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계절
안정숙
쓰러져 누운 계곡에 여름이 헐벗고 있다
작달비 속으로 쓸려간 먹장구름
체육관 이재민과 굴참나무의 질펀한 신음 소리
실종된 펜션에는 주소 잃고 표류하는 돌멩이들 뿐
호박잎 다칠까 무당벌레조차 조마거렸던 시간
물웅덩이에 창백해진 신발 한 짝
길 건너려 기다리는 개미 떼
종아리를 걷어붙인 슈퍼주인
지루했던 이불을 담장에 걸터앉히자
물에 잠긴 골목이 고단한 궤적을 드러내고 있다
실종된 길을 기억하려 물기를 터는 물총새
해끔해끔한 조약돌 구르는 소리 들릴 듯
장마 비도 쉬어가는 새벽녘
바람이 자그럽게 살랑거릴 때
비 그친 틈새 메워주는 매미 소리
밭고랑에 옥수수와 개똥벌레, 등 기대며
아침을 기다린다
갓길 노란 금계국
허공에 여백을 그리기 시작하고
(김포문학 37호, 113페이지, 2020. 제 5회 김포문학상 신인상 당선작_장년부 시 부문)
[작가소개]
안정숙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예대학 20~23기 수료. 제 27회 김포시 백일장 대회
장원. 제 5회 김포문학상 신인상(시부문)당선으로 등단. 제 2회 한탄강문학상 은상 수상(2022)
[시향]
태풍이 쓸고 간 풍경을 뜰채로 뜨듯 잘 묘사하고 있다 헐벗은 여름 계곡, 체육관 이재민, 쓰러진 굴참나무, 실종된 펜션과 물웅덩이에 주인 잃은 신발 한 짝, 끊겨버린 길에서 망연자실하는 개미 떼. 살아남은 자에게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 종아리를 걷어붙인 슈퍼 주인이 급한 일을 처리하고 느지막이 젖은 이불을 담장에 걸치자 겨우 골목의 모습이 드러난다 익숙했던 새들의 길도 지도가 바뀌었다 사라진 길을 찾으려는 물총새가 새로이 마음을 다지듯 물기를 털어낸다 장맛비가 잠시 숨 고르는 새벽녘, 바람이 불고, 이런 와중에도 짝을 부르는 매미 떼가 우렁차게 울어댄다 밭고랑엔 놀란 옥수숫대와 개똥벌레가 서로 의지하듯 등을 기대고 있다 길가엔 금계국이 여백을 남기며 허공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실종된 계절이 이렇게 장맛비를 밀어내고 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글 : 박정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