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에 나타난 판문점 일대
〈1872년 지방지도〉의「장단부 지도」에.
판문교(板門橋)와 도라산(都羅山) 봉수대(烽燧臺)가 그려져 있다.
장단부에서 송도(개성)로 가는 길에 ‘판적교(板積橋)’라는 다리 이름이 나타난다.
판적교(板積橋)·판문교(板門橋)·판문평(板門平)
판문점(板門店)은 조선시대까지 서울에서 의주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의주가도(義州街道)와 사천(砂川)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판적교(板積橋)·판문교(板門橋)·판문평(板門平)’이라는 지명으로
역사 기록에 약간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판문점 일대는 고려시대 송림현 지역으로 조선 태종 때 장단군에 편입되었으며,
송림현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송남면이라 불렸다.
그 후 일제시대 개성군의 일부 지역과 합쳐 장단군 진서면으로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시대 고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750년대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회화식 군현지도집인〈해동지도〉의
「장단부 지도」에는 장단부에서 송도(개성)로 가는 길에
‘판적교(板積橋)’라는 다리 이름이 나타난다.
이 근처에 현재의 판문점이 있다.
1750년에서 1768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팔도군현지도〉의
「장단부 지도」에는 적성에서 장단부를 거쳐 개성으로 가는 도로에
‘판문교(板門橋)’가 표기되어 있다.
판문교 근처에는 판적천(板積川)과 사천(沙川), 송남면(松南面) 등의 지명이 보인다.
조선정부가 1782년에 전국적인 차원의 지도제작 사업을 통하여 제작한
관찬지도(官撰地圖)인〈1872년 지방지도〉의「장단부 지도」에도
‘판문교(板門橋)’가 나타난다.
이 지도에는 현재 경의선의 마지막 역이 있는 도라산(都羅山)도 표기되어 있는데,
전망대가 아니라 봉수대(烽燧臺)가 그려져 있다.
▲ 〈일성록〉에 기록된 판문평(板門平)
<일성록〉철종 6년(1855) 9월1일.
〈일성록〉고종 9년(1872) 3월7일.
이러한 기록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
개성행궁에서 장단부와 파주행궁을 가는 길에 판문평을 지나간 일을 언급한 정도였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일성록〉〈내각일기〉등의
사료에는 이 지역을 가리키는 ‘판문평(板門平)’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 이 지역은 당대의 서울이었던 송도(개성)의 교외 지역에 있어
한량들의 놀이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인 1592년 4월29일에는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판문점 부근에서
장단부사 마고연이 마련해 온 음식을 먹고 의주로 도망가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문종 원년에 경기조전(京畿助戰) 절제사가
마병(馬兵)과 보병(步兵) 3천460명을 거느리고
‘개성부 판문평(板門平)에 둔(屯)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일성록〉〈내각일기〉등의
사료에는 이 지역을 가리키는 ‘판문평(板門平)’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정전협상 장소를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옮긴 것은 1951년 10월이었다.
그 당시 판문점의 회담장이 세워진 곳은 콩밭이었고,
밭 옆에 초가 3채와 주막을 겸한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고.
1950년 6.25 사변 - - 북한의 김일성의 남침3년 1개월 2일 동안의 전쟁 - - 휴전 끝에
1953년~1964년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 되었는데
판문점은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중요한 일들이 일어난 역사 현장이 되었다.
그 후 유엔군측은 1953년 7월22일에 군사정전위원회 준비위원회에서
판문점을 동쪽으로 이전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리하여 1953년 9월에 옛 판문점에서 약 500미터 동쪽에 있는
간만동으로 판문점을 새롭게 이전했다.
간만동으로 새롭게 이전한 판문점의 지도를 보면 군사분계선이
정확하게 남과 북 양쪽을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판문점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이수근 위장 자수(1967),
푸에블로호 미군 송환(1968),
남북적십자 예비회담(1971),
도끼 살인사건(1976),
전대협 대표 임수경의 귀환(1989),
남북고위급회담(1990),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의 소떼 방북(1998),
비전향장기수 송환(2000) 등이 있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은 경기도 파주시와
북한 개성시가 맞닿은 지점에 위치한 동서 800m, 남북 600m 크기의 지역이다.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와 북한군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지정돼어 있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