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이야기(병아리와 뱀)
정년퇴직 후 제주에 정착한 지도 10년째, 매사에 이젠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될 즈음, 지난 여름 닭장 입구에서 길이 1m쯤 되는 뱀을 보았습니다. 닭장 있는 곳에 뱀이 모여든다는 소리는 들었으며 작은 뱀은 가끔 보았으나 큰 뱀을 마주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두어 달 전에는 닭장에 생쥐가 들끓어 골머리를 앓았는데 요즘 그 놈들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다행이라 했더니 바로 요놈의 뱀 덕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침에 본 뱀이 미심쩍어 혹시나 하고 오후에 닭장에 가보았습니다. 역시나 그 뱀이 자기 머리보다도 큰 계란을 억지로 삼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계란을 구하고 뱀은 쫓아 버렸으나 앞으로가 걱정이었습니다. 4마리의 청계 암탉이 일주일에 병아리 31마리를 부화시켰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치 못했던 1마리, 물 관리를 잘못해서 익사한 3마리 등 처음부터 4마리나 손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텃밭의 삼채 나물을 썰어주려고 병아리를 전부 모아 세어보니 16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병아리 털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입니다.
뱀은 족제비와 달리 털까지 모두 삼키므로 없어진 11마리는 분명히 뱀의 짓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닭장에 들어서는데 이번에는 계란을 훔쳐 먹던 녀석보다 훨씬 큰 놈이 병아리를 머리부터 통째로 삼키고 있었습니다. 족제비를 쫓으려고 만들어 놓은 방어용 창으로 어쩔 수 없이 뱀의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닭장에 걸어 두었습니다. 뱀에게는 경각심을, 닭에게는 경계심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말씀 「창세3, 1-14.」에 의하면 뱀은 하와를 유혹하여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따 먹게 하였고, 하와뿐만 아니라, 아담까지 유혹에 넘어가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뱀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고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매달려 있는 뱀을 보면서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살기위해 자연의 법칙을 따랐을 뿐이니까요.
사실 닭장을 만들기 위해 오골계 계란 1개당 1,500원씩 지불했고, 청계 계란을 개당 2,000원씩 주고 샀습니다. 또 갓 부화한 병아리는 마트에서 달걀을 사다가 삶아서 아기처럼 먹여 키웠습니다.
하지만 뱀은 나의 이런 정성을 알 리가 없습니다. 오직 본능에 따라 죄책감도 없이 한 끼 식사를 즐겼을 테니까요. 그러나 닭장 주인인 나는 뱀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 참에 뱀의 생태를 자세히 알아 봤습니다.
지구상에는 2,800여 종의 뱀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11종이 있는데, 독사 류가 3종이고 독이 없는 뱀이 8종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뱀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실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도 뱀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뱀을 보호하면서도 닭장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 했습니다.
촘촘한 그물망을 일정 높이까지 둘러쳐서 뱀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려면 둘레가 48m나 되는 닭장의 그물망 시설, 일정 깊이까지 쥐구멍 차단할 공사 등 상당한 비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집에서 닭을 길러 유정란(有精卵)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닭 기르기가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아내한테 금 달걀을 먹게 생겼다는 핀잔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25. 3. 9. (일).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과 어울려 아니 다스리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만
제주드림님 말씀처럼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콩을 심을 때 3알을 심었는데, 하나는 땅속 벌레용 하나는 날짐승용 이라고 했지요.
저도 약간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씨앗을 파 먹는 까치 비둘기들이 밉고, 땅속 거세미 벌레를 보면 죽이지요.
죽이면서도 좀 개운치는 않지만~~
글을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자주 글 올려주시면 좋갰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재밌게 잘 쓰시네요 감사합니다