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XMT '한국 추월' 시동, SK하이닉스급 D램 성능 달성으로 판 흔든다
‘DDR5-LPDDR5-LPDDR5X’ 급속 전환
정부 지원에 인재 유출·산업 스파크 결합
IPO 통해 AI 메모리 라인 자립화 시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SK하이닉스와 동급 수준의 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LPDDR)5X D램 개발을 선언하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전력 효율을 최대 30% 개선한 해당 모델은
기존 LPDDR4 중심의 중국 메모리 구조를 단숨에 고성능·저전력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아가 이번 발표로 글로벌 D램 시장 또한 삼성·하이닉스·마이크론 3강 구도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속도 수치가 같아진 이상, 격차는 상징적 수준”이라며 중국의 기술 추격을 시간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AI용 메모리 중심 수요 재편 가속
3일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CXMT는 최근 중국 쿤밍에서 개최된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국제
‘ASIC컨퍼런스2025’에서 자사의 최신 LPDDR5X 모듈이 10,667Mbps 전송 속도를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SK하이닉스가 출시한 프리미엄급 모바일 D램과 동일한 수준으로,
CXMT는 지난 5월 8,533Mbps·9,600Mbps 등급을 양산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한 데 이어
이번에 최고 사양을 추가하며 △12Gb·16Gb 다이 △12GB·16GB·24GB 칩 솔루션
△16GB·32GB 모듈(LPCAMM)까지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CXMT는 10,667Mbps 등급 LPDDR5X 모듈의 양산 수율이나 실제 납품 물량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그간 샤오미와 화웨이 등 자국 스마트폰 업체에 주력으로 메모리를 공급해 온 만큼 LPDDR5X 역시 동일한 구조로
유통될 전망이다. 아울러 중국 내 프리미엄 단말과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기기 시장에서 자국산 D램으로
대체 가능한 선택지가 생기면서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로 칩 조달이 불안정해진 여타 브랜드들 또한
국산화를 택할 유인이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CXMT가 범용 D램 중심에서 프리미엄 모바일 메모리 영역으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지난 7월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4년 3%였던 CXMT의 시장 점유율이
올해 5%, 2027년 10%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당장 올해 말부터 중국 주요 스마트폰과 AI 단말에 LPDDR5X가 탑재될 경우,
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의 3강 구도는 CXMT까지 더해진 4강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초저전력 D램에서 SK하이닉스와 동급 속도를 구현하면서
시장 재편 또한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다만 CXMT가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SoC 호환성을 위한 제덱(JEDEC) 표준 인증, 모바일 AP 설계 승인,
양산 수율 안정 등 글로벌 공급망 편입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10,667Mbps라는 구체적 수치를 내세운 상황에서 오랜 시간 한국이 유지해 온 기술적 우위는
이미 상징적 의미로 축소되는 형국이다.
한국 메모리업계는 LPDDR6와 고대역폭메모리(HBM)3E 이후 세대에서 다시 격차를 벌려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고, CXMT는 이번 공개를 기점으로 내년 점유율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中 ‘반도체 굴기’ 집중 지원 성과
CXMT의 기술 추격을 둘러싼 평가는 여전히 갈린다.
보수적으로 보는 쪽은 이번 LPDDR5X 발표가 속도 숫자를 보여준 데 그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CXMT가 공개한 정보는 전송 속도와 용량, 제품군 구성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이 대부분이고,
실제 양산 구간에서 얼마나 많은 물량을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선 밝혀진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2023년에 드러난 삼성전자 설계 자료 유출 사건처럼 일부 성과가 외부 기술에 기대어 만들어졌던 전례를
되짚어 볼 때, 이를 기술 격차 소멸로 단정하기는 무리라는 게 회의론자들의 시각이다.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중국의 기술 추격이 이미 본궤도에 올랐으며, 그 전략은 ‘돈과 시간’으로 요약된다고 본다.
CXMT의 분전은 중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굴기’의 일환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국유펀드가 공장 증설과 연구개발(R&D)을 지원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CXMT는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지난해 허페이·베이징 공장에 HBM 라인을 증설하고,
현재는 상하이 패키징 시설을 구축 중이다. 이는 생산량과 경험을 먼저 확보해 ‘규모의 속도전’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런 대규모 자금 투입은 기술 축적보다 훨씬 빠른 효과를 낸다.
CXMT가 발표하는 신제품 대부분이 양산 검증이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시장에서 존재감을 갖게 된 이유는
정부 보조금으로 손익분기점을 무시한 채 설비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이퍼 투입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고,
감가상각을 행정적으로 보전받는 구조는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R&D 리스크를 사실상 공공 부문이 떠안는 형태다.
이런 ‘공적 자본-기술 인력 결합’ 모델 덕분에 중국은 실질적 수율보다 더 빠른 주기로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결과적으로 CXMT의 급성장은 막대한 자금력과 정책적 지원이 결합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는 전략 산업으로 반도체를 지정하고, 각 지방정부는 공장 설립에 토지·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여기에 국유펀드와 정책은행은 R&D 자금을, 민간 투자자는 상장(IPO) 기대 수익을 공급한다.
이렇게 형성된 자본 생태계가 인재 유입과 기술 확산의 속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앞선 기술력으로 시장을 주도해 온 한국 기업들이 자금과 정책이 결합된 규모의 경제 앞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른 배경이다.
D램 공급 과잉 우려도
이처럼 중국 정부의 자금 지원과 내수 기반을 발판 삼아 급성장한 CXMT는 이제 자본시장으로 무대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현재 CXMT는중국국제금융공사와 중신증권 등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 절차를 진행 중으로,
이르면 내년 1분기 상하이 증시에 상장해 최대 400억 위안(약 56억 달러·8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조달된 자금은 AI 메모리와 HBM 라인 증설에 투입된다.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에 의하면
CXMT는 최근 직원 대표 선출과 국유 주주 지분 정리를 마치며 상장 절차의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다.
CXMT의 IPO는 단순 자금 조달을 넘어 AI 메모리 주권 확보를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서 화웨이·알리바바·바이두 등 중국 내 AI 칩 제조사들이 메모리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CXMT는 첨단 D램과 HBM의 내수 공급망을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CXMT는 화웨이에 자체 개발 HBM3를 공급한 데
이어 2027년까지 차세대 HBM3E 상용화를 이루겠단 포부를 밝혔다.
이 계획이 현실화하면, 중국은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메모리 완전 자립’을 선언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청사진은 CXMT의 투자 여력을 한층 끌어올린다. 시장조사 업체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2023~2024년 CXMT의 자본 지출은 60억~70억 달러(약 8조6,000억~10조원)로 추산됐는데,
올해는 이보다 5%가량 증가할 것으로 관측됐다. CXMT의 상장이 현실화되면,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R&D·설계·패키징·양산·투자까지 아우르는 완전한 수직통합 구조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기술 격차 축소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가격 결정권이 중국으로 일부 이동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시장에서 내년 D램 가격 급락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 하반기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은 수요 급증에 따른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CXMT의 증설이 본격화되면
공급 과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CXMT는 기술 완성도보다 시장 점유율 확보를 우선시한다는 기조를 분명히 했으며,
이를 위해 가격 인하 전략을 통한 시장 영향력 확대에 돌입한 상태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해 온 고급형 D램 시장의 수익률을 빠르게 잠식할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CXMT의 IPO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 자본과 정책을 무기로
한국의 기술 우위에 정면 도전장을 던지는 신호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