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Essay 468 - 새문안과 경희궁(慶熙宮)
♣ 歷史 Essay 468 ♣
☞ 새문안과 경희궁
태종(太宗)의 쿠데타 공신 이숙번(李叔蕃1370-1440)은 그 공을 믿고
재상들을 하인 다루듯 하며 오만불손했던 것 같다.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호화주택을 짓고 인마 소리가 시끄럽다고 돈의문(敦義門)을 막아
그 주변이 문을 막았다는 뜻의 새문동(塞門洞)이 되어 새문안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태종 말년 그는 함양(咸陽)으로 귀양가 죽었고 그 집은 왕족들이 번갈아 살다가
광해군(光海君) 때 왕의 이복동생이며 선조(宣祖)의 왕자 정원군(定遠君)이 네 아들과 살았다.
그 중 셋째 능창군(綾昌君)은 재기와 기상에서 왕재(王才)였던 모양이라
그 집에 왕기가 서린다는 등 소문이 자자해 결국 역모죄로 죽고
그 집을 헐고 궁을 만들었는데 지금의 경희궁(慶熙宮)이다.
첫댓글 경희궁에 관한
사료를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