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요트고래사냥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해군에서의 `빵과 물`
베스 추천 0 조회 65 13.01.17 11: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 코트를 입으니까 주머니에 껍질 벗긴 양파가 들어 있었어. 이 아이가 반듯한 행동을 익히기까지 빵과 물만 주며 방에 가둬두고 싶어. 특히 심했던 사건은 어느 날 아침 칠판에 나를 우습게 그려놓은 것을 발견한....‘

                                                                             -루시 M. 몽고메리, 『빨간머리 앤 : 4권』에서-

‘.... 아주머니는 세라가 빵 쪽을 힐끗 보는걸 알아차리고는 물었다. “빵 살거니?” 세라가 말했다. “빵 네 개 주시겠어요? 하나에 1페니짜리로요.” 아주머니는 진열장으로 가서 종이봉투에 빵을 담았다. 세라는 아주머니가 빵을 여섯 개 넣는 것을 보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네 개라고 했는데요. 4페니밖에 없어요.” 아주머니는 부드럽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냥 덤으로 주는거야. 나중에 먹으면 좋잖아. 배고프지 않니?” 세라는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프랜시스 H. 버넷, 『세라 이야기(소공녀)』에서-


1. 서구 문화권에서의 빵과 물(Bread and Water)의 의미

개인적으로... 어릴적 읽었던 여러 동화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부분은 먹는 것에 관한 대목들입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 묘사되는 흰빵에 대한 집착이라던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나오는 고기가 들어간 스프에 관한 얘기 등등 말이죠. 다만 그런 얘기들 중에서 어린 마음에 유독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말썽 피운 아이를 다락방에 가두고 벌로써 저녁으로 빵과 물만 먹도록 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빵이라고는 고작 슈퍼에서 파는 100원 짜리 단팥빵이나 슈크림빵, 아니면 잘해야 식빵 정도 밖에 몰랐던 당시의 제게 빵이란 곧 ‘달고 맛있는 간식’을 의미했기 때문이었죠. 그러니 ‘저녁으로 빵과 물을 먹는게 왜 벌일까?’ 하는 의문도 들고 오히려 그렇게 맛있는걸 저녁으로 먹을 수 있다는게 부럽게만 느껴지더군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오른쪽의 물건은 일본에서 ‘하이디의 흰빵’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빵.]

사실 옛날 유럽 사람들이 식사용으로 먹던 빵은 오늘날의 빵처럼 우유나 버터나 계란이 들어가는건 고사하고, 주성분인 밀가루에 조차 밀기울이나 기타 잡 성분이 많이 섞인 조악한 물건이었습니다. 빵의 폭신폭신한 식감이나 부드러운 맛과 향은 모두 흰 밀가루와 버터 등의 유제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것 없이 구워진 빵은 바게뜨나 베이글처럼 딱딱하고 질기고 퍼석퍼석한 식감과 맛을 갖게 되죠. 문제중년님에 따르면 심지어 중세 프랑스 농촌에서는 빵이 돌처럼 단단해서 그걸 손으로 ‘쪼갤 수 있어야’ 어른으로 인정받았다고도 할 정도니... 저녁으로 그런 빵 한 조각과 물 한잔만 달랑 주어진다면(버터도 쨈도 우유도 없이) 정말 암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세의 빵은 빵이 아니라 차라리 벽돌에 가까웠을지도....;;]

아무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문화에서 끼니의 기본적 요소가 ‘밥’이듯이 밀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 문화권에서 ‘빵과 물’은 식사의 기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허나 그와 동시에 위에서 언급된 옛날 빵들의 조악한 품질로 인해서 빵과 물만으로 구성된 식사는 ‘검소함’ 또는 ‘빈곤’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죠.

‘빵과 물만 있다면 신도 부럽지 않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
‘....여러분이 그들에게 호사품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싸구려 찻잎 몇 조각으로 색깔을 내고, 거기에다 시커먼 갈색 설탕으로 단맛을 낸 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생활필수품으로 이것에 의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마저 박탈당한다면 그들은 곧 빵과 물만 먹게 될 것이다....’ (시드니 민츠, 『설탕과 권력』에서)

이에 더해 빵과 물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처벌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다른 식구들이 보통의 식사를 하는 사이에 말썽을 피운 아이에게는 빵과 물만 준다거나, 교회의 계율을 어긴 자에게 일정기간 동안 빵과 물만 먹으며 참회하도록 한다거나, 죄수를 빛도 들지 않는 성 밑의 지하 감옥에 가두고 몇 년 동안 빵과 물만 먹인다던가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죠. 이는 물론 처벌을 통한 기율 유지에 의존했던 과거의 해군에서도 즐겨 사용됐습니다.

그렇긴 해도... 몇 대만 맞아도 등에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 흉터가 남고 심하게는 죽을 수도 있는 채찍질이 예사였던 시대에서 며칠 동안 독방에 갇혀서 빵과 물만 먹게 되는 처벌은 그리 심한 벌은 아니었습니다. 그 독방이 비와 바람이 그대로 들이닥치는 함수갑판 밑 창고였다는 것과, 빵(Bread)이라고 지칭되는 물건이 우리가 아는 빵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죠.

예전에 쓴 글 쉽비스킷을 통해 본 영국해군에서도 언급했듯이 19세기 중반 이전까지 영국 해군의 주식은 쉽비스킷이었고 Bread란 단어 또한 빵이 아닌 쉽비스킷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일반적인 빵에는 Soft Bread라는 표현을 썼음) 잘 아시듯이 쉽비스킷은 특유의 딱딱함이나 바구미의 소굴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악명으로 유명하죠. 그러니 독방에 갇힌 수병이 파도와 비바람에 시달리면서 1주일가량 쉽비스킷과 물로 연명하고 나면, 죽지는 않아도 허수아비처럼 빼빼 말라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상태로 변하곤 했다고 하네요.--;


[술을 마시다 걸리거나 근무 교대에 늦거나 하면 저렇게 기율장교에게 불려간 뒤 며칠 동안 독방에 갇혀 빵과 물만 먹게 되는거죠.]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점차적으로 수병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면서 채찍질 등의 악형은 폐지되었지만, 독방에 가둔 뒤 빵과 물만 먹이는 처벌은 가벼운 규율 위반에 대한 처벌로써 좀 더 완화된 형태로 존속되었습니다. 영국 해군에서는, 이제 수병은 더 이상 파도와 비바람에 시달릴 필요 없이 테이블과 침대와 베개와 담요까지 갖춰진 영창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게다가 하루에 정해진 분량의 뱃밥(낡은 밧줄을 푼 것. 누수 방지용)만 풀고 나면 나머지는 성서나 교범집 같은거라도 읽거나 그냥 빈둥대는 식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었습니다. 식사로 주어지는 빵과 물 또한 비록 맛은 없을지언정 이제 쉽비스킷이 아닌 제대로 된 빵이 주어졌죠.

미국 해군의 경우 ‘영창+빵과 물’은 가장 낮은 수준의 처벌 유형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중죄에 대해서는 정식 군법회의가 개최되지만 근무 교대가 늦었다거나 복장이 불량하다거나 하는 사소한 규율 위반에 대해서는 함장이 재량껏 처벌을 가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함장은 휴가 제한, 초과근무, 영창 수감 등을 명할 수 있었죠. 이때 영창 수감일수는 최대 7일을 넘을 수 없었고 식사로 빵과 물만 지급될 경우에는 수감 일수가 최대 5일로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들 국가에서 빵과 물만 먹는 영창 생활이란 ‘사소한 죄에 대한 사소한 벌’에 가까웠고, 심각한 처벌의 성격을 지녔다기보다는 그냥 어느 정도 머리를 식히고 오라는 의미가 강했다고 보입니다.


[함상에서의 빵 ① : 2차대전 중 독일 잠수함들은 출항 전에 대량으로 빵을 실어놨다가 작전 도중에는 곰팡이가 핀 부분만 잘라내서 먹곤 했죠. (사진은 영화 「Das Boot」에서)]


[함상에서의 빵 ② : 1차대전 당시 미국 수송선의 빵 창고. Dough(빵) for Dough-Boy(1차대전 당시 미군 병사를 지칭하는 말)라는 표현이 재밌네요.]


2. ‘빵과 물’이 중형으로 인식됐던 사례들

물론 상황이나 내·외부의 생활환경에 따라서는 ‘빵과 물’이 단순히 머리를 식히는 정도의 처벌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죠. 다음 예화들은 그런 경우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전략) .... 나는 승조원들 편에 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해주려고 노력했다. 이제 겨우 20세도 채 안되는 기관부 요원인 에른스트의 경우처럼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기꺼이 도와주었다. 에른스트는 라팔리스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해외 주둔 독일군의 명예를 손상시킨‘ 죄목으로 6개월간 감옥살이를 언도 받았다. 나는 이 판결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이 지역 최고사령관에게 합법적인 건의를 하여 6주간의 ’구금‘으로 감형해주었다. ’구금‘이란, 2일간은 빵과 물, 3일째는 수프, 그리고 다시 빵과 물이 반복되는 식사만 하면서 중노동을 해야 하는 벌이었다. 따라서 그는 라팔리스의 수영장 건설 작업에 동원되었다.
 어느 날 내가 차를 몰고 건물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구덩이를 파다가 뛰어나와 내 차 라디에이터 오른편에 우뚝 섰다. 그의 모습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위었고, 지저분하였으며 눈은 쾡하니 쑥 들어간 몰골을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즉시 내 차에 태워 데리고 와서는 그의 죄를 감형해 줄 수 있는 모병 담당 장교를 설득하여 집행유예로 감형해주었다. .... (후략)‘

(출처 : 피터 크레머, 최일 譯, 『U-333』, 문학관, 2004, p.103)


[19세기 말의 프랑스 감옥과 소련의 수용소. 식빵 1쪽이 대략 30g 정도의 무게입니다. 하루의 빵 배급량이 300g이라면 1끼당 식빵 3~4쪽만 먹고 버텨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죠.]

'(전략) .... “자 여러분, 잘들 있으시오.”
 중령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머리를 한번 끄덕여 104반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간수 뒤를 따라 막사를 나갔다.
 몇 명의 목소리가 그를 격려한다―기운을 내라! 굴하지 말라!
 그 이상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104반은 자기들의 손으로 영창을 세웠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감방 벽은 돌, 바닥은 시멘트, 창문은 하나도 없다. 난로를 때는 것은 벽의 얼음을 녹여 바닥에 물구덩을 만들기 위해서다. 잠자리는 판자조각. 가령 이가 멀쩡하다면, 300g씩의 빵이 매일 지급되고, 사흘째와 엿새째, 아흐레째 되는 날에 수프가 나온다.
 10일! 이곳 독방 영창에서의 10일, 게다가 중영창에서 10일을 채우고 나면, 이미 그의 건강은 평생을 두고도 회복될 길이 없다. 십중팔구는 무서운 결핵에 걸려 다시는 병원 침대를 떠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만일 중영창에서 15일 밤낮을 채우고 나면, 그때는 이미 축축한 땅 속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출처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동현 譯,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문예출판사, 1999, p.225)

이처럼 ‘빵과 물’에는 식사의 기본이자 최저선, 그야말로 살기 위해 마지못해 먹는다는 의미가 있었기에 평소에는 빵과 물만을 먹는다는 것이 기피되고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행동이었지만, 드물게 수병들이 자발적으로 빵과 물만을 먹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바로 구더기가 꾄 고기 사건으로 유명한 포템킨 봉기의 경우죠.


[빵과 물만 먹는 수병들과 수프 냄비만 남은 채 아무도 없는 수병식당 (사진은 영화 「전함 포템킨」에서)]

‘(전략) .... 수병들은 길리아롭스끼이 부함장이 자신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길리아롭스끼이는 잰 걸음으로 배식구 쪽으로 걸어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수병들이 배식을 받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리병에게 물었다.
조리병 이반 다닐륙(Ivan Daniluc)이 대답했다.
“수병들이 고기스프에는 손도 대지 않으려 합니다, 부함장님. 수병들이 스프와 남아 있는 썩은 고기를 모두 바다에 버려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조리병은 가까운 식탁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부함장님. 수병들은 빵과 물만 먹고 있습니다. 수병들은 차와 버터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길리아롭스끼이는 자신이 온 것을 알고 숨을 죽이고 있는 출구 쪽 수병들을 향해 화가 난 듯이 몸을 휙 돌려, 수병들의 아우성 소리를 잠재우려는 듯 큰 소리로 “조용히 해!”라고 명령했다.
“지금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이것은 시위야! 잠자코 스프를 먹는게 좋을거야.”
그러나 길리아롭스끼이는 왁자지껄한 혼란이 반쯤 가라앉았을 때 겨우 몇 마디 할 수 있었다. 수병들 속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썩은 내가 나는 고기, 너나 먹어라. 우리는 빵과 물을 먹겠다.”

(출처 : 리처드 휴, 김성준 譯, 『전함 포템킨』, 서해문집, 2005, pp.24~25)

상한 고기로 만든 수프를 먹을 바에는 차라리 식사의 최저선인 빵과 물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이런 태도는 결국 부함장에 의한 총살 위협으로 이어져 수병들의 봉기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죠.

아무튼 영창에 가두고 며칠 동안 빵과 물만 먹이는 제도는 요즘도 여전합니다. 재밌는건 미 해군의 경우 전통적인 무단이탈, 음주, 근무태만 등의 사유에 이어서 최근 들어서는 함내에서의 부적절한 이성 교제가 빵과 물만 먹게 되는 주요인 중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고 하네요. 하기야 기나긴 선상 생활 동안 저런 경우를 맞닥뜨리게 되면 ‘그까짓거, 빵과 물만 먹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울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p.s. '빵과 물‘을 맛보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19세기식 빵과 물‘을 제대로 체험해보려면 우유나 버터, 계란 같은게 들어간 부드러운 빵말고 진짜 거칠고 맛없는 빵을 구하는게 좋죠. 근처의 파리바게뜨에 가서 ’플레인 깜빠뉴(프랑스 시골 빵이라고 하더군요)‘라는 빵을 산 다음 그날 저녁으로 물과 함께 꾸역꾸역 씹다 보면, 아마도 평소 먹던 밥상이 환상의 진수성찬으로 느껴지게 될겁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아오키 에이치, 최재수 譯, 『시파워의 세계사 1권』, 한국해사문제연구소, 1995
- 마커스 레디커, 박연 譯,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 까치, 2001
- 리처드 휴, 김성준 譯, 『전함 포템킨』, 서해문집, 2005
- 하인리히 야콥, 곽명단 譯, 『빵의 역사』, 우물이 있는 집, 2005
- Ridley McLean, The Bluejackets' manual : United States Navy, US Naval Institute, 1940
- Arthur A. Ageton, The Naval Officer's Guide, Whittlesey House, 1944
- Christopher Mckee, Sober Men and Tru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 http://www.history.navy.mil/library/online/flogging.htm
- http://www.naval-history.net/WW2MemoirAndSo09.htm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