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3
문자 역사에서 아이디어 전파의 인상적인 예는 ‘체로키족’의 음절문자이다. 부호를 사용해 긴말을 기록한 방식이다. 200개 음절 기호를 고안해 점차 85개로 줄었다. 기호의 출처는 영어의 알파벳이다. 중국의 문자는 기호를 사용하고 특유의 원칙을 사용해 독자적으로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의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정사각형을 띤 한자와 몽골 문자에 티베트 불교식 문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한글에만 존재하는 몇몇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 냈다. 자음의 형태는 입술과 혀가 놓이는 위치를 본뜬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문자의 주요 기능은 “타인의 예속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반 대중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은 문자 체계가 간단해지고 표현력도 풍부해진 한참 뒤였다.
국가와 단순한 단위가 충돌할 때 국가가 매번 승리하는 이유는 국가가 무기류나 과학기술이 우위를 지키고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에도 학교와 교회 정부에 의해 우리 머리에 각인된다. 국가에는 필요할 경우 죽음을 각오하라고 독려한다. 영국은 “왕과 조국을 위하여”, 스페인은 “신과 스페인을 위하여”, 라는 구절이 있다. “전쟁터에서 맞는 죽음만큼 아름다운 죽음이 없도다. 저 멀리에서 그 죽음이 보이면 내 가슴이 그 죽음을 뜨겁게 갈망하노라. “(아스텍 제국의 수호신을 위해) 노래했다.
남북아메리카 원주민이 균에의 전멸한 이유를 유라시아와 비교하면 다섯 가지가 불리했다. 1) 유라시아에서는 단백질이 풍부한 곡물이 다양하게 분포하지만, 아메리카는 옥수수뿐이었다. 2) 씨를 하나씩 손으로 심었지만, 유라시아는 한 움큼씩 흩뿌렸다. 3) 손으로 밭을 갈았지만, 유라시아는 가축을 이용해 쟁기질했다. 4) 토양의 비옥도를 높일 두엄이 부족했다. 5) 인간의 근력으로 농사짓지만, 유라시아는 타작하고 곡물을 빻고 관계시설에 가죽의 힘을 이용했다. 해로운 병원균이 역설적으로 가축 수의 차이에 있다. 병원균은 가축이 일으키는 병원균에서 진화한 것이다.
일본은 누구인가? 열강의 문화와 환경에 독특한 나라가 일본이다. 언어의 기원은 논란이 많은 과제이다. 일본인의 유전자와 언어에 새 정보가 쌓인 덕분에 일본이 들어맞는지 검증해 보자. 외모는 한국인과 유사하다. 일본의 자국 언어와 문화가 복잡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유일무이하다 믿고 싶어 한다. 일본이 다른 어떤 언어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하는 건 문화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기원전 660년부터 연대기 13명의 황제를 허구로 만들어 냈다. 히로히토 황제가 일본 국민에게 자신은 신의 후손이 아니라고, 고백하기 전에 일본학자들은 자신의 해석을 허구의 신화에 맞추어야 했다.
일본과 한국은 300~700년 사이에 인적, 물적 교류를 했다는 증거는 많다. 35년간, 일본은 한국을 점령하고 한국 문화 뿌리를 뽑아 한국어를 일본어로 대체하려 했다. 한국인이 일본인을 격멸이 만연한 것은 놀랍지 않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모두 경제 강국으로 대한해협을 두고 거짓된 신화와 과거의 참극으로 오염된 렌즈를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 공통 분모를 찾아내려면 일본인은 누구이고 그들과 밀접한 관계에서 한국인은 어떻게 갈라져 나왔나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세상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토기는 일본에서 1만 2,700년 전에 만든 것이다. 일본 토기는 세계 기록을 보유 중이다. 새끼줄을 점토 위에 굴리거나 누르는 방식의 ‘새끼 줄 모양의 무늬’ 토기를 조문 토기라 한다.
한국과 마주 보는 규슈, 북쪽이 변화의 중요한 증거로 일본에서 처음 등장하는 금속 연장과 철기 농경이다. 이 논농사 방식을 ‘야요이’ 문화라 부른다. 이전에 일본에 없던 것으로 분명 한국의 것이다. 지배계급의 고분은 한국의 영향을 받았고 길이 450m, 높이 30m가 넘는 세계 최대의 큰 무덤이 있다. 불교와 기마술, 도자기 기법과 야금술이 아시아로부터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 인구는 야요이 시대에 70배 증가했다. 이 의문은 지금 일본의 논쟁거리다. 첫째 이론은 수렵·채집하던 조문인이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가정이다. 둘째 이론은 야요이 시대에 한국인이 대거 이주해 한국식 농사법과 문화 및 유전자를 일본에 심었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은 한국으로부터 이주가 이뤄졌다는 증가는 인정하지만,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676년 이전은 삼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한국어는 신라에서 파생한 것이다. 일본과 밀접한 왕래가 있던 왕국은 아니다. 고구려의 단어들이 현대 일본어와 비슷하다. 400년 일본으로 건너와 현대 일본어로 진화한 한국어는 현대 한국어로 진화한 신라어와 달랐을 것이다. 일본인 한국인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인격 형성기를 함께한 쌍둥이 형제와 같다. 양국이 과거의 유대 관계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 필자는 주장한다.
기원전 221년에 통일한 중국은 분열 시기가 있었지만, 항상 재통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유럽은 로마 전성기도 절반이 지배하지 못했다. 지리적 장벽이 있었기 때문이고 중국은 연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규칙도 옛 규칙의 변형에 불과하다. 오늘날 신흥강국은 수천 년 전 식량 생산을 기반으로 한 세력 중심지에 편입된 국가이거나, 그 중심지를 떠난 사람들이 이주한 국가다. 식량 생산의 중심지 초승달 지역과 중국은 즉각적으로 뒤를 이은 후속 국가(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유럽), 혹은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들이 통치하는 국가(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를 통해 지금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인류사를 이해하는 것이 지나온 역사가 중요하지 않고 개별적인 변수도 상대적으로 적은 과학 분야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보다 어렵다. 따라서 필자는 인간 사회에 관한 역사적 연구도 공룡에 관한 연구만큼이나 과학적일 수 있으리라고, 아울러 그것이 현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가르쳐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유익하리라고 확신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한 사람당 국민소득이 최빈국 ‘예멘’보다 부유국 ‘노르웨이’는 400배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제도의 중요성의 예를 보자. 과거 한나라였다, 분단된 세 나라를 소개한다. 첫째는 제1세계의 생활 수준을 누리는 한국과 극단적 낙후한 북한이다. 둘째는 옛 서독의 풍요로운 삶과 동독지역의 낮은 경제 수준이다. 셋째는 카리브해의 ‘히스파니올라’섬으로 서반구는 가난하지만, 동반구는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잘 산다. 지리적 환경적 차이가 없더라도 제도의 차이가 국부의 차이로 나타난 예이다. 좋은 제도는 인플레이션 관리, 교육 기회, 정부의 효율성, 계약의 집행, 무역 장벽 철폐, 금융자본 투자 기회 부여, 부패 척결, 낮은 살인 빈도, 변동환율제, 개인 재산권 보호, 법의 지배, 자본의 원활한 흐름이 전제돼야 한다.
미국 외교관이 잘못 예측한 예는 한국과 가나와 필리핀은 모두 가난한 신생 독립국이었다. 어느 나라가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날지를 놓고 내기를 했다. 가나와 필리핀은 식량을 재배하기 쉽고 천연자원도 많아서, 크게 도약할 것으로 예측했단다. 한국은 추운 데다 천연자원이 별로 없기에 부국으로 발전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60년이 지난 한국은 제1경제 수준에 올랐으나 가나와 필리핀은 가난하다. 이유는 필자는 한국은 중국에 인접하고 온대지역으로 농경과 문자, 금속 연장과 중앙정부가 발달한 지역 중 하나였다. 700년 단일 중앙정부로 통일했다. 한국은 복잡한 제도를 경험했다. 북한의 억압적인 정부는 역사적 이점을 날렸지만, 한국은 달랐다, 40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제도적 측면에 부국의 조건을 갖추었다. 가나와 필리핀은 독자적 문자를 개발하지 못했고, 강력한 중앙정부도 없었다. 천연자원만 풍부한 것이다. 한국을 신속하게 부국으로 만든 원동력은 북잡한 제도, 인적 자본, 문화적 환경이라는 오래 역사다.
(필자의 뼈를 깎는 듯한 역작이라서 천천히 하루 10쪽이란 목표로 읽어나가 40여 일이 걸린 책이다. 정독하고 의미를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나 너무 전공 분야의 깊은 글은 설렁설렁 넘기기도 했으나 한국의 이야기가 언제 나오나 끈기로 읽으니 맨 끝에 나와서 중간은 생각하고 끝부분을 정리한 글이다)
2023.11.16.
총, 균, 쇠-3
JARED DIAMOND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