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위기는 국민 밥상에서 시작된다
물가 폭등에 지지율 바닥 바이든
새 정부, 美 정책 실패에서 배워야
최근 미국에선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점심 외식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직장인들은 밥값이 무서워 출근이 꺼려질 정도라고 한다. 뉴욕은 원래 물가가 상당히 높았지만 요즘은 정말 살인적인 수준이다. 유명 레스토랑 체인 ‘스위트그린’에서 한 뼘 남짓 너비의 그릇에 담긴 샐러드를 주문하면 팁을 빼고도 16달러(약 2만 원) 이상을 내야 한다. 햄버거 등 주요 품목 가격상승률은 지난 1년 10%를 웃돌았다.
기름값도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미국인들은 차를 집에 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대중교통망이 한국만큼 촘촘하지 않은 미국에선 차로 2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면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이들이 차를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주유소 가기가 겁난다는 얘기다. 맨해튼 아파트 월세도 3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평균 500만 원에 육박할 기세다.
지난해 이후 한국 언론에서는 미국 기업의 구인난이 자주 보도됐다. 일자리는 널려 있는데 사람은 구하기 힘들어지자 회사는 직원들 월급과 보너스를 대폭 올려줬다. 근로자에겐 천국일 것 같지만 정작 이들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빨리 오르다 보니 생활이 오히려 궁핍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인 주당 실질 임금은 18달러가량 쪼그라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물가 폭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라며 ‘푸틴의 물가’라는 딱지를 붙였다. 무리한 침략 전쟁과 그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가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을 더욱 끌어올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플레이션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인 올 1월 미국 물가상승률은 1년 전의 5배 이상으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 기간 생존에 필수적인 식료품값 기름값 주거비 등이 전체 인플레이션을 주도했다. 점심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자신의 차로 출퇴근하기를 포기하는 미국인도 이때부터 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때 이른 정권 위기로 나타났다. 집권 2년 차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작 30%대를 맴돌고 있다. 비슷한 시기 도널드 트럼프를 제외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낮고, 퇴임을 2주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마저 밑돈다. 이런 예외적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을 꼽으라면 단연 경제정책 실패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음이 꾸준히 나왔지만 그때마다 당국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묵살하면서 바가지요금 단속 같은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놨다. 팬데믹 충격을 극복하겠다며 전·현직 행정부가 단행한 천문학적 재정 지출과 ‘돈 풀기’는 당장엔 인기를 끌었을지 몰라도 40년 만의 물가 폭등이라는 부메랑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지난달 인수위원회 워크숍에서 한 전문가는 “경제 성장은 못 해도 국민이 용서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못 잡으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앞에서 경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물가나 세금을 잘못 다뤘다가 정권이 흔들린 사례는 세계사에 매우 흔하다.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 찰스 멍거는 고대 로마제국 멸망의 주된 이유로 물가 관리 실패를 꼽는다. 새 정부는 그 반면교사를 그리 멀리까지 돌아볼 것도 없이 지금 미국에서 찾으면 된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