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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
온유
겸손
인내
순결
용서
순종
이 점점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의 옷은 하늘 법정에서 나를 가리는 외투이면서 동시에 내 삶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품성입니다.
6. 이것이 계시록 19장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와 연결됩니다
계시록 19:8은 말합니다.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여기서 아주 아름다운 긴장이 있습니다.
옷은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그 옷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의로운 행위로 나타납니다.
화잇의 관점에서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나에게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내 안에서 역사하며,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삶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도의 행위가 구원의 원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의를 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7.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옷”과 “자기 의의 옷”은 무엇이 다른가?
화잇의 사상을 아주 간단히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자기 의의 옷그리스도의 의의 옷
| 내가 만든다 | 그리스도께서 주신다 |
| 공로를 의지한다 | 은혜를 의지한다 |
| 자신을 자랑한다 | 그리스도를 자랑한다 |
|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쉽다 |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다 |
| 순종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한다 | 사랑받았기 때문에 순종한다 |
| 실패하면 절망한다 | 실패하면 그리스도께 돌아간다 |
| 외적인 의를 추구한다 | 마음의 변화가 시작된다 |
여기서 정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 의는 “내가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그분처럼 변화되기 시작한다”라고 믿습니다.
순서가 완전히 다릅니다.
8. 의의 옷을 입은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죄를 더 미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옷의 가격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옷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잇에게 참된 믿음은 죄를 변명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받음 → 죄를 미워함 → 성령의 도움을 구함 → 죄에서 돌이킴 →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감
이라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9. “입는다”는 표현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옷은 몸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화잇의 표현을 신학적으로 풀어보면,
그리스도의 의를 머리로만 인정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의를 실제로 입는 것
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의로우시다.”
라고 믿는 것은 지식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의가 나의 유일한 의입니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예수님, 제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려 주십시오.”
라고 자신을 그분께 맡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사는 경험입니다.
10. 이것은 “그리스도를 입으라”는 바울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화잇의 표현도 바로 이 성경적 개념 위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입는다 =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간다.
11. 그리고 이것이 “혼인 예복”의 비유와 연결됩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왕의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옵니다.
왕이 묻습니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화잇은 이 예복을 그리스도의 의와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받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초청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왕이 제공한 예복을 받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복음의 그림입니다.
하나님이 초청하신다.하나님이 예복도 준비하신다.인간은 그 예복을 받아 입어야 한다.
구원은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진행되지만, 인간의 응답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12. 이것을 마지막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더 놀랍습니다
목사님께서 지금 연구하고 계신 세 천사의 기별과 연결하면 아주 아름다운 구조가 나옵니다.
첫째 천사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
심판의 시간
나는 무엇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는가?
↓
인간의 자기 의
❌
↓
그리스도의 의
⭕️
↓
셋째 천사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
↓
성도들의 인내
↓
그리스도의 품성이 나타남
↓
계시록 19장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
어린양의 혼인
↓
재림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세 천사의 기별과 재림 준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가 됩니다.
13.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오해를 하나 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었으니 품성의 변화는 필요 없다.”
이것은 화잇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동시에
“내 품성을 충분히 깨끗하게 만들어야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받을 수 있다.”
도 아닙니다.
둘 다 복음의 순서를 뒤집는 것입니다.
올바른 순서는:
그리스도께 나아간다.
↓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는다.
↓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
↓
품성이 변화된다.
↓
그리스도의 의가 삶에서 나타난다.
즉,
의의 옷은 변화의 대가가 아니라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14. 목사님께서 설교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덮어 주신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나의 의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생명을 의지하며,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품성이 내 삶에 나타나도록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더 압축하면:
“칭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것이 되고, 성화에서는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삶에 나타난다.”
이것이 화잇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이해하는 가장 균형 잡힌 방법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목사님이 최근 연구하신 “자아를 버리는 것”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자아를 버린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음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주님, 제게는 입을 옷이 없습니다.
제가 만든 의의 옷도 없습니다.
주께서 준비하신 의의 옷을 입혀 주십시오.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사람답게 살도록
제 안에 주님의 마음과 품성을 이루어 주십시오.”
바로 여기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그리스도의 의, 성화, 계명 순종, 세 천사의 기별, 재림 준비가 하나의 복음으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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