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4-19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4장 14절『만일(에이)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헤 피스티스)은 헛것이 되고 약속(헤 에팡겔리아)은 파기되었느니라』가정법 전치사 에이가 사용된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율법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부르셨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하나님의 의를 물려받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씨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헤 피스티스는 그 믿음이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셨다. 에 팡겔리아는 그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이 믿음 대신 율법을 택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지 못한 것이다.
4장 15절『율법(호 노모스)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호 노모스는 그 율법으로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준 율법이다. 율법은 의롭고 거룩하다. 왜냐하면 그 율법 속에는 그리스도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그 결과 제사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김을 받는 줄로 착각한 것이다.
4장 16절『그러므로(디아 파우토)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카타 카린 에이스 토) 위하여(히나)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텐 에팡겔리안)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디아 파우토는 이것으로 인하여 라는 의미다. 지시형 대명사인 파우토는 중성명사이다. 파우토는 스파르마티(씨)를 의미한다. 씨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히나는 목적이나 결과를 나타내는 종속 접속사이다. 믿음의 씨인 에수 그리스도 말미암은 결과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은혜를 따라(카타 카린)가 된다. 에이스 토 에이나이는 그것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관사인 토는 중성 단수인데, 그 씨(토 스페르마티)를 가리킨다. 믿음의 씨인 에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모든 그 씨에게 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 대한 그 약속(텐 에팡겔리안)이 굳게 해지는 것이다. 그 모든 씨라 함은 믿음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을 통하여 성도도 믿음의 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씨가 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4장 17절『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에피스튜센)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데우 투 조오포이운토스 투스 네크로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칼룬토스) 이시니라』 에피스튜센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순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들어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들어온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자에 대한 믿음이다. 데우 투 조오포이운토스 투스 네크로스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주시는 믿음이다. 조오포이운토스는 분사 현제시제이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살리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투스 네크로스는 분사 현제시제이지만 관사가 있다. 이것은 몸이 죽은 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괸 자들이다.
칼룬토스는 현재시제로서,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아닌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인 것처럼 불러내는 것이다. 칼룬토스는 기본형이 칼레오로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는 소명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영적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세상 사람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이 세상의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4장 18절『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파르 엘피에다 엪 엘피디 에피스튜센) 이는 네 후손(토 스페르마수)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파르 엘피에다 엪 엘피디 에피스튜센은 소망 옆에서 소망 위에서 그는 믿었다는 것이다. 에피스튜센은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토 스페르마수는 네 후손이 아니라 네 씨다. 씨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4장 19절『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카이 메 아스데네사스 테 피스테이 카네토에센)』 카이 메 아스데네사스 테 피스테이는 그리고 그 믿음과 관련해서 약해지지 않았기에 라는 말이다. 그 믿음이란 두가지인데, 그가 백세가 되어 이미 죽게 된 자신의 몸과 사라의 태의 죽음을 깊히 이해했다는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는 말이나, 헬라어 성경은 그 믿음과 관련하여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라는 것이다.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믿음과 관련해서 약해지지 않은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초점이 있으나, 헬라어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에 촞점을 맞추고 있다. 문장의 구조가 한글 개역개정은 이 부분이 뒷부분에 있기 때문이고, 헬라어 성경은 앞부분에 있다. 한글 개역개정은 뒤부분에 있으므로 이 부분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것)을 주절로, 앞부분을 종속절로 본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은 정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부분(카이 메 아스데네사스 테 피스테이)이 앞에 있으므로 종속절이 되는 것이다. 주절은 백세와 사라의 태가 주절이 된다.
즉 믿음(피스테이) 앞에 관사(테)가 있는데, 테 피스테이는 그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씨로 이같으리라 라고 하신 그 씨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씨로 삼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다는 그 믿음이다. 카네토에센은 깊히 이해하다 라는 의미다. 아오리스트 시제로서, 능동태이다. 아브라함이 생리학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문제 때문에 고민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런 문제로 인해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