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음기의 발명】
1877년 여름,토머스 에디슨은 실험소의 기사 존 크루세이에게 설계도를 주고 어떤 기계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존은 무슨 영문인지는 잘 몰랐지만 곧 괴상하게 생긴 기계를 만들어 냈다.
에디슨은 수동식 실린더에 얇은 주석 박지를 대고 작은 나팔 모양의 부품을 사용하여 실린더를 회전시키면서 "메리는 새끼 양을 갖고 있었다.
메리의 새끼 양은 새하얗다"라고 나팔에 대고 말했다.
실린더가 회전함에 따라서 나팔에 부착되어 있던 부품은 옆으로 이동해 갔다.
다음에 그 부품을 원위치로 되돌려서 실린더를 돌리자 방금 전에 말했던 에디슨의 말이 그대로 기계에서 들려왔다.
존 크루세이는 깜짝 놀랐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축음기와 레코드이다.
에디슨이 레코드를 발명한 것은 1877년 8월 12일로 되어 있으나,실제로 완성한 것은 그 해 12월 6일이었다.
에디슨은 이 기계를 Phonograph라고 명명하고 다음 해인 1878년부터 제조와 시판을 시작했다.
축음기와 레코드의 발명은 에디슨으로 확정되었지만, 사실 음을 기록하는 장치를 생각해낸 것은 에디슨이 최초는 아니었다.
그보다도 20년 전인 1857년 프랑스에서 레온 스코트란 사람이 Phonograph 라는 장치를 고안하긴 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스코트의 장치는 음을 재생하는데는 실패했다.
또 에디슨이 발명한 해와 같은 1877년 4월 30일에 프랑스의 물리학자이며 시인으로서도 유명한 샤를 크로가 "팔레오폰(과거의 소리)"라고 하는 녹음과 재생 장치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으나 실용화될 수 없다고 무시당했기 때문에 축음기와 레코드의 발명은 에디슨이 최초인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의 레코드는 음질이 나쁘고,5~6회만 사용하면 마멸되어 버렸다.
이 개량에 착수한 사람이 전화 발명으로 이름을 떨친 그레이엄 벨이다.
그는 사촌 형제인 치체스터 벨과 친구 찰스 샘너 틴터의 협력을 얻어 초를 바른 원통에서 좋은 음질의 녹음과 재생에 성공하였다.
그것은 1885년의 일로 1886년 5월에 특허를 취득하였다.
명칭은 그래포폰이며,이것을 안 에디슨도 개량을 시작했다.
이것이 완성된 1887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에밀 벌리너란 과학자가 실린더(원통)가 아닌 디스크(원반)에 의한 레코드와 축음기를 발명했다.
더우기 이 레코드는 에디슨이나 벨의 레코드가 소리나는 홈을 파서 재생할 때 바늘이 상하로 진동하는 것이었으나 이것은 죄우로 진동하는 방식으로서 현재의 레코드와 같은 것이었다.
또한 벨리너의 레코드는 프레스를 하거나 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도 큰 발명이었다.
그가 레코드의 다량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895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