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일(월)
* 시작 기도
주님...
나는 이미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좇아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죄와 허물로 죽은 자였습니다.
그런 나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으나 우리 주께서 나를 살리셨고 은혜로 구원하시어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혀주셨습니다(엡 2:1-6).
이처럼 나의 존재는 묵시 안에서 하늘에 앉히움을 받은 자인데 역사와 인생 속에서는 더럽고 추한 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자입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옵소서.
나의 영이 주 안에서 사로잡히게 하셔서 나의 옛 사람은 온전히 죽고 예수로 산 자 되게 하옵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주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한 달간 미국에 다녀오는 캄보디아의 조선교사 부부를 눈동자 같이 지키사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든 일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1:20-33
제목 : 왜곡된 복음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참된 복음(지혜)을 온전히 선포하는 사역자들이 늘어나길...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일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 나의 묵상
길거리와 광장 그리고 시끄러운 길목과 성문 어귀나 성중에서 외치는 지혜의 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복된 음성이다.
이것은 듣지 못해서 행하지 못하였다고 핑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음성이다.
이 지혜의 소리는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와 많은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러운 길목 그리고 광장이나 성문 어귀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항상 선포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소리의 내용은 이렇다.
이제는 미련을 벗고 하나님의 지식을 미워하는 어리석음을 던질 것이다.
교만을 벗으라고 한다.
지혜가 주는 책망의 소리를 듣고 죄와 악에서 돌이키라고 한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단다.
세상의 지혜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말씀을 잘 듣는 자는 두려움 없이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러나 지혜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수많은 이들이 듣기 싫어했고 또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듣기는커녕 오히려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비웃었다.
그래서 저들이 재앙을 만날 때 하나님의 지혜도 그들을 비웃고, 저들이 두려워할 때 조롱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저들에게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고 재앙과 슬픔과 근심이 폭풍 같이 임한단다.
그때는 너희가 나를 불러도 지혜가 대답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늘의 지식을 미워하고 하나님 경외함을 즐거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것이다.
급기야 어리석은 자들은 제멋대로 살다가 죽고, 미련한 자들은 태만하게 행동하다가 멸망당할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많이 선포되는지 모른다.
수 천 수 만의 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말씀이 선포된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기독교방송에서 말씀이 선포된다.
인터넷을 통하여 말씀이 선포되고 심지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걸어 가면서나 운전하면서도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온갖 설교를 기록한 책들이 서점마다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다.
그야말로 설교 홍수시대이다.
그런데 문제는 홍수가 나면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다.
즉 마실 생수가 필요하다.
사방 천지가 물로 넘쳐나지만 정작 마실 물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길거리와 광장 그리고 길목마다 성문 어귀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
정말 듣지 못하여 행하지 못하였다고 핑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내용은 전혀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
복음을 듣지만 전혀 복음대로 살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듣는 설교가 많은 경우 하나님의 소원인 영생, 즉 아들의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영생을 누리는 그런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 호가호위 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선포한다는데 있다.
듣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고 탓하기 이전에 먼저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일이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00년이 훨씬 넘었다.
해방과 한국동란 전까지는 믿는 자의 숫자가 미미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믿는 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그것은 식민 치하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는 논리의 복음이 들어와서 활개를 쳤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복음(?)을 받고 예수 믿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교회에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나도, 우리도 잘 살게 해 달라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교인들의 수도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나 교회와 교인의 수가 늘어난 만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끼치는 선한 영향력도 늘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말씀을 영생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이 땅 위에서 복을 받는 말씀으로 왜곡하여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 믿고 이 땅에서 더욱 잘 살기 위하여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갔고, 결국 그것은 세상에 빛과 소금이 아니라 짠돌이 소금덩어리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맛을 잃어서 더 이상 쓸모없이 길에 버려지는 소금 말이다.
여전히 길거리나 성문 어귀에는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나 온전한 복음이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맛을 잃은 소금 덩어리가 던져져서 손가락질만 당할 뿐이다.
이 모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이다.
내가 맛을 잃은 소금처럼 살아 왔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예수를 이용하여 나 잘 먹고 나 잘 살고자 몸부림치며 부르짖었다.
그 믿음은 지극히 이기적인 믿음이었다.
사실 이 믿음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를 이용하여 나를 부자로 만들고자 하는 미신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기에 모태신앙이라는 말을 쓸 정도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나는 참된 복음을 전혀 몰랐다.
복음은 십자가가 전부였으며, 그것도 파편적인 복음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에서 한 몫 잡고 한 가닥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이 땅에서 돈 잘 벌고 건강하며 가족들이 모두 행복한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처럼 나는 철저히 3A에 젖어 살았다.
그러던 나에게 복음이 찾아 왔다.
길거리나 광장, 성문 어귀 등에서 선포되는 지혜의 말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귓등으로 들려서 하늘의 지혜로 살지 못해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을 들었다.
나 또한 바른 복음이 선포되지 못하여 왜곡된 복음을 듣고 내가 또다시 왜곡하는 우를 범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 온전한 복음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의 가치와 관심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임도 알았다.
나는 온전한 통합 복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소원과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예수님의 복종을 알고 그 복종에 내 인생을 드린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나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을 알고 나니 이 세상에 삶의 가치를 두었던 지난날의 잘못된 삶과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전의 삶은 이 땅에서 내가 잘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조건적으로 섬겼었다.
하지만 이제 복음을 안 나는 내가 잘 되기 위함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나 자신을 드려 언약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전의 잘못된 지식을 미워하고 오직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왜곡된 복음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동안 살아 왔나이다.
그저 예수 믿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이 복인 줄 착각하며 살았었습니다.
이 종을 긍휼히 여기시사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제 아버지의 소원을 알고 행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창세전에 주시기로 약속하신 영생을 위하여 아버지께는 당신의 생명으로 나신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상황이 어떠하든 주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소원도 모르고 창세전부터 이루어진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도 모르면서 그저 나 하나 잘 되면 그것이 예수 믿는 자의 복이라고 오해하였습니다.
이 종이 이제는 나의 유익이 아닌 영생을 가치로 살아가게 하소서.
무엇이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이제 알겠나이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잘못되고 왜곡된 복음이 세상을 어지럽히나이다.
나 한 사람이 이 땅이 아니라 영생을 맛보고 누리며 사는 사람이 되어 영원한 나라를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 때, 거기에 욕심이 변하여 넉넉한 나눔의 삶이 이어짐을 깨닫사오니 그것은 오직 주님의 원하심입니다.
오늘도 주를 기뻐하는 한 날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