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을 몰라서 사는 힘
사람들이 사는 힘은
어쩌면 끝을 몰라서 생기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인생의 결말을 다 알고 태어났다면,
누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겠습니까.
좋은 집 하나 얻어 보겠다고 허리 굽혀 일하고,
자식 하나 잘 키워 보겠다고 속을 태우고,
사람 하나 믿었다가 다치고도
또 사람을 만나며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내가 애써 붙잡은 것이 끝내 내 것이 될지,
지금 흘리는 눈물이 훗날 웃음이 될지,
오늘 만난 사람이 복이 될지 짐이 될지 모릅니다.
모르니까 기대하고,
모르니까 참고,
모르니까 내일 아침 또 밥을 먹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참 순진합니다.
젊을 때는 인생이 대단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큰 뜻도 있고,
깊은 비밀도 있고,
언젠가는 내가 걸어온 길의 의미가 환하게 드러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아 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남는 것은 천지의 비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은 몇 개의 말이었습니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상처,
같이 먹었던 밥 몇 숟가락,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얼굴 몇 개.
그런데 또 웃기는 일은,
그 몇 가지 때문에 우리가 참 오래 울고 웃었다는 것입니다.
집 한 칸 마련하려고 애쓰고,
자식 밥 한 끼 더 먹이려고 속을 태우고,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밤새 이불을 뒤척였습니다.
이쯤 되면
인생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조금 귀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고 살았으니 그만큼 애썼고,
착각했으니 그만큼 버텼고,
기대했으니 그만큼 아침을 맞았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다 알았다면,
우리는 아마 이불도 개지 않고 누워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차피 별것도 아닌데 뭐 하러 일어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사람에게 결말을 미리 보여 주지 않는가 봅니다.
모르게 해서 살게 하고,
착각하게 해서 걷게 하고,
기대하게 해서 하루를 넘기게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보니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인생이 특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오늘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요.
결말을 조금 눈치챈 뒤에도
사람은 밥을 먹습니다.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서 머리도 대충 빗습니다.
마음으로는 도인처럼 살고 싶어도,
막상 외출할 때는
옷 색깔이 맞는지 한 번 더 봅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허무를 말하면서도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내려놓겠다 하면서도 리모컨은 끝까지 찾고,
마음 비웠다 하면서도
누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았는지 슬쩍 확인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 우습고,
그래서 또 정이 갑니다.
끝을 모르던 시절에는 희망으로 살았습니다.
끝을 조금 알게 된 지금은 웃으며 삽니다.
예전처럼 세상을 다 이기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함부로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인생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아 버린 사람이
그래도 밥상을 차리고,
바람 부는 쪽을 바라보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남기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모르고 산 세월도 고맙고,
알고도 살아가는 오늘도 고맙습니다.
끝을 몰라서 시작한 인생,
이제는 조금 알면서도 계속 걷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뛰지는 않습니다.
숨 차면 앉고,
배고프면 먹고,
웃길 일이 있으면 그냥 웃으면서.
그렇게 오늘도 사람답게,
모르는 척 한 걸음 더 가 봅니다.
-- 탁구시인
첫댓글
모르면 알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하나씩 알아 가면서 살아도
또 모르는 것이 생기잖아요.^^
몰라서 알아내는 기쁨도 있지만,
알고보니 별 것 아닌 것도 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가져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또 다른 것을 가지고 싶지요.
다 몰라서 여기까지 어렵게 왔습니다만,
이루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이 인생입니다.
그 사실을 늦게나마 알아 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쉬엄 쉬엄 가는 멋을 압니다.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배울 것이 있고 또 하심하고
지금은 내 몸 건강하고, 安分之足 입니다.
탁구시인님, 글이 갈수록 마음에 닿습니다.
어수선한 때에 수필방 사랑을 알겠습니다.
모르고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씀에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알아가며 사는 기쁨도 있었고,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던 일들도 있었고,
그 사이에서 사람은 조금씩 힘을 빼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말씀처럼
쉬엄쉬엄 가는 멋을 알게 되는 나이가
어쩌면 가장 단단한 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安分之足이라는 말씀이
참 깊고 편안하게 남습니다.
함께 생각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끝이 끝이 아니고 매듭이라는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다 알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끝이 아니라 매듭이라는 말씀에
조용히 마음이 머뭅니다.
끝이라 생각하면 멈추게 되지만,
매듭이라 생각하면
다시 이어갈 힘이 남는 것 같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다르다는 것도
살면서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깊은 말씀 오래 새기겠습니다.
오늘은 탁구시인 말고,
인생시인으로 불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시인이라 불러 주시니
괜히 어깨가 무거워지면서도
마음 한쪽이 따뜻해집니다.
아직은 삶을 다 아는 사람이라기보다
살아가며 조금씩 배워 쓰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좋게 불러 주신 마음,
고맙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