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을 만든 역사는 길고, 그동안 훼손된 것도 적지 않다. 요즈음 모 건설회사들에서 아파트 단지 내에 만들기 시작한 석가산은 아파트 평당가격을 올릴 만큼 인기가 있다. 가산 중 붓글씨 쓸 때 먹물을 담는 연적으로 사용하는 옥가산은 옛모습을 재현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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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만물 석가산. 석가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옥가산은 주로 사랑채 문갑 위에서 볼 수 있는 연적이다.
조선 말기 문인 유도원(柳道源)은 ‘노애집(蘆厓集)’에 쓴 ‘옥가산기’에서 옥가산의 생김새와 명산의 폭포를 상징했고, 와유의 즐거움을 기록했다.
어리석은 나는 산을 옮기고자 한 지가 오래됐는데, 올해 겨울에 소옹
(素翁) 김정지(金定之)가 옥가산을
짊어지고 찾아와 나에게 주었다. 내가 절하여 받고 완상하였다.산은 모두 다섯 봉우리인데 가운데 있는 것은 가파르고 높았다. 양옆으로
가면서 조금씩 낮아지며 빼어남을 겨루는 것이 넷이었다. 사면에는 기암괴석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바위틈과 돌구멍에는 때로 사찰을 두기도 했다.그 가운데를 비워 물 한 되를 담을 수 있게 하고, 동쪽과 서쪽 두 봉우리에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구멍이 있다. 때때로 물이 나와 흐르면 마치 높은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와 같이 황홀했다. 완상하며 음미하노라니, 백두산의 장백폭포와 향로봉의 비류(飛流)폭포를
앉아서 보는 것 같았다.나는 평소 산수에 대한 벽(癖)이 있었지만 만년에 기거하는 곳에는 즐길 만큼 아름답고 빼어난 산수가 전혀 없었다. 다행히 이 옥가산을
얻어 문을 나가지 않고도 두 가지 즐거움을 갖추게 됐으니, 옛 사람이 와유(臥遊)할
밑천으로 삼았던 것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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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청대의 옥가산. 미국스탠포드 대학 박물관 소장.
괴석(怪石)은 흔한 돌과 생김새가 달라서 붙인 이름이다. 괴석은 돌로 만든 분에 담아 화단에 배치하거나 땅에 바로 세우기도 한다.
우리나라 괴석은 중국 태호석보다는 작고 소박해 보이는데 궁궐이나 민가 정원에서 많이 애용됐다. 중국인들은 기괴한 모양의 태호석 덩어리를 즐겨 완상했고, 이 태호석은 우리 민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 안국동 고 윤보선 대통령 생가에도 자그마한 태호석 몇 덩어리가 있다. 중국과 교역할 때 태호석이 들어오거나 중국에서 선물로 받은 것 같다.
조선전기의 문신인 김수온(金守溫)이 ‘식우집(拭疣集)’에 쓴 ‘이끼로 덮인 괴석(苔封怪石)’에는 기괴한 모양의 괴석이 잘 묘사돼있다.
物有異常者 보통과 다른 물건이 있으면人皆以怪稱 사람들 모두 괴이하다 말하지.風扣坳有穴 바람이 두드려 팬 곳은
구멍이 있고雨洗峭成稜 비에 씻겨 깎인 곳은 모가 나 있네.剝落千年態 천 년의
세월에 벗겨진 모양이고巉岩大古層 가파른 바위는 태고적에
쌓인 것이네.無由究終始 처음과 끝을 궁구할
길 없고只見綠苔凝 그저 푸른 이끼 엉긴 것만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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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선재후원 화계앞의 괴석.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 글자를 볼 수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립(崔岦)의 ‘간이집(簡易集)’에 있는 괴석 시는 ‘열자(列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활쏘기에 뛰어난 예(羿)라는 사람은 남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때, 이 한 마리를 창에 매달아 놓고 삼년 동안 쳐다보게 했다. 그러면 이 한 마리가 수레바퀴처럼 커 보이게 되는데, 그다음에 활을 쏘게 되면 아무리 작은 표적이라도 백발백중이었다. 시인이 얻은 괴석은 조그만 것이지만, 활쏘기를 배우는 사람이 이 한 마리를 응시하듯 바라보니 괴석이 진짜 산처럼 커 보이게 되어, 더는 진짜 산을 볼 필요가 없게 됐다.일본 13세기에는 중국 선(禅)의 영향을 받아, 불필요한 것을 배제하는 가르침으로부터 가레산스이 정원이 발전했다.
일본 전통정원 스타일은 차실이 있는 다정, 걸으면서 감상하는 회유식 정원, 상징성과 축약성이 뛰어난 가레산스이 정원으로 대표되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끊임없이 불필요한 것을 삭제하며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경향이 뚜렷하다.
도시 내의 좁은 공간의 정원과 다정(茶庭), 가레산스이 정원에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시게모리 미래이(重森三玲)의 모던 가레산스이 정원은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명상하는 선(禪)의 정원인 가레산스이 스타일을 현대화시킨 대표적인 작품이다.
근대 이후 일본전통정원은 단순미와 추상미가 뛰어남을 자랑하면서 오늘날 미니멀리즘 공원스타일의 기본 모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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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기타노 미술관 정원. 시게모리 미래이가 가레산스이를 현대화했다.
중국 항저우에 있는 호설암고거는 1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 청말 이후 파괴되었고 20세기초에 복원됐다. 호설암고거에는 특히 잘 계획된 지원(芝園)이라는 정원이 있다. 여기에는 태호석으로 만든 탑들이 있고, 정원 연못 중앙에 정자가 있다. 또한 정원에 있는 석가산은 태호석으로 인위적인 동굴을 만들고, 중앙건물 하층 부분에 기초석으로 사용됐다.
중국에서 산과 물은 예로부터 정원의 주제였는데, 현대에는 정원스타일이 확대되어 도시에서는 산과 물이 더는 주제가 될 수는 없다. 주로 석가산으로 만든 석경(石景)은 정원의 중심에서 현대정원의 발전에 따라 조각품으로 많이 바꿔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