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네 노인들이 디지털로 바뀌는 은행 앞에서 시위를 했다고 한다. 키오스크 등 은행의 업무가 온라인으로 처리하니, 그나마 통장을 가지고 입·출금, 송금하던 것을 못하게 되니 디지털 고려장으로 전락한 심정들을 대변하고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어디에 가도 디지털 문맹이거나 디지털 디바이드면 쪽을 못 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에 우유를 배달 시켜 먹었다. 먼저 배달하던 아줌마는 금액을 종이 청구서로 보냈다. 배달하는 하는 아줌마가 바뀌었다.
그 아줌마는 젊어서 그런지 청구서를 스마트 폰으로 “모바일로 보내 주세요.” 집사람은 기분이 무척 상했나 보다. 나이 든 늙은이를 무시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 다음날부터 유유 배달을 단칼에 끊었다. 집사람은 스마트 폰을 쓰고 있지만 정작 ‘모바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모바일 때문에 덩달아 나도 우유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갑자기 끊은 것이 미안한지 며칠은 편의점에서 우유를 사 오더니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었다.
요즈음, 우리 동네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생겼다. 처음에는 사람이 있더니, 지금은 무인점포로 변했다. 거기에 계산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간단한 키오스크(kiosk)가 있어 처리하게 되었다. 아이스케키를 골라서 바구니에 담는다. 단말기에 앞에 가서 시작 버튼을 누른다. 아이스케키에 있는 바코드를 갖다 댄다. 그러면 자동으로 종류와 금액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다음에 계산을 한다. 계산하기 전에 현금이냐, 카드냐를 선택한다. 현금을 내면 거스름돈이 나온다. 나중에는 영수중이 출력 된다. 거기에 비치된 비닐봉투에 넣어가지고 나오면 끝난다. 은행도, 햄버거 가게도 거기에 적당한 키오스가 있어 젊은이들은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늙은 디지털 고려장 급이면 햄버거 하나 사 먹기도 여간 번거롭지 않다.
병원 예약이나 콜센터를 전화로 할 적에는 끝없이 몇 번을 눌러라, 시간이 지났다, 처음부터 다시 하라 등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거기에 생소하거나 익숙지 못한 늙은이들에겐….
코로나19 예방백신예방백신을 맞으면 설치하는 쿠브앱도 만만치가 않다. 젊은이들은 척척하지만 디지털 문맹자들에겐 아날로그식으로 종이에다 쓰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젠 종이에 쓰는 것도 없어지고 있다. 디지털 고려장에 떠밀려 노인네들은 유랑을 하고 았다. 오죽했으면 시위까지 했을까?
특히 노인들에게는 은행거래는 오프라인 거래가 주를 이룬다. 그도 은행업무도 디지털 시대의 손익계산에 의거 오프라인 업무를 볼 수 있는 운행 지점이 폐점 되고 있다. 그러니 이리저리 눈치 보며 살아가야 하는 노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 바람에 패스트 푸드점의 알바를 하는 젊은이들의 자리도 줄어들고 햄버거 한 개도 눈치 보며 사 먹어야 하나보다.
디지털 디바이드, 정보의 격차는 더해갈 것이다. 디지털 고려장은 더욱 심화 될 것이다. 하기야 고려장은 고려시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판 고려장은 어디에서든지 벌어지고 있다. 요양원도 그렇고 독거노인도 그렇다.어떤 이들은 비행기에 태워 외국에다 고려장을 시키기도 한다.
하루에 수십 가지의 메신저가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의 정보는 대개가 쓰레기 같은 것이다. 그런 것들은 똑같은 것이 돌고 돌아 나에게로 두 개씩이나 들어올 수 있다. 우리가 날마다 접하는 세상은 갈수록 허접스러워지고 있다. 진위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인간의 본질을 외면하기 일쑤다. 유튜버에서는 자극적이고 진실이 결여된 정보로 ‘구독, 좋아요’를 눌러 달라고 구걸하다시피 한다.
어제 대형마트에 갔다. 신분 확인인 QR마크를 찍고 들어가란다. 이렇게 현대문명은 급속도로 변하니 특히 노인네들은 디지털 문맹자가 되어 유랑하거나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디지털 고려장까지 당하게 된다. 그나 좀 희망은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 같은 아날로그 문명이 세계를 달구고 있다니, 인간의 본질적인 문명은 아날로그가 아닐까 한다. -문하 정영인- (옮긴 글) |
첫댓글 맞는 말씀 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우리가 오수터미널에 있을때 1995년 7월부터 1999년까지 오수터미널에 있었는데
그때도 어른들이 남원갔더니 차표를 기계에서 끊더래요. 인건비 줄일려고 기계를 놨는디 어른이 표를 사지못해서 고생하고 창피당했다는 말을 오수 터미널에서
하셨어요
우리 큰 아들이 엄마도 컴퓨터 배워두시면 잘 써 먹을 거라고 해서 얼마나 써먹겠어? 했다가 컴터를 시작했더니 거기다
엑셀이랑 파워포인트랑 자습으로 배웠더니 이제는 그걸로 밥벌이가 되었습니다.
또 일찍부터 1998년 부터 컴터를 잘 했던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이 문인들 천만원씩 지원해주는 공모에 당선되어서
시골 에서는 드물게 천만원의 수혜를 입었거든요. 요새도 그렇습니다. 에술인 경력증명 을 해 둔사람은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되잖아요. 어치피 해당되는 사람은 다 나누어 주눈건데 혜택을 보아야지요
문선생님도 추석지나서 주민등본 떼어서 보내주시면 지원금 신청 해볼께요. 80만원 주는 거니까 그건 전라북도에서 주는 겁니다
재산여부에 상관없이 다 주는 겁니다.
등본은 떼어서 방바닥에 반듯하게 놓고 사진 찍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통장 사본도 같이요.최대한 반듯하게 찍고 석장이면 석장다 찍어서 보내야 해요
참으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카페지기 "김여화"란 분 알아 모실게요~
근디 오수 터미날 에서 4~5년을 근무하셨는데 서로가 모르고 지냈네요
제가 터미날 근처에 방앗간 기계를 설치한지가 1984년 4월 이었어요.
우리 공장에 몇 번 오신 것은 기억이 납니다. 저역시 1997년에 세진 컴퓨터
세종대왕을 구입해서 컴사전 구입하고 자력으로 컴 공부를 했습니다.
2000년대에 죽계 저수지 공사장 사무실에서 근무 하실때 한번 방문 했고요
이태연씨와 인연을 맺었고 그분의 알림으로 소원님도 알게 됩니다
하여튼 소임 다하실때 까지 건강 지키시고 많은 도움 주세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