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그 유명한 앙코르 왓 사원을 보러갔다.
흔히 앙코르 왓이 앙코르의 유적군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불려지지만,
유적군 중에서 가장 규모가 방대하고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개별사원의
이름이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 사원입구의 연못을 배경으로
좌우대칭의 균형미를 자랑하는 앙코르 왓의 전경을 잡아보았다.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수백년의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로 밀림
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앙코르 왓의 1층 회랑에는 사면 벽의 한 방향마다 두가지 주제로
총 8개의 주제가 묘사된 방대한 규모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랑카전투, 쿠특세트라의 전투, 신과 악마의 전투와 같은 전쟁 장면들이 많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군대의 모습을 묘사한 수리야바르만
2세군대의 부조, 그리고 인도 신화의 한 부분을 묘사한 '젖의 바다 휘젓기'
같은 창조신화가 새겨져 있다.
그 방대한 양도 엄청나지만 새겨진 부조들의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는
가히 인류의 문화재로서 보존 될만한 작품들이다. 수 많은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장신구 같은 것들도 각각 달라 그 개성적인 부조의 표현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유적의 관리가 철저하지 않아 부조의 앞에 벽따라 길게 줄을 하나 쳐 놓긴
했지만, 관광객들의 손길은 어김없이 부조를 쓸고 어루만지며 지나가기 마련이다.
해서 사람들의 손길을 많이 탄 부조들은 사진 속에서 보듯이 유난히 검고
반들거리는 모습이다.
1층과 2층 회랑을 통과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의 계단' 이 있는
3층 회랑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왕과 고위층 승려들만 올라갈 수 있었던 신성한
공간으로 5개의 탑을 받치는 기단역할 을 하고 있는 곳이다.
각 계단은 모두 40개층으로 이루어지고 그 기울기가 70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즉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사지를 모두 동원해서 기어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한 신의 성소에 닿기 위해서는 왕이건 제사장이건 자신을
낮추고 기어서 그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본래 사람이 아닌
신의 출입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계단을 다 오르고 밑을 내려다 보면 급경사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계단의 밑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내려갈때는 상당히 조심을 해야한다.
주로 보조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는 남쪽계단을 이용하지만 계단의 폭도 무척
좁아서 옆으로 비스듬 하게 걸어 내려가는 것이 좋다. 여기서 굴러떨어지면
앙코르 관광은 그걸로 끝장이다.
사원의 무너진 돌담 틈새로 힘겹게 고개를 내밀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작은 꽃도 보았다. 인간이 버리고 떠난 사원의 잔해에서도 꽃들은 해마다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하고 있었다.
어느덧 일몰이 내리고 앙코르 옛 사원에는 쓸쓸한 정적만 가득하다.
조명과 난방이 설치되지 않은 옛 사원이라 해가 지면 돌보는 이 없는
고즈넉한 유적지로 남는다. 때로, 달 밝은 밤이면 잡초 무성한 돌담 너머로
옛 영화 그리는 제국의 망령들, 그 노래소리만 인적없는 궁성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관광을 마치고 시내 전통극장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앙코르의 옛 춤,
압사라댄스를 구경하였다. 압사라는 앙코르 사원에서만 천점의 부조로
묘사되어 있는 '천상의 무희'를 말한다.
이 전통 춤은 캄보디아의 왕을 위해서만 추던 느린 동작의 우아한 춤곡으로
태국의 전통무용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고대 예술이다. 사실 뜨내기 관광객을
상대로 앙코르의 옛 무용이 충실히 재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잊혀진 전통의 외형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흥미로웠던 공연이었다.
공연관람 후에는 씨엠리엡 시내의 구시장근처에 있는 '레드 피아노'에 들러
툼 레이더 촬영 팀이 즐기던 칵테일 한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메뉴에서 '툼 레이더'를 선택하면 되지만, 나도 마셔보지
않아서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야간 과일시장에 들러 잘 익은 망고들을
사 가는 것도 좋다. 여기 과일들은 무지 싸다. 손짓 발짓으로 과일가격을
흥정해 보는 것도 낯선 여행지 에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