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우리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셨습니다(롬 10:17).
이는 믿음의 주체가 내가 아니요 우리 주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음으로 그 구원조차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엡 2:8).
따라서 이로 인하여 나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입니다(엡 2:9).
내게 선물로 주신 그 믿음을 오늘도 더 잘 갈고 닦아서 주님과 더 깊이 친밀한 자로 서기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새 날을 주셨으니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설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범죄하는 나의 손과 발 그리고 눈을 뺄 수는 없지만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잠 2:1-22
제목 : 말씀 안에서의 ‘땅’, 영원한 하나님 나라 곧 약속의 땅을 가리킴.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을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 나의 묵상
많은 사람들이 잠언을 읽으면서 한 가지 오류를 범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 잠언을 읽으면서 세상적 지혜와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상식과 지혜 그리고 세상의 지식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 비밀을 알 수 있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주시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잠언을 통하여 얻은 지혜와 지식의 비밀이 땅의 것을 얻는데 최종적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영생에 있기 때문이다.
그 영생은 이미 창세전에 아들과 언약하셨던 복음의 진리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지혜와 지식은 다름 아니라 주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성도가 창세전의 비밀인 이 영생을 얻어 누리길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땅에서 영생을 맛보며 누리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맛보고 영생을 누릴 때 진짜 그 영원한 나라에서 완전하게 누릴 영생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된다.
비록 잠시이지만, 이 땅에서 영생을 맛보지 않고 세상의 쾌락과 향락에 빠져 세상이 주는 fun을 즐기다가 나는 예수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식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죽은 신앙이요,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의 전통과 유산에 불과하다.
주님은 이러한 신앙의 전통과 유산으로 이루어진 법조문은 십자가에 이미 못 박으셨다.
(골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인생의 지혜는 인생의 선배인 어르신들에게 배우고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배우고 익힌 지혜는 대부분 이 땅에서 잘 되고 보상을 받는 것들이다.
지혜를 얻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지혜 역시 하나님의 언약과 뜻을 모르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 잠시는 유익이 있을지 모르나 영원의 세계를 아는 것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우라’고 충고하면서 철저하게 보상신앙에 천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욥 8:5-8)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온전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욥의 친구 빌닷은 욥의 자녀들이 죽고, 그가 망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거나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여 그 기준에 도달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실 것인데 그 회복이라는 것은 곧 이 땅에서 보상받는 현실적 번영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구절인 (욥 8:7)을 빌닷은 보상신앙, 번영신앙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비록 비참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면 현세적인 번영을 누리며 창대해질 것이다.”
나 역시 우리 늘행복한교회를 목회할 때 성도가 개업을 하면 이 구절을 멋지게 표구한 액자를 선물로 주곤 했다.
그러면서 지금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창대해지는 복을 받으라고 축복하는 설교까지 곁들이기도 했다.
나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이용하거나 오용하는 우를 범하는 자였다.
본문 6절에 ‘여호와는 지식을 주시고, 그분으로부터 지식과 명철이 나온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명철을 얻으려고 열심히 주를 섬기며 믿었다.
그 목적은 영생이 아니라 오직 현세적 복을 받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 상황에 맞게 끼워 맞추기 식으로 적용했던 나는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자였다.
이사야 41:10절 말씀이나 예레미야 33:3절 말씀은 현실적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찾아가서 위로와 격려하는 말씀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말씀은 고난당한 사람 아무에게나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은 옳습니다’라고 인정하며 받아들인 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초청하신 그 무덤 속에 말씀과 함께 들어가서 주님과 사귐을 갖는 그런 자에게 주시는 참 위로의 말씀이다.
무덤의 상황은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의 위로는 받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온전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는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
심기도 하시지만,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신다.
주기도 하시지만, 주신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하신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온전한 영생을 누리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유일하신 소망은 영생이다.
이 영생을 위하여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명철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음녀와 창녀에게서 떠나라고 권고하신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를 사망 곧 스올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은과 보배를 구하는 것 같이 지혜와 지식 그리고 명철을 구하면 주님이 은혜를 주신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주를 경외하는 법을 깨닫게 되며 또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거기서 말씀하시는 ‘땅’은 이 세상에서 얻는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얻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오늘 본문 21-22절에서 언급하는 땅과 같은 맥락이다.
(21-22)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여기서 말하는 땅 역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킨다.
이 말씀은 주님이 하신 상상수훈의 말씀과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얼마나 땅을 얻고자 애를 쓰는가?
그런데 그 땅을 아무리 많이 얻어서 가진다 할지라도 영원에 비하면 촌음에 지나지 않을 모형과 그림자 인생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모형과 그림자 같은 이 세상을 본향으로 삼지 않고 영원한 하늘 본향을 그토록 소망하며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이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히 11:13-16).
물론 나라도 지금 당장 누군가 나에게 이 세상에서 땅을 100평이나 천 평쯤 준다면 기뻐할 것은 당연하며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것에 목을 매거나 천착하지 않을 것은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 아님을 알기에 나 또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이 세상을 살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기를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예전에는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존재로 오신 아들의 말씀을 나에게 유리하게 적용하여 그 말씀을 철저히 나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한 아주 극악한 자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자를 심판하신 주님은 옳습니다.
그 심판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심판이 너무 혹독하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외면하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심판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성령의 동아줄로 나를 무덤에 묶으셨습니다.
그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신 주님...
나를 살리기 위하여 주님이 먼저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를 또한 그 십자가에 연합하여 죽게 하셨사오니 이제는 주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는 것이 은혜임을 압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죄와 허물을 벗기시는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큽니다.
이제는 무덤에 거하나 그것이 진멸이 아니라 사랑의 거친 손길임을 아오니 그 안에 머뭅니다.
말씀으로 주님과 거하는 무덤은 나의 안식처요 가장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환난당하고 원통하고 빚을 진 자들이 숨어 있는 아둘람은 곧 내가 거할 피난처요 무덤입니다.
그런 은혜를 알게 하시고 허락하신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