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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진달래민속축제는 |
1) 복지겸 |
면천복씨(沔川卜氏)의 시조인 복지겸(卜智謙)은 고려의 기병대장, 고려개국 1등 공신으로 초명은 사괴(沙槐), 시호는 무공(武恭)으로 신라말기 후삼국시대의 격동기에 궁예(弓裔)밑에 있으면서 여러 차례 큰 전공을 세웠다. 복지겸은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 등과 궁예를 보좌하였고, 개인적으로는 궁예 군사력의 정예인 기병군단(騎兵軍團)의 장군이었다. 복지겸은 궁예의 폭정으로 조정의 신하들이 죄 없이 죽임을 당하고 백성들은 가혹한 수탈로 도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며, 게다가 궁예의 실정을 간하는 아내와 두 아들마저 무참히 살해하는 등 천륜까지 외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는 체통과 소임을 잃은 비참한 군주를 보면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혁명을 결행하였다. 먼저 동료 장군인 홍유·신숭겸·배현경을 만나 군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궁예를 축출하여 새 왕조를 개창하는 혁명을 일으키고 왕건을 추대하는데 뜻을 모았다. 918년 음력 6월 14일 복지겸은 세 장군과 함께 왕건을 은밀히 방문하여 밤새도록 혁명의 지도자로 동참할 것을 간청하여 동의를 얻음으로써 신속하고 순조롭게 혁명을 진행하였다. 복지겸이 왕건을 지도자로 해서 세 장군과 함께 혁명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백성이 호응하여 궁예를 축출하고 고려를 건국하였고, 건국직후 환선길(桓宣吉)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반역을 진압하도록 했으며, 순군사 임춘길(林春吉)의 모반을 평정하는 등의 많은 공을 세웠다. 나라에서는 무인(武人)으로서 그의 행적을 기리어 무공(武功)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918년 8월 홍유·신숭겸·배현경과 더불어 고려 개국 1등 공신으로 봉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 제6대 성종 13년인 994년 복지겸은 세 공신과 함께 태사(太師)에 추증되고, 태조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현재 당진군 순성면 양유리에 제단이 있고 신도비(神道碑)와 태사사(太師祠)가 있으며, 해마다 복씨 문중에서 음력 10월 1일 향사(享祀)하고 있다. |
2) 면천 두견주 전설 |
복지겸이 원인모를 중병을 앓아 식읍(食邑)으로 받은 면천에 낙향하여 요양을 했으나 병이 점점 깊어 그의 딸이 면천의 영산 아미산에 올라 백일 동안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니 100일째 되는 날 산신령이 홀연히 나타나 "아미산 진달래 꽃잎을 따다 찹쌀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백일을 두었다가 드리고 은행나무를 너희 집 뜰에 두 그루 심어 정성을 드려라. 그러면 네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니라." 라는 계시를 받았다. 이 계시에 따라 술을 빚어 드려 병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 효행과 함께 진달래 술인 면천두견주의 비법과 1100년이 넘은 두 그루의 면천 은행나무, 안샘, 아미산, 신선바위 등이 현재 면천 일원에 있어 진달래민속의 뿌리가 되고 있다. |
3) 면천 두견주 중요무형문화재 86호 지정 |
면천 두견주(杜鵑酒)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86-나호로 국가에서 지정해 준 전통민속주이다. 천여 년 전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이 백약이 무효인 병을 앓고 있을 때 효성스런 그의 딸이 백일 기도 끝에 터득한 비법에 따라 찹쌀과 아미산 진달래 꽃잎, 안샘물로 빚은 두견주로 드디어 병을 고쳤다는 신비의 전설을 품고 있는 이 술은 오래전부터 이 곳 면천에서 가양주로 빚여 왔던 것으로 전해 온다. 오늘의 면천 두견주 상품은 박성흠(朴誠欽)이 상품화하여 일반인이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 그의 아들 박찬성(朴燦成)씨가 이어 받아 생산해 오던 중 1960년 초 정부의 쌀 술 제조 금지정책에 의해 생산이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향토 민속주 부활정책에 따라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아 1989년 충남 당진군 면천면 성상리 693-1번지에 면천 두견주 제조장이 지어져 1990년 4월 26일 사업자 등록이 완료720)된 술이다. 두견주에 관한 기록은 『임원16지(1764∼1840)』, 『동국세시기(1849)』,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1759∼1824)』에 언급되어 있다. 두견주의 효능은 진달래꽃의 향미성분과 여기서 축출된 약효성분으로 가래를 삭여주는 진해효과와 신경통, 부인냉증, 요통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약용주로 동의보감에도 기술되어 있다. |
4) 면천은행나무 |
1100년 된 면천은행나무는 당진군 면천면 면천초등학교 교정에 두 그루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복지겸의 딸이 심었다. 어떤 사람들은 집 뜰 안에 심었다고도 하고 복지겸 댁의 장광이었다고도 한다. 지역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상당부분 은행나무 밑이 땅에 묻혔다고 하며 이 은행나무는 두견주와 더불어 복지겸의 천식을 다스리기 위해 심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동의보감이나 한국동식물도감을 보면 은행은 약용으로 쓴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행나무는 잎이 부채모양이고, 가운데로부터 깊게 또는 얕게 째어지고 평행맥이며, 짧은 가지 끝에 3∼5개 뭉쳐서 난다. 꽃은 자웅 2가지로 수꽃은 수상화서이며 꽃자루가 있고, 암꽃은 꽃자루가 길며 짧은 가지 끝에 달린다. 5월에 꽃이 피며 과실은 핵과로 구형모양이며 10월에 누렇게 익는다.(한국동식물도감식물편, 정태현, 문교부, 1965, p.122.) |
진달래는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와 우리 민족정서로 대변되는 이미지와 생태특성상 무공해 지역에서 자생하는 관목으로 지역 이미지 제고 및 한국민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킵니다. 한때 무궁화가 북녘에서는 얼어죽으므로 차라리 전국 어느 곳에서도 잘 사는 진달래로 국화를 삼자는 말까지 나올 만큼 우리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려 함께 살아온 꽃입니다. 이런 진달래와 관련된 민속놀이의 대표격인 화전(花煎)놀이는 가장 한국적이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즐겼던 오랜 전통의 민속놀이입니다. 봄에 진달래꽃이 필 무렵인 음력 삼월 삼짇날에 선남 선녀들은 긴 겨울 동안 갇혀 있던 답답함을 산과 들로 나와 자연과 벗하여 해방감에 젖으며 시와 가무로 흥을 돋우며 화전을 먹으면서 하루해를 즐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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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일 시 : 2008년 4월 19일(토)~20일(일), 2일간 ㅇ 장 소 : 면천 원문봉 동산 및 면천읍성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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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군 찾아오시는 길』을 안내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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