헤스톤은 용기있는 착한 사람이라는 2중잣대가 있어야 성서건 소설인건 영화건 흥행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60여년전, 정신심리학의 거두로 불리우는 "지그문드 프로이드"가 하나의 논문을 들고 나타났다."인간 모세와 유일신교"가 그것이었다.프로이드의 종교의 기원에 실린 논문이었다.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에는 종교에 대해 정신분석적으로 접근한 논문이 실려 있다. 첫 번째로 실린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1939)는 구약성서와 유대 전설을 논거로, 모세가 이집트인이었고 모세가 히브리 인에게 전한 유일신교는 이집트의 종교였다는 놀라운 주장이 담긴 논문이다. 이 논문은 프로이트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가장 후기 논문으로 개념이 거의 정립된 정신분석의 시각에서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종교 문제를 분석한 역작이다. 유대인인 프로이트는 유대교의 성립 과정을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고찰하고, 유대 인에 의한 모세 살해 및 그리스도의 고난을 토테미즘 시대의 살부(殺父) 모티프와 동일시한다. 그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분석을 통하여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왔던 태곳적의 진실이 종교를 갖게 했다고 주장한다.
종교의 기원에 대한 프로이드의 관심은 암으로 고통 중에 있던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계속되는데, 그가 죽던 해에 완성된 모세와 유일신교(Moses and Monotheism)에서 그는 집단의 최초의 아버지를 죽인 그 범죄에 대한 인식이 종족 무의식 안에 남아있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늘 붙어 다니면서 지속적인 죄책감을 유발시키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론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간단하게 모세와 유일신교(Moses and Monotheism)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집트인이었고, 유대교의 일신론은 이집트로부터 나왔는데 특히 순수한 일신론을 신앙체계로 세우고자 했던 이크나톤(Ikhnaton) 통치 기간에 나왔다는 것이다. 기원전 1375년에 왕위에 오른 이 젊은 파라오는 오직 한 신, 윤리적이고 우주적이고 관대한, 아텐(Aten)만을 섬기도록 강요했다. 모세는 파라오의 딸들 중에 한 아들, 아마 비합법적인 아들, 이었고 이집트에서 이크나톤 바로 후의 기간동안 살았다. 그의 출신 성분으로 인해 그는 중요한 인물이었고, 아마 한 지역의 통치자로 있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었다고 본다. 열성적인 종교 개혁가로서 이크나톤은 당시 대중적인 종교를 모두 쫓아내었으나 그의 죽음이후에 그가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엄청난 혁명이 있었다.
모세는 이크나톤의 지지자였으나, 혁명 때문에 그가 믿던 종교의 형태를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실천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풀어주고 이크나톤의 일신론적 종교로 그들을 훈련시키고자 결심했다. 그는 이것을 실천했고, 얼마 후에(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인들은 이 엄격하고도 고도로 영적인 종교를 참을 수 없어 결국 봉기하여 이것을 강요하던 그를 죽였다. 최소한 두세 대가 지나간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지도자를 뽑았고 그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이 두 번째 모세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야웨종교를 가져다준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인이었던 처음 모세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인의 종족 무의식 안에서 잠재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이것이 앞서 말한 과정을 통해 일신론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수백 년후의 사람들과 예언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드는 그가 믿는 것을 기독교에도 적용시켰다. 그에 따르면, 원죄 교리의 중요성은 그것이 무의식 안에서 최초의 아버지의 살인을 상징화했다는 것이다. 이 원죄로부터의 구원은 희생적 죽음을 통하여 발견되어져야 되는데, 바로 아들인 예수가 그의 어깨 위에 모든 죄를 짊어졌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버지 옆에서 그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면서, 기독교는 아들 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유대-기독교 전통은 이 오디프스 이야기의 단순한 확대 기록, 즉 종교는 극복하지도 못하고, 포기하지도 못함으로 해서 신경증이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의 갈등의 성인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프로이드는 유일신론의 출현을 오디프스 콤플렉스를 근거로 한 원시 가족의 개념을 통해 설명을 시도하며, 또 한편 문명 비판을 통한 종교의 기원을 말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 관계를 통제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이 문명인데, 인간은 본래 자기 중심적 존재이므로 언제나 문명의 업적과 안정된 사회를 파괴하려는 충돌에 휩싸인다. 사회 특히 지배계층은 이런 인간 본능의 공격적 위험으로부터 사회와 기존 질서를 방어하고 지키기 위한 제도 장치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이 금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반사회적 충동심을 적절히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규제나 금기 사항은 자연히 본래의 인간적 욕망과 상충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금기와 규범을 지키지 못할 경우 죄책감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서 이런 죄책감과 갈등을 적절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의식이 필요했으며 이것이 종교적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는 문명의 파멸을 막기 위해 인간이 창출해낸 자기 방어기제의 최고형식이라고 본다. 즉, 문명이 문명사회 구성원에게 가하는 과잉억압과 고통의 짐을 심리적으로 위로하고 보상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럼 이렇게 시작된 종교의 본질은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그문드 프로이드의 마지막 고통스러웠던 날들을 기억해야만한다.
심리학의 아버지인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마지막 나날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는 83세에 죽었다.(1856. 5 .6-1939. 9. 23) 그러나 그의 인생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미리 점령당해 있었던 것 같다. 1907년 경, 그는 자신이 1918년 2월에 죽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친구 페렌치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문은 로마 교황청의 시선을 바짝 긴장 시켰다.학문을 학문으로, 소설적인 허구를 허구로 받아드리지 못하는 완고한 사고방식의 종교인들에게 기존의 질서를 깨뜨린다 싶은 연구논문이나 그외 창작물들은 기피대상으로서 충분한 것이다.일찌기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때도 그렇고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 같은 작품도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가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쓴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찬차키스는 이 작품으로 인해 그리스 정교회(正敎會)로부터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그러나 가장 많은 이야기꺼리가 있는 곳이 종교이고 종교를 형성한 교리같은 것에 이야기가 많이 있는 것이다.
성서, 특히 구약성서란 기원전에 파피루스로 기록이 된 문서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 많고,어쩌다가 우연히 발견이 된(사해문서)것들의 해석과 함께 기존 성전화(聖典化)시킨 성서와 맞춰보는 경우, 거기서 파생이 되는 후세 이야기꾼들의 새로운 이야기는 흥미를 돋구게 한다.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기록의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이 성전화한 문서 즉 성서는 이와 관계되는 성직자의 필수 교과서로서 여기에 덧붙여서 말씀(?)을 만들어낸다. 그 말씀이 수억개의 말씀이 되고 이 말씀은 곧 은총과 은혜로 탈바꿈을 한다.
인간들이 믿는 종교들은 각자 추구하는 그 궁극적 가치를 중심으로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가 있다.그 첫째가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신현(神顯)종교, 둘째가 성현(聖顯) 종교, 세째가 역현(力顯) 종교이다.신현종교는 절대자로서 창조주와 타락의 상태에 놓인 피조물의 이원론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종교적 이상을 구원에 두고있다. 성현종교는 범아일여(梵我一如) 라든가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일원론적인 입장을 취한다.명상이나 노력을 통해서 누구나 성현이 된다는 것이다.힌두교 불교 도교 유교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역현종교란 일종의 무속신앙으로서 힘이 있는 자에게 의탁하는 종교를 말한다.일테면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용맹을 떨친 관우나 장비같은 힘센 장수를 숭상하면서 이를 의지하고 그 힘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일종의 샤머니즘이다.
종교란 말 그대로 가르침의 으뜸인 모임(敎會)이다.하나의 종교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신현(神顯)종교의 경우,교주(敎主)가 있어야하고 신도가 있어야하며 교리(敎理)가 반듯하고 납득이 가야한다.그리고 자본이 뒷바침해야한다. 이 자본은 신도들로 나오는 경우가 있고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경우(國敎)도 있다.모세의 이야기는 교리와 성전(聖典)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커더란 부분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기원전의 이집트인들은 임금을 중심으로한 역사를 그들 특유의 신성문자로 스핑크스, 여러 신전, 대사원, 그리고 신주(神柱)라 불리우는 높은 기둥처럼 생긴 오벨리스크 전면에 모든 것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히타이트족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인 람세스 2세의 치적이 적혀있다. 그들은 기록을 중요시했으며 특히 이웃나라와의 전투나 재앙과 같은 국가에 큰 변란이 있던 현장을 기록했는데 이상하게도 모세의 이름은 그 어느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탈출했다면 큰 사건인데 이 것 역시 기록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창세기가 시작이 되면서부터 중요한 인물인데 왜 없을까? 이집트 민족의 치부라고 생각해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 모르는 것을 후세인들이 적어놓은 것을 성전화(캐논) 시켜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치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처럼, 단군의 실체를 믿고 존경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종교"가 생겨났듯이. 아마 그 이야기가 우리나라 것이었다면 "모세교"가 생겨나지 않았을까.강증산의 증산교처럼
다만 모세는 예수가 탄생하기까지의 인연이 되는 전 시대의 인물이고 신약을 향해 가는 과정속의 인물이라 성서속의 인물로 남아있을뿐이다.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 에게 더 많은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약으로 넘어가는는 단초를 만든 인물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영웅으로서 흠숭(欽崇)받는 인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문헌
성서 모세 5경중 출애굽기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 4권 이집트 판관.이집트 여왕. 투탕카멘의 비밀 지그문드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 김구산(金龜山)의 <여시아문(如是我聞)> |
김광한
1944년 서울 용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 69년 졸업
한국문인협회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